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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마이뉴스 권우성
칼럼니스트가 (정치적으로) 꼭 중립을 지켜야 하는가? 시사평론가 유시민씨의 대답은 '노(No)'다. 유씨는 최근 칼럼니스트로서 본인의 정치적 정체성을 명확히 하는 '커밍아웃'을 선언하며 이같은 입장을 분명히 해 잔잔한 파문이 일고 있다.

유씨는 지난 6월 4일 인터넷신문 <프레시안>에 매주 고정 연재했던 '유시민의 시사카페'를 마무리하면서 '칼럼니스트의 정치적 중립성 문제'를 주제로 선택했다.

그는 칼럼니스트로서 정치적 중립을 지키지 않는다는 네티즌 독자의 비난을 받으며 '칼럼니스트는 반드시 정치적 중립을 지켜야 하는가?' '정치적 중립을 지키지 않는 칼럼니스트는 이유여하를 불문하고 비난받아야 하는가?'라는 무거운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진다고 말문을 열었다.

유씨는 자문자답을 통해 "나는 정치적으로 중립이 아니며, 칼럼니스트가 반드시 정치적 중립을 지킬 필요는 없다"고 잘라 말했다. 그는 또한 "정치적 중립은 이론적으로 존재하지 않을 뿐더러 정치적으로 중립적인 칼럼니스트도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다"며 "중요한 것은 정치적으로 중립이냐 여부가 아니라 어떤 칼럼니스트가 왜 정치적으로 중립적이지 않은 태도를 형성하고 표명하게 되었느냐는 문제"라고 밝혔다.

그는 "신문에 시사칼럼을 쓰는 그 어떤 언론인, 대학교수, 지식인도 중립을 지키지 않는데도 마치 중립인 것처럼 위장하고 있을 뿐"이라며 "그들이 쓰는 칼럼은 극히 드문 예외를 제외하면 모두 이회창에게 우호적이고 노무현에게 적대적이라고 생각한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시사 칼럼니스트도 칼럼니스트이기 이전에 한 사람의 유권자로서 특정 정당과 정치인데 대한 호불호(好不好)를 갖고 있으며, 그들로 투표장에서 결국 누군가를 선택한다는 것이다.

'칼럼니스트의 정치적 중립은 허구'라고 주장하는 유시민씨의 생각은 다음과 같은 논리를 기반으로 한다.

"'정치적 중립'이 가능하다고 가정하더라도 칼럼니스트가 반드시 정치적으로 중립적이어야 할 필요는 없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대통령선거는 집단적 의사결정입니다. 서로 다른 철학과 이해관계와 소망을 가진 수천만 명의 유권자들이 역시 서로 다른 철학과 노선과 정책과 개성을 가진 후보들 가운데 누군가를 선택하고, 그 모든 상이한 선택을 종합함으로써 5년간 대통령직을 수행할 사람을 하나 정하게 됩니다.

칼럼니스트들은 저마다의 기준에 따라 후보들을 비교하고 분류하고 비판하고 칭찬합니다. 이 칼럼들이 전하는 정치정보와 논리와 해석을 참고해서 유권자들은 자기의 판단을 형성하거나 변경하거나 굳힙니다. 같은 정치적 사안에 대해서 칼럼니스트들은 다른 목소리를 냅니다. 어떤 것이 중요한 정치정보인지, 이 정보를 어떻게 해석해야 할 것인지, 누가 대통령이 되는 것이 더 좋은지, 각자가 나름의 판단기준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칼럼니스트 개개인만이 아니라 신문사나 방송사도 마찬가지입니다. 언론사 사주나 경영진, 간부와 일선기자들 역시 나름의 주관적 기준에 입각해서 정보를 취사선택하고 해석합니다. 언론사들이 각자 이렇게 하면서 유권자의 의사 형성에 영향을 미치는 것입니다. '정치적 중립'을 객관적으로 정의(定議)할 수 있고, 또 모든 언론인과 언론사가 똑같은 기준에 입각한 정치적 중립을 지킨다고 가정한다면, 우리는 모든 신문과 방송에서 똑같은 정치보도를 만나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바람직한 상황일까요? 저는 그렇게 보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정치적 중립성'이 아닙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칼럼니스트 개인은 정치적으로 중립일 수도 없고 그럴 필요도 없습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상이한 시각과 논리 사이의 자유롭고 공정한 경쟁입니다. 문제는 어떤 칼럼니스트가 정치적으로 중립인지 여부가 아니라, 왜 '정치적으로 중립적이지 않은 견해'를 가지게 되었는지, 그리고 그가 정당한 방법으로 자기의 정치적 견해를 뒷받침하는지 여부입니다."


