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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워 죽겠다. 숨이 콱콱 막히고, 현기증이 날 정도로 날이 후끈후끈해서 매일 '열'을 좀 받고 있는 중이다. 선풍기를 켜놓고 방바닥에 가만히 엎드려만 있어도 열이 오르는판에, 전기마저 자주 끊어져 하루에도 댓번은 '머리뚜껑'이 폭발하기 직전이다. 최악의 더위가 몰아쳤던 며칠 전에는 급기야 이웃집 할머니와 싸움까지 하고 말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다 더위가 일으킨 재앙이었다.

한낮의 기온이 40도에 육박하고, 자정이 넘은 한밤중에도 열대야로 잠을 못이루는 날들이 며칠간 이어지면서 하루일과가 온통 엉망이 되었다. 거의 동이 틀무렵쯤 잠이 들까말까 하면서, 가물가물 막 깊은 잠이라도 자려면 어김없이 옆 집의 두 명의 꼬마놈들이 왁자지껄하게 쿵쾅거리며 그나마 짧은 단잠을 방해하곤 했다. 평소에는 못보던 아이들이었는데, 방학이라 아마도 할머니네집에 잠시 놀러 온 듯했다.

그런데 이 녀석들이 날이 갈수록 점점 더 나의 달콤한 아침잠을 훼방놓는 것이다. 이른 아침부터 쿵쾅거리는 것도 모자라서, 아예 우리집 옆에서 축구를 하고 있다. 집 옆에는 맞은 편 이웃집과 사이를 두고 뒷문으로 통하는 제법 커다란 공터가 있는데 그 녀석들이 그곳에서 아침마다 축구를 하는 것이다. 녀석들이 차는 공이 방과 마루벽에 부딪히는지라 잠은커녕 앉아서 책을 읽거나 TV를 보기도 어려웠다. 하루이틀도 아니고 매일같이 그렇게 아파트 복도에서 축구를 하는 녀석들 때문에 성질이 날대로 나 있었다.

그러던 어느날 아침. 도저히 그 '열'을 참지 못하고 현관문을 확 열어 젖혔다. 밤새 더위로 잠도 못잔데다 머리는 이리 삐죽 저리 삐죽하고 얼굴표정은 마귀할멈이 되어 그 꼬마녀석들에게 눈을 있는 대로 부라리며 소리를 '꾀액'하고 질렀다.

"여기가 운동장이야! 축구를 할려면 앞에 놀이터에 가서 해! 알았어?"

겁을 먹었던지 녀석들은 허겁지겁 공을 집어들더니 쪼로록 하고 이웃 할머니네 집으로 달아난다. 녀석들이 사라지는 것을 보고 "이제 좀 조용하겠지"라고 안심하며 다시 현관문을 걸어 잠그고 달콤한 수면을 취할 준비를 했다. 어라!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벽이 울리고 축구하는 소리가 들린다. 녀석들이 또 기어나와서 축구를 하고 있는 것이다.

이번에는 더 험악한 얼굴을 하고 현관문을 박차고 나갔다. "내 말 못알아 들었어? 여기가 니네집 운동장이야? 공 갖고 빨리 나가지 못해!" 그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이웃집에서 할머니가 나오신다. 할머니는 나보다 더 험악하게 인상을 쓰고 있다.

"왜 내 손주들한테 그러는 거야? 날이 이렇게 더운데 어디 밖에 나가서 축구를 하라고! 내 손주들이 아가씨 일 방해한 것 있어?"
"할머니, 여기는 운동장이 아니라 아파트 복도라구요. 여기서 축구를 하면 공이 벽에 부딪히는 소리 때문에 아무 것도 할 수가 없다구요!"
"그러게 왜 아침부터 출근은 안하고 집안에 처박혀 있어. 다른 집에서 뭐라고 하는 소리 들어봤어? 다들 출근하고 집에 없잖아. 이 복도는 니 게 아니야! 얘들아 신경쓰지 말고 계속 놀아."
"할머니가 한번 우리 집에 와보세요. 공차는 소리가 얼마나 시끄러운지. 한번 들어와서 들어보세요. 일을 할 수 있는지 없는지!"
"일 없어! 시끄럽기는 뭐가 시끄럽다고. 얘들아 계속 차."
"꽝!"
나는 순간 너무 화가 난 나머지 현관문을 발로 차듯이 닫아버렸다.

