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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의 월간조선 지난해 3월호
ⓒ 오마이뉴스
여순사건을 다룬 영화 '애기섬'을 이적 영화로 몰며 국방부를 '공격'하고, 영화 사전검열까지 시도했던 월간조선이 재판부로부터 판매금지 가처분을 받은 데 이어 반론보도 결정까지 받아들이기로 한 사실이 뒤늦게 밝혀졌다.

서울지법 민사합의50부(재판장 이공현 부장판사)는 지난해 '월간조선사(사장 조갑제)' 10월호에서 여순사건을 다룬 다큐멘타리 극영화 '애기섬'을 '국군 지휘부의 자해행위(우종창 기자)'라는 제목으로 '여순사건을 왜곡·조작한 영화'라고 보도한 것과 관련해 장현필(37·영화 '애기섬' 감독) 씨가 월간조선을 상대로 낸 반론보도를 지난달 23일 받아들였다.

재판부가 화해조서로 "이 판결이 확정된 후에 최초로 발행되는 '월간조선'의 특집면의 좌측 상단 부분에 반론보도문을 게재하여야 한다"고 결정함에 따라 월간조선은 3월호에 두 쪽 분량의 반론보도를 게재하게 됐다.

법원의 반론보도문 게재 결정은 지난해 10월 김동신 국방부 장관이 월간조선사를 상대로 낸 판매금지 가처분 결정에 이어진 것이며, 김 장관은 이와 함께 이 잡지 발행인과 취재기자를 상대로 민·형사상의 명예훼손 소송도 제기한 것으로 알려졌다.

월간조선은 지난 98년 11월에도 최장집 당시 대통령 자문 정책기획위원장의 현대사 논문에 대해 색깔 공세를 퍼부어 최 위원장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이유로 판매금지 가처분 결정을 받은 바 있다.

월간조선의 사전검열에 의해 큰 곤경에 처했다

장현필 감독은 월간조선 3월호에 실리게 될 반론보도에서 "우종창 기자는 극영화(애기섬)를 본 적이 없음에도 단정적인 언어를 사용하여 비판한 것은 창작자의 고유의 권한을 무시하는 것이며 본인을 큰 곤경에 처하게 만들었다"며 사전검열과 이념공세로 큰 피해를 당했다고 호소했다.

장 감독은 또 "지역의 가슴 아픈 역사를 화해와 이해를 만들고 미래에 밝은 역사를 주고자 영화를 만들었다"고 제작동기를 밝히면서 "월간조선은 여순 10·19사건이 여수, 순천 지역에서 어떤 의미를 갖는지 정확히 모르고 보도하는 바람에 지역의 명예를 다시 한번 실추시키고 말았다"고 항의했다.

특히 월간조선이 영화를 조작했다는 주장에 대해 "(국군이)여수시를 함포사격해 양민 천명을 죽였다"고 묘사한 것은 향토사학자 김계유씨가 쓴 '내가 겪은 여순사건'과 전 호남신문 사진부장 이경모씨의 회고문을 근거로 하였다"고 반론을 폈다.

한편 장현필 감독은 순천시민과 시민단체의 도움으로 소송비용을 마련해 지난 1월 말 월간조선을 상대로 손해배상(5억원) 청구 및 정정보도 소송을 광주지방법원 순천지원에 낸 상태다.

'월간조선 반성기회 주기 위해 화의조정 받아들였다'

▲영화 '애기섬'을 제작한 장현필 감독
ⓒ 오마이뉴스 조호진
장현필 감독은 8일 월간조선이 반성의 계기로 삼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재판부의 화의조정을 받아들였다고 밝혔다. 다음은 장 감독과의 일문일답이다.

- 이번 판결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비록 '화해조서'라는 단서를 단 결정문이지만 재판부에 제출한 반론보도가 거의 받아들여졌다. 재판부의 반론보도 결정 내용과 거의 비슷한 언론중재의 결정은 무시한 월간조선이 물리적 힘이 가해지는 법원의 결정은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이는 태도를 보면서 거대 수구언론의 비합리성을 확인했다."

- 화의조정을 받아들인 이유는 무엇인가.
"화의조정을 거부할 수도 있었지만 월간조선이 반성의 계기로 삼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재판부의 결정을 받아들였다. 또 악의적 표현으로 영화를 사전검열한 우종창 기자에 대해서도 문제를 삼을 수 있었지만 끔찍한 수구언론에 초점을 맞추기 위해 개인은 문제 삼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 영화 '애기섬' 사건과 관련해 향후 계획은 무엇인가.
"월간조선를 상대로 건 정정보도와 손해배상(위자료 5억 청구) 소송에 주력할 생각이다. 이와 함께 월간조선의 색깔공세에 의해 중단된 '애기섬'을 작품 완성도를 높여 지역민들에게 보여드릴 계획이다."

다음은 서울지법 민사합의50부가 결정한 '화해조서'에 따른 내용으로, 월간조선 3월호에 실리게 될 영화 애기섬 보도 관련 반론보도문 '전문'이다.

