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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을 처음 온 사람들에게서 자주 듣는 말중의 하나. ‘밤이 죽은’ 사회라는 것이다.

서울의 휘황한 밤거리와 술취한 객들의 비틀거림 그리고 길거리 곳곳 노래방의 네온싸인과 그 안의 고성이 빚어내는 고국의 ‘화끈한 밤’을 경험한 이들에게 이곳 중국의 밤은 그야말로 칙칙하기 그지없는 ‘적막’이라고 느껴지는 모양이다.

옛황제의 자손들이 몰려사는 수도 베이징의 밤도 이들에겐 별날 게 없는 칙칙한 회색빛이다.

11시 이후면 일제히 소등을 하는 대학 기숙사와 그보다 더 일찍 잠자리에 드는 일반 중국인들의 ‘밤’을 보면 사실 “저 사람들은 무엇으로 일상의 허전함을 달랠까”하는 의문이 들 때가 있다.

밤새도록 거리에 불이 꺼지지 않고 수많은 술취한 객들이 매일같이 비틀거리며 노래부르는 밤이 이어진다고 해서 그것이 무슨 ‘살아있는 사회’의 증거는 아닐지언대, 어느새 우리는 무의식중에 ‘서울의 밤’이 가장 밝다고 생각하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곳, 베이징의 밤은 실은 죽어 있는 게 아니다. ‘죽은 밤’이라고 느끼는 것은 그 안에 숨어 있는 또 다른 밤들을 모르기 때문이다.

젊은 연인들과 여행자들이 즐겨찾는 베이징의 왕푸징 거리와 라오와이(외국인)들이 넘쳐나는 산리툰, 밤새도록 거리 전체에 주렁주렁 내걸린 홍등이 쏟아내는 빛으로 붉은밤을 연출하는 꿰이지에(귀신거리) 등이 베이징의 ‘밝은 밤’ 이라고 한다면, 각종 샤오지에들(아가씨들)의 은밀한 서비스와 이들을 유혹하는 졸부들의 색기 가득한 눈빛이 ‘좔좔’ 흐르고 있는 ‘지하궁전’들은 베이징의 어두운 ‘밤의 그림자’이다.

밝은 얼굴과 어두운 그림자 위로 겹쳐지는 베이징의 밤은 또한 갖가지 군상들을 가지고 있다.

서민들의 평범한 동네에서는 이른 저녁을 먹고 공터에 모여 사교춤을 추는 아줌마, 아저씨들의 모습과 ‘뉘우양거’로 불리는 조금 템포 느린 춤을 추는 할머니 할아버지들만의 밤의 오락문화가 있는가 하면, 베이징 곳곳에 널브러져 있는 공사판 근처 숙소의 창문으로는 한낮의 노동으로 쌓인 피로를 풀기 위해 아무렇게나 퍼질러 앉아 카드놀이를 하고 있거나 싸구려 맥주를 마시고 있는 타지에서 온 가난한 노동자들의 군상도 있다.

그리고 갖가지 화려한 조명들이 가득한 시내 한복판의 식당가나 왕푸징등의 번화가에는 대낮의 번잡함을 피해 사랑을 속삭이는 연인들과 단란한 가족들의 모습이 보인다.

홍등의 향연, 꿰이지에(鬼街, 귀신거리)의 밤

그러나 뭐니뭐니해도 가장 인상깊은 베이징의 밤풍경은 바로 ‘야시’(夜市)의 풍경이다. 그중에서도 ‘밤귀신’들만 출몰한다는 꿰이지에의 밤풍경은 가장 중국적인 ‘밤’의 풍경들을 보여준다.

꿰이지에는 베이징 똥쯔먼에 있는 야시장 거리이다. 지금은 베이징 거리에서 야시장들이 많이 사라지고 없어서 왕푸징 근처의 동화시장과 이 꿰이지에가 베이징에선 그나마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야시들이라고 할 수 있다. 동화시장이 주로 샤오츠들이라고 불리는 간단한 간식이나 야식거리들을 파는 노천야시를 이루고 있는 반면, 꿰이지에는 노천야시보다는 전통적인 식당들이 오밀조밀 붙어서 하나의 긴 거리를 형성하고 있는 곳이다.

