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화씨 9/11> 포스터
개봉 전부터 지나치게 정치적 목적을 가진 영화라는 거센 논란을 일으켰던 마이클 무어의 <화씨 9/11>이 지난 주 수요일(23일·이하 미국 현지시간) 미국에서 개봉되며 현지 극장가를 강타하기 시작했다. '화씨 9/11'은 지난달 칸 영화제에서 대상을 받은 작품으로도 크게 관심을 모아 왔다.

'화씨 9/11'은 지난 23일 뉴욕의 두 개 극장에서 먼저 개봉되었고 25일부터는 미 전국의 868개 극장에서 일제히 개봉했다. '화씨 9/11'은 벌써 기록영화로는 '단기간 최고'라는 2196만달러의 수입을 올려 최근 미국 극장가에서 주말 흥행 1위를 기록한 코미디영화 '화이트 칙스'(White Chicks)의 흥행기록(1960만달러)을 간단히 밀어냈다.

이제까지 기록영화 수입 1위 기록은 미국의 콜럼바인 고등학교에서 벌어진 총기사고를 다룬 <볼링 포 콜럼바인>의 2160만달러였다. 이 영화 역시 마이클 무어가 만든 영화로 2002년 아카데미 기록영화상을 받았다.

AP통신은 토요일과 일요일까지를 포함한 통계가 나오는 경우 '화씨 9/11'이 기록영화로는 전무후무한 흥행기록을 세울 것이라고 보도했다.

로이터통신은 27일 15개 도시에서 영화관 앞에서 실시된 출구조사에서 응답자의 91%가 이 영화에 '최우수' 평가를 내렸으며, 93%는 이 영화를 '반드시 추천할 만한 영화'로 꼽았다고 보도했다.

미 언론 "화씨 9/11, 부동층에 영향 미칠 것"

< USA투데이> <워싱턴 포스트> <뉴욕타임스> 등을 비롯한 미국의 주요 언론들은 이 영화가 개봉되자마자 연일 1면 톱과 헤드라인 뉴스로 다루는 등 큰 관심을 보였다.

미국 언론들은 이 영화가 이번 대선에서 적어도 민주당 지지자들의 결속력을 높여주고, 특히 부동층에게 상당한 영향력을 발휘할 것으로 보고 있다. 반 부시 그룹과 민주당은 부동층이 이 영화를 보도록 하는 방안을 강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화씨 9/11'은 마이클 무어가 부시를 이번 대선에서 떨어뜨리기 위해 작심하고 만든 영화다. 마이클 무어는 지난 20일 ABC의 토크쇼에 출연해 "부시가 백악관으로부터 물러나는 것을 보고 싶어서 만든 영화"라고 노골적으로 제작동기를 밝혔다.

이 영화에 대해 아버지 조지 부시 전 대통령은 "내 아들에 대한 사악한 인신 공격"이라며 불같이 화를 내면서 "거짓으로 가득 찬 영화"라고 비난했다고 25일 < USA투데이>가 보도했다

공화당을 지지하는 보수주의 그룹들은 이미 이 영화를 상영하지 말도록 전국의 극장주들에게 압력을 넣고 있으나 호기를 맞은 개봉관들이 이를 쉽게 받아들이지 않을 것은 뻔한 일이다. 이들은 연방 선거위원회(FEC)에 이 영화의 광고가 연방 선거법에 저촉되는지 검토해 달라며 공식 질의서를 보냈으나 '혐의 없다'는 판결을 받았으며, 법원에 다시 정식 제소할 예정이다.

마이클 무어 감독 "우파 그룹들에 감사" 익살

마이클 무어는 27일 AP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이 영화를 중단시키기 위해 전국의 극장 주인들에 압력을 넣고, 연방 선거위원회에 호소했다 퇴짜를 맞은 모든 우파 그룹들에 감사한다"며 익살을 떨고 "이들의 이같은 방해 공작은 더욱더 많은 사람들을 극장으로 불러 낼 것"이라고 말했다.

전체 상영시간 116분의 '화씨 9/11'은 부시의 이라크전이 시작부터 현재에 이르기 지 얼마나 '엉터리' 전쟁이었나를 적나라하게 보여 주는데 초점을 맞춘다.

영화는 2000년 미국 대선에서 전무후무할 소용돌이를 일으킨 '플로리다 소동'으로 막을 연다. 2000년 대선과 관련하여 의회 청문회에서의 증언 장면들을 빠른 속도로 진행하며 부시의 승리가 순전히 '요행수'였다는 것을 강하게 암시하는 데서부터 무어의 의도가 드러나기 시작한다.

