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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관계로 처음 만나게 된 중국의 모 방송국 아나운서와 얘기하던 중, 방금 전에 들은 그녀의 이름이 생각나지 않아 아무 생각 없이 "샤오지에!"(小娣, 아가씨)라고 부르게 되었다. 그러자 그녀는 나를 잠시동안 물끄러미 보더니 '피식'하고 웃는다. 그리고는 다시 한 번 이름을 말해주면서 앞으로는 "샤오지에"라는 이름으로 부르지 말란다.

그녀의 그 말뜻을 십분 이해한 나는 그래도 다시 한번 그녀에게 확인 질문을 했다.
"샤오지에라는 말을 들으면 기분이 안좋나요?"
"상대방이 어떤 의도로 호칭하느냐에 따라서 틀리지만 일반적으로 샤오지에라는 말은 듣기 좋은 말은 아니예요. 아마도 그 뜻이 많이 변질되어서 그럴 거예요."

그녀의 말을 듣기 전에도 나는 숱하게 '샤오지에'라는 명칭에 얽힌 이야기과 그것이 현재 중국에서 어떤 의미로 더 많이 불리고 있는 이름인지를 익히 들어 알고 있었다. 마치 우리나라에서도 '아가씨'라는 예쁜 호칭이 특정한 직업에 종사하는 일부 직업여성들을 지칭하는 대명사로 그 의미가 일부 변질된 것처럼 중국의 '샤오지에'라는 이름에도 굴절된 '아픔'이 있다는 것을.

한 꽃다운 '샤오지에'의 죽음

1년 전 쯤, 내가 알던 한 꽃다운 나이의 중국 아가씨가 어느날 갑자기 차가운 시신으로 발견되었다. 사망 원인은 가스누출로 인한 질식사였다. 택시운전을 하는 그녀의 남자친구도 함께 변을 당했다. 둘은 라면을 끓여먹고 깜박 잠이 들었다가 그만 사고를 당한 것이다.

지금은 그녀의 이름이 기억나지 않지만, 당시 내가 살고 있던 집에 두 번인가 놀러왔었다. 나와 개인적으로 친했던 중국친구의 친구였던 관계로 그 친구를 따라 놀러가곤 했다. 얼굴이 유난히 하얗고 예뻐서, 게다가 음악대학에 다녔던 친구라 그 인상이 오래도록 남아 있다.

그런데 그녀는 놀랍게도(?) 밤마다 소위 말하는 '업소'를 나가고 있었다. 중국에서 부르는 대로 하자면 그녀는 '꺼우팅 샤오지에'(歌舞廳小娣, 가라오케 등에서 일하는 아가씨)였던 셈이다. 한 달에 버는 돈만 평균 5-6000위안이라고 했다. 이 정도면 웬만한 월급쟁이의 배가 넘는 수입이다.

집안사정으로 그런 밤 업소를 나가야만 했던 것이 아니라, 간섭이 심한 아버지로부터 독립하고 싶어서 그 일을 시작했다고 말했다. 그녀는 노래 부르고 술 마시는 것 외에는 절대 '다른 일'은 안 한다며, 자기는 뭇 '삼페이 샤오지에'(三陪小娣, 술집이나 가라오케 등에서 노래, 춤, 술, 잠자리 등 세 가지 서비스를 하는 직업여성을 지칭)와는 다르다고 강조했다. 착실히 돈벌어서 택시운전 하는 남자친구와 정식으로 독립할 거라고 말했는데, 그러나 슬프게도 그 꿈은 끝내 이루질 못했다.

그녀의 장례를 치르고 온 며칠 뒤, 나의 중국친구는 눈물이 그렁그렁한 채로 장례식 풍경을 전해 주었다. 이미 경찰의 이러저러한 조사로 딸이 소위 말하는 '샤오지에'였다는 사실을 알아버린 그녀의 아버지와 프랑스에서 사업을 하다 소식을 듣고 급히 날아온 그녀의 어머니는 내내 망연자실한 채로 장례를 치르다, 급기야 시신이 화장되려는 순간 그녀의 아버지가 피를 토하는 듯한 슬픔이 꽉찬 목소리로 "내 딸, 정말로 위대하구나 위대해!"라고 소리치며 엉엉 울더라는 것이다.

