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치 영화 속 인물들처럼 수수께끼가 가득한 밀실의 비밀을 풀고 그곳을 탈출하는 일을 현실에서도 할 수 있다면? 비록 열기가 전성기만큼은 아니지만 여전히 인기가 많은 '방탈출 게임' 이야기다. 입장료를 내고 방탈출 게임장에 들어가면 앞서 언급했듯 세트장처럼 꾸며진 밀실에서 영화로나 만나던 긴장감 넘치는 탈출을 즐길 수 있다.

물론 스크린으로 감상하는 것과 실제로 밀실에 갇히는 건 다른 차원의 일이라 낯선 공간에서 이것저것 소품들을 건드리는 게 누군가에게는 무서운 일로 다가오기도 한다(이런 성격을 적극적으로 활용한 '공포 방 탈출 게임'도 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얼마 전에 전해 들은 이야기에 따르면 게임 참가자가 이 두려움에 어떻게 대응하느냐에 따라 역할이 나눠진다고도 한다.

가령 '탱커'가 있다. 아마 온라인 게임을 자주 했다면 익숙한 개념일 텐데 마치 게임의 탱커들처럼 주도적으로 상황을 돌파하는 사람을 그렇게 부른다. 그 대척점에는 '쫄보'가 있다. 뭐라도 낯선 게 나오려고 하면 겁부터 먹는 캐릭터다. 사람의 성격이 입체적인 만큼 여러 조합도 가능하다. 예를 들어 '쫄탱'은 '쫄보 탱커'를 의미하는데 겁은 많지만 탈출을 위해 해야 할 일을 모두 하는 인물이다.

그리고 여기 '변쫄'이 있다. 바로 '변태 쫄보'를 의미한다. 나는 처음에 이게 무슨 뜻인가 했는데 '무서워하면서도 궁금하니까 볼 건 다 보는 사람'을 뜻한다고 한다. 비명을 지르며 손으로 얼굴을 가리지만 결코 눈만은 가리지 않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호기심 많은 고양이' 유형이라고 생각한다.

겁 많은 사람도 '공포 영화'에 끌린다

아직 방탈출 게임을 해보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아마 나는 '변태쫄보(이하 '변쫄')일 것이다. 일상생활에서도 나는 겁은 많지만 이상할 정도로 호기심 역시 강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나는 무서운 건 정말 못 참지만 공포 영화에 대한 관심은 기이할 정도로 높은 편이다.

여기에는 여러 이유가 있다. 첫째, 모든 공포 영화는 미스터리를 기반으로 한다. 이건 방 탈출 게임과 원리가 같은 데 익숙하고 편한 공간에서는 긴장감을 느낄 수 없다. 공포 영화를 구성하는 요소들도 마찬가지다. 사건의 진상부터 주인공을 위협하는 악역의 정체까지 그 모든 게 명확하다 못해 빤하다면 그게 무서울 리가 있을까. 하지만 이 말은 공포 영화가 사람의 호기심을 강하게 자극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런 장르를 '변쫄'들이 그냥 지나칠 리가.

둘째, 모든 잘 만들어진 공포 영화에는 고유한 아름다움이 있다. 이상하게 들릴지 모른다. 공포 영화는 끔찍하고 무서운 걸 보여줘야 하는데 그게 아름다울 수 있다니. 아마 약간의 설명이 더 추가되어야 이 말을 온전히 전달할 수 있을 것 같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공포 영화는 호기심을 자극하는 낯선 요소들로 이루어져 있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하게 고려해야 할 것이 있다. 아예 이해하지도 못할 만큼 낯선 걸 보여준다면 사람이 두렵기는커녕 호기심도 느끼지 못하게 된다는 점이다.

가령 읽을 수조차 없는 외국어가 가득한 책을 보면서 두려움과 궁금증이 생기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때문에 공포 영화는 사람들에게 어느 정도 익숙한 것을 낯설게 만들어야 한다. 가령 집은 집인데 그게 어두운 산속에 있는 식이다. 익숙한 것을 낯설게 만드는 방식이 참신하려면 공포 영화는 전에 본 적 없는 독창적인 표현 방식을 만들어야 한다. 그리고 독창적인 영화들은 거의 대부분 자기만의 고유한 아름다움을 품고 있다.

호기심 많은 겁쟁이가 공포 영화 보기 위해 한 일
 
 영화 <파묘> 스틸 이미지

영화 <파묘> 스틸 이미지 ⓒ ㈜쇼박스

 
이런 이유로 특정 공포 영화가 인기를 끌면 나는 호기심에 인터넷 예매 사이트를 열어놓고도 끝끝내 포기하는 일을 반복해 왔다. <곡성>이 엄청난 흥행을 할 때도 <유전>이 컬트적인 인기를 끌 때도 그랬다. 하지만 사람이 머리를 굴리다 보면 요령이 생긴다. 나는 공포를 피하며 공포 영화를 보려는 기상천외한 도전을 위해 몇 가지 방법을 마련했다.

첫째, 선발대를 보내는 것이다. 누군가에게 먼저 영화를 보고 오게 하고 미스터리를 해치지 않는 선에서 대략적인 지도를 그려달라고 요청한다. 예를 들어 영화의 내용은 하나도 언급하지 않지만 대략 어느 지점에서 점프 스케어(갑작스럽게 관객을 놀라게 하는 공포 영화의 연출 방식)나 혹은 섬뜩한 장면이 등장하는지 미리 알려달라는 것이다. 이는 미스터리는 즐기면서 공포를 피할 수 있는 나름의 방법이다.

