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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라당, 민주당의 정당 회계장부는 구멍가게 것만 못하다."

2002유권자연대 대선자금시민감시단(속칭 대파라치)이 지난 4일 각 정당을 다니면서 정당이 제출한 출납내역서를 실사한 결과, 민주노동당은 '합격' 판정을, 한나라당과 민주당은 불합격 판정을 받았다.

▲ 대선자금시민감시단이 민주당의 선거자금 지출내역을 실사하고 있다.
ⓒ 사이버참여연대
각 당이 대선자금시민감시단으로부터 '불합격' 판정을 받은 주된 이유는 다음과 같다.

한나라당 "계약서나 미지급금 명세서와 같은 당연히 있어야 할 기초자료를 제시하지 못했다."

민주당 "공개하기로 사전에 약속된 정당활동비 관련 은행계좌의 공개를 거부했다."


지난 4일 민주당과 한나라당을 다니면서 정당이 제출한 출납내역서를 살펴본 대선자금시민감시단은 하나같이 정당의 회계가 주먹구구식으로 되고 있다는 사실에 놀라움을 금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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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단체, 정당 선거자금 첫 실사 '실망'

정당이 선거역사 사상 처음으로 시민단체와 국민들에게 선거자금을 공개하는 것이어서 대선자금시민감시단은 잔뜩 기대를 모으고 당사를 찾았지만 결국 실망만 안고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국민의 세금을 지원받는 정당인 만큼 철저한 회계가 이뤄져야 했음에도 불구하고 실상은 그렇지 못했다.

이날 현장실사는 지난 11월 2002대선유권자연대가 민주당과 한나라당, 민주노동당 등 대선 후보들에게 깨끗한 선거를 위해 대선자금을 국민들에게 공개할 것을 요구했고, 후보들이 시민단체의 요구를 받아들여 가능하게 됐다.

이것에 근거해 각 정당은 선거운동 비용과 정당활동비가 적힌 내역과 이와 관련된 증빙서류 일체를 시민단체에 공개했다. 또한 이 내용은 각 후보 홈페이지에 공개돼 최초로 국민들이 '후보들이 선거 운동을 위해 어떻게 돈을 썼는지'에 대해 알 수 있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하지만 막상 유권자연대가 실사에 들어간 결과 각 정당이 제출한 선거운동 비용과 정당활동비의 내역은 빈약하기 짝이 없었다.

"선거운동 바쁜데 회계장부 작성 시간 있나?"

우선 지난 1주일동안 가장 많은 돈을 지출한 정당은 한나라당인 것으로 드러났다.

한나라당은 11월 27일부터 12월 3일까지 일주일 동안 약 35억원 6천만원이 지출됐다고 밝혔다.

그 세부 내역을 살펴보면 시·도 및 구시군 선거사무원 수당(약 14억 5천만원)으로 가장 많은 돈이 지출됐고, 상당 부분의 지출이 정강·정책 신문광고(약 10억 7천만원)과 방송광고 제작 및 광고료(약 6억 8천만원)에 몰려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하지만 지출 내역에는 항목과 총액만 제시됐을 뿐 누구와 거래를 했는지 등을 알 수 있는 세부내용이 전혀 기록돼 있지 않았고, 후보 활동비와 홍보제작비, 여론조사 비용, 선대위 당직자 식대 등 상당수의 항목들이 빠져 있었다.

이에 대해 한나라당 재정 담당자는 "거래가 이뤄졌는데 지출 내역에 기입되지 않은 것은 외상으로 거래해서 아직 현금 지출이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 재정 담당자의 설명에 대해 대선자금시민감시단은 "거래가 이뤄졌음에도 불구하고 현금으로 지출을 하지 않고, 외상거래를 하는 것은 정당이 나중에 선거법정 비용을 맞추기 위해 관행적으로 사용해 왔던 전형적인 방법"이라고 지적했다.

다시 말하면 선거기간 동안 사용한 모든 것을 현금으로 지출하게 되면 선거법에 규정된 법정선거비용을 훌쩍 넘겨버리기 때문에, 각 정당은 이중 장부와 이중 계좌를 만들어 눈에 잘 띄지 않는 항목은 이 곳을 통해서 해결하고 확연히 드러나는 항목은 선관위에 등록된 계좌를 통해 해결한다는 것이다.

대선자금시민감시단은 이같은 정당의 회계 관행을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에 각 정당에게 거래가 발생한 모든 항목을 회계 장부에 기입하는 발생주의 원칙대로 회계장부를 작성해 줄 것을 요구했지만, 정당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선거운동 하기에도 바쁜데 회계장부를 상세하게 정리할 시간이 어디 있느냐"는 것이 정당 재정담당자의 항변이었다. 심지어 A정당 관계자는 "선관위에 보고하기 위해 회계장부를 작성하는 것이지 시민단체를 위해서 하는 것은 아니다"는 말을 내뱉기도 했다.

민주, 당초 약속했던 계좌사본 공개 안해

▲ 최연희 한나라당 제1사무부총장이 대선자금시민감시단에게 한나라당 선거자금 지출내역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 사이버참여연대
민주당도 정당의 기존 관행대로 회계장부를 작성하고 있다는 점에서는 한나라당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민주당은 지난 달 27일 후보등록 이후에 대선자금지출 총액이 약 28억2500만원이라고 밝혔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지구당 유세차량 제작지원비(약 9억 8천만원), 정책개발연구원 활동비(약 4억 3천만원), 대통령 후보 연설차량 임차비(약 3억원)에 많은 지출을 한 것으로 밝혀졌다.