어떤 잡지에서 읽은 바로는, 꿰이지에라는 조금 희한하다 싶은 거리의 이름은 1997년 이후에야 불리워지게 되었다고 한다. 사연인즉, 밤늦은 시간까지 영업을 하다 잠시 출출한 배를 채우려는 베이징의 많은 택시기사들이 이 거리로 몰려들면서 이곳은 밤새 식당들의 불이 꺼지지 않는 유일한 거리가 되었고 그 후부터 밤잠을 모르는 ‘밤귀신’들도 가세를 하면서 꿰이지에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또 다른 한편으로는 원래 이름이 꿰이지에(簋街)였는데 이 꿰이자가 일반사람들이 쓰기에 상당히 어려운 한자였기 때문에 시간이 흐르면서 음이 같으면서도 쓰기 쉬운 꿰이(鬼)자로 바뀌게 되었다는 말도 있다. 사연이야 어떻든, 이 거리에는 주로 ‘밤’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이는 것만은 틀림없는 것 같다. 특히 여름밤의 꿰이지에는 마치 매일 축제를 벌이는 거리인 냥 밤을 잊은 사람들로 넘쳐난다.

꿰이지에를 찾은 사람들이 이 거리를 잊지 못하는 것은 사실 그 거리의 음식맛이라기보다는 바로 가로수들 사이사이로 높다랗게 걸려 있는 ‘홍등’의 황홀한 자태 때문이다.

처음 그 거리에 갔을 때는 마침 토요일인지라 길가 식당마다 사람들이 꽉꽉 들어차 있고 도로 위로 자동차와 택시들이 한치의 틈도 없이 분주히 오고가서 이미 그것들이 뿜어내는 열기만으로도 현기증이 날 정도였다. 그런데 눈앞에 펼쳐진 기가막힐 정도로 휘황한 ‘붉은색’들의 향연은 마치 축제의 거리로 온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키게 했다.

홍등의 행렬은 꿰이지에의 입구에서부터 시작해서 거리가 끝나는 길목까지 가로수 사이사이로 혹은 식당건물들 문앞마다 빼곡하게 둘러쳐 있고, 그 붉은 빛이 주는 강렬한 인상은 그 거리를 빠져나와서도 며칠간은 내내 그 거리를 추억하게 만든다.

‘홍등’은 비단 꿰이지에뿐만이 아니라 중국 어디서건 볼 수 있는 익숙한 풍경이다. 단지 꿰이지에의 홍등이 아련한 그리움같은 특별한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것은 그것이 밤거리 가득 주렁주렁 널려있고 그 밑으로 마치 ‘붉은비’를 맞으며 좋은 사람과 함께 밤거리를 걷는 느낌을 가져다주기 때문이다.

꿰이지에를 걷다보면 자연스럽게 하게 되는 생각이, 왜 중국사람들은 무슨 날이면 굳이 홍등을 내거는 것인지. 그리고 우리나라 사람들은 또 왜 흔히들 청사초롱이라고 하는 파란빛깔의 등을 선호했던 것인지.

중국사람들의 이 붉은색에 대한 선호는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이지만, 그 이유가 굳이 사회주의 국가이기 때문에 더 좋아하는 것은 아닌 듯하다. 이들의 언어에서 ‘홍’(紅)이라는 뜻은 이미 오래 전부터 상서로움과 경사스러움 또는 아름다움을 상징해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여성의 아름다운 얼굴을 일컬어 ‘홍안’(紅顔)이라고 하듯이.

일설에 의하면, 인류가 처음 사용한 색깔이 붉은색과 검은색이라고 한다. 그리고 붉은색이 검은색보다 앞서서 가장 먼저 세상에 나타난 빛깔이라고 하는 걸 보면, 태초부터 붉은색은 인류와 가장 친근했던 색깔이었던 것도 같다. 하긴 우리가 엄마 뱃속에서 처음 세상으로 나오면서 보게 되는 첫 번째 빛깔이 바로 ‘핏빛’이고 보면 붉은색은 바로 힘찬 생명력을 상징하는 것일 수도 있겠다.

여하튼, 무슨 이유로 중국사람들이 붉은색을 좋아하건간에 꿰이지에의 밤거리는 항상 홍등이 쏟아내는 붉은색깔로 기억되고 있다. 가끔씩 그 홍등의 밤거리가 그리울 때면, 특히 밤이 무료하고 적적할 때는 나도 그 거리의 ‘귀신’이 되어 밤새 홍등밑을 활보하거나 또는 홍등이 치렁치렁한 술집 창가에 앉아 시원한 생맥주 한두 조끼를 홀짝이고 싶어진다.

