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어렸을 때는 나에게도 '부자아빠'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상상을 곧잘 하곤 했다. 아마도 초등학교 삼학년 무렵, 시골 '깡촌' 학교에서 서울로 전학을 오고 난 후의 일일 것이다. 처음 얼마 동안 같은 반 서울아이들에게 '촌년'이라는 이유로 이래저래 왕따를 당했던지라 매일 아침 학교가는 게 죽기보다 싫었던 시절이었다. 그러나 아이들의 세계라는 게 늘 그렇듯이 학년이 바뀌고 시간이 흐르면서 차츰 나도 서울아이들과 친구가 될 수 있었다.

그러던 어느날, 늘 같이 어울렸던 몇 명의 반친구들이 갑작스러운 제안을 했다. 돌아가면서 친구들을 집으로 '초대'하자는 것이었다. 그때부터 나는 사는 게 우울해지기 시작했다. 왜냐하면 당시 우리집은 집이라고 부를 만한 '집'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소위 말하는 무허가 비닐하우스촌이 그 당시 우리 식구가 임시로 거주하던 집이었다. 그러니 친구들의 그 '초대' 제안은 어린 마음에도 하늘이 무너질 듯한 걱정거리가 아닐 수 없었다.

친구들의 집을 다 순례하고 난 후, 이제 우리 집밖에 남지 않았을 때 나는 용케도 매번 그럴 듯한 변명거리를 만들어냈다. 집에 손님들이 계셔서, 엄마가 편찮으셔, 할머니가 올라오셨어 등등. 이렇게 차일피일 핑계만 대면서 집을 구경시켜주지 않자, 친구들은 드디어 '우리집'을 의심하기 시작했다.

'너네집 진짜로 모모아파트 맞아?'라고 제법 공격적으로 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그 당시 나는 '비닐하우스'에 산다는 사실을 차마 말할 수가 없어서 근처의 모모아파트에 산다고 거짓말을 했던 것이다.

끝끝내 집을 구경시켜주지 않는 나에게 친구들은, 그럼 너네 집앞만이라도 구경하자고 졸라대기 시작했다. 하는 수 없이, 나는 '연극'을 해야만 했다. 친구들을 데리고 '가짜집'인 모모아파트 입구까지 온 것이다. '봐, 이래도 못믿겠어?'라는 표정을 지으며 친구들에게 '가짜집' 의 구체적인 위치까지 가리키며, '저게 우리집이야!'라고 으시댔다.

그러나 그 '가짜집' 사건은 결국 들통이 나고 말았다. 그중 한 친구가 몰래 집으로 가는 내 뒤를 밟았던지, 어느날 등교하자마자 내게 그러는 것이다. 너네집 진짜 모모아파트 맞아? 내 친구가 그 아파트에 사는데 너를 한 번도 본 적이 없대. 그리고 어제, 우연히 너랑 꼭 닮은 애가 어떤 비닐하우스촌으로 들어가는 걸 봤거든. 혹시 너 거기 사는거 아냐?

그 학년이 끝날 때까지, 나는 내내 우울하게 지냈던 것 같다. 어린 맘에도 상처가 컸던 것이다. 그 사건 후 나는 때때로 나의 '가난한 아빠'가 미웠다. 모모아파트에 사는 다른 아이들처럼 나에게도 '부자아빠'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상상을 하면서.

어릴적 나의 '가난한 아빠'는 지금도 여전히 '부자아빠'가 되지는 못했지만, 지금은 나의 이 '가난한 아빠'를 원망하지는 않는다. 이제 나도 산다는 게 얼마나 팍팍하고 힘든 것인가를 절감하면서, 가난한 나의 아빠를 이해할 수 있는 철이 든 나이 탓일까. 아니면 가난한 아빠가 늘 강조하시던 "가난한 게 부끄러운 게 아니라 사람구실 못하는 게 가장 부끄러운 것이다"라는 그 평범한 '명언'의 진리를 깨달은 것일까.

