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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승헌 변호사
 한승헌 변호사
ⓒ 정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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엿새 모자라는 1년 동안의 옥살이를 하고 형집행면제로 풀려난 1981년 5월의 한국사회는 감옥안이나 별반 다르지 않았다. 광주를 피바다로 만들면서 집권한 전두환이 3월 3일 제12대 대통령에 취임하고, 연초부터 창당된 여야 정당은 3월 25일 제11대 총선을 통해 의석을 분배하였다.

우선 쇠약해진 몸을 추스르면서 앞일을 구상했다. 예전에 참여했던 단체들 대부분이 5.17 광풍에 쓰러지거나 해체되었다. 여전히 옥고 중인 동지들도 적지 않았다. 

진상이야 어떻든, 전과 2범이 되어 금쪽같은 40대에 6년이나(1983년 복권까지는 8년) 본업을 잃고 실업자로 살아가자니, 예사로운 일이 아니었다. 

그 무렵 청와대에서 한 번 만나자는 연락이 왔다. 이름만 대면 '아, 그 사람!' 할 만큼 널리 알려진 민정수석 이 아무개 씨였다. '내란음모사건' 조사 때 남산 지하 2층 내 방에 들러 김대중 선생과 연관된 문제를 묻고 간 적이 있어서 초면은 아니었다. 그는 우리 집 형편을 걱정해주면서, 기업의 고문 변호사 자리를 주선해주겠다고 했다. 

나는 '고맙기는 하나 받아들일 수 없다'고 말했다. 변호사 자격도 빼앗긴 사람이 고문변호사 노릇을 할 명분이 없으니, 내 변호사 자격을 빨리 회복시켜주는 것이 진심으로 나를 위하는 길이 되지 않겠느냐고 했다. 그날의 만남은 외형상 평화롭게 결렬되었다. 그 후 서울특별시장으로부터 서신이 날아왔다. 봉서를 열어보니, 서울시 법률고문 위촉장이었다. 당시 서울시장은 모르는 분도 아니고 해서 정중한 회답을 보내 사양의 뜻을 전했다. (주석 1)

권력이 내민 손길을 걷어차고 생업에 복귀하였다. 출판업이다. 우선 자신의 책부터 내기로 했다. 지난 날 발표했던 글과 새로 쓴 글을 모았다. <내릴 수 없는 깃발을 위하여>란 제목과 부제를 '사회정의와 인간화의 길'이라 붙였다. 

전두환이 창당한 여당의 당명이 '민주정의당'이었다. '정의'를 내걸면서 불의와 폭력을 일상화하고 있었다. 

거듭된 투옥과 기름진 유혹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추구해온 '깃발'을 내릴 수 없었고, 불의와 비인간화가 지배하는 시대에 올곧게 살고자 하는 신념에서였다. 

1983년 6월 26일자로 명기한 책머리 <한 시대의 몸살>에 시대의 앓음이 베인다.

1974년에 <위장시대의 증언>을 펴낸 후 10년 만에 또 하나의 부끄러운 나의 분신으로 늦게나마 이 책을 세상에 내보낸다.

아, 그 10년! 역사에 대한 수모와 민족의 아픔이 날로 처절해 가던 그 통한의 시기에 나는 있어야 할 자리에 있지 못했고 써야 할 것을 쓰지 못했다.(……)

이 책에 실린 글들은 바로 그 몸살의 흔적이다. 다시 말해서 그것은 역사의 광풍에 시달리면서 씌여진 나의 고백이자 증언이며, 호소이자 다짐인 것이다. 

배움, 생각, 의지 - 그 무엇 하나 부끄럽지 않은 것이 없건만 이 모든 것을 무릅쓰고 서툰 글을 한 책으로 묶는 까닭인즉, 이 시대의 몸살을 우리 모두의 것으로 함게 앓으며 내일을 위한 걱정과 공감을 더불어 나누고자 함에서이다. (주석 2)

책은 제1부 역사와 삶의 좌표, 제2부 법치주의의 이념과 현실, 제3부 문화현상과 법의 기능, 제4부 내일을 위한 각서로 나뉘어 각 11편 씩 총 44편의 논설ㆍ칼럼이 실렸다. 제3부는 저작권 관련 글로 채우고 있다. 책에서 두 대목을 뽑았다. '맛보기'랄까? 

우리가 받들고 지켜나가야 할 민주주의가 시달림을 받는 정치풍토에서는 마치 유목민족의 거친 나날이 비판, 저항의 정신을 요구했듯이, 법률가들의 재야정신도 좀 더 강렬해져야 한다. 하지만 강렬해져야 할 필요 못지않게 그것을 약화시키려는 외부요인도 점증한다. 그러다보면 '마술로부터의 해방'을 중단하고 '억압적 관용'을 긍정하는 중성적 자기 체념에 자족하는 사람이 늘어난다. 국가권력의 눈초리를 두려워하지 않고 이것을 비판, 규탄함으로써 진실과 허위를 가려내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문자 그대로 불굴의 용기를 필요로 한다. (주석 3)

……이처럼 유리창을 깨면 유리를 없애고 장기싸움이 벌어지면 장기를 없애버리는 방안은 오로지 교도관(또는 그들의 상부)의 책임을 더는 데 주안(主眼)이 있는 짓들입니다. 언젠가는 전(全) 재소자들의 파자마를 거두어간 일이 있지요. 그 이유를 물어보았더니, 어떤 재소자가 파자마 바지로 목을 매어 자살하려고 한 사건이 생겼기 때문에 앞으로의 재발을 막기 위해서라는 것이었습니다.

그 다음날 순시를 도는 한 간부교도관에게 내가 힐난했습니다.

"이봐요! 목매는 자살사고를 막는다고 파자마를 거둬가 버리면 됩니까?"

"만일 그런 사고가 또 나면 우리의 목도 흔들리는 판이니, 불편하시더라도 이해를 해주세요."

"아니, 그런 얘기가 아니에요. 목매다는 사고를 근본적으로 막으려면 파자마를 거두어가는 것으로는 미흡해요. 그보다는 6천 명 전 재소자의 모가지를 전부 뽑아다가 보관하는 편이 훨씬 안심되는 대책이 아니냐 그 말이지요." (주석 4)


주석
1> <자서전>, 242~243쪽.
2> 한승헌, <내릴 수 없는 깃발을 위하여>, 2~3쪽, 삼민사, 1983.
3> <민주사법과 변호사>, <내릴 수 없는 깃발을 위하여>, 161쪽.
4> <우리(檻) 속의 무리들>, <내릴 수 없는 깃발을 위하여>, 89쪽.

 

덧붙이는 글 | [김삼웅의 인물열전 - 시대의 양심 한승헌 변호사 평전]은 매일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태그:#한승헌, #시대의양심_한승헌평전, #한승헌변호사평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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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독재 정권 시대에 사상계, 씨알의 소리, 민주전선, 평민신문 등에서 반독재 언론투쟁을 해오며 친일문제를 연구하고 대한매일주필로서 언론개혁에 앞장서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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