그렇게 어이없게 세상을 뜬, 얼굴이 유난히 하얗고 예뻤던, 음악대에서 성악을 전공했던 그녀는 내가 중국에 와서 처음으로 알게 되었던 '샤오지에'였다.

베이징 '빠다후통'에 얽힌 이야기

지난해, 중국에서는 베이징 치엔먼(前門) 근처에 있는 빠다후통(八代胡同, 각기 이름이 다른 8개의 전통적인 옛 베이징 주택가 골목)의 문화유산지정 문제를 놓고 갑론을박들이 오갔었다. 논쟁의 주 내용은, 이 빠다후통을 베이징의 문화유산으로 지정해서 후통여행의 정식 코스로 추천할 것인가였는데, 찬성론자와 반대론자 모두 나름대로 일리가 있는 반론들을 제기해 재미 있는 화제거리가 되었던 문제이다.

'빠다후통'이 후통여행과 관련되어 쟁점이 되었던 이유는, 이 골목 일대가 청조 말기에 베이징에서 가장 유명했던 '홍등가'였던 까닭이다. 지금은 베이징에서 '가난한 달동네'쯤으로 인식되는 낡은 주택가 골목으로 변화되었지만, 그 골목들은 아직도 옛 '샤오지에'들이 남긴 명성으로 인해 베이징에서 가장 유명한 후통중의 하나로 남아 있다.

빠다후통을 보존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논자들은, 프랑스에서 현재 유명한 관광코스 중의 하나로 변한 옛 홍등가 '믈랑루즈'의 예를 들면서 부끄러운 역사도 잘 보존해서 후손들에게 교훈으로 남겨두고 더불어 '돈도 되는' 여행상품으로 만드는 게 뭐 나쁜 일이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반면 철거를 주장하는 논자들은 청조 말기에 주로 외국인이나 부패한 고관대작들을 위해 '봉사'했던 샤오지에들의 거주지를 뭐 좋은 구경거리라고 길이길이 문화상품으로까지 보존해야 되느냐며 성토를 했다.

그들의 갑론을박은 뒤로 제껴두고라도, 이 빠다후통 안에는 청조 말기의 부패한 사회상을 엿볼 수 있는 많은 '열쇠'들이 숨어 있을 뿐만 아니라, 이 후통 안에서 이름을 날렸던 유명한 '명기'들의 이야기도 숱하게 묻혀 있다.

그 중에서도 이 후통이 배출한 가장 유명한 '샤오지에' 중에는 지금까지도 많은 중국인들에게 회자되고 있는 싸이진화라는 기생이 있다. 그녀는 청조말기의 일등급 고관이었던 홍쥔의 첩이 되어 그를 따라 독일과 러시아, 네덜란드 등 많은 외국을 돌아다녔고 이 순방길에서 알게된 독일인 장교 - 그는 나중에 의화단 사건을 빌미로 베이징으로 진군한 팔개국 연합군의 사령관이 됨 - 와의 인연으로 많은 무고한 중국인들의 목숨을 구해주었다고 한다. 때문에 싸이진화는 오늘날까지도 빠다후통과 관련하여 빼놓을 수 없는 중국의 일급 '샤오지에'임과 동시에 애국기생으로 기억되고 있다.

싸이진화와 그녀의 기방이 있었던 이 빠다후통이, 중국인들에게 곤혹스러운 문제로 불거지고 있는 것은 바로 그곳이 그녀가 중국의 '샤오지에' 역사와 관련된 중요한 증인들이기 때문이다.

중국의 일급 '샤오지에'로 불리는 싸이진화는 이미 저 세상으로 가고, 빠다후통 안의 수많은 기방들은 신중국 건립 이후 폐쇄되고 없지만, 어찌된 일인지 지금은 더 많은 새로운 빠다후통들이 생겨나고 있고 더 많은 새로운 일급 '샤오지에'들이 넘쳐나고 있으니 솔직이 빠다후통을 둘러싼 논쟁이 무슨 소용일까라는 생각도 든다. 보존을 하든, 철거를 하든 여전히 '샤오지에'들은 사라지지 않는 것을.

