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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아프리카 국회가 위치하고 있는 케이프타운 시내의 전경. 남아프리카는 근대의 기간 동안에도 권력분립의 원칙에 따라 행정수도 프리토리아, 사법수도 블로엠폰테인, 입법수도 케이프타운이 상호 견제하면서 발전하였다. 이러한 수도의 분할은 탈근대의 시대에 더욱 빛을 발하여 상호 평등과 조화의 원칙에서 균형잡힌 아름다운 상생의 남아프리카를 만들고 있다.
ⓒ 장시기
300여년간 지속된 암흑을 깨고 1994년 넬슨 만델라 정권이 등장한 후 가장 놀라운 사건은 1996년 남아프리카 의회가 '새로운 남아프리카를 위한 헌법'을 제정한 일일 것이다. 이 헌법의 특징은 300여년 동안 다수의 역할을 자임한 서구·백인·남성 중심의 근대적 '인권'을 중시하는 원칙에서 벗어나 새로운 헌법 모델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새로운 헌법은 억압과 폭력을 당하면서도 삶을 영위해온 남아프리카의 다양한 비서구·유색인·여성들의 삶의 방식을 존중하는 탈근대적 '문화권'을 원칙으로 고수하는 동시에 미국과 영국을 비롯한 수많은 근대적 헌법을 고수하고 있는 국가들에게 '소수자를 위한 헌법'의 원칙을 제시하고 있다.

새로운 남아프리카의 '소수자를 위한 헌법'은 미국과 서구의 학자들 속에서 논의되고 있는 단순한 탈근대의 이론이 아니다. 이는 훗날 아프리카민족회의(ANC)로 이름이 바뀐 '남아프리카 원주민 민족회의(The South African Native National Congress)'가 출범한 1912년 이후부터 만델라가 대통령에 당선될 때까지 82년 동안 영국 제국주의와 아프리카너 백인 독재정권에 맞서 싸운 모든 저항의 산물이다.

이와 동시에 다시는 영국 제국주의나 아프리카너 독재정권 같은 근대의 문명과 야만이라는 이분법을 토대로 만들어진 지배와 피지배, 억압과 저항을 재생산하지 않겠다는 남아프리카 구성원들 다수의 합의로 만들어진 헌법이다.

다시 말해 현재가 아닌 미래를 위한 헌법이다. 이미 1996년에 만들어진 헌법임에도 "현재가 아닌 미래"라고 말하는 이유는 근대적인 서구·백인· 남성 중심주의의 정치와 경제가 아직도 남아프리카를 문명과 야만의 이분법으로 재생산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벗어나는 길은 새로운 남아프리카의 '소수자를 위한 헌법'이 천명하는 것처럼 철저하게 문화권의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것이다.

근대 인권에서 탈근대 문화권으로... 소수자 삶의 다양성 인정

1988년 아프리카너 백인 정권이 위태로워지기 시작하자마자 아프리카너 백인 정권을 지원했던 미국은 남아프리카를 위한 헌법 초안을 작성해 망명중인 아프리카민족회의 지도부에 전달하면서 새로운 남아프리카를 위한 헌법을 작성하라고 제시했다.

당시 아프리카민족회의 대통령이었던 올리버 탐보(Oliver Tambo)는 루사카에 있던 '아프리카민족회의 헌법위원회'에 미국의 제안을 보고했는데 이 헌법위원회는 미국의 제안을 외국의 간섭으로 규정, 거부하였다. 그들은 근대적인 외부의 어떤 헌법과도 연계되지 않은 새로운 헌법을 스스로 만들기로 합의하였다.

1990년 '아프리카민족회의 헌법위원회'는 그간 서구 국가들이 주도한 헌법과 다른 '새로운 민주주의를 위한 권리법안'의 초안을 작성하기 시작했다. 이 초안은 근대적인 제국주의와 독재에 대한 아프리카 민족회의의 저항 과정에서 만들어진 인권의 전통에 토대를 두었다.

이러한 전통은 1923년 권리장전(Bill of Rights), 1943년 아프리카인들의 요구(Africans' Claims), 1954년 여성헌장(Women's Charter), 1955년 자유헌장(Freedom Charter) 및 남아프리카에서 권리를 빼앗겼던 노동자·여성·어린이 등이 권리를 획득하기 위해 벌인 대중적인 투쟁의 모든 역사적인 축적물을 포함했다.

1993년에 발표된 '새로운 남아프리카를 위한 권리법안' 초안이 1990년 만들어졌다. 이와 더불어 눈에 띄는 현상은 '아프리카민족회의' 내부에 있는 전국여성연합이 1994년 '효과적인 평등을 위한 여성헌장' 초안을 별도로 준비해 발표했다는 것이다.

'여성헌장' 초안은 이 세상에 있는 모든 근대의 헌법에서 제시하는 인권이 (서구·백인) 남성들의 경험을 토대로 규정·해석됐다고 정의했다. 그에 따르면 근대 국가들에서 여성의 권리는 노동자의 권리와 마찬가지로 투쟁의 결과물이다. 그러나 여성헌장은 "새로운 남아프리카에서 인권은 남성들과 여성들에게 비성차별적으로 헌법을 적용하고 여성 권리를 진전시키는 방식들로 규정되고 해석된다"고 제시했다.

1994년 4월 27일 기념비적인 선거 후 의회는 이 두 개의 초안을 토대로 새로운 헌법을 구성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새로운 헌법의 구성 원칙은 이 두 개의 초안과 더불어 "모든 권리들은 법률가들의 사유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보통 사람들이 스스로 기대하고 주장하는 것의 표현"이라는 생각이었다. 권리들은 어느 누군가에 의해 베풀어지거나 부여되는 것이 결코 아니다.

