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마와의 토크쇼> 영화 포스터

▲ <악마와의 토크쇼> 영화 포스터 ⓒ 찬란, (주)에이유앤씨

 
1977년 핼러윈 전날 밤. 생방송으로 진행하는 심야 토크쇼 <올빼미 쇼>의 MC인 잭 델로이(데이비드 다스트말치안 분)는 방송국과 계약 만료를 앞두고 경쟁사의 심야 토크쇼인 <투나잇 쇼>보다 시청률에서 앞서기 위해 핼러윈 스페셜 '악마와의 토크쇼'를 준비한다. 

기적의 사나이라 불리는 영매 크리스투(페이샬 바찌 분), 초자연 현상의 실체를 밝히는 마술사 출신의 카마이클(이안 블리스 분), <악마와의 대화>를 저술한 초심리학 박사 준(로라 고든 분), 사탄 숭배 집단의 생존자로 자기 몸에 악마가 있다고 주장하는 릴리(잉그리트 토렐리 분)를 초대한 핼러윈 특집 방송은 계획대로 시청자들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그러나 잭이 시청률을 더욱 올릴 욕심에 악마를 소환하는 의식을 요구하면서 생방송은 걷잡을 수 없는 파국으로 치닫는다.

발견된(found) 영상(footage)을 의미하는 '파운드 푸티지' 장르는 실제 기록이 담긴 영상을 누군가 발견해 다른 사람이 본다는 설정으로 현재는 호러 영화의 하위 장르로 친숙하다. <카니발 홀로코스트>(1980), < 84 찰리 모픽 >(1989), <블레어 위치>(1999), < REC >(2007), <클로버 필드>(2008), <파라노말 액티비티>(2010), <서치>(2018) 등이 파운드 푸티지 장르의 대표적인 작품이다.

미국을 충격에 빠트린 사상 최악의 생방송 사고 영상을 47년 만에 공개한다는 설정의 <악마와의 토크쇼>도 파운드 푸티지 장르에 속한다. 영화는 미국에서 심야 토크쇼가 전성기를 구가하던 1970년대를 배경으로 삼았다. 연출과 각본을 맡은 캐머런 케언즈, 클린 케언즈 형제 감독은 어릴 적 즐겨보던 1970년대 유명 토크쇼인 <돈 레인 쇼>에 초능력자를 자처한 유리 겔라와 영성가 도리스 스톡스가 출연했다가 생방송 중 도리스가 뛰쳐나간 일화에서 모티브를 얻었다고 말한다.

"10대에 접했던 심야 토크쇼는 이상한 어른들의 세계로 들어가는 창과 같았다. 여기에 초자연적인 현상을 통해 독특한 무서움을 만들고 싶었다."
 
<악마와의 토크쇼> 영화의 한 장면

▲ <악마와의 토크쇼> 영화의 한 장면 ⓒ 찬란, (주)에이유앤씨

 
<악마와의 토크쇼>의 생방송 형식은 1992년 BBC에서 방송한 핼러윈 스페셜 <고스트 워치>와 닮았다. 허구를 사실인 양 보이게끔 제작한 장르를 일컫는 '페이크 다큐멘터리(모큐멘터리)' 형식을 통해 평범한 가정집에 일어나는 심령 현상을 보여준 <고스트 워치>는 방영 후 영국에서 엄청난 파문을 일으켰다. 흥미롭게도 캐머런 케언즈, 클린 케언즈 형제 감독은 대본을 쓸 때까지 <고스트 워치>를 몰랐다고 한다. 뒤늦게 <고스트 워치>를 본 두 감독은 "멋진 영화"라고 평가하며 "<악마와의 토크쇼>로 인해 <고스트 워치>가 재발견되었으면 좋겠다"는 의견을 밝혔다.

<악마와의 토크쇼>는 파운드 푸티지 장르의 규칙을 엄격하게 따르진 않는다. <고스트 워치>가 철저히 생방송 영상만을 보여주었던 것과 달리 <악마와의 토크쇼>는 생방송에 해당하는 심야 토크쇼 영상(컬러)뿐만 아니라 극 중 광고 시간엔 세트 뒤편에서 잭이 물을 마시거나 프로듀서와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을 담은 영상(흑백)을 보여주어 TV 송출 화면만을 보여줄 거라 예상한 관객의 장르적 고정관념을 보기 좋게 깨버린다. 기실 파운드 푸티지 장르보다는 페이크 다큐멘터리에 가까운 느낌이다.