유시민씨는 7일 <오마이뉴스>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내 주장에 대한 다른 칼럼니스트들의 견해는 어떤지 공개적인 토론이 펼쳐졌으면 좋겠다"고 개인적인 견해를 밝혔다. 그는 '칼럼니스트의 정치적 중립성'에 대한 논쟁이 수면 위에서 치열하게 전개됐으면 하는 바람을 토로했다.

▲ 지난 2월 25일 <오마이뉴스>에서 주최한 민주당 대선주자 초청 열린인터뷰에서 사회를 맡은 유시민씨(오른쪽). ⓒ 오마이뉴스 권우성

다음은 유시민씨와의 일문일답이다.

- '칼럼니스트의 정치적 중립성'에 대한 이번 칼럼을 '정치적 정체성에 대한 커밍아웃'으로 봐도 무방한가.
"나는 이전부터 정치적 색채를 분명히 하는 글을 써왔다. 굳이 이번에 '커밍아웃'을 한 것은 아니라고 본다. 나의 정치적 편향성은 안티 이회창, 안티 한나라라고 할 수 있다. 여러 매체를 통해 이런 얘기를 밝혔다. 2000년 총선을 앞두고 <인물과 사상>에 '나의 세 가지 투표 원칙'이란 글에도 그런 문제의식이 담겨져 있다."

- 공개 칼럼을 통한 '정치적 커밍아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인데, 이같은 주제로 글을 쓰게 된 동기는 무엇인가.
"내 칼럼을 고정 연재하는 <프레시안>이나 <경향신문> 게시판에 내 글에 대한 독자의견을 보면 내 견해에 대한 논리적 타당성이나 진실성을 문제삼기보다는 이유여하를 막론하고 특정 정치집단이나 정치인을 편드는 게 문제라는 지적이 많다. 물론 친(親)이회창, 친(親)한나라당 성향의 글을 쓰는 사람도 비슷한 공격을 받는다.

칼럼니스트의 칼럼이 어느 정치인에 유·불리할 때 그 칼럼이나 칼럼니스트를 어떻게 정치적으로 평가해야 하는가에 대한 기준이 없다. 칼럼니스트에게 원천적인 정치적 중립성을 요구할 수도 없고, 요구해서도 안된다. 결코 충족되지 않는 문제제기다. 어떤 칼럼에 대해 비판할 때는 사실적 근거, 논리적 정합성을 문제 삼아야 한다. 어느 정치집단이나 정치인에게 유리하건 불리하건 간에.

또 다른 이유는, 우리 사회는 중용을 미덕으로 삼는 고정관념이 강하다. 그게 하나의 이데올로기로 자리잡고 있다. 그걸 지키는 게 도덕적 우월하다는 고정관념이 있다. 그러나 칼럼니스트가 그 가치(중용·중립)를 지키려 한다면 모든 언론이 획일적인 단색으로 간다. 국민들의 (정치에 대한) 상이한 견해가 있듯이 칼럼니스트도 마찬가지다. 모든 견해를 노출시키고 독자들이 그에 대해 평가하는 쌍방향성이 필요하다. 피차 의견이란 건 (칼럼니스트건 국민들이건 간에) 그런 과정을 통해 수정 보완되는 것 아니냐. (정치적 중립에 대한 요구는) 민주공화국하고는 어울리지 않는다."

