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업 축구 선수는 시한부 인생을 사는 사람들이죠.”

관객도 없다. 카메라도 없다. 잔디 한 포기 없는 맨 땅이어도 좋다. 그저 오랫동안 축구를 하고 싶을 뿐이다. 선수들은 불안하다. 이미 프로나 대학에서 실패를 맛본 선수들이 또 다시 갈 곳을 잃어버리기도 한다. 한국 축구의 산실인 실업 리그가 그 위상을 잃어버렸다. 실업 리그 은퇴 후 직장 생활이 보장되던 과거와 달리 언제 정리 해고 될 지 몰라 불안감에 휩싸이는 것이 실업 축구인의 현재다. 성남 일화에 입단 후 어깨 수술의 후유증으로 인해 실업팀 ‘페스 코리아’ 로 무대를 옮긴 박상욱(26, MF)선수를 만나 보았다.

▲ 페스코리아 MF 박상욱 선수
ⓒ 김진석
“대학 일 학년 때는 발목을, 삼 학년 때는 어깨를, 그 후 무릎 십자 인대를 수술했어요.”

건장해 보이는 체구이기에 세 번씩이나 수술대 위에 올랐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다.

“아마는 프로와 달라요. 경기가 있으면 무조건 뛰어야 합니다. 프로처럼 몸 관리를 할 수 있는 체계가 아니에요. 부상을 당해도 제대로 쉬거나 치료 할 수 있는 환경이 되질 못해요. 사소한 부상이 쌓여 결국엔 수술에 이르게 되는 거죠.”

프로에 뽑히기 위해서는 경미한 부상이 수술에 이르게 될지언정 뛰어야 하는 것이 아마 선수의 숙명일지 모른다. 게다가 뛸 곳이 얼마 없는 한국 축구의 구조는 그들을 더욱 벼랑 끝으로 몰아낸다.

“실업과 프로를 다 합해봐야 스물 네 팀이에요. 많은 축구 선수들을 흡수하기엔 팀이 너무 모자란 거죠. 상무나 경찰청 같은 곳도 여간해서는 아마 선수가 못 들어갑니다. 아마보다는 프로의 선수를 더 선호해요. 프로와 실업으로 가지 못한 아마 선수들은 결국 갈 곳을 잃어버리게 되는 거죠.”

유소년 축구가 한국 축구의 ‘발’이라면 실업 축구는 한국 축구의 ‘허리’로 비유될 수 있다. 프로에서 방출된 선수, 부상을 당해 재활 중인 선수, 프로로 뽑히지 못한 많은 아마 선수들이 재기를 다짐하며 실업 무대로 모여든다. 소속된 실업팀의 일을 하며 축구를 하는 ‘험멜 코리아’ 같은 실업팀이 있기도 하지만, 대부분 약간의 계약금으로 생활을 유지하며 축구를 한다.

“실업 연맹의 주도 아래 더 많은 팀이 생겨야 해요. 현재 실업팀은 고작 일년에 4~5개 정도의 경기를 뛰고 있어요. 경기횟수가 너무 적어요. 중계도 없는 데다 경기하는 시간마저 일반인들이 관람하기 힘든 점심 시간이에요. 한 시부터 네 시까지 땡볕에서 경기를 합니다. 팀이 많아지면 자연스레 경기도 많아지고 그러다 보면 선수 층도 두꺼워 지면서 사람들의 관심을 유발시킬 수 있지 않을까요. 축협은 실업 축구에 대해 보다 체계적이고 실질적으로 신경을 써주어야 해요.”

“관객이 있을 때와 없을 때 뛰는 건 정말 다르다”고 말하는 그의 옆모습은 무언가 할 말이 많을 듯 싶었다.

ⓒ 김진석
부모님 몰래 선생님의 권유로 어렵게 축구를 시작한 그였지만, 대학교 일 학년 때 축구한 것을 처음으로 후회했다고 한다.

“말로만 듣던 선배들의 압력(?)을 대학가서 본격적으로 경험했어요. 그 때는 정말이지 내가 이렇게까지 맞으면서 축구를 해야되나 라는 생각이 들어 도망친 적도 있어요. 아마 저뿐이 아닐 거예요. 우리 때는 많이 맞으면서 운동을 했어요. 사실 굉장히 많은 선수들이 일, 이 학년 때 도망을 치고 종종 제적을 당하기도 해요.”

발목 부상에 얽힌 그의 일화는 쓴 웃음을 자아내게 한다.

“맨땅에서 뛰는 것과 잔디 구장에서 뛰는 건 정말 다릅니다. 대학 일 학년 때 천연 잔디에서 경기를 했는데 도무지 적응이 안 되더라구요.(웃음) 그러다 결국 잔디에 걸려 넘어지고 그때의 부상이 수술까지 갔던 거예요. 잔디 구장에서 뛰는 것은 맨 땅에서 뛰는 것보다 2배 이상의 훈련 효과가 있어요. 이제 막 축구를 시작한 유소년들은 저와 달리 체계적이고 과학적으로 배웠으면 합니다. 저는 무조건 뛰는 것만을 했어요. 단체로 달리다 꼴지 하면 맞고 또 달리고. 기술이나 개인의 개성보다는 조직력에 우선하여 힘과 뛰는 것을 강요받았어요.”

“만약 2세가 태어나면 축구를 시키겠는가”라는 질문에 그는 주저 없이 단호히 말한다.

“축구요? 죽어도 안 시킬 거예요! 따라다니면서 말려야죠! 안 한다고 말 할 때까지 가둬 놓을 거예요! 축구뿐 아니라 절대 운동은 안 시키겠습니다. 운동 선수는 일반인보다 사회를 빨리 배워요. 취미로 하는 건 좋지만 운동 선수로 직업을 삼는 건 절대 허락하지 않을 거예요! 물론 기쁠 때도 있지만 실패했을 때는 정말이지 너무 힘듭니다.”

고운 정 보다 미운 정이 더 무서운 걸까. "다시 태어나도 절대 축구 선수는 하지 않겠다" 고 말한 그였지만 쉽사리 축구를 포기하지 않는다. 현재 그는 'J리그 진출’을 준비하며 마지막 비상을 꿈꾼다. '페스 코리아'의 '김황호 감독'은 그의 플레이가 윤정환을 닮았고, 섬세한 기술적 역량이 J리그에 어울린다며 충분히 가능성 있다고 평한다.

김태영, 김대의, 진순진, 박건하 등 모두 실업을 거쳐 프로로 성공한 선수들이다. 언젠가는 그들의 대열에 ‘박상욱’이라는 이름 석자가 당당히 합류하기를 기다려 본다.
2003-03-06 12:02 ⓒ 2007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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