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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마이뉴스 권우성

1월 9일 저녁 MBC <100분 토론>의 100회 방영을 기념하는 조촐한 자리가 여의도에서 있었다.

"촌놈 데려다가 물건 만드느라 고생 많으셨습니다."

11일 밤 방송을 끝으로 야인으로 돌아가는 진행자 유시민(43)씨는 100회 기념 자리에서 그렇게 제작진에게 고별 인사를 했다. 유 씨는 스스로를 촌놈이라 칭하며 고생한 제작진에게 고마움을 전했고, 유 씨를 캐스팅했던 전 <100분토론> 팀장 최용익 부장은 "고생시킨 걸 알긴 아네"라며 응수했다.

벌써 1년 6개월이 지났다. 30회부터 100회까지 MBC<100분 토론>70%가 유시민을 통해 시청자들에게 전달됐다. 그동안 <100분 토론>은 교수-고위 공직자들이 나와서 하품 나오게 만드는 게 토론프로그램이라는 고정관념을 깨줬고, 시청자들을 목요일 10시 55분 TV앞에 끌어 모아 눈을 반짝이게 만들었다. 이런 <100분 토론>의 색깔을 만드는데 유시민 씨는 어쨌든 중요한 공을 세웠다.

MBC <100분 토론>진행자에서 본업인 시사평론가로 옷을 바꿔 입는 유시민 씨를 '마지막 방송'(11일 밤)을 앞둔 9일 오마이뉴스 사무실에서 만났다. "그동안 하고 싶은 말을 못해 밤잠도 못자고 암에 걸릴 정도였다"고 말한 그는 <100분토론>과 MBC에 대해 강도높은 발언을 쏟아내면서 "마지막 방송은 내 마음대로 해보고 싶다"고 했다.

유시민 씨는 "2002년은 사람들이 정치적으로 민감해 지는 시기이며 모든 이슈가 선거와 연결된다"면서 "그런 의미에서 내 칼라는 맞지 않다고 판단해 지난 가을 개편 때부터 그만두겠다는 의사를 밝혔다"고 말했다.

"토론장 나오지 않는 비겁한 지식인 많아" / 조지혜 기자

"일방적인 방송시간 변경 이해할 수 없어" / 조지혜 기자


유 씨는 <100분 토론>의 성과에 대해 "<100분 토론>이 생기면서 KBS <심야토론>과 SBS <토론공방> 등이 상당부분 우리 프로그램을 벤치마킹 했다"면서 "전체적으로 방송3사에 토론 프로그램 비중이 생기면서 활발한 토론이 이루어졌고 의제설정에서 터부를 깰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유 씨는 "최근에는 <100분 토론>이 '출렁이는 배' 같다는 이야기가 있다"는 질문을 받자 강도높은 톤으로 목요일 밤에서 금요일 늦은 밤으로 프로그램 편성 시간이 변경된 것을 비판했다.

유 씨는 "금요일 밤늦은 시간에 편성이 변경되고, 그나마 편성 쪽의 자의에 의해 방송당일이 돼서야 몇 시에 들어가는지를 알 수 있는 상황에서 제작진이 느끼는 비애, 좌절감, 울분을 과연 (MBC 상층부가) 아는지 모르겠다"면서 "KBS나 심지어 상업방송인 SBS도 토론방송을 우대하고 있는 상황인데 (요일, 시간대 변경은) 명색이 공영방송을 표방하는 MBC의 정체성을 의심해봐도 좋은 사안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유 씨는 "김중배 사장님이 왜 이런 편성변경을 승인해줬는지 그것도 아직 미스테리"라면서 "(다음 사회자인) 손석희 아나운서가 많은 노력을 하겠지만 이런 환경이 계속되면 <100분토론>이 시청자들 마음 속에 닻을 내리기는 굉장히 힘들어진다"고 말했다.


"촌놈 데려다 고생하셨습니다."

-왜 그만뒀는지 궁금해하는 사람이 많다. 작년 가을개편 때부터 사의를 표명했다고 들었는데.