- 이번 칼럼에서, 정치적 중립성을 중요한 가치로 삼으며 신문에 기고하는 칼럼니스트들을 '자신과 독자를 속이는 위선자'로 몰아붙였는데.
"자신은 정치적 중립인 양 명시적으로 하면서 칼럼을 쓰는 건 사기다. 중립을 과시해야 하는 것 같은 강박관념은 결국 양비론으로 흐를 수밖에 없다. 정치권을 모두 매도해 가치판단을 흐리게 하고 냉소주의를 부추긴다. 담론의 영역에서도 상당 정도 무책임을 조장하게 된다. 칼럼니스트 개인이 사기를 치다보면 독자들이 어떻게 올바른 가치판단을 할 수 있겠는가. 내 주장은 명확하다. 판단은 독자에게 맡기고, 칼럼니스트는 자기 주장을 분명히 하자는 것이다."

- 정치적 중립을 위장한 글의 폐단처럼, 정치적 색채를 분명히 하는 칼럼의 폐단은 없는가.
"폐단이 없다고 본다. 어차피 민주적인 담론의 질서라는 것은 상이한 견해가 다 노출된 상태를 전제로 한다. 정치적 문제에 대해 어느 쪽이 선험적으로 옳다, 그르다라고 할 수 없다. 정치 행위에 대해서는 국민적인 판단이 뒤따르지 않는가. 시사칼럼은 독자들이 (자신의 정치적인) 견해를 형성하면서 참고가 되는 자료가 돼야 한다.

그런 면에서 (정치적 색채를 분명히 하는 것은) 바람직하다. 얼마 전 김대중 <조선일보> 편집인이 국제언론협회(IPI) 연설에서 한 '이현락 <동아일보> 편집인이 정부의 압력으로 사임했다'는 식의 발언도 정치적 편향성이 아니라 진실이냐, 아니냐의 문제로 따져봐야 한다. 김 편집인이 '지금의 언론탄압이 과거보다 교묘하다'고 해석할 수는 있다. 문제는 그 해석이 어떤 확인된 사실에 근거한 것인가, 아니면 사실을 왜곡하고 있는가라는 것이다. 그걸 심층적으로 따지는 게 옳다."

- 결국 '언론사의 특정 후보지지'와 같은 맥락의 주장으로 보여지는데.
"지금까지는 언론들이 은밀하게 비공식적으로 특정 후보, 특정 정치세력을 지지해왔다. 그렇다면 오히려 공공연하고 공식적으로 견해를 밝히는 게 바람직하지 않겠는가."

- 칼럼에 대한 독자들의 반응은 어떤가.
"게시판에 내 칼럼과 관련한 글이 올라오고 있다. 차분하고 깊이 있는 내용의 찬반론이 나오고 있다. 지금은 논쟁중이라 그렇지만, 적절한 시기에 이와 같은 독자들의 반응에 대한 글을 쓸 계획이다. 내 주장에 대해 다른 칼럼니스트의 의견도 듣고 싶다."

- MBC '100분토론'을 진행할 때에도 '정치적 중립성'을 지키지 않는다는 지적을 받은 적이 있는데.
"(MBC 100분토론은) 진행자로서 그런 것이니 문제가 다르다. 스튜디오 밖에서 한 발언이 스튜디오 안에서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사회자로서 편파성 시비에 휘말릴 수 있다고 해서 밖에서 이야기하는 것도 자제했다. 이번 칼럼니스트로서의 입장은 그것과 다르다. TV토론으로 보자면 사회자가 아닌 패널의 입장인 셈이다. 그렇다면 패널이 양비양시론이 아닌 분명한 자신의 색채와 의견을 밝히는 게 바람직한 것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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