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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대통령과 참여정부의 인사는 역대 정부에 비추어 비교적 호평을 받을 만하다. 그런 평가를 받은 저변에는 철저한 시스템에 의한 인사가 자리잡고 있다. 그러나 또 다른 요인을 찾는다면 시스템에 맡기고 일절 인사에 개입하지 않는 노 대통령의 '의지'를 들 수 있다.

그래서 부산상고 동문들이 잔뜩 입이 나와있을 정도라고 한다. 노무현 후보에게 가장 거액(?)의 후원금을 댄 부상상고 동문으로 알려진 문병욱 썬앤문 대표가 청와대에서 노 대통령 부부와 함께 저녁 한번 먹어보는 호사의 기회를 가진 것 말고는, 불가피한 사유가 있긴 했지만, 그냥 검찰에 구속될 정도니 다른 동문들은 감히 '명함'도 못 내밀게도 생겼다.

그런데 '예외'가 있다. 최근 가랑비에 옷 젖듯이 야금야금 진행된 청와대 비서관급 인사를 보면 아예 욕먹기를 작정하고 밀어붙이기를 단행한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물론 청와대 수석비서관과 달리 비서관급 인사는 청와대 인사추천회의 의장인 김우식 대통령비서실장 명의로 단행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청와대 인사가 이를 보고받는 대통령과는 전혀 무관하다고 믿는 순진한 국민은 없을 것이다.

노혜경 국정홍보비서관 내정과 '박근혜 패러디' 안영배 비서관의 복귀

▲ 청와대 국정홍보비서관으로 내정된 노혜경씨
ⓒ 오마이뉴스 이종호
청와대는 20일 노혜경 열린우리당 중앙위원을 국정홍보비서관에 임명 내정했다. 조만간 청와대에서 근무하게 될 노씨는 약 한 달간의 신원조회 과정을 거쳐 정식으로 임명되게 된다.

청와대는 또 국정홍보처로 복귀하는 유재웅 홍보기획비서관 후임에 양정철 국내언론비서관을 전보하고, 국내언론비서관에는 안영배 전 국정홍보비서관을 임명했다.

이로써 지난 7월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를 비하한 '패러디 게시물'을 청와대 홈페이지에 장시간 도드라지게 게재했다는 사유로 직위해제되어 대기발령 상태인 안영배 전 비서관은 한 달여 만에 복귀했다. 청와대는 패러디 게시물이 문제가 되자 7월 16일 인사위원회를 열어 담당 김모 행정관과 함께 안 비서관을 직위해제 했었다.

얼핏 보면 청와대 파견 공무원의 원대 복귀에 따른 평범한 전보인사인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찬찬히 따져보면 이번 인사는 문제가 적지 않다.

우선 노혜경씨를 청와대 기관지인 <청와대브리핑>을 발간하고 청와대 홈페이지를 운영하는 업무를 담당하는 국정홍보비서관 자리에 앉힌 것부터가 '도덕적 불감증'에 갇혀있음을 의미한다. 물론 이 말은 노씨가 부도덕하거나 '불감'이다는 뜻이 아니고 '불감'의 주체가 청와대라는 것이다.

노 내정자는 부산 중앙여고·부산대 국문학과를 졸업하고 91년 <현대시사상>을 통해 등단한 '시인'이다. 노씨는 또 부산 민족예술총연합회 정책위원, 부산 민주언론운동시민연합 부의장, 부산 국민참여운동본부 공동본부장 등을 지낸 '현실 참여파' 시인이기도 하다.

그래서인지 청와대도 노씨를 내정하면서 "합리적인 성품으로 탁월한 조정력과 통솔력을 가지고 있고, 여성으로서의 부드러움 섬세함 등을 겸비하고 있다"고 발탁 배경을 밝혔다. 청와대가 국정홍보비서관에 여성을 기용한 것도 평가할 만하다.

청와대가 열린우리당 총선 낙선자들의 구직처인가

그러나 노씨는 청와대가 "다양한 경력을 바탕으로 전문성과 개혁성을 갖추고 있다"고 평가한 시인이기 이전에, 부산 노사모(노무현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의 핵심 인사이자 '안티조선'의 선봉에 선 정치활동가이다.