ⓒ 오마이뉴스 권우성
"그만둘 때가 됐다고 생각했다. 이유는 두 가지다. 하나는 개인적인 것이고, 하나는 상황 변화다. 내 본업은 시사평론이다. 1년 6개월 동안 방송토론진행자가 특정사안에 대해 견해를 밝히면 토론섭외나 프로그램 중립성에 논란이 일어날 수 있기 때문에 활동을 하지 않았다. 그러면서 답답했고, 왜 나는 말도 못하고 살아야 하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두 번째는 방송시사토론을 둘러싼 환경변화다. 방송토론은 새로운 이슈 발굴을 통해 사회적 의제를 설정하는 역할이 중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돌파력 있고, 과감한 토론진행자가 필요했고, 내가 거기에 어느 정도 부합하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2002년은 다르다. 사람들이 정치적으로 민감해 지는 시기다. 모든 이슈가 선거와 연결되기 때문에 방송토론이 이슈의 경중을 가려 걸러내는 역할을 해야한다. 그런 의미에서 내 칼라는 맞지 않다고 판단해 지난 가을 개편 때 그만두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밖에서 보기에는 갑작스러울 수도 있겠지만 내부적으로는 오랫동안 논의됐고 준비된 교체다."

-1년 6개월 동안 진행한 <100분 토론>을 그만두는 소감이 남다를 것 같다.

"개인적으로 새로운 경험이었다. 이런저런 주제 다루면서 공부도 많이 했고. 나름대로 행복했던 1년 6개월이었다. 방송 경험 없는 사람 데려다 일 시키느라 스태프들 작업량이 전문방송인 보다 많았다. 그걸 꾹 참고 함께 해준 제작진들에게 고맙고, 미안했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한편으로 아쉬움도 있지만 말할 수 있게 돼서 해방감도 느껴진다."

-<100분 토론>은 각본 없이 진행하는 생방송이다. 가장 난처했던 적은 언제였나.

ⓒ 오마이뉴스 권우성
"얼마 전 공적자금 토론을 하는데 어떤 국회의원은 논거 없이 '여하튼 공적자금 엉망으로 집행한 겁니다' 한마디하고 입을 닫아버렸다. 1분 30초를 써야 하는데 10초 이야기하고 끝이었다. 패널끼리 잘 어루어져야 하는데 이렇게 한마디로 끝내버리거나 했던 말 계속 반복하면 참 난처하다. 작년에 이철승 씨가 나왔을 때 5분 이상 발언하는 것 제지 못했다가 나쁜 방송으로 선정된 적이 있었다. 그 때는 정말 식은 땀이 저절로 흘러내리더라."

-중립적이지 않다는 비판이 많았다. 이런 지적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구체적으로 어떻게 편파적이었나를 제시해 줬으면 좋겠다. <조선일보>는 100인 모임에 가입했다는 거짓 사실과 내가 한 말을 거꾸로 해석해 사설을 통해 나를 비판했다. 과연 내가 방송을 진행하면서 스튜디오 안에서 편파적인 적이 있어나 묻고 싶다. 지금까지 리버럴한 진행자가 없기 때문에 사람들은 보수적인 진행자에게 익숙하다. 거기서 오는 낯가림이었다고 생각한다. 지지하는 패널이 손해봤다고 느낄 때 그 분풀이를 진행자에게 하는 경우가 있다. 대부분 보수쪽이 그랬는데 반대의 에피소드도 있다.

내가 굉장히 아끼는 몽블랑 만년필이 있다. 비정규직 관련 토론하는 날 다른 때처럼 그 만년필로 메모를 하면서 진행했다. 그런데 다음 날 홈페이지에 '몽블랑 만년필 얼마짜리냐, 그런 것 쓰는 사람이 어떻게 노동자의 애환을 알겠느냐'는 글이 올라와 다음부터는 100원짜리 볼펜을 쓴다. 한총련 토론 때도 엄청난 항의를 받았다. 당시 패널로 나온 전직 한총련 의장에게 상당히 공격적인 질문을 했다. 왜냐하면 그 질문을 통해 효과적으로 한총련의 주장을 대중들에게 알려줬으면 좋겠다는 의도였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시종일관 운동권 사투리만 썼다. 이런 경우를 보면서 편파성 시비는 굉장히 주관적이라고 확신했다."

