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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케이프타운 대학교에서 운영하는 박스터 극장의 내부 모습.
ⓒ 장시기
난 한국에서와 마찬가지로 이 곳에서도 일주일에 한 번씩은 영화나 연극을 본다. 어떤 사회나 국가의 미래를 결정하는 것은 영화나 연극, 소설로 이뤄진 일반 사람들의 일상적인 친구나 연인 관계의 삶이지 결코 권력이나 자본의 관계가 지배하는 정치나 경제가 아니다. 나라와 나라의 관계도 정치나 경제가 아니라 관계를 맺고 있는 둘의 문화가 상호 뒤엉키는 과정에서 만들어진다.

정치나 경제의 힘으로 모든 것이 결정되는 근대의 삶 속에서 문화는 하나의 사치품이지만, 독자적인 개체간의 만남이 만드는 상호생성적인 탈근대의 삶에서 문화는 정치와 경제를 각각의 부분 요소들로 포함해 새로운 정치와 새로운 경제를 만드는 원동력이다.

난 이런 측면에서 남아프리카 및 주변 아프리카 나라들에 한국 문화를 소개하고 한국에 아프리카 문화를 소개하는 '아프리카문화연구소' 소장인 이석호 박사의 소개로 지난 금요일 아톨 푸가드(Athol Fugard)의 연극 '출구와 입구(Exits & Entrances)'를 보았다.

'출구와 입구', 유럽의 모방에서 아프리카의 생성으로

아톨 푸가드는 2005년 '케이프타운 국제영화제' 개막작이었던 '초찌(Tsotsi)'를 지은 작가이다. 그는 소설가 앙드레 브링크, 시인 브레이튼 브레이튼바하와 함께 남아프리카의 백인 아프리카인들이 가장 자랑하는 세계적인 극작가이다.

케이프타운 대학교가 운영하는 박스터 극장에서 공연되고 있는 아톨 푸가드의 연극 '출구와 입구'에는 단 두 명의 캐릭터만이 등장한다.

그 두 명은 근대 연극의 고전인 '외디푸스'와 '햄릿' '목사(근대 이전의 종교제도를 대변하는 가톨릭 신부보다 더 기독교의 신에게 다가갔다고 믿는 청교도주의의 산물)' 등에서의 연기로 영국에서 더욱 빛을 발한 남아프리카의 전설적인 연극 배우 앙드레 휴그네(Andre Huguenet)와 아톨 푸가드의 분신이라고 할 수 있는 '젊은 극작가'이다.

단 두 명의 배우만이 등장하는 형태로 연극 무대가 축소된 것은 텔레비전과 영화의 등장으로 관객의 숫자가 줄어든 연극 시장의 위기 상황을 극복하기 위한 남아프리카 연극인들의 고뇌에 찬 선택인지도 모른다. 이곳 사람들은 이러한 연극인들의 운동을 '가난한 극장(The Poor Theatre)'이라고 부른다.

이 연극의 배경은 남아프리카보다도 영국을 비롯한 유럽에서 더 유명한 앙드레 휴그네가 근대적 절망의 고통 속에서 죽은 1961년의 케이프타운이다. 그런데 이 연극은 1961년 앙드레 휴그네로 대변되는 연극 배우의 퇴장과 아톨 푸가드로 대변되는 젊은 극작가의 등장을 근대의 '출구'와 탈근대의 '입구'라는 극적 사건으로 연결시키고 있다. 무대 위에서 연기를 하는 연극배우의 퇴장은 연극 무대를 창조하는 극작가의 입장(入場)이고, 모방을 하는 근대의 출구는 새로운 것을 생성하는 탈근대의 입구이다.

출구에는 영국을 비롯한 유럽이 있지만, 입구에는 남아프리카를 비롯한 아프리카가 있다. 따라서 출구에서 이룩한 연극배우의 모방은 유럽의 모방이지만 입구에서 이루어지는 젊은 극작가의 생성은 아프리카의 생성이다.

아파르트헤이트 폐지, 남아프리카 탈근대의 입구... 한반도는?