그때는 얼마나 화가 나던지 나도 잠시 제정신이 아니었던 것 같다. 속으로 "어쩜 저렇게 이기적인 할머니가 다 있을까. 남을 배려하는 맘이라고는 눈꼽만큼도 없으니 손주들이 뭘 배우고 크겠어" 어쩌고 저쩌고 하면서 속으로 화를 냈다.

할머니의 응원에 힘을 얻은 녀석들이 계속 벽을 쿵쾅거리며 공차는 소리가 들리고 시간도 낮을 향해 가면서 무더운 열기가 독기로 변해가고 있었다. 그대로는 화를 삭이지 못하고 나도 급기야 맞불작전을 폈다. 카세트에 음악테이프를 넣고 스피커의 볼륨을 있는 대로 높여서 아예 아파트가 떠나가라고 흔들어 버린 것이다. 게다가 문을 반쯤 열어놓은 상태로.

그러나 그 광란도 얼마 가지 않아 멈출 수밖에 없었다. 전기가 나가버린 것이다. 세 시간여 정도 정전이 되는 사이, 잠시 이성을 회복하긴 했지만 여전히 더위로 인한 열불은 나를 푹푹 삶아내고 있었다. 다 그놈의 더위가 일으킨 재앙이었다.

웃통 벗은 남자들이여, 제발 옷좀 입어라!

베이징의 올 여름은 정말이지 '화끈하다’. 날씨만 화끈한 게 아니라, 길거리에 돌아다니는 베이징 아가씨들의 옷차림도 화끈하고, 남정네들의 옷차림(?)도 죽여줄 정도로 화끈하다. 얼마 전에 만난 한 선배는 만나자마자 "요즘 베이징 거리에 전라의 아가씨들이 막 돌아다니더라"라며 베이징아가씨들의 여름 '노출패션'을 가지고 웃기는 소리들을 해댄다.

짧은 핫팬츠에 등이 깊게 파인 나시를 입은 노출패션은 여름에 베이징거리에서는 아주 흔하게 볼 수 있는 풍경이다. 패션도 패션이지만, 내가 보기에 그러한 노출패션은 다 날이 너무 더운 탓이다. 최대한 짧게 입어도 그 열기들을 다 이기지 못할 것 같다. 늘씬하게 쭈욱 뻗은 중국아가씨들의 체형도 한 몫해서인지 그러한 노출패션은 야해보이기 보다는 눈이 시원해지고 웬지 보기가 좋다(?).

그런데 베이징 남정네들의 노출패션은 정말이지 못 봐주겠다. 쭈욱 잘빠진 몸매들도 아니고 불룩하니 나온 배를 내밀고 고무줄 반바지 하나만을 걸친 채 길거리를 활보하는 모습들을 보고 있으면 웃음이 나오는 건 둘째치고 베이징 여름나기의 악몽이라는 생각마저 든다. 베이징 거리에서 여름이면 언제든지 볼 수 있는 이 남자 노출족들은 이름하여 '빵예'들이다. 우리 말로 번역하면 '웃통벗은 남자들'이랄까.

올 여름 들어, 이 웃통벗은 베이징 남자들이 수난을 겪고 있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멀쩡하게 벗고 돌아다녀도 뭐라고 하는 사람들이 없었는데 올해는 <베이징청년보>를 필두로 해서 <중국중앙방송>(CCTV) 등의 영향력 있는 언론매체에서 이들에게 '제발 옷을 입으라'고 권고를 하고 있다.

<베이징청년보>에서는 아예 '웃통벗은 남자들에게 티셔츠를'이라는 주제로 연일 캠페인까지 벌이며 웃통벗은 남자들에게 직접 제작한 티셔츠까지 나눠주고 있는 판이다. 중국의 유수언론에서 이러한 캠페인을 벌이는 이유는 소위 '문명시민론'이다.