부자 아빠, 부자 아들

최근 중국에서도 '가난한 아빠, 부자 아빠'라는 말이 유행하고 있다. 한국에서도 베스트셀러를 기록한 '가난한 아빠, 부자 아빠'가 비슷한 시기에 중국에서도 빅히트를 친 후 사회전반으로 퍼지고 있는 유행어가 된 것이다. 게다가 요즘에는 '부자 아빠, 부자 아들'들에 관한 얘기가 언론을 통해 심심찮은 화제가 되면서 뭇 '가난한 아빠, 가난한 아들'들을 탄식하게 만들고 있는 판이다.

광동성에 살고 있는 쳔(陳)모라는 한 부자에게는 열세살난 아들이 있었다. 그런데 이 어린 아들은 돈쓰기를 마치 물쓰듯하여 이 '부자아빠'가 여간 골치를 썪지 않을 수 없었다. 한달에 보통 사람들 월급의 몇 배를 써댔다고 하니 그 어린 아들 녀석의 헤픈 씀씀이를 짐작할 수 있다.

이런 아들을 걱정하던 그 쳔모라는 부자 아빠가 어느날 아들을 불러앉혀서 '돈'에 관한 훈계를 할 요량으로 먼저 이런 질문을 했다고 한다. "아들아, 너 이 돈이 어디서 나오는 것인 줄 아니?". 그러자 그 어린 아들은 내가 그것도 모르는 바보인 줄 아느냐는 표정으로, 부자 아빠를 한순간 멍하게 만든 걸작같은 대답을 하더라는 것이다. "아빠가 은행에서 인출해오는 거잖아요."

또 다른 '부자 아들'에 관한 걸작같은 이야기가 있다. 난징(南京)의 모 중학교에 부자 아빠를 둔 한 부자 아들이 있었다. 그런데 이 녀석의 일화는 광동성의 부자 아들보다 더 '엽기적'이다. 대변을 본 후, 휴지를 가져오지 않은 걸 알고 아무렇지도 않게 주머니에서 백위안짜리 지폐 네 장을 꺼내 '쓰윽'하고 뒤를 닦았다는 것이다.

사백위안이면 우리나라 돈으로도 자그만치 6만원이 넘는 돈이다. 얼마전 허베이(河北)지방에서 만난 열여덟살짜리 어린 여공의 월급이 4백위안이었으니, 그 어린 '부자 아들'은 순식간에 한 여공의 한 달 월급을 '밑씻개'로 써버린 셈이다.

이 철없는 '부자 아들'들에 관한 이야기들이 언론을 통해 전해지면서 갖가지 탄식들이 여기저기서 들려오고 있다. 총체적인 교육의 문제라고 개탄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부자 아빠'들이 가정에서의 교육을 소홀히 한 탓이라고 비난하는 사람들, 단순히 '부자 아들'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중국의 모든 '샤오황띠'(小皇帝, 황제처럼 떠받들어 키워지는 중국의 일가구 일자녀들을 비유하는 말)들에게도 공통적으로 존재하는 문제라고 종합적인 진단을 하는 사람들 등등 가지각색의 말들이 나오고 있다. 그러나 어쨌든 공통적인 반응은 '통탄할 일'이라는 것이다.

물론 위에서 소개한 두 명의 철딱서니 없는 '부자 아들'들에 관한 얘기는 중국에서는 극히 일부분에 지나지 않는 소수의 일화다. 아직도 많은 중국의 '샤오황띠'들은 언감생심 꿈도 못꿀 일이며, 그들 대부분은 또한 '가난한 아빠'들을 두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소 옆으로 새는 얘기를 한마디 하자면 이들 소수의 '부자아들'들 문제나 중국의 '샤오황띠'들 문제는 단순히 웃어넘길 만한 일은 아닌 듯하다. 가난한 '샤오황띠'들 역시 어린 시절부터 워낙에 '오냐오냐'하면서 키워지다 보니 버릇이 없음은 물론이고 남을 배려할 줄 모르는 이기적인 아이들이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알고 지내는 어떤 사람은 농담삼아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중국의 미래도 싹수가 노래보여."