이어지는 장면들은 아버지 부시로 하여금 "내 아들에 대한 악랄한 인신공격"이라며 불같이 화나게 만들 정도의 '불온한' 내용들이 기록영화답게 잔잔하게 펼쳐진다. 불온한 내용이란 다름 아닌 부시 가문과 사우디 아라비아 및 빈 라덴 가문간의 오랜 사업적 관계.

영화에서는 이를 통해 부시 가문이 어떻게 부를 축적했으며, 이 과정에서 젊은 사업가였으며 텍사스 주지사였던 부시가 어떻게 활약했는지에 대해서도 생생하게 언급한다. 부시가와 빈 라덴 가문 커넥션은 이미 미국 신문들이 다루어 왔으나, 이번처럼 대형 화면으로 적나라하고 생생하게 드러내는 것과는 그 효과에 있어 비견되지 않을 것이다.

아무래도 이 장면은 부시 부자로 하여금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게 할 만한 불온하기 짝이 없는 것이었다. 이 장면이 제법 길게 이어지며 관객석에서 한숨이 새어 나오는 소리가 들렸다.

불온한, 정말 불온한...

이 영화가 더욱 '불온한' 것은 9·11이 일어나던 날 아침, 플로리다의 한 초등학교를 방문했던 부시가 9·11을 보고 받는 장면이다. 부시는 참모로부터 보고를 받고도 계속해서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주고 자리를 떴는데, 무어는 부시가 책을 읽고 있는 동안 화면에 넣어둔 시계가 '째각 째깍' 7분이나 지나고 있는 장면을 '악랄하게' 보여준다.

이후로 이라크를 침공하기까지의 과정들에서 무어가 보여주려고 했던 것은 사업적 파트너였던 빈 라덴 가문보다는 '석유의 나라' 이라크를 공격하기 위해 보였던 부시의 알려진 '열성'이다.

영화의 장면은 3분의 1정도를 남겨놓고 이라크로 옮겨진다. 평화롭게 그네놀이를 하던 동네 놀이터가 '이라크 해방'의 이름으로 어떻게 짓밟혀 왔는지, '문명의 보고' 이라크가 어떻게 허물어져 왔는지를 아프게 보여 준다.

이 전쟁놀음 장면은 영화가 끝나기 10분여를 남겨 놓을 때까지 관객들 모두를 숨죽이게 만들었다. 기자는 미국 영화관에서 껌 씹는 소리조차 들리지 않을 정도의 이 같은 '적막'을 일찍이 경험한 적이 없다. 미국인들의 양심에 칼질을 해 대는 불온한, 정말 '불온한' 영화라는 생각이 다시 한 번 들었다.

불볕더위 식혀줄 '시원한' 영화

'화씨 9/11'은 딱딱한 기록영화를 부드럽게 하기 위해 종종 부시, 체니, 럼스펠드 등의 코미디언 같은 표정이나 멍청하게 보이는 모습들을 지나치게 희화한 것이 오히려 영화의 '사실성'을 해칠 가능성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적어도 목적을 가지고 이 영화를 보러 오는 사람들에게는 삼복더위에 폭포수를 쏟아붓는 것 같은 느낌을 주는 영화다.

기자는 미 전국 개봉 첫날인 25일 단 한 자리도 빈틈이 없는 플로리다 올란도의 개봉관 극장의 가운데 자리에 앉아 이 영화를 감상했다. 영화가 끝나자 관객들이 큰 소리로 웃으며 일제히 일어나서 박수를 쳤다. 미국 극장에서 처음 보는 광경이었다.

특히 마지막 장면은 이 영화의 압권이었다. 마지막 장면은 부시가 텍사스 격언을 말하면서 "한 번 속은 사람은 두번 속지 않는다"고 묘한 미소를 지으며 말하는 장면이다.

관객들이 영화가 끝나면서 박장대소한 것은 바로 이 말이 부시 자신과 미국민을 두고 한 말이었기 때문이다. 이라크전은 부시가 미국민을 속여서 일으킨 전쟁이었으나 앞으로 다시는 속지 않을 것이라는 절묘한 메시지였다.

'화씨 9/11'은 섭씨 35도를 넘는 플로리다 날씨가 전혀 덥지 않게 느껴질 만큼 시원한 영화였다. 부시로 인해, 이라크 문제로 인해 스트레스가 엄청나게 쌓였을 사람들이 꼭 한번 볼 만한 시원한 영화다.
2004-06-28 14:28 ⓒ 2007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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