중국에 있는 외국인들을 대상으로, 베이징에서 받은 인상 중 가장 안좋은 점들이 무엇이냐는 설문조사를 했더니 바로 이 웃통벗은 남자들이 대답의 수위를 차지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언론들이 들고 일어나서, 문명시민 배양에 앞장서고 있다.

며칠 전, <중국중앙방송>에서도 이 '웃통벗은 남자들을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주제로 전문가들(?)의 간접대담을 벌인 바 있다. 주제 자체가 워낙에 웃기다보니 사회자나 대담자 모두 웃음을 참는 모습들이 역력했다. 게다가 중간중간 취재자료들을 내보내 주는데, 그 화면에 비친 웃통벗은 남자들의 논리도 아주 그럴 듯하다.

시원하게 웃통을 벗고 있는 할아버지에게 기자가 다가가 "왜 벗고 있냐"고 질문하자, 그 할아버지는 "아주 어렸을 때부터 벗고 지내서 습관이 되었다. 이제는 옷을 입으면 답답하다. 아흔이 가까운 우리 아버지도 아직까지 웃통을 벗고 지내신다. 더운데 어떻게 하겠느냐"라고 대답을 해 한참동안 배꼽을 잡고 웃은 적이 있다. 맞는 말이긴 하다. 더운데 어떻게 하란 말인가.

전문가들의 방안이라는 것도 별 것 없다. 웃통을 벗고 다니는 것이 범죄행위가 아니기 때문에 강제적으로 입으라고 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러니 앞으로 올림픽을 치를 중국의 수도인데 제발 자발적으로 이미지 관리 좀 하자라고 호소하는 것 외에 달리 방법이 없다. 이것도 맞는 말이긴 하다. 올림픽을 치르려면 아무래도 문명시민들이 되어야지.

그러나 나는 이 웃통벗은 남자들을 깨끗이 용서(?)하기로 했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나도 이 웃통벗은 남자들을 혐오했지만 올해는 너그러이 봐주기로 한 것이다. 왜냐고? 웃통벗는 그들의 심정이 다분히 이해가 가기 때문이다. 지난해 여름까지만 해도, 시원한 에어컨이 달린 집에서 살다보니 더운 날에는 집에 콕 처박혀 있으면 그다지 더운 줄 몰랐다. 그러니 웃통벗는 남자들의 벗는 심정을 어찌 완전하게 이해할 수 있었겠는가.

올해는 사정이 좀 바뀌어서, 사상 최악의 혹서가 몰아친 이 베이징의 여름날을 나도 벗고 지내야 하기 때문이다. 그들처럼 웃통을 벗고 거리를 활보할 수는 없지만, 집에서는 보는 사람이 없기 때문에 나도 훌러덩 벗고 산다. 선풍기 하나로 이 더위를 이겨야 하는데, 그나마도 자주 나가는 전기 때문에 벗지 않으면 숨을 쉴 수도 없다.

사실, 베이징에서 웃통을 벗고 다니는 남자들은 대개가 시골에서 돈벌러 올라온 민공들이거나 가난한 후통(골목)거리의 서민들이다. 민공들의 열악한 임시 숙소에는 선풍기조차 없는 경우가 많아, 웃통을 벗지 않고는 견딜 수가 없는 것이다. 이들에게 티셔츠를 들고 다니며 '제발 옷을 입으라'고 권하는 것도 그들 입장에서는 열받는 일일 수도 있다.

며칠 전 밤, 베이징의 꿰이지에를 걷던 중 한 무리의 웃통벗은 민공 남자들이 길가에 죽 앉아있는 것을 보고 장난스럽게 다가가 "문명시민으로서 부끄럽지 않느냐"고 농담을 했더니 그중 한 명의 민공이 대뜸 이렇게 말하는 것이다. "더워 죽겠는데 문명은 무슨 얼어죽을 문명이여."

무더운 여름날, 내가 이웃집 할머니와 열받아서 싸운 일이나 베이징 거리에 웃통벗은 남자들이 돌아다니는 것이나 알고 보면 내막은 '한통속'이다. 모두가 다 그놈의 열받는 더위가 일으킨 재앙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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