그리고 노사모 활동과 안티조선 활동을 하다가 지난 17대 총선에서 현실 정치에 뛰어든 기성 정치인이다. 널리 알려졌다시피 노씨는 정형근(부산 북·강서갑) 한나라당 의원을 '표적' 삼아 출마했으나 열린우리당의 선거구 조정과정에서 이철 전 의원이 정 의원과 붙고, 노씨는 부산 연제구에서 출마해 김희정 현 한나라당 의원에게 패배한 바 있다.

총선에 출마한 정치인을 청와대로 끌어들이는 것은 참여정부 국정2기의 국정운영 방향을 '정치 아닌 정책'으로 잡고 청와대를 '정쟁 아닌 정책의 산실'로 만들겠다는 노 대통령의 국정운영 철학에도 배치된다.

청와대는 이미 지난 7월 27일에도 부처(행자부)로 복귀하는 일부 비서관 인사를 단행하면서 김만수 전 보도지원비서관을 청와대 상근부대변인에 임명하는 '끼워넣기' 인사를 단행한 바 있다. 김 부대변인도 지난 17대 총선 전에 청와대 보도지원비서관직을 사임하고 총선에 출마해 노 대통령의 '저격수' 김문수(부천 소사) 한나라당 의원과 맞붙었다가 고배를 마신 노 대통령 '386 참모' 중의 한 사람이다.

따라서 김만수 비서관의 '조용한 컴백'에 이은 노혜경씨의 청와대 입성은 '청와대가 열린우리당 총선 낙선자들의 구직처냐'는 비판을 받을 만하다. 물론 이에 대한 노혜경씨의 생각은 다르고 당당하다(아래 상자 인터뷰 기사 참조).

노사모 회원의 '패러디'가 문제된 자리에 다시 노사모 회원 비서관 임명

청와대는 노씨에 대해 "합리적인 성품으로 탁월한 조정력과 통솔력을 가지고 있고, 여성으로서의 부드러움 섬세함 등을 겸비하고 있어 <청와대브리핑> 발간 및 홈페이지 기획운영을 담당할 국정홍보비서관에 적임자로 판단된다"고 발탁 배경을 밝혔다.

그러나 이런 '무감각'한 발탁 배경은 패러디 파문으로 직위해제 되었음에도 그에 합당한 복귀 해명도 없이 안영배 전 국정홍보비서관을 슬그머니 복직시킨 것과 함께 청와대의 '도덕적 불감증'을 보여주는 것이다.

알다시피 이번 인사의 단초가 된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를 비하한 패러디를 만든 신아무개씨는 네티즌 사이에서는 상당히 유명한 패러디 작가이자 노사모 회원으로 알려져 있다. 이 패러디를 청와대 홈페이지에 올린 '첫비팬'이라는 사람도 노사모 회원이거나 청와대 내부직원일 가능성이 높다는 의혹이 제기되는 마당이다.

그런데도 청와대가 노사모 핵심 멤버를 청와대 홈페이지 기획운영을 담당하는 국정홍보비서관에 앉힌 것은 청와대가 여전히 지금도 지난번 '패러디 파문'의 인과 관계에 대한 '도덕적 불감증'에 갇혀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청와대는 노 대통령과 대부분의 청와대 출입기자들이 여름 휴가중인 지난 8월 5일에 내부 승진인사를 단행했는데, 이때도 청와대에 근무한지 1년도 안된 나이 어린 행정관이 3급(국장급)으로 승진하는 등 이른바 '386 참모'들이 상당수 승진해 '386의 승진잔치'라는 뒷말을 낳은 바 있다. 또 이 때 장수천의 대표이자 부산상고 후배인 홍경태씨가 '수송직 3급 행정관'으로 채용된 사실이 뒤늦게 밝혀지기도 했다.

3급은 부처의 국장급에 해당한다. 청와대에는 국장이라는 직제가 없지만 부처의 직급에 견주어 통상 '국장'이라고 부른다. 또 그런 직위가 불가피한 측면도 있다. 청와대에서는 그렇게 해야 '서열과 계급'을 중시하는 부처 공무원들에게 전화하거나 이들을 직접 상대할 때 '말발'이 서기 때문이다.