연극을 보는 동안 내 머리 속은 온통 1961년의 한반도도 똑같은 상황이 아니었을까 하는 상상으로 가득 찼다. 그렇다. 한반도도 마찬가지였다. 1960년 4.19 혁명으로 이루어진 근대의 '출구'에는 유럽을 모방한 일본이나 미국의 퇴장이라는 사건이 있었지만, 김수영이나 최인훈과 같은 작가들이 등장하는 탈근대의 '입구'에는 남과 북이 동등하게 화합하는 한반도의 통일로 나아가는 길이 있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남아프리카의 1961년은 아프리카너 백인 정권이 영국이나 네덜란드의 근대 국가를 모방하거나 번역하는 시대를 마감하는 의미에서 영연방에서 벗어나 근대적인 남아프리카 공화국이 수립한 해이자, 넬슨 만델라가 소속돼 있던 아프리카 민족회의(ANC)가 무장투쟁을 선언한 해이기도 하다.

한반도도 마찬가지다. 1961년은 5.16 쿠데타로 등장한 박정희 정권이 일본이나 미국의 근대 국가를 모방하거나 번역하는 시대를 마감하는 의미에서 한국적 민주주의와 국가 주도의 경제개발의 기치를 들고 근대적인 '대한민국 제3공화국'을 수립한 해이자, 독재정권 타도를 외치며 이른바 진보주의자들이 결집하기 시작한 원년이기도 했다.

그런 의미에서 아톨 퓨가드가 말하는 근대의 '출구'와 탈근대의 '입구'가 현실에서 실현된 것은 1991년 아파르트헤이트가 폐지되고 1994년 만델라 정부가 등장하면서부터였다. 한반도에 사는 우리에게 근대의 '출구'와 탈근대의 '입구'는 현실적으로 언제 이루어질까?

모방과 번역의 근대를 상징하는 아프리카너와 박정희 정권

역사적 의미의 근대(the modern age)는 연극배우의 직업이 상징하는 것처럼 흔히 모방의 시대 혹은 번역의 시대라고 일컬어진다.

실제로 자신의 삶에서도 그러했듯이 '출구와 입구'에서 앙드레 휴그네는 외디푸스와 햄릿, 그리고 기독교의 사제를 모방하고 번역한다. 1961년의 남아프리카와 한반도는 근대가 만든 국가주의를 토대로 외디푸스와 햄릿, 그리고 기독교의 사제를 모방하고 번역하는 서구·백인·남성을 다시 모방하고 번역한다.

남아프리카와 한반도에서는 서구·백인·남성을 모방하고 번역해 그것에 가까이 다가갈수록 근대 사회의 자본 혹은 계급으로 이뤄진 권력을 획득할 수 있게 됐다. 마치 연극의 초반에서 젊은 극작가가 앙드레 휴그네의 개인 비서 역할을 하듯이, 그리고 서구·백인·남성이 외디푸스와 햄릿, 그리고 기독교 사제를 모방하고 번역해 그들 자신의 지식에서 권력적 서열관계를 만들듯이. 이러한 모방과 번역을 토대로 한 근대 권력이 남아프리카에서는 아프리카너 백인 정권이었고 한반도에서는 박정희 정권이었다.

아프리카너 백인 정권과 한반도의 박정희 정권은 자신들의 권력의 모태라고 할 수 있는 서구 제국주의와 유사한 아류 제국주의적 근대의 개인 혹은 집단의 서열주의를 남아프리카와 한반도에 각각 만든다. 개인적 서열주의와 집단적 서열주의는 근대의 모방과 번역의 문화를 토대로 서로 뒤엉켜 있다.

대한민국의 농촌과 어촌은 지방 중소도시들로, 지방 중소도시들은 부산·대구·광주·대전 같은 지방 대도시로, 지방 대도시들은 서울이라는 한반도의 가장 서구·백인·남성적인 문명으로 나아가는 토대이다. 서울은 어떤가? 서울 사람들은 모두 강남을 바라보는 해바라기이고 강남 사람들은 근대적 모방과 번역의 원본이라고 믿고 있는 미국을 바라보는 해바라기들이다.

그러나 미국도 결코 근대의 원본이 아니다. 근대의 모방과 번역의 기원을 추적하다 보면 고대 그리스 도시국가에서 근대를 창출한 유럽 문명의 근원을, 고대 유럽의 왕국에서 종족적 근원을, 고대 기독교 사회에서 종교적 근원을 찾을 수 있다. 그 원형이 외디푸스와 햄릿, 그리고 기독교의 사제이다.