몽블랑 만년필과 한총련

-2001년은 '언론개혁'이 화두였다. 언론탄압이라는 의견도 있었는데, 민감한 주제를 다루느라 힘들지 않았나.

"당시 2001년에 무엇이 가장 중요한 내셔널 아젠다가 돼야하고, 될 것인가를 제작팀과 밀도있게 토론했다. 그 결과물이 언론개혁이었다. 그래서 2001년 첫회 토론부터 그 주제로 밀어붙였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방송하는 날 대통령 신년사에서 언론개혁이 나왔던 거다. 우리PD는 '청와대가 남의 잔칫상에 재뿌린다'는 말까지 했다. 아니나 다를까 홍위병론이 나오고, 대통령 연두기자회견 한 날 모방송사에서는 언론개혁 토론을 했다고 떠들어댔다. 그러면 우리가 청와대하고 일주일전에 짰다는 말인데 앞뒤가 맞지 않는다. 어쨌든 중요하다고 생각해서 몇차례 다뤘고, 그 판단은 옳았다고 본다. 결국 언론개혁이 국민적인 관심사로 등장했고, 이제 어떤 정치세력도 언론개혁에 대한 의지를 깔아뭉갤 수 없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작년 4월 <조선일보> 사설 '토론의 기본 안 지키는 TV사회자' 때문에 소송까지 진행했고, 승소했는데.

"재판장이 강제로 조정하고 양쪽이 받아들이는 선에서 마무리했다. 정정 보도문은 우리가 요구한 수준에서 나왔고, 개인적으로 위자료 1000만원을 지급 받았다. <조선일보>사설은 정말 황당했다. 확인해서 사실이 아니면 전화를 해서 해명이라도 해야 하는데 엉터리 사설 내고 사과 한마디 없었다. <조선일보>의 오만함이 부른 작은 에피소드였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100분 토론>은 토론 프로그램을 한단계 끌어올렸다는 평가를 받는다. <100토론> 성과가 뭐라고 생각하나.

"100회를 하면서 지금은 약간 흔들리고 있지만 어쨌든 <100분 토론>이 생기면서 KBS <심야토론>과 SBS <토론공방>등이 상당부분 우리 프로그램을 벤치마킹 했다. 전체적으로 방송3사에 토론 프로그램이 비중이 생기면서 활발한 토론이 이루어졌고 의제설정에서 터부를 깰 수 있었다. <100분 토론>성공이 주제나 진행 방식, 패널 선정 면에서 토론 프로그램의 수준향상을 이뤄냈다. 그러나 <100분 토론>을 자체로 보자면 다른 방송사가 장점을 흡수해 가니까 상대적 비교우위가 사라졌다. 한 단계 도약을 해야 하는데 내외적인 환경악화 때문에 <100분 토론>이 그걸 못하고 있다."

-<100분 토론>이 '출렁이는 배' 같다는 이야기가 있다. 목요일에서 금요일로 변경되면서 시간이 뒤로 밀려났다. 앞에서 말한 내외적인 환경악화와 관계가 있나.

"작년 가을 개편부터 금요일로 편성되면서 10회 정도를 했다. 그러면서 최근 두 달 동안 일반인들 관심영역 밖으로 실종됐다. 없어진 줄 아는 사람들도 많다. 99년 10월에 방송이 시작되고 2년 동안 목요일 밤10시 55분에 방송됐다. 그러다가 금요일 밤11시 35분으로 옮겨졌다. 거기다 앞 시간에는 <미디어 비평>이라는 또 다른 공영프로그램을 배치했다.

왜 이런 결정이 내려졌는지 모르겠다. <100토론>이 뭔가 크게 잘못해서 징계를 당한 것인지, 방송사에서 앞으로 토론 프로그램 비중이 없을 거라고 생각해서 합당한 위치에 갖다놓은 것인지 아무도 여기에 대해 설명해 주지 않았다. 2002년은 선거의 해이기 때문에 토론 기능은 더 중요하다는 점을 회사에 충분히 설명했고, 옮기는 것을 막아 보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허사였다. 여기다 금요일로 옮기면서 정시인 11시 35분에 한번도 방송한 적이 없다. 가장 일찍 시작한 게 밤 11시 38분이었다. 심지어는 자정이 넘어 밤 12시 09분에 시작한 적도 있다. 매번 들쭉날쭉이다.

