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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순사건 영화' <애기섬>은 여수와 남해 사이에 있는 무인도의 이름을 따온 것으로, 이곳은 48년 보도연맹 사건 당시 민간인의 집단학살 장소였던 것으로 전해진다.

<애기섬>은 먼저 48년 여순사건 전후의 상황을 다큐멘터리 식으로 훑고 지나간다. 이어 좌도 우도 아닌 한 민초의 가정이 여순사건 과정에서 어떻게 파괴되어 가는가를 극으로 형상화한다.

극이 진행되는 중간중간, 여순사건 당시 반란군에 가담했던 곽상국 씨(14연대), 진압군 측에 있었던 박오선 씨(사찰계 외무주임)와 배학래 씨(특무대원)가 생존인물로 등장해, '여순사건 때 양민학살이 광범위하게 발생했다'고 증언한다.

그리고 종국에는 "반란군도 진압군도 피해자일 뿐 그들을 단죄할 자는 누구도 없다"며, 희생자들을 위한 위령제에 참가하고 서로서로 화해하는 것으로 끝을 맺는다.

한 독립영화 감독이 월간조선 기자와의 '순진한' 인터뷰 이후 뜻하지 않은 사상시비에 휘말렸다. 그는 지난해 3월부터 여순사건을 소재로 다큐멘터리 극영화 <애기섬>을 제작해 온 여수 독립프로덕션 「미디어 인」 장현필 감독이다.

그의 시각은 "여순사건 당시 반란군뿐 아니라 진압군에 의해서도 무고한 양민들이 학살됐다"는 전제에서 출발한다. 바로 이 점이 월간조선의 심기를 건드린 것으로 보인다. 월간조선은 10월호에서 영화 <애기섬>을 장장 22쪽에 걸쳐 난도질하고 있다.

월간조선의 사상시비

월간조선 10월호에서 우종창 기자는 "영화에서 '폭동'이라고 규정한 제주 4·3 사건을 항쟁이라 표현하고, 여순 14연대 '반란'사건도 그냥 여순사건이라 호칭했다"고 비아냥거렸다.

또 지난해 9월 2일 비전향 장기수로 북송됐던 김영만 씨를 출연시켜 그의 주장을 그대로 소개한 것에 충격을 받았다고 밝혔다. 사실 김 씨의 발언은 '6·15 공동선언 이후 원수지간 관계를 끊고 잘 지내자'는 취지의 이야기. 그러나 우 기자는 발언의 내용보다는 김 씨의 출연 자체가 못마땅했던 것.

또 우 기자는 흔히 TV에서 볼 수 있는 장면들을 "국군과 경찰에 대한 지나친 묘사"라고 주장했다.

우 기자가 '지나치다'고 우기는 장면은 △정부군이 지나갈 때 엄마가 아이 입을 막아 아이가 사망한 장면 △반란군 말을 쓰면 경찰에 끌려가 매맞아 죽는다고 엄마가 아이를 야단치는 장면 △좌우도 모르는 선량한 양민이 반란군으로 오해받고 숨어지내는 장면 △경찰이 반란군의 부인을 겁탈하는 장면들.

결국 우 기자는 <애기섬>을 "여순사건을 통일운동의 성격을 띤 것처럼, 그리고, 국군의 진압작전을 양민학살로 부각시킨 영화"라고 단정지어 버렸다.

영화도 안 보고 멋대로 해석

우 기자는 작품의 주요 장면들을 생생하게 묘사하면서 좌익 시비를 걸고 있기 때문에, 기사의 논조가 매우 설득력 있어 보인다. 그러나 정작 우 기자는 <애기섬>을 볼 수 있는 기회가 없었기 때문에, 시나리오만으로 작품의 분위기를 추측한 후 자신의 주장을 펼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우 기자의 기사에 따르면, 조성태 전 국방장관은 <애기섬>이 "제작되어선 안 될 영화로 판단했다"면서도, "볼 만한 가치가 없어서 시나리오는 보지 않았다"고 밝히고 있다. 이름을 밝히지 않은 반대운동단체 관계자도 "여순 반란을 진압했던 군인과 경찰이 무고한 양민을 학살한 것처럼 묘사되고 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애기섬>을 반대한다고 했지만, 정작 시나리오는 보지 못했다고 답하고 있다.

이에 대해 장 감독은 "월간조선은 앞뒤 맥락을 다 자른 후, 몇 분에 해당하는 시나리오의 내용만으로 83분의 작품을 대표하고 있다"며, 월간조선의 왜곡보도를 강하게 비판했다. 이어 "어떻게 작품도 한 번 보지 않고 마음대로 해석해 버릴 수 있는가"라며, "좌우를 떠나 사실을 그대로 전달했다는 데에는 자신감이 있다"고 강조했다.

월간조선에 한나라당 부화뇌동

월간조선 10월호가 18일 전국적으로 배포된 후, 장 감독을 더욱 당혹스럽게 만들었던 것은 바로 한나라당의 발빠른 대응이었다.

18일 한나라당 권철현 대변인은 "이러다가는 각종 반란사건을 진압한 군인들은 양민학살자로, 반란사건을 일으킨 자들은 국가유공자로 판정받는 세상이 오는 것 아닌가?"라고 호들갑을 떨며, <애기섬>에 대한 월간조선의 논조를 그대로 받아들였다.

이에 대해 장 감독은 "어떠한 근거로 제작이 완료되지도 않은 작품을 논평할 수 있는지 궁금하다"고 지적하고, "지역민의 순수한 정서를 대변한 영화를 정치적으로 활용해 한 개인을 흠집내기 위한 수단으로 이용하지 말라"며 심한 불쾌감을 표시했다.

영화진흥위원회 김혜준 정책연구실장은 "이번 사건은 등급을 매기고 직접 검열하는 문제는 아니지만, 광범하게 표현의 자유를 제약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며, "한번 사상시비에 휘말리면 이후 그와 비슷한 시도는 아예 불가능해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여순사건 이후 53년이 지난 올해가 돼서야, 여순지역의 희생자들이 유족회를 결성할 수 있었다. 장 감독이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은 "여순사건 때 진압군이 우리 부모님을 죽였다"는 말을 감히 언급하지 못했던 이들의 한맺힌 53년이 아닐까? 그래서 그런지 장 감독이 밝히는 작품의 제작취지는 간단했다. 그저 더 많은 사람들이 "여순사건에 대해 관심"을 갖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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