하지만 여기에도 한계는 있다. 똑같은 점프 스케어나 섬뜩한 장면을 봐도 나는 놀라 까무러치지만 누군가는 '뭐 이 정도는 놀래라고 넣은 장면도 아니지'라고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즉 지나치게 강심장인 사람을 선발대로 보내면 영화 상영의 거의 대부분 눈과 귀를 가리게 되는 불상사가 발생한다. 그래서 마련한 두 번째 방법이 있는데 이쪽은 조금 과격하다. 바로 만취 상태가 되는 것이다. 술을 마시고 취기가 올라 감각이 둔해지면 영화에서 무엇이 튀어나온다고 한들 그리 놀랍지가 않게 된다.

하지만 이 방법에는 몇 가지 치명적인 단점이 있다. 우선 이 방법은 집에서만 쓸 수 있다. 당연하지 않은가. 신성한 극장에 술 냄새를 풀풀 풍기며 들어가는 게 말이나 되는 일인가. 거기에 충분히 취하지 않은 상태로 영화를 보면 깜짝 놀라길 반복하게 되는데 그러면 술을 한잔 두잔 더 들이키게 된다. 슬프게도 그러다 보면 어느 순간 나는 잠들어 있고 영화는 이미 엔딩 크레디트에 도달해 있다.

겁이 많은 주제에 호기심은 강해서 고생인 '변쫄'의 수난사를 풀어놓은 이유가 있다. 바로 영화 <파묘> 때문이다. 이 작품은 <검은 사제들>과 <사바하>를 만든 장재현 감독의 신작이다. 그리고 두 작품은 매우 탁월하고 빼어난 한국형 오컬트 영화로 유명하다. 때문에 이쪽 장르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파묘>의 제작이 발표될 때부터 이미 술렁이고 있었다.

감독 이름값만으로도 기대가 되는 데 여기에 최민식, 김고은, 유해진, 이도현과 같은 믿고 보는 배우들이 함께했다. 또한 아주 세련되게 만들어진 티저 포스터와 영화의 일부만 담겼음에도 이미 귀기가 서린 예고편은 기대치를 더욱 높였다. 그리고 결정적인 한 방. 초롱초롱한 눈망울에 장발의 머리를 깔끔하게 묶고 헤드셋을 쓰고 다니며 경문을 외는 캐릭터 '봉길'의 존재는 이 영화를 거부할 수 없는 강력한 이유다. 누군가의 말을 빌리자면 그는 '콘셉만으로도 덕후의 심장을 때리는 캐릭터'인데 이런 인물은 무조건 크게 크게 스크린에서 봐야 한다(거기다 이도현이다).

그리하여 내 안의 변태와 쫄보의 싸움이 시작되었다. 사람들이 블로그에 정리해준 줄거리를 평온한 마음으로 읽을 것인가, 아니면 호기심에 못 이겨 결국 극장 의자에 앉아 두려움에 떨 것인가. 

그래서 결국 본 <파묘>, 어땠냐면요
 
 영화 <파묘> 스틸 이미지

영화 <파묘> 스틸 이미지 ⓒ ㈜쇼박스

 
결론을 말하자면 호기심은 결국 공포를 이겼다. 개봉 이틀차 아침에 나는 <파묘>를 보러 극장에 갔다. 이 소식을 알리자 주변의 '겁 많은 변태'들이 나에게 자기들도 <파묘>를 보는 게 괜찮겠냐고 물어보았다.

그래서 비법을 알려주겠다. 첫째, 귀마개를 가지고 가라. 비싼 것도 필요 없고 문구점에 파는 사무용 귀마개면 충분하다. 물론 극장 스피커의 출력은 귀마개도 뚫는다. 하지만 딱 반의반 정도만 들린다. 이러면 인물들이 말하는 대사는 모두 들리되 사람을 깜짝 놀라게 만드는 효과음은 다소 미미하게 들린다. 겁 많은 사람에겐 최적의 환경이다.

그리고 둘째, 이 영화에는 네 번 정도의 점프 스케어 장면(어떤 사물이나 인물, 동물 등이 불쑥 튀어나와 관객들을 깜짝 놀라게 하는 연출 기법-기자주)이 있으며 그마저도 분위기를 충분히 잡은 다음에 등장한다. 즉 귀를 더 세게 막고 눈을 감을 시간을 충분히 준다(가장 흥이 나는 노래를 흥얼거리면 더욱 효과적이다).

그리하여 마지막 질문. 과연 <파묘>는 이런 야단법석을 떨면서까지 볼만한 가치가 있을까. 나의 대답은 '매우 그렇다'이다. 물론 겁 많은 나로서는 중간중간 극장 밖으로 튀어 나가고 싶은 순간이 꽤 있었다. 하지만 몰입감이 넘치는 이 영화는 마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 등장하는 하얀 토끼처럼 관객을 다음 장면으로 유인해 간다. 그리고 영화를 따라가 도달한 후반부에는 정말 예상치 못한 상황이 펼쳐진다.

여기서 약간의 호불호가 갈릴 수는 있다. 하지만 놀라울 정도로 예상치 못한 풍경이라는 건 모두가 인정하리라 생각한다. 그리고 그 풍경은 나 같은 '변쫄'도 매혹시킬 만큼 기이하고 이상하고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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