덧붙이는 글 | 반란보도문 게재 과정에서 일부 착오가 있어 아래와 같이 고쳐 다시 싣습니다. 

제목 : 「麗順 14연대 반란 진압을 양민학살로 몰고간 영화 '애기섬' 제작에 軍 장비가 지원된 과정-國軍 지휘부의 自害 행위」제하의 기사와 관련, 장현필 감독의 반론문

月刊朝鮮 2001년 10월호에 게재된 「추적/麗順 14연대 반란 진압을 양민학살로 몰고간 영화 '애기섬' 제작에 軍 장비가 지원된 과정-國軍 지휘부의 自害 행위」제하의 기사와 관련, 위 영화를 만든 장현필씨가 아래와 같은 반론보도문을 보내왔습니다.

1. 月刊朝鮮은 위 기사에서 영화 '애기섬'에 대해 「함포사격으로 양민 천명을 죽였다고 조작한 영화」, 「국군 14연대에 침투한 공산주의자들이 반란을 일으켜 장교들을 사살하고 여수, 순천 일대를 일시 장악했던 여순 반란사건을 통일운동의 성격을 띤 것처럼, 그리고 국군의 진압작전을 양민 학살로 부각시킨 영화」, 

「공산주의자의 반란이란 성격은 희석되었고, 국군에 의한 진압은 양민학살로 과장돼 있었다. 총 93개의 신(scene·장면) 가운데 20여 개 장면에서 국군과 경찰에 의한 양민학살을 다루고 있으며, 반란군에 의한 국군과 민간인 학살은 일부 장면에 불과했다」, 「이 영화에는 역사적으로 확인되지 않은 사건이 고증을 거쳐 사실로 확인된 것처럼 묘사하는 장면이 일부 등장한다. 이는 역사의 왜곡이 아니라 역사의 조작이다」, 

「감독은 자라나는 중·고생들에게 이 영화를 보여주고 싶다고 했다. 역사적 사실에 기초하지 않는 이 왜곡된 영화를 감수성이 예민한 중·고생들에게 보여준다는 것은 수영을 배우지 못한 학생들을 물속에 밀어넣는 행위와 다름이 없을 것이다」라는 취지로 보도된 바 있습니다.

2. 그러나 위 영화는 본인이 감독하여 2000년 7월경부터 촬영을 시작하여 2001년 8월경 비로소 1차적인 촬영을 마친 상태로서 동시 녹음이 아니었으므로 후반 작업과정인 비디오 및 오디오 편집작업을 하고 있을 때 이 보도기사로 인하여 현재까지 편집작업이 중단되고 있으며, 위 기사를 쓴 우종창 기자는 아직까지도 위 극영화를 본 적이 없음에도 위와 같이 단정적인 언어를 사용하여 비판한 것은 창작자 고유의 권한을 무시하는 것이며 본인을 큰 곤경에 처하게 만들었습니다. 

3. 본인이 위 영화를 제작한 의도는 이념적 갈등이 목적이 아닌, 지역의 가슴 아픈 역사를 화해와 이해로 만들고 미래에 밝은 역사를 주고자 하는 것이었습니다. 위 극영화는 지역의 그 당시 실존인물들이 등장해 당사자간 만남을 통하여 화해를 묘사하고 있으며, 좌도 우도 아닌 어느 민초의 가정을 휴먼드라마로 구성하였습니다. 본인이 살고 있는 여수, 순천 사람들에게는 정말로 가슴 아픈 사건이므로 서로의 앙금을 해소하여 다음 세대에는 밝은 미래를 보여주고자 하였습니다.

4. 본인은 위 극영화를 제작할 당시, 「14연대에 침투한 남로당 군인들이 반란을 일으켰다」고 정확히 표현하였고, 우리가 알고 있는 여순 10·19사건에 대하여 기초적인 상식을 벗어나지 않는 정도로, 그리고 문화방송(MBC)에서 방송한 다큐멘터리 내용을 넘지 않았습니다. 

5. 위 극영화에서「여수시를 함포사격해 양민 천명을 죽였다」고 묘사한 것은 향토사학자 김계유씨가 쓴「내가 겪은 여순사건」과 전 호남신문 사진부장 이경모씨의 회고문을 근거로 하였고, 문화방송의「이제는 말할 수 있다」는 프로그램에서 "함포사격으로 그날 천여명이 죽었다"는 부분을 인용하여 기술하였습니다.

6. 月刊朝鮮은 여순 10·19사건이 여수, 순천 지역에서 어떤 의미를 갖는지 정확히 모르고 보도하는 바람에 지역의 명예를 다시 한번 실추시키고 말았습니다. 본인은 月刊朝鮮의 보도로 인해 모든 것이 멈춰진 상태로 지금이라도 '애기섬' 영화의 진실성을 이해하고 오해를 갖지 않기를 바랍니다. 창작자의 창작성을 인정해주시고 지역의 아픔도 알아주시면 이해가 가능하리라 믿습니다.

애기섬 감독 장현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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