탈근대, 창조와 생성의 시대

역사적 의미의 탈근대(the trans-modern age)는 창조의 시대, 생성의 시대이다. 창조와 생성은 차이를 토대로 한 독자성을 만드는 것이다. 부산은 서울과 다른 독자성의 문화를 생성하고 청주는 대전과 다른 세계여야 하며, 광주는 대구와 다른 차이를 토대로 자신들의 삶의 공동체를 창조하고 생성해야만 한다. 이와 마찬가지로 한반도는 일본이나 중국과 다르고 더더욱 미국과 다른 독자적인 세계여야만 한다.

차이를 토대로 한 독자성의 생성과 창조는 지역적 삶의 방식인 문화를 토대로 이루어진다. 따라서 문화를 구성하는 핵심은 창조와 생성의 예술이다. 그런데 문제는 근대의 제국주의가 예술의 원칙을 모방과 번역으로 규정하고 창조와 생성을 앗아간 것이다.

모방과 번역의 시대였던 근대의 가장 위대한 예술은 비극이고 창조와 생성의 시대인 탈근대의 가장 위대한 예술은 희극인 것도 그 때문이다. 철학, 과학과 달리 예술은 근본적 의미에서 곧 삶이거나 혹은 삶에 대한 지식이기 때문에 근대인의 삶과 탈근대인의 삶도 예술과 마찬가지로 비극과 희극으로 구분할 수 있다.

근대와 탈근대의 중간에 있는 어정쩡한 후기 근대인 오늘날 가장 활기를 띠고 있는 예술은 바로 비극과 희극이 뒤범벅이 되어있는 블랙 코미디이다. 블랙 코미디는 다양한 예술의 장르에 따라서 다양한 이름들을 지니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박찬욱 감독의 '공동경비구역 JSA'나 '올드 보이' 같은 훌륭한 영화나 연극을 보거나 소설을 읽으면서 울 수도 없고 웃을 수도 없는 애매모호함 속에서 갈팡질팡하는 것이다.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이다. 서구·백인·남성 중심주의가 횡행하는 뉴욕보다 더 뉴욕 같은 서울, 온갖 의미가 뒤범벅된 영어 간판들이 즐비한 서울보다 더 서울 같은 중소도시들. 그래서 사람들은 모방과 번역의 원본이 살아있다고 믿었지만 실은 독재와 폭력으로 점철돼 있는 근대로 돌아가려는 향수에 젖거나 아직 확실하게 그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탈근대의 희망으로 미래를 바라본다.

근대국가라는 아버지·왕·신은 이제 없다

다행스럽게도 한반도의 모델이 되는 남아프리카에는 후기 근대의 애매모호함이 존재하지 않는다. 남아프리카는 유럽을 모방하고 번역하던 아파르트헤이트 폐지 이전의 근대와 새로운 남아프리카를 창조하고 생성하는 아파르트헤이트 폐지 이후의 탈근대만이 있을 뿐이다. 남아프리카는 오늘날의 유럽이나 미국 혹은 한반도의 대한민국이 경험하고 있는 후기 근대의 블랙 코미디를 뛰어넘어 곧장 창조와 생성의 시대라는 탈근대의 무대로 입장하고 있다.

그 이유는 연극 '출구와 입구'에 등장하는 앙드레 휴그네와 아톨 퓨가드의 관계에서 찾을 수 있다. 앙드레 휴그네는 아톨 퓨가드에게 모방과 번역의 천재인 자기를 뛰어넘어 자기의 꿈인 아프리카 극장을 창조하라고 이야기한 뒤 스스로 짐을 정리해 무대에서 퇴장한다.

▲ 장시기 교수
연극이 끝날 무렵 그들은 외디푸스, 햄릿, 그리고 기독교의 사제가 암시하는 아버지-아들, 왕-신하, 신-인간의 관계를 파괴하고 서로가 서로를 생성하고 창조하는 친구와 연인이 되어있다.

근대 국가라는 이름으로 만들어진 아버지, 왕, 그리고 신은 존재하지 않는다. 훌륭한 아버지는 딸이나 아들의 친구가 되어야만 하는 것처럼.

덧붙이는 글 | 장시기 교수는 1960년에 태어났으며 1985년 동국대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석·박사 학위를 취득했습니다. 1990년부터 같은 학과에서 강의를 시작했고 영미문학연구회 사무국장, 문학과 환경학회 재무이사, 민교협 사무처장 등을 지냈습니다. <포스트모던 시대의 문학과 언어>, <근대와 탈근대의 접경지역들>, <노자와 들뢰즈의 노마돌로지> 등의 책을 펴냈으며 안식년을 맞아 지난 7월부터 남아프리카공화국 케이프타운대학에서 연구교수로 머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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