“베이징 골목 안의 작은 연합국”

꿰이지에의 밤이 서민적이면서도 홍등으로 인한 중국적인 향수로 기억될 수 있다면, ‘아판티’(阿凡提)의 밤은 베이징 골목 안에 숨어있는 다소 이색적인 축제의 밤이다.

베이징의 차오양먼 내거리 작은 골목안에 자리잡고 있는 ‘아판티고향음악식당’에서는 매일저녁 파티가 벌어진다. 그것도 아주 순식간에 벌어지는 눈깜짝쇼에 가깝다. 두 시간여 동안 식당 안을 달구는 광란의 축제가 끝나면 사람들은 언제 그랬냐는듯이 말짱한 이성을 회복하고 각자의 가방과 연인들, 친구들의 손을 잡고 썰물처럼 식당을 빠져나간다.

새해가 시작되고 며칠 지나지 않은 어느날 저녁, 갑자기 ‘밤’을 즐기고 싶다는 생각이 밑도 끝도 없이 내 얄팍한 주머니를 유혹했을 때 곧바로 머릿속에서는 ‘아판티’가 떠올랐다. 예전에 한 번도 가본 적은 없지만 웬지 그곳에 가면 즐거운 밤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 것만 같았다.

11월말쯤인가, 우연히 베이징대학교 교정에서 철지난 잡지들을 헐값에 팔고 있는 학생회 소속 학생들의 꼬임에 넘어가 별 필요도 없는 잡지들을 무더기로 산 적이 있는데, 아판티는 바로 그 잡지들을 할 일 없이 뒤적거리다 발견한 곳이었다.

목요일과 금요일 밤 8시 이후, 아판티 식당은 한치의 앉을 공간도 없이 사람들로 꽉 메워져 있다. 예약을 하거나 이른 저녁부터 와서 자리를 잡지 않는 이상 이런 날은 십중팔구 문앞에서 바람을 맞기 쉽다.

시내 한복판도 아니고, 그렇다고 목좋은 대로한복판도 아닌 작은 골목안에 있는 평범해 보이는 이 식당은, 그러나 문을 열고 들어가는 순간 결코 평범하게 밥만 먹는 식당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밥도 먹고 공연도 보고 춤도 추는 식당이다. 춤은 마련된 무대에서만 추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밥먹던 탁자에서도 춘다. 대부분의 손님들은 그냥 밥먹던 탁자 위로 올라가 춤을 춘다.

신지앙지방의 소수민족인 웨이우얼족(新疆維吾爾族)의 전통음악과 춤공연, 그리고 그들의 음식을 주 메뉴로 하고 있는 아판티 식당은 지난 95년에 문을 연 이후 지금까지 이곳을 찾은 손님들의 입소문이 퍼지면서 베이징 골목의 명물로 떠오른 곳이다.

한족인 30대 초반의 젊은 사장 판쥔(范軍)의 부인이 바로 웨이우얼족인 연유로 이 식당은 부인의 조언과 판쥔의 사업감각이 합해져, 베이징의 이색적인 밤을 연출하는 곳이 되었다.

지금까지 이 식당을 찾은 주요한 손님들만해도 세계적인 다국적 기업의 이름난 회장들과 각국의 대사들이 즐비하게 다녀갔고, 미국의 하버드대 MBA과정에서도 이 식당의 성공사례가 화제가 되었을 만큼 독특한 식당이다.

이렇게 국제적인 인사들과 외국인들이 이 식당의 소문을 듣고 많이 찾아오다보니 아판티 식당은 “베이징 골목 안의 작은 연합국”이란 별명도 얻었다. 중국인들 사이에서는 주로 화이트칼라층을 중심으로 인지도가 높은 식당이다.

유명인사들이 많이 온다고 해서 이 식당이 부자들에게만 ‘열린’ 공간은 아니다. 일인당 100위안(1위안은 한화 약 160원) 정도면 누구나 아판티의 축제를 즐길 수 있다.

8시부터 약 한 시간 가량 진행되는 아판티 식당의 공연이 끝나면 식당안의 종업원들은 서둘러 테이블 위의 그릇들을 치우기 시작한다. 곧이어 음악밴드가 등장함과 동시에 밥먹던 손님들이 마치 ‘뽕맞은’ 사람들처럼 순식간에 탁자 위로 올라가 흔들어대기 때문이다.