이러면 <100분 토론>은 정말 닻이 없는 배가 될 수밖에 없다. 늘 그 자리가 있어야 사람들이 찾게되는데 오늘은 이 만큼 떠내려가 있고, 내일은 저 만큼 올라와 있고, 그 배를 타러오는 사람도 배가 있는지 없는지 모른다. 이러니 시청률 떨어지고, 의제 설정자로 가지는 사회적 파괴력도 없어지고, 사람들 기억에서 사라지게 되는 거다.

금요일 밤늦은 시간에 편성이 변경되고, 그나마 편성 쪽의 자의에 의해 방송당일이 돼서야 몇 시에 들어가는지를 알 수 있는 상황에서 제작진이 느끼는 비애, 좌절감, 울분을 과연 아는지 모르겠다.

KBS나 심지어 상업방송인 SBS도 토론방송을 우대하고 있는 상황이다. 명색이 공영방송을 표방하는 MBC의 정체성을 의심해봐도 좋은 사안이라고 생각한다. 김중배 사장님이 왜 이런 편성변경을 승인해줬는지 그것도 아직 미스테리다. 손석희 아나운서가 많은 노력을 하겠지만 이런 환경이 계속되면 <100분토론>이 시청자들 마음 속에 닻을 내리기는 굉장히 힘들어진다."

닻이 없는 배 <100분 토론>

ⓒ 오마이뉴스 권우성
"-다음 진행자로 10명 정도가 물망이 올랐다고 들었다. 손석희 아나운서로 결정되는데 특별히 의견을 개진했나.

"내가 개입할 문제가 아니었다. 제작진에서 여러 가지 건의를 하고 검토한 끝에 결정한 사항으로 알고 있다."

-전임자로서 이렇게 해줬으면 좋겠다는 주문사항이 있나.

"손석희 아나운서는 방송에 있어서 베테랑이기 때문에 이렇게 해달라고 말할 게 별로 없다. 라디오 시사프로를 진행하고 있기 때문에 지식폭도 넓고 방송 기술적으로 탁월하다고 생각한다. 자신의 장기를 살렸으면 좋겠다는 바람 정도는 있다. 이해관계에 부딪치는 국면에 와 있기 때문에 많은 이슈가 정치적으로 해석될 수밖에 없다. 굉장한 부담이면서 동시에 기회이기도 하다. 손석희 아나운서는 나와는 달리 선입견으로부터 자유롭기 때문에 폭넓게 패널을 아우르면서 잘 진행하리라고 본다. 자기 중심을 확실히 지키면서 장점을 잘 살려나간다면 <100분 토론>이 한 단계 업그레이드 가능하다고 기대한다."

-97년 <대선 게임의 법칙>이란 책을 통해 DJ가 대통령이 어렵다고 예측한 적이 있었다. 2002년 대선을 맞아 이회창 대세론과 이인제 대세론이 나오고 있는데 현실 가능성이 있다고 보나.

그 당시 김대중 후보의 출마는 승률이 극히 낮은 도박이라고 했고, 대통령 당선은 낙타가 바늘귀를 통과하는 것만큼 어렵다고 예상했다. 물론 확률 1%게임도 해볼 수는 있다. 첫판에 대박이 터질 수 있으니까. 김대통령이 한 게임은 승률이 낮은 게임이었는데 이긴 경우다. 책이 나온 게 97년 2월이었는데 당시는 이인제 씨 탈당도 없었고, 이회창 씨 아들 병역문제도 없었고, IMF도 없었다.

앞으로 변수는 많다. 그런 맥락에서 보자면 창 대세론은 의미가 없다. 왜냐하면 누가 후보로 나올지 아직 모르기 때문이다. 이인제 대세론도 마찬가지다. 민주당은 예선에서 본선까지 게임 룰이 바꿔 전혀 예측 불가능한 상황이다. 결론적으로 현재 대세론이라는 게 별만 무게를 부여할 필요가 없는 이야기들이라고 생각한다."

-정치를 하고 싶은 생각은 없나.