중국의 인터넷 사이트 '인민왕'(人民网)에는 한 네티즌이 올린 다음과 같은 글이 올라와 있다. 위에서 소개한 부자 아들들의 통탄할 만한 보도들을 접하고 난 후 쓴 소감문이다. 제목은 "八旗子弟"와 "四不靑年"이다. 그중 한단락을 인용해 보자.

“먼저 부자가 된 연해지역에는 쳔선생과 같은 많은 ‘부자 아빠’들이 있고, 자연히 이에 상응하는 ‘부자 아들’들이 생겨났다. 돈이 많다보니, 이들 많은 ‘부자 아들’들은 공부를 하지 않고(不讀書), 일도 하지 않으며(不工作), 농사를 짓지 않을 뿐더러(不業農), 장사를 하지 않는(不經商) ‘스부칭녠’(四不靑年)들이 되었다. 그들에게는 인생의 이상(理想)이나 포부가 없고 사회적 책임감도 없다. 종일 배부르게 먹고 노는 데나 관심있고, 단지 그때그때 향락을 쫓는 것 외에는 어떤 일에도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 이들은 또한 모두 예외없는 ”쭈이싱주”(追星族, 유명 스타들을 쫓아다니는 중국의 젊은이들을 지칭하는 말)들이다.

이들 ‘스부칭녠’들은 자연스럽게 청조말기에 나타났던 한 무리의 ‘八旗子弟’(청조말 만주족의 부자아들들을 지칭)들을 떠올리게 한다. 그들은 단지 새들을 가지고 놀거나, 귀뚜라미 싸움이나 즐기고, 아편을 피워댔으며 기생집을 들락거렸던 무리들이다. 오늘날의 ‘스부칭녠’들도 이들 ‘팔기자제’들과 비교해서 조금도 손색이 없다.“


가난한 아빠, 가난한 아들

먼저 부자가 된 동부연안지역에서는 '부자 아빠'를 둔 '부자 아들'들이 돈을 물쓰듯하며 화장실 휴지처럼 버리고 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많은 중국의 아버지들은 '가난한 아빠'들이다. 그리고 이들의 아들들 역시 '가난한 아들'들이기는 마찬가지다.

얼마 전, 사천성을 여행하던 길에 만났던 '가난한 아빠'들의 이야기다. 중국의 팔대명산으로 유명한 어메이산(俄嵋山)을 오르던 날, 하필이면 장대같은 비바람이 몰아치는 것이다. 산중턱까지 올라가다 추위와 비바람, 다리아픔 등을 참다못해 그만 포기하고 내려갈까 하던 차에 작은 산장찻집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 찻집주인은 대번에 기색을 알아차리고, 나에게 '들것'을 타고 정상까지 올라가는 게 어떻냐는 솔깃한 제안을 한다.

들것이라고 하면, 네명의 장정들이 나를 작은 가마같은 들것에 둘러메고 낑낑대며 올라가는 것을 말한다. 중국의 산을 여행하면서 본 가장 잔인한 풍경이 바로 그것이었다. 한사코 거절하는 내게 찻집 안에서 튀어나온 다른 세 명의 남자들까지 가세를 하여 설득을 하는 것이다.

결국, 내가 그 잔인한 청을 거절하지 못했던 이유는 그들 네 남자의 가난한 이야기에 설복당했기 때문이다. 그들의 눈물겨운(?) 이야기의 요지는 제발 들것을 타서 자신들을 좀 도와달라는 것이다. 약간 신파조로 얘기하자면 집에는 '돈'들을 기다리는 '입'들이 와글와글한데 돈이 나올 구석이라고는 전혀 보이지 않는다는 것. 아이들을 가르치려면 돈이 있어야 하는데, 지금 짓는 농사로는 식구들 입에 풀칠하기도 어렵다고 읍소를 한다. 한 달내내 땅을 파봐야 손에 들어오는 돈이라고는 고작 400-500위안(약 6-8만원)정도니 어떻게 살겠냐면서.