개혁개방 바람타고 다시 태어난 '샤오지에'

최근 몇 년간 중국에서 열린 각종 미인 및 모델 선발대회들을 보고 있자면 누가 그런 기발한 '샤오지에 선발대회'를 생각해냈는지, 그리고 어디서 그렇게 예쁜 '샤오지에'들이 끊임없이 튀어나오는 것인지 신기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그러한 '...샤오지에 선발대회'에 출전하는 각종 샤오지에들은 말 뜻 그대로 예쁘고 젊은 '아가씨'들이다. 이 샤오지에들은 내가 말하고자 하는 '삼페이 샤오지에'나 '안마 샤오지에' 그리고 '꺼우팅 샤오지에'들과는 그 사회적 성질이 다른 계층들이긴 하지만, 불과 몇 십 년 전의 낡은 인민복장에 마오주석의 어록을 끼고 다녔던 신중국 건립의 혁명적인 '샤오지에'들과 비교하면 이들 역시 중국에서 새로운 의미를 가지고 등장한 샤오지에들임에 틀림없다.

중국의 '한어사전'에서 '샤오지에'라는 단어를 찾으면 다음과 같은 세가지 뜻으로 풀이되어 있다. 재미있는 것은, 마지막 세 번째 의미는 최근에 와서야 새롭게 추가된 의미라는 것이다.

샤오지에의 사전적 의미는 첫째, 구사회의 관료, 지주와 자산계급 가정의 노비들이 주인집의 아직 출가하지 않은 딸을 부를 때 썼던 호칭이고, 둘째는, 젊은 여성이나 아직 결혼하지 않은 여성들을 높여부르는 말이라는 것이다. 최근에 추가된 세 번째 의미는, 오락장소나 요식업에 종사하는 젊은 여자들로서 예를 들면 '삼페이 샤오지에'나 '안마샤오지에' 등을 들 수 있다고 씌여 있다.

사전에 새롭게 추가된 세 번째 의미의 샤오지에들은, 대략 80년대 이후 개혁개방의 바람을 타고 먼저 부자가 된 광쩌우나 선전 등의 동부연안 도시들에서부터 등장하기 시작한 직업적인 샤오지에들이다. 그러던 것이 지금은 중국의 어디서나 볼 수 있는, 너무나 흔하고 천박한 중국 사회의 또 다른 계층으로 눈부신(?) 성장을 했다.

현재 푸젠성(복건성) 같은 일부 성정부에서는 이들 세 번째 부류의 샤오지에들에게서 일정한 개인소득세까지 징수하고 있는 판이니, 중국의 샤오지에는 이미 하나의 거대한 '샤오지에 산업'으로 발전했다고 봐야 할 것이다. 그러니 천안문 광장 앞에 모셔져 있는 마오주석이 지하에서 얼마나 통탄하고 있을 것인가.

중국 '샤오지에 산업'의 사회적 함의

지난 몇 년간 중국의 정가를 발칵 뒤집혔던 고위급 부패사건들의 공통된 점을 보면 그 고관들이 하나같이 다 '샤오미'(小蜜, 정부)들로 불리는 애첩들을 끼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고관들을 구워삶기 위해 부패를 알선하는 브로커들은 흔히 '쭉쭉 빵빵한' 샤오지에들을 수시로 상납했다는 점이다. 그래서 이러한 일련의 대형 부패사건들을 겪고 난 후, 중국에서는 이른바 '성뇌물 죄'라고 하는 새로운 죄명까지 발명(?)하기에 이르렀다.

이것도 어떻게 보면, 개혁개방 이후 나타난 '샤오지에 산업'의 부대효과인지도 모르겠다.

중국에서 '샤오지에 산업'이 가지고 있는 사회적 의미는 이들 샤오지에들의 번식 속도만큼이나 복잡하고 제어하기 힘든 문제들을 가지고 있다. 자본주의건 사회주의 국가의 정부이건 사실 이러한 '샤오지에 산업'이 탐탁할 리는 없다. 중국정부도 매년 정기적으로 이들 샤오지에들이 잠복해 있는 각종 오락장소 등을 대상으로 '일제소탕'같은 대규모 청소작업들을 하고 있지만 근본적으로 청소하기란 이미 불가능한 일이 돼버렸다.

중국의 '샤오지에 산업'은 시장경제와 부패한 자본주의적 사회구조가 낳을 수밖에 없는 일반적인 '성산업'의 일종이라는 측면 외에 중국적인 특수성도 가미되어 있다.