박사 사무관·20년 서기관 수두룩한데 '청와대 386의 승진잔치'는 위화감 조성

그러나 아무리 임기가 보장되지 않은 정무직이라고 해도 이들의 '승진잔치'가 야기할 수밖에 없는, 부처에서 파견된 나이 많은 공무원들과의 불편함과 위화감을 감안하면 결코 잘한 인사라고 볼 수는 없을 것이다.

지난 8월 10일 중앙인사위원회는 청와대 국무회의에서 이공계 박사·기술인력의 공직 특채를 골자로 한 우수과학기술인력 양성 방안을 보고한 바 있다. 이는 참여정부의 인사개혁 로드맵의 주요과제인 '공무원 충원경로의 다원화'와 '과학기술인력의 공직진출 확대방안'의 일환으로 추진된 것이다.

이렇게 참여정부의 인사개혁 로드맵에 따라 이공계 박사들이 겨우 5급(사무관)으로 신규 채용되고, 행정고시에 합격해 20년씩 근무해도 4급(서기관)에 머무는 공무원들이 수두룩한 것이 현실이다. 그러니 아무리 정무직이라고 하지만 '청와대 386의 승진잔치'는 너무 한 것 아니냐는 얘기가 나오는 것이다.

물론 장·차관급 인사와 정부 산하 기관장들에 대한 '큰 그림'의 인사가 더 중요하지만, 노 대통령이 청와대 등잔 밑의 '작은 그림'의 인사에도 관심을 기울여야 하지 않을까.

"노사모 회원 유지할지는 당적 정리할 때 고민하겠다"
노혜경 국정홍보비서관 내정자 전화 인터뷰

- 언제부터 청와대 출근하나.
"마음의 준비가 안된 상태에서 임명 통보를 받아 청와대에 시간을 달라고 해 정리할 말미를 좀 얻었다. 당장 출근하지는 않는다."

- 그러면 본인도 모르는데 일방적으로 통보받은 것인가.
"그것은 아니다. 내가 먼저 그 자리에 가겠다고 한 것은 아니라는 얘기다. 그러나 제안을 받고 내가 받아들인 것이니 결국 내가 원한 것이다."

- 현역 정치인이 청와대에 들어와 비판이 있을 것으로 예상되는데….
"저는 왜 비판을 받아야 하는지 잘 모르겠다. (노사모 활동 등으로) 노무현 정권 출범에 책임이 있는 한 사람으로서 청와대 들어가서 활동하겠다는 것이 왜 비판받아야 하는가."

- 노 대통령이 청와대가 정치 아닌 정책의 중심이 되도록 하겠다고 천명한 것에 비추어 총선에 출마한 정치인들을 청와대에 영입하는 것은 비판받을 소지가 있는 것 아닌가.
"노사모 활동을 처음 시작할 때부터 온 국민이 전부 정치인이 돼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나는 그것을 '시민정치'라고 표현하는데 그 생각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 그렇다면 한 번 총선에 출마한 사람은 정치권에만 낭인처럼 떠돌아다녀야 하나?"

- 그렇지만 열린우리당 중앙위원 출신의 정치인이 청와대에 들어가는데 정치적으로 '엄정중립'을 의심받을 수밖에 없지 않나.
"열린우리당 당적은 정리할 것이다. 정치적인 입장을 선명하게 밝혀온 지식인에서 청와대에 들어가면 공무원이 되는 만큼 '엄정중립'은 아니더라도 합리적이고 공정하게 일하겠다는 생각이다."

- 국정홍보비서관 자리에 대한 업무파악은 했나.
"'국정브리핑'과 '청와대브리핑'을 발간하고 청와대 홈페이지 관리 책임을 맡는 것으로 안다."

- 아다시피 노사모 회원인 패러디 작가가 청와대 홈페이지에 박근혜 대표 패러디물을 올린 것을 담당자가 홈페이지에 배치해 전임 국정홍보비서관이 관리감독 부실 책임을 지고 직위해제 되었는데, 노사모 회원이 그 자리에 가면 다시 비슷한 일이 생길 수도 있는데, 노사모나 회원들의 관계를 어떻게 정립하려나.
"노사모 회원을 유지할 것인지는 열린우리당 중앙위원회가 열려 당적을 정리할 때 함께 고민해 보겠다. 청와대에 근무하면서 노사모 회원을 유지하는 것이 노 대통령에게 부담이 되는 것이라면 정리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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