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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발 4000m의 안데스 고산온천 라라야(La Raya)에서 몸을 푼 일행은, 다시 푸노로 가는 여정에 올랐다. 다음 행선지는 잉카 제국의 전신인 추라혼(Churajon)문화가 살아 숨쉬는 시유스타니(Sillustani).

쿠스코보다는 푸노에서 가까운 이 유적은 큰 돌을 갈아 쌓아올린 석탑묘로 유명한 곳. 시유스타니로 들어가는 표지판이 있는 곳에서 좁은 길을 따라 올라가다 보니 넓은 평원 위로 돌을 쌓아올린 가옥들이 보였다.

▲ 촘촘히 돌을 쌓아올려 만든 가옥들의 모습
ⓒ 배한수
그런데 돌로 쌓아올린 집보다 더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끝이 안 보일 정도로 길게 늘어선 돌담.

가축이 도망가지 못하도록 만들어 놓은 용도인지, 땅에 대한 영역 표시인지는 모르지만 집둘레를 따라 끝없이 쌓아올린 돌담을 보고 있자니 돌담으로 유명한 우리나라의 제주도는 저리가라다. 누가 석재건축의 문화로 유명한 잉카의 후예 아니랄까봐 광활한 평원 전체를 돌담으로 빈틈없이 둘러쌓아 놓았다.

▲ 끝이 안보일 정도로 길게 늘어선 돌담
ⓒ 배한수
이렇게 넓은 평원과 돌담을 구경하며 차를 타고 들어가길 20여 분. 드디어 작은 동산 모양의 시유스타니 유적이 보였다.

▲ 주차장에서 바라본 시유스타니 유적의 전경
ⓒ 배한수
시유스타니는 추라혼 문화가 남긴 공동묘지를 볼 수 있는 곳으로, 우마요(Umayo) 호수의 절경 속에 위치한 분묘다. 유적 입구에서 유적을 바라보자니 작은 동산모양에 돌로 쌓아올린 묘지가 여러 개 보인다. 전성기 때는 묘지의 개수가 천여 개에 육박했다고 하는 이곳에는 현재 몇몇 묘지들만 남아있다.

▲ 유적 입구에서 바라본 시유스타니
ⓒ 배한수
일행은 동그란 원탑모양으로 쌓아올린 묘가 보이는 입구를 통해 유적 입구로 들어갔다. 헌데 조금 올라가 보니 작은 동산처럼 보이던 유적의 내부가 매우 넓었다. 호수 주위를 따라 형성된 길게 늘어선 낮은 언덕에는 그 형체가 뚜렷한 출빠(Chulpa, 석탑묘의 이름)들이 여러 개 자리하고 있었다.

▲ 낮은 언덕의 정상에 자리잡은 출빠(Chulpa, 석탑묘의 이름)들
ⓒ 배한수
가까이 가서 보니, 묘는 크기가 비슷한 커다란 돌을 매끈하게 다듬어 약 15층 원탑형 모양으로 쌓아 올렸다. 내부에는 동그란 홈을 파 시체를 묻었다고 하는데, 이러한 모양으로 묘를 만들게 된 사유를 물어보니 지진과 바람에 대비해 그렇게 쌓아올렸다고 한다. 천년 전에도 이렇게 과학적으로 묘를 쌓아올릴 생각을 하다니, 생각해볼수록 참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 분묘를 가까이서 본 모습 (그 모습이 참 정교하다)
ⓒ 배한수
묘지의 형태로 추측하건데 이곳에는 추라혼 문화가 남긴 분묘뿐만 아니라 프레 잉카, 잉카시대의 것으로 보이는 분묘들도 발견되고 있다고 한다. 가장 최근의 문명인 잉카문명의 것은 돌의 다듬새가 정교하고 분묘의 형태가 아름답다고 하는데 세월이 흐르면서 돌을 다듬는 기술이 더욱 발전했음을 묘지에서도 확인할 수 있었다.

좌측으로 트인 길을 따라 가다 보니 평평한 벌판에 원형으로 둘레를 따라 돌을 심어놓은 곳이 보였다. 이곳은 사람에게 기를 불어넣어 준다는 광장.

▲ 사람에게 기를 불어넣어 준다는 광장에서 페루 친구가 팔을 벌리고 서있는 모습
ⓒ 배한수
원형으로 돌을 심은 곳의 광장 중앙에서 두 팔을 벌리고 하늘을 바라보면 기가 들어온다고 한다. 물론 믿거나 말거나 한 설이지만 동행 한 친구들은 한참동안 이 광장에서 팔을 벌린 채 서있었다. 과연 기가 들어왔는지는 아무도 모르지만 말이다.

▲ 묘지 내부의 구조를 잘 들여다볼 수 있는 대형 묘
ⓒ 배한수
반쯤 부서진 채로 묘의 내부 모습을 잘 들여다 볼 수 있는 이것은, 시유스타니 유적에서 가장 전망 좋은 위치에 자리 잡은 묘다. 큰 돌들이 어지럽게 널린 틈을 비집고 들어가 내부를 들여다보니 동그랗게 쌓아올린 돌담 안에 시체가 안구된 것으로 보이는 동그란 무덤이 자리하고 있었다. 쌓아올린 돌담의 높이와 크기는 곧 그 사람의 권력과 부를 상징한다고 하는데, 밝혀진 바는 없지만 아마 이곳에 묻힌 이는 과거 엄청난 권력을 가진 이리라.

▲ 묘의 쓰러짐을 방지하기 위해 버팀목을 설치해 놓은 모습
ⓒ 배한수
이렇게 큰 묘가 있는 곳에서 조금 더 걸어 들어가니 반쯤 부서진 묘에 버팀목이 받혀있는 것이 보였다. 이 묘는 무너짐을 방지하기 위해 나무로 고정해 놓은 상태. 더구나 묘 내부를 자세히 보니 돌마다 숫자가 써 있었다. 이것은 혹시나 묘가 무너지는 사고가 발생했을 시 돌을 원래대로 다시 쌓아올릴 수 있도록 돌마다 숫자로 번호를 써놓은 것.

아무리 정교하고 튼튼하게 쌓아올렸다고 하지만 장구한 세월과 대자연의 순리는 어찌할 수 없는 모양이다. 시유스타니의 대부분 묘들은 그 형태를 보존할 수 있도록 지금도 간간히 보수공사가 진행 중이라고 한다.

▲ 이글루 처럼 반원 모양으로 동그랗게 쌓아올린 묘의 모습
ⓒ 배한수
각기 다른 형태와 다른 모습을 지닌 채 현재까지 남아 사람들에게 그 옛날의 부귀와 영화를 알리는 시유스타니의 묘지들. 비록 스페인 정복자들에 의해 그들이 오랫동안 쌓아올린 고귀한 문명은 한순간에 무너져 버렸지만 그들의 흔적은 이렇게 남아있었다.

혹시 이것이 페루 사람들이 아직까지도 잉카의 후예를 자청하며 살아가는 원동력이 되고 있진 않을까?

덧붙이는 글 | 쿠스코-푸노 여행기는 총 8부로 연재됩니다. 
현재 페루에 체류 중입니다. 
본 기사는 중남미 동호회 "아미고스(http://www.amigos.co.kr)에 칼럼으로도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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