"정치하기에는 애국심이 모자란다. 사실 난 정치인을 도매급으로 모두 도독 놈이라고 표현하는 것을 보면 화가 난다. 예전에 잠깐 국회의원 보좌관 하면서 느낀 건데 정치인은 그 일을 하면서 행복을 느끼는 사람이어야 한다. 나는 개인적으로 정치를 하면서 행복해지기 어렵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정치는 내게 맞지 않는다. 정치인으로 행복해질 수 있는 사람으로 밀어주고 칭찬해주는 일을 하면 족하다."

-앞으로 어떤 일을 하고 싶은가.

ⓒ 오마이뉴스 권우성
"나도 말 좀 하고 살고 싶다. 어떤 때는 방송 끝나고 오면 울화통이 터져서 잠이 안 올 때가 있다. 아침까지 잠을 못 이루면서 이러다 암 걸리겠다 심더라. 춥고 배고프고, 바람 부는 거리에 나가더라도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해야 겠다는 생각을 했다. 프리렌서로 살겠다. 우선은 인터넷신문 <프레시안>에 칼럼을 연재해볼 생각이다. 기회가 되면 <오마이뉴스>에도 글을 쓸 생각이다.

정치의 해니까 정치이야기 안 할 수는 없겠지만 줄서기는 사양하겠다. 다만 노선과 정책에 관련해서 옳다고 생각하는 쪽은 옳다고 하고, 틀리다고 생각하면 틀리다고 말할 작정이다. 두리뭉실하게 양비론, 혹은 양시론으로 정치권에 대해 이야기하지는 않겠다. 도적질하지 말자고 말하면 반대할 사람 없다. 그러나 누가 도적질했고, 누가 도둑놈을 잡았다고 말하면 줄섰다고 한다. 보수,진보 모두 일관성 없이 상충된 정책을 폈다면 비판할 것이다.

무엇보다 헌법의 정신에 충실하고 싶다. 기본적으로 헌법의 정신에 충실한 것이 이 시대의 진보이고 양식 있는 보수라고 생각한다. 아직도 이 사회에는 헌법적 기본질서를 공공연하게 부정하는 세력들이 상존하고 있다. 헌법적 가치를 짓밟는 행태에 대해 가차없이 비판할 것이다. 그런 원칙에 입각해 시사적인 현안에 발언할 생각이다."

취재후기

유시민 씨는 인터뷰를 하면서 몇 번이나 보수주의자인 양동안 교수, 지만원 박사, 김용갑 의원 칭찬을 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시세의 유불리를 따지지 않고 자신의 소신을 피력하는 거 굉장한 미덕이거든요. 우리 지식인 사회는 토론과 관련해서 보면 아주 비겁하죠. 일방적인 프린트 매체에는 온갖 이야기 다 해놓고 책임 있는 자리에 나와서 토론하라고 하면 그냥 무시하잖아요."

그는 박정희 기념관 이야기를 할 때 정말 울화통을 터뜨렸다. 국고 200억을 지원을 받으면서, 그리고 서울시에서 무상으로 땅을 지원 받겠다면서 아무도 토론회에 나오지 않았던 사람들. 장장 50명을 섭외했는데도 대답은 모두 똑같았다.

유시민 씨는 호오(好惡)가 아주 분명한 사람이다. 아닌 것에 대해서는 절대 참지 못하는 성미다. 어쩌면 토론 진행자보다 어떤 입장에 서서 토론 패널로 참석하는 게 더 적합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이제 그는 완전히 백수다. 국제민주연대가 만드는 격월간지<사람이 사람에게> 편집위원장과 가족구성원으로 책임 이외에는 앞으로 별다른 역할을 맡지 않을 생각이다. 올해는 그래서 성공회대 강의도 쉴 참이다. 대신 그 동안 말못하고 꾹 참았던 것을 마음껏 풀어낼 작정이다.

우리 사회에 여전히 산재해 있는 위선과 비겁함을 향해 쏟아낼 그의 독설을 많은 사람들은 관심어린 눈으로 지켜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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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시민은 기자다'라는 오마이뉴스 정신을 신뢰합니다. 2000년 3월, 오마이뉴스에 입사해 취재부와 편집부에서 일했습니다. 2022년 4월부터 뉴스본부장을 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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