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은 10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소위 '롤드컵'이라고 불리는, 리그 오브 레전드 월드 챔피언십 2022이 한창이던 때였다. 게임 <리그 오브 레전드>를 즐기는 MZ세대 사이에는 매년 그 어떤 스포츠 빅이벤트 못지않은 관심이 쏟아지는 대회다.

정상에 오른 팀은 국내 리그에 소속된 팀 DRX였다. 대회 시작 전 전력상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던 DRX는 모든 선수들이 하나로 똘똘 뭉쳐 플레이-인 스테이지, 조별리그, 8강, 4강, 결승까지 관문을 하나씩 통과해나갔다. 4시드 팀이 롤드컵 정상에 오른 것은 올해 DRX가 처음이었다. 그 정도로 팬들 사이에서 오래 기억에 남을 만한 경기였다.

이들의 경기력 못지않게 화제가 됐던 것은 DRX '데프트' 김혁규의 이야기였다. 그는 조별리그 첫 경기서 패배한 이후 인터뷰를 통해서 "오늘 지긴 했지만, 저희끼리만 안 무너지면 충분히 이길 수 있을 것 같다"는 발언을 했다.

해당 영상을 업로드한 한 매체에서 '중요한 건 꺾이지 않는 마음'이라는 문구를 제목에 달았는데, 그 후 DRX가 연일 반전을 일으키며 계속 회자됐다. 이를 알고 있었던 김혁규는 팀이 '롤드컵' 우승을 확정한 이후 본인이 직접 이 문구를 언급해 다시 한 번 화제가 됐다.

대회가 끝나고 나서도 '중요한 것은 꺾이지 않는 마음'은 트렌드에 민감한 MZ세대서 하나의 '밈(Meme)'처럼 유행했다. '롤드컵'뿐만 아니라 비슷한 시기에 열린 KBO리그 포스트시즌 등 타 종목에서도 팬들이 이 문구를 사용하며 선수들을 응원하기 시작했다. 이번 월드컵 역시 그 흐름이 그대로 이어졌다.

대표팀의 행보는 말 그대로 '꺾이지 않는 마음'이었다

대한민국은 6일(이하 한국시간) 카타르 도하에 위치한 974 스타디움서 열린 2022 FIFA 카타르 월드컵 16강서 '세계 최강' 브라질에 1-4로 패배했다. 이날 패배로 8강 진출이 좌절된 대표팀의 여정은 모두 마무리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10년(남아프리카공화국) 이후 12년 만에 원정 16강 진출이라는 성과를 달성한 점은 높이 평가할 만하다. 우루과이, 포르투갈, 가나까지 만만한 팀 하나 없는 H조에서 조 2위로 당당하게 16강 진출 티켓을 거머쥐었다. 심지어 조별리그 기간 동안 잔부상을 안고 있던 선수도 한 두 명이 아니었다.

3일 열린 포르투갈과 최종전이 백미였다. 우루과이전(0-0) 무승부, 가나전(2-3) 패배로 1무 1패를 기록 중이었던 대한민국은 경우의 수가 맞아떨어져야 16강에 갈 수 있었는데, 거짓말 같은 일이 현실이 됐다. 후반 추가시간에 접어들면서 터져나온 황희찬(울버햄튼 원더러스)의 역전골은 카타르 현지에서, 또 국내에서 응원하던 국민들을 열광케 했다.

대한민국의 2-1 승리, 우루과이의 2-0 승리로 16강 진출 팀이 결정되자 포르투갈전이 열렸던 에듀케이션 시티 스타디움은 열광의 도가니에 빠졌다. 기록업체마다 조금씩 수치가 다르긴 했으나 아무리 높아도 20%가 채 되지 않는 확률을 뚫어낸 순간이었다.

기쁨을 누리던 선수들이 하나 둘 그라운드 위에서 태극기를 펼쳤고, 태극기 하단에는 '중요한 것은 꺾이지 않는 마음'이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었다. 현실적인 어려움 속에서도 기적을 만들어낸 대표팀에게 이보다 더 잘 어울리는 문구는 없었다.

MZ세대가 하나되어 응원했다... 다시금 느낀 스포츠의 힘

월드컵은 동계, 하계올림픽과 더불어 국민적 관심이 높은 스포츠 행사로 손꼽힌다. 공교롭게도 코로나19의 여파로 대회 일정이 조정되면서 지난해 여름 도쿄 하계올림픽, 올해 초에 열린 베이징 동계올림픽에 이어 월드컵까지 짧은 시간 동안 굵직한 행사가 차례로 개최됐다.

평소 스포츠와 거리를 두던 MZ세대 역시 4년마다 한 번 오는 올림픽과 월드컵을 놓칠 수 없었다. 온라인 상에서는 생중계와 하이라이트 영상, 유튜브 등에 올라오는 현장 영상까지 반응이 뜨거웠다. 이러한 과정에서 MZ세대의 뜨거운 호응을 이끌어낸 새로운 '스타'가 등장하기도 했다. 이번 월드컵에선 조규성(전북 현대)이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월드컵으로 다시 한 번 '스포츠'가 전해줄 수 있는 감동과 힘을 느꼈다. 한편으로는 좀 더 장기적으로 내다봤을 때 한국 스포츠의 장기적인 성장을 위한 고민도 분명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한 시간이기도 했다. 우리 모두 '꺾이지 않는 마음'이 계속돼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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