세트 안과 바깥을 비추는, 외적으론 자신감이 넘치고 매력적인 잭이 내적으론 불안과 슬픔에 시달리는 모습을 잡은 <악마와의 토크쇼>의 시각은 텔레비전 혹은 시청자의 이중적인 성격과 맥을 같이 한다. 영화는 도입부에서 베트남전, 석유 위기, 워터게이트, 맨슨 패밀리, 사탄주의의 증가 등 그 무렵의 다양한 풍경을 몽타주로 보여주며 미국의 1970년대가 폭력이 난무한 시대이자 불신의 시기였으며 심령술사, 점쟁이, 퇴마사 등 오컬트의 부흥기였다고 설명한다. 1970년대를 추억과 낭만이 가득한 시각으로 보길 거부하겠다는 선언이다.

시청률을 위해 현실을 자극적으로 포장하여 방송한 텔레비전은 미국 대중에게 정신적으로 큰 영향을 미쳤다. 사람들은 거실에서 텔레비전으로 베트남전의 폭력이나 맨슨 패밀리의 공포를 생생히 목격했다. 한편으로는 심야 토크쇼 등 오락 프로그램을 시청하며 일상의 문제들을 애써 외면했다. 

미디어의 이중적인 속성이나 대중의 이중적인 태도는 오늘날에도 유효하다. 결국 극 중에서 소환한 '악마'는 시청률에 목맨 나머지 어떤 오락거리라도 만들어내려는 미디어의 광기이자 볼거리에 미쳐있는 대중의 탐욕을 의미한다. 이런 시각으로 본다면 <악마와의 토크쇼>는 미국의 1970년대를 비판했던 <네트워크>(1976), <코미디의 왕>(1982), <비디오드롬>(1983)을 잇는 매스미디어 비판 영화인 셈이다.
 
<악마와의 토크쇼> 영화의 한 장면

▲ <악마와의 토크쇼> 영화의 한 장면 ⓒ 찬란, (주)에이유앤씨

 
주연을 맡은 데이비드 다스트말치안의 탁월한 연기는 영화의 다양한 요소를 하나로 묶어내는 힘이다. <다크 나이트>(2008)로 데뷔한 이후 <프리즈너스>(2013), <앤트맨>(2015), <블레이드 러너 2049>(2017), <더 수어사이드 스쿼드>(2019), <듄>(2021), <오펜하이머>(2023), <부기맨>(2023)에 출연하며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 드니 빌뇌브 감독 등 세계적인 거장 감독이 선택한 배우로 입지를 다졌다. 그는 <악마와의 토크쇼>에서 1970년대 토크쇼 진행자를 연기하기 위해 그 당시에 활발히 활동했던 자니 카슨, 데이비드 레터맨의 토크쇼를 시청하며 그들이 언어를 사용하는 방법과 언어의 리듬감에 대해 연구했다는 후문이다.

"내 입을 통해서 당시의 토크쇼를 시청했던 사람들에게 진정성이 전달될 수 있도록 많은 연습을 했다."

<악마와의 토크쇼>는 다소 정형화된 파운드 푸티지 장르의 개념을 새로운 차원으로 끌어올린 시도가 돋보인다. 토크쇼와 리얼리티 프로그램이 가진 사실적인 화법에 오컬트의 신비로운 공포를 이식하여 이전에 본 호러 영화와는 다른 결의 긴장감과 두려움을 전한다. "<블레어 윗치> 개봉 25년 후 다시 시작된 공포의 혁신", "1970년대 쇼 비즈니스와 <엑소시스트>식 악마적 행위를 혼합한 완전 신선/독특한 결과물"이란 해외 매체의 평가가 결코 과장이 아니다. 

<악마와의 토크쇼>는 호러 장르의 팬이라면 꼭 보아야 마땅하다. 독창적인 영화가 점점 사라지는 작금의 극장가에서 아주 신선한 영화를 만났을 때 느끼는 짜릿한 충격을 경험할 좋은 기회다. 시체스국제영화제 '오피셜 판타스틱' 각본상 수상작.
데이비드다스트말치안 캐머런케인즈 콜린케인즈 잉그리트토렐리 이안블리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초당 24프레임의 마음으로 영화를 사랑하는 남자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