그래서 궁여지책으로 생각해낸 것이 바로 이 들것 아르바이트라는 것. 그나마도 케이블카 때문에 어떤 때는 하루에 한 명도 싣지 못한다며 계속 '우는 소리'들을 해댄다. 결정적으로 마음이 약해진 것은 그들중 말이 없던 한 남자가 "다음 학기에 큰애 학비 낼 생각이 캄캄하다"고 무심결에 내뱉은 한마디였다. 그 말을 들은 후 나는 두말없이 그 잔인한 들것에 올라타고 말았다.

그 잔인한 선택을 했던 또 하나의 이유는, 그들의 얼굴에서 능구렁이같은 장사꾼들의 교활함보다는 그들 말 그대로 중국의 전형적인 가난한 농민들, 가난한 아빠들의 삶을 읽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날, 나는 케이블카로 30위안에 갈 수 있는 정상을 300위안(원래는 120위안인데 그만 순간의 동정심으로 무리를 하고 말았다)이라는 거금을 주고 세상에서 가장 불편한 등산을 하게 되었다.

이들 어메이산에서 만났던 가난한 아빠들의 한결같은 소원은 제발 돈 안되는 농사일을 때려치우는 것이다. 하긴 백날 땅 파서 버는 돈이 하루에 서너 명 실어나르는 아르바이트보다 못하니 누군들 농사를 짓고 싶겠는가. 그들은 자식들만큼은 잘 가르쳐서 절대로 자기들처럼 농사를 짓게 하지는 않겠단다. 중국의 주룽지 총리가 가장 애통해 마지 않는 중국 농민들의 절절한 소원이다. 동시에 모든 가난한 아빠들의 염원이기도 하다.

베이징 거리를 걷던 중, 우연히 한 사진관 앞에 나란히 걸려 있는 두 점의 사진이 눈길을 끌었다. 중국혁명의 아버지 마오 주석과 개혁개방의 총설계사 덩샤오핑의 사진이 사이좋게 놓여 있는 것이다. 그들은 얼굴 가득 온화한 표정의 엷은 웃음을 짓고 있었다. 문득 들었던 생각은 참 묘한 대조라는 것이다. 그저 평범하고 인자해보이는 여느 중국 할아버지들과 다를 바 없어 보이는 두 노인네들의 그 어느 곳에 그렇게도 많은 카리스마가 숨어있었던 것인지.

사진관 앞에서 잠시 발걸음을 멈추고, 또 문득 들었던 생각은 '가난한 아빠, 부자 아빠'의 얼굴이다. 중국에서 마오 주석과 덩샤오핑이 상징하는 것이 바로 그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었다. 비록 가난할지라도 모두가 절대적으로 평등할 수 있는 사회주의의 '도덕적 가난'을 선택하자고 호소했던 마오 주석은 오늘날 중국인들에게는 바로 가난한 아빠의 상징이다. 반면 '먼저 부자가 되고 보라'고 주문했던 덩샤오핑은 부자 아빠의 상징일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 중국인들은 이 가난한 아빠와 부자 아빠의 얼굴을 나란히 걸어놓고 감상하고 있다. 그들이 진정으로 바라는 것은 매일같이 은행에서 돈을 인출해다 주는 부자 아빠일지라도 예전에 한때나마 사람구실을 하라고 다그쳤던 그 가난한 아빠의 교훈을 끝내 잊지 못해서일까. 아니면, 가난한 아빠와 부자 아빠 모두가 공통적으로 말했던, 판단은 역시 '역사에 맡기고 볼 일'일까.

태그: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