몇 십 년 전 서울의 주요 홍등가를 채우던 한국 '샤오지에'들의 슬픈사연들과 마찬가지로, 중국의 샤오지에들도 대부분은 농촌에서 올라온 가난하고 학벌이 변변찮은 '촌아가씨'들이다.

이들 농촌에서 온 아가씨들이 베이징같은 대도시에서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식당의 종업원 같은 허드렛일이 고작이고 이러한 일을 해서 받는 한 달 평균 400-500위안 정도의 월급으로는 입에 풀칠하기도 어렵다. 그러나 이 아가씨들이 보게 되는 도시와 도시 아가씨들, 그리고 도시의 생활 수준은 그녀들을 절망시키기에 충분하다. 때문에 이들 중 다수가 보다 쉽게 많은 돈을 벌 수 있는 '샤오지에'라는 직업을 선택하고 있다.

농촌에서 올라온 젊은 남자들은 그나마 공사판 등에서 일을 하면서 '도시 건설의 공로자'라는 인색하나마 칭찬을 듣는 경우도 가끔씩 있는 반면, 농촌아가씨들은 여지없이 도시 '샤오지에 산업'의 주범으로 몰리고 있다.

문제는 이들 샤오지에들에게 있다기보다는 중국의 남아도는 농촌 노동력과 농촌경제의 침체, 그리고 농촌 교육수준의 낙후에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이러한 농촌의 몰락을 야기할 수밖에 없었던 과거 중국정부의 '도시편애'적인 정책에도 그 책임이 있다.

이러한 논리로 보자면, 중국 '샤오지에 산업'의 배후에는 농촌경제가 가지고 있는 복합적인 문제와 이로 인해 도시의 밑바닥 계층으로 전락해 가는 9억 농민의 아픔이 서려 있다고 해도 무방할 것이다.

"아가씨! 아직도 안녕하세요?"

얼마전, 신정 휴가를 이용해 베이징에 놀러와서 내 주머니를 털고간 중국인 친구 샤오루는 회사의 일본인 직원들과 함께 간 가라오케에서 겪은 경험을, 생전 처음 당한 '공포체험'이었다는 식으로 말을 해 나를 웃겼다.

눈이 휘둥그레질 만큼 예쁜 샤오지에들이 한 사람씩 '달라붙어' 참기 힘들 정도의 극진한 '서비스'를 하는 통에 죽는 줄(?) 알았다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공포'가 아니고 무엇이겠냐고.

그러나 당시 동석해 있던 중국인 여자친구들을 의식해서 심리적인 공포체험 이상의 후일담은 절대 없었다고 부인한 이 샤오루란 녀석은 나중에 나에게만 따로 '비밀'을 얘기해주었다.

그날 가라오케에서 자기 옆에 앉아 '서비스'를 하던 샤오지에가 나중에 명함을 건네주며 시간 있을 때 따로 놀러오라고 했다는 것이다. 며칠 뒤 빨래를 하기 위해 벗어둔 옷들을 세탁기에 넣던 중, 우연히 그 명함을 발견하게 되었고 '놀러오라'고 말했던 그 샤오지에의 당부가 생각나 재미삼아 명함에 적힌 전화번호로 전화를 했단다.

그런데 진짜로 전화기 안에서 예쁘고 낭낭한 샤오지에의 목소리가 흘러나오자 순간적으로 당황한 내 친구 샤오루가 무어라고 첫마디를 내뱉었는지 아는가.

"샤오지에! 니 하이 하오마?"(아가씨! 아직도 안녕하세요?)였단다."

그리고는 바로 끊어버렸다고 말을 했지만, '아직도 안녕하기 때문에' 전화를 받았을 그 샤오지에와 나에게 얘기 안한 어떤 또 다른 '공포'를 체험했을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샤오루에게 '공포감'을 줬던 예쁜 샤오지에들이 내일도, 그리고 또 내일도 중국에서 '여전히 안녕'하는 한 내 친구 샤오루의 공포감은 드디어 어느날, 그다지 공포스럽지 않은 '친밀한 접촉'으로 변해 있을지도 모른다. 그때는 이녀석도 지금의 순진한 티를 벗고 다소 느물거리며 전화를 하겠지.

"샤오지에! 니 하오!"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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