이러한 기나긴 과정 속에서 만들어진 것이 1996년에 등장한 '새로운 남아프리카를 위한 헌법'이다. 남아프리카를 구성하는 줄루족·호사족 등 블랙 아프리카인들과 인도·중국·말레이시아 출신의 아시아계 아프리카인들, 아랍 출신의 이슬람계 아프리카인들, 과거엔 지배자였지만 새로운 남아프리카를 구성하는 데 동참한 영국계 아프리카인들과 네덜란드·프랑스·독일 출신의 아프리카너 아프리카인들, 유대계 아프리카인들이 같은 나라에서 함께 살 수 있는 길은 각각의 문화이자 삶의 방식을 보장하는 공통의 가치들을 찾는 것이다.

'새로운 남아프리카를 위한 헌법'이 보장하는 '다양성을 토대로 한 공통의 가치들'이 바로 문화권이다. 따라서 남아프리카에 존재하는 모든 삶의 다양성을 인정하는 공통의 가치들에 토대를 둔 광범위한 사회적 계약의 헌법이 1996년 발표된 '새로운 남아프리카를 위한 헌법'이다.

확산되는 문화권, 가로막는 미국과 이스라엘

▲ 제이 레프코위츠 미국 북한인권특사가 10일 한기총 주최로 열린 '북한동포의 인권과 자유를 위한 촛불기도회'에 참석해 인사말을 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남소연
오늘날 남아프리카의 헌법은 탈근대의 문화권을 보장하고 있다. 이 헌법은 오랜 투쟁의 산물인 근대의 인권을 확대시키는 동시에 근대의 인권에서 전혀 보장되지 않는 것들, 즉 사회와 자연 속에서 이뤄지는 인간의 모든 삶의 방식들을 보장한다. 따라서 '새로운 남아프리카를 위한 헌법'은 기나긴 근대적 투쟁의 산물인 비인종주의, 비성차별주의, 개방된 사회, 공공성, 정의의 행정이라는 근대적 인권과 함께 모든 사람들에게 위엄을 갖춘 삶의 방식을 보장하는 기회를 제공한다는 취지의 문화권을 명시하고 있다.

사상의 자유뿐 아니라 창조적 자유를, 종교적 자유뿐 아니라 언어의 자유를, 인간의 권리뿐 아니라 문화적 활동을, 여성의 권리뿐만 아니라 사회적 성(Gender)의 권리를, 사회의 권리뿐 아니라 대지와 환경의 권리를 보장하는 문화권의 확산은 남아프리카의 현상만은 아니다. 1945년 2차 세계대전 종전 후 서구 근대 제국주의 국가의 한계를 자각한 국제연합은 인류의 미래를 보장하기 위해 인류를 구성하는 각각의 문화를 보장하기 위한 문화권을 확대하는 데 심혈을 기울여 왔다.

문화권에 대한 인식을 확대시키기 위한 수십 년에 걸친 노력의 결과가 지난 2005년 10월 20일 유네스코가 가결시킨 세계 문화 다양성 협약이다. 그러나 148개의 유네스코 회원국 중에서 미국과 이스라엘은 문화 다양성 협약에 반대했다고 한다. 마치 유럽의 중세를 지배했던 로마 교황청과 스페인과 포르투갈 등 식민 왕국들이 서구적 근대의 길을 가로막고 자멸했듯이 미국과 이스라엘은 인류의 미래를 보장하는 탈근대의 문화권으로 나아가는 길을 가로막고 자멸하는 길을 선택하고 있다.

미국 문화는 영국, 프랑스, 독일에서 출발한 근대적 인권의 확대 재생산일 뿐이다. 미국은 근대적 인권을 토대로 한 서구·백인·남성 중심주의적인 문화 획일주의로 끊임없이 세계를 지배하려 하고 이스라엘은 미국에 빌붙어 현실의 이익에 눈이 멀었을 뿐이다.

한반도인, 근대의 편집증적 정신병에서 벗어나야

'새로운 남아프리카를 위한 헌법'이 보장하는 문화권의 시각에서 볼 때 미국이 근대의 인권을 토대로 이라크를 침공하고 한반도 북측에 있는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을 위협하는 것은 가장 야만적인 문화이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근대적 인권을 토대로 북측의 인권을 비난하는 한반도인들은 서구·백인·남성 중심의 인권을 방패삼아 비서구·유색인·여성의 인권을 등한시할 뿐만 아니라 자신도 모르게 서구·백인·남성이 되어서 비서구·유색인·여성에 더 가
▲ 장시기 교수
까운 자기 자신의 문화를 야만시하고 억압하는 근대의 편집증적 정신병 소유자이다.

문화는 각각의 삶이 유지되고 있는 시간과 공간 속에서 수많은 관계의 선분에 스스로 변화하고 발전한다. 한반도 남측에 있는 대한민국이 스스로 민주화에 성공하였듯이 한반도 북측에 있는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도 스스로 민주화에 성공할 때까지 기다려 남과 북이 함께 한반도의 소수자를 위한 탈근대의 문화를 일구어야만 한다.

덧붙이는 글 | 장시기 교수는 1960년에 태어났으며 1985년 동국대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석·박사 학위를 취득했습니다. 1990년부터 같은 학과에서 강의를 시작했고 영미문학연구회 사무국장, 문학과 환경학회 재무이사, 민교협 사무처장 등을 지냈습니다. <포스트모던 시대의 문학과 언어>, <근대와 탈근대의 접경지역들>, <노자와 들뢰즈의 노마돌로지> 등의 책을 펴냈으며 안식년을 맞아 지난 7월부터 남아프리카공화국 케이프타운대학에서 연구교수로 머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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