그때까지 분위기를 눈치채지 못한 ‘나’ 같은 초짜손님들은 그 순간적인 광란에 잠시 얼이 빠져 버린다. 그러다 자기도 모르게 그 뽕맞은듯한 분위기에 홀려 탁자 위로 튀어올라간다. 그뒤로는 시간이 어떻게 가는지도 모르게 ‘밤’은 아판티의 탁자 위에서 그렇게 신나게 흘러가 버린다.

중국인인 줄 알고 ‘접근’했다가 “나는 북조선 핑양에서 온 사람이요”라는 말에 내 심장을 잠시 놀라게 했던, 베이징에서 여행사를 한다는 두 명의 ‘북한아저씨’들도 아판티 밴드의 연주가 시작되자마자 동석한 핀란드 친구와 함께 탁자 위로 올라가 한바탕 신나게 흔들어 댄다.

그다지 부티나 보이지 않는 한쌍의 중국인 연인들은 비교적 사람들이 없는 맨 뒤쪽 탁자 위에서 둘만 따로 오붓하게 춤들을 추고 있다. 이곳이 좋냐고 물어보니 ‘좋아 죽겠단다’.

아판티의 축제는 매일밤, 이렇게 베이징의 작은 골목 안에서 열리고 있는 베이징의 또 다른 밤이다. ‘밤이 죽은 도시’라고 느꼈던 사람들이 이곳에 오게 되면 베이징의 밤은 ‘살아있다’고 생각을 고쳐먹는 곳 중의 하나가 바로 아판티이다.

‘밤문화’가 보여주는 중국사회 변화상

‘밤’이 보여주는 이미지는 사회마다 나라마다 제각각이다. 그리고 ‘밤’이 변한다는 것은 그 사회가 변화한다는 증거이기도 할 것이다. 중국의 ‘밤’도 시대와, 사회변화와 함께 다르게 나타나고 있다. 때문에 중국의 ‘밤’이 변화해온 과정을 보면 중국사회의 변화가 어느 정도에 도달했는지도 한눈에 알 수 있다.

예를 들어 1960년대의 밤과 78년 개혁개방 이후의 밤을 보면 그 변화의 차이가 확연하다. 문화대혁명이 시작된 60년대 중반만해도 “마오주석의 책을 읽고, 마오주석의 연설을 들으며, 마오주석의 사상으로 머리를 무장하는” 시대였기 때문에 그 당시 중국인들의 밤은 사적인 오락이나 특이한 밤거리 문화가 존재할 수 없었던, 밤은 또 다른 정치학습의 연장시간이었다.

당시의 기록들을 보면, 각 가정에서는 저녁식사를 막 하기 전 가장이자 남편이 가족들에게 “먼저 마오주석의 어록을 한편 학습하고 난 다음 밥을 먹읍시다”라고 말하면 곧바로 아들이 마오주석의 어록중 한문중을 낭독하고 그것을 전 가족이 따라서 다시 한번 반복했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매주 이삼일 정도는 각 가정마다 저녁을 먹은 후, 한곳에 모여 집단적으로 마오주석의 사상을 학습하는 야간 정치학교도 정기적으로 열렸다고 하니 당시 중국사회의 ‘밤’은 개인의 것이 아니라 집단과 국가에 의해 안배된 ‘정치적 밤’이었던 셈이다.

그러나 80년대 이후부터 지금까지, 중국인들의 ‘밤’은 집단과 국가에 의해 안배된 밤에서 오롯한 개인의 휴식과 오락시간으로 변화되었다. 지금은 베이징 거리 곳곳에 각종 가라오케들이 즐비하고 밤마다 불야성을 이루는 디스코바 등의 사이키조명 아래로 청춘남녀들이 미어터지는 걸 보면 중국에서의 ‘밤’은 이제 또 다른 ‘낮’이자 개혁개방의 특구가 된 듯하다.

게다가 젊은이들의 새로운 밤문화가 되고 있는 ‘왕빠’(PC방)와 그 안에서 밤새 ‘컴퓨터 연애’를 하는 이들 ‘신신인류’들의 밤문화는 중국사회가 또 다르게 변화되고 있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다.

어쨌거나, 꿰이지에의 홍등 아래서 야식을 먹으며 밤을 보내든지 아니면 아판티에서 한바탕 신나게 열광하고 흥분하면서 밤을 보내든지간에 베이징의 밤은 더 이상 ‘죽은밤’만은 아니라는 것을, 어쩌면 ‘서울의 밤’보다 더한 무엇이 있을 수도 있다는 것을 베이징에 처음오는 그대들은 명심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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