한나라당과 비교해 볼 때 민주당은 지출 내역에 항목이 좀더 구체적으로 제시돼 있고 거래처가 드러나 있다는 점에서 대선자금시민감시단으로부터 상대적으로 높은 점수를 받았지만, 애초 공개하기로 약속했던 정당활동비 계좌 사본을 공개하지 않았다는 비난에서 벗어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도 한나라당과 마찬가지로 후보활동비와 대형 현수막 제작 등과 같은 항목은 지출 내역에서 빠져 있었다. 아직 현금지출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지출 내역에 기재되지 않았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반면, 민주노동당은 기존 정당과 비교해 볼 때 대선자금시민감시단에게 성실하게 자료를 제출해 높은 평가를 받았다.

민주노동당이 제출한 자료를 살펴보면 지난 일주일 동안 대통령선거 비용으로 총 1억7천여만원을 지출했고, 이 가운데 방송광고 관련 비용이 1억7천여만원으로 지출 총액의 90% 이상을 차지하는 것으로 나타나 다른 정당과 뚜렷한 대비를 이루었다.

또한 두 정당과 비교해 볼 때 민주노동당은 비록 다른 정당과 마찬가지로 현금이 지출된 부분만 회계장부에 기록했지만, 미지급된 외상내역이나 가지급금을 받을 수 있는 사람(40명)의 명단을 대선자금시민감시단에게 제출, 다른 당과 뚜렷한 대조를 이뤘다.

대파라치, 민노당 현장 실사에선 '흡족'

▲ 이상수 민주당 총무본부장이 대선자금시민감시단에게 민주당 선거자금 지출 내역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권박효원
이 때문에 민주노동당 회계장부 실사를 맡은 팀은 "민주노동당은 전반적인 비용을 파악하는데 별다른 문제가 없었다"는 평가를 내리는데 주저하지 않았다.

각 3당을 돌면서 1차 실사를 마친 대선자금시민감시단은 한나라당과 민주당에 "한나라당과 민주당은 외상 거래로 인해 지출 내역에 누락된 항목에 대해서는 그 근거가 되는 자료 일체를 대선유권자연대에게 공개하라. 특히 민주당은 지난 11월 18일날 애초 약속했던 정당활동비 계좌를 공개할"것을 촉구했다.

김기현 대선유권자연대 공동사무처장은 "약 7억여원에 불과한 국고보조금을 수령한 민주노동당이 가지급금 명세서까지 작성하는 등 비교적 성실히 회계장부를 작성하고 있는 반면, 약 530억원의 국고보조금을 받고 있는 한나라당과 약 490억원을 받고 있는 민주당의 회계장부 수준은 구멍가게만 못하다"면서 "민주당과 한나라당은 국민에게 약속한 대로 정당활동비와 선거비용에 관한 회계장부를 철저히 작성하고 성실히 공개하라"고 주장했다.

"살살 부탁드립니다" "시민단체 위해 회계장부 만든 것 아니다"
[실사 현장] '고성' '실랑이'…첫날부터 '대파라치' 실사에 민감한 정당

지난 4일 대선자금시민감사단의 첫 실사를 받는 민주, 한나라당 당사에서는 팽팽한 긴장감이 흘렀다.

오전 10시경 대선자금시민감시단이라고 적힌 '보안관' 배지를 단 시민단체 대표들이 민주당 당사에 들어섰다.

민주당 총무본부장 이상수 의원은 이들을 직접 3층 소회의실로 안내하며 "아직 영수증이 안 나온 경우도 있지만 광범위하게 다 보여드렸습니다"는 말로 인사말을 대신했다. 이어 이 의원은 "살살 부탁드립니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소회의실에 들어서자마자 실무자와 대선자금시민감시단 사이의 신경전이 벌어졌다. 지난 11월 노 후보와 협약식을 할 당시 "정당활동비 계좌 사본을 공개하겠다"고 약속을 해 놓고, 민주당 직원이 이제 와서 정당활동비 계좌 사본을 공개할 수 없다는 입장을 밝히자 양쪽 사이에 실랑이가 시작된 것이다.

회의는 비공개로 진행돼 실사 현장을 직접 볼 수 없었지만 닫힌 문 밖으로 간간이 고성이 흘러나오곤 했다.

한나라당 당사 풍경도 이와 흡사했다. 실사는 오후 4시부터 시작하기로 돼 있었지만, 한나라당 담당 감시팀은 미리 30분전에 모여 오전에 있었던 민주당 상황을 공유하고 체크해야 할 리스트를 숙지한 뒤 당사로 들어갔다.

최연희 한나라당 제1사무부총장실에서 실사하기 시작한 대선자금시민감시단은 관계자들과 짧게 인사한 뒤 곧바로 "거래를 했는데 왜 지출내역에 누락된 항목이 많느냐"며 추궁을 하기 시작했다.

봉종근 한나라당 재정국장은 감시단의 추궁이 계속 되자, 감정이 달아올라 결국 "선관위를 위해서 회계 장부 정리를 하지, 시민단체들을 위해서 하는 것은 아니다"고 말하면서 얼굴을 붉히기까지 했다.

이 발언이 나온 뒤 한참동안 회의실 안은 술렁였고, 최연희 의원이 직원들에게 "다음 실사 때 시민단체들이 원하는 자료를 모두 만들어 놓으라"고 말을 하자 분위기가 진정됐다.

오전 10시부터 시작된 대선자금 감시활동이 오후 6시가 되어서야 끝이 났다. 1차전에서는 상대방으로 '다음부터 잘 하겠다'는 약속을 듣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하지만 대선자금시민감시단이 다음 주 2차 실사 때에는 "정당이 약속된 자료를 제공하지 않을 경우 밤샘농성까지 한다"는 각오로 달려들 예정이어서 만만치 않은 싸움이 예상된다.
/ 임경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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