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감독은 성적으로 책임을 지는 자리'라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현대의 프로야구 감독들이 고민해야 할 것은 오직 성적만이 아니다. 경기 내용, 선수 육성과 보호, 선수단 기강 등 야구 내적인 문제에서부터, 선수의 사생활과 사건사고, 구단의 이미지와 관련된 야구 외적인 광범위한 영역까지도 결국은 감독의 책임으로 귀결되는 경우가 많다.
 
감독의 의지로 일일이 컨트롤하기도 어렵고, 흑백으로 정답을 구분하기도 쉽지 않은 어려운 난제들이 수두룩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택을 내리고 책임을 져야 하는 순간이 있다. 그래서 감독은 어려운 자리다.
 
최근 두산 베어스의 11대 사령탑으로 취임한 '초보 감독' 이승엽에게도 시작부터 피할 수 없는 난제가 찾아왔다. 바로 소속 선수들의 학교폭력 논란이다.
 
두산 소속인 이영하와 김유성은 현재 과거 학폭 논란으로 곤욕을 치르고 있다. 이영하는 선린인터넷고 시절 후배를 폭행한 혐의로 검찰에 기소된 상태다. 또한 김유성은 중학교 시절 학교폭력 전력으로 도마에 올랐으나 올해 KBO 신인드래프트에서 두산의 지명을 받았다. 야구팬들은 이영하 학폭 사건도 아직 해결되지 않은 상황에서 김유성까지 영입한 두산의 행태를 '도덕불감증'이라고 비판하며 거세게 반발했고 일부 팬들은 본사 앞에서 트럭 시위까지 벌였다.
 
이영하와 김유성 사건은 모두 이승엽 감독이 부임하기 전에 벌어진 일이다. 이영하는 법정 공방이 현재진행중이고, 김유성은 구단 측에서 입단계약을 완료해버린 상황이라 당장 이승엽 감독이 뭔가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다. 하지만 이제부터는 어쨌든 이승엽 감독이 그 뒤처리를 감당해야만 하는 상황이 됐다. 야구팬들은 민감한 사안에 이 감독이 과연 어떤 스탠스를 취할지 주시했다.
 
이승엽 감독 "필요하다면 함께 사과할 것"
 
 18일 오후 잠실야구장에서 열린 취임 기자회견에 참석한 두산 이승엽 감독

18일 오후 잠실야구장에서 열린 취임 기자회견에 참석한 두산 이승엽 감독 ⓒ 두산 베어스

 
지난 10월 18일 서울 잠실구장에서 취임식을 갖고 본격적인 신임 사령탑으로서의 행보를 시작한 이승엽 감독에게 곧바로 학폭 논란에 대한 질문이 나왔다. 이 감독은 여기서 "굉장히 민감하고 어려운 부분이다. 아직 김유성을 만나지 못해 구체적인 진행 상황은 모르지만, 사과와 화해를 하려고 하고 있다고 들었다. 만약 내가 필요하다면 함께 사과를 할 용의가 있다. 잘 해결이 됐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이승엽 감독의 대처는 그나마 현재 상황에서는 감독이 보여줄 수 있는 최선의 '모범답안'에 가까웠다. 만일 이 감독이 여기서 자신의 감독 부임 이전에 결정된 사안들이라는 이유로 발을 빼려는 자세를 보였거나, 섣부르게 학폭 관련자나 구단의 결정을 옹호하려 들었다면 오히려 큰 실망감을 안겼을 것이다.
 
이 감독은 선수들과 피해자 측 어디에도 기울지 않도록 신중하고 조심스러운 자세를 고민한 듯 보였다. 한편으로 필요하다면 '함께 사과할 수 있다'고 밝히면서 책임질 일이 있으면 적극적으로 나서서 회피하지 않겠다는 의지도 분명히 보여줬다. 선수의 개인사와 관련된 문제에서 감독이 직접 나서서 사과하는 경우는 보기 드물다. 아직 선수단 파악도 제대로 하기 전에 민감한 문제를 떠안게 된 이승엽 감독으로서도 무척 곤혹스러운 사안이었을 것이다.
 
많은 야구팬들이 감독 이승엽의 행보에 주목하는 것은, 현역 시절 '국민타자'로 불리던 그의 높은 사회적 위상 때문이었다. 선수로서의 업적이야 더 말할 나위도 없지만, 단순히 야구만 잘했다고 해서 '국민'이라는 타이틀까지 붙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이승엽은 20년 가까운 선수생활 동안 음주, 도박, 학폭, 불화 등 그 어떤 법적·사회적 구설수와도 거리가 멀었던 야구 모범생이자 '청정 슈퍼스타'의 표본과도 같은 존재였다. 굳이 꼽자면 현역 말년에 팬서비스 논란으로 잠시 비판을 받기도 했지만, 그나마도 자신의 과오를 솔직히 인정하고 꾸준히 반성과 사과를 위한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이 역시 흑역사는 최대한 감추거나 외면하거나 급급한 다른 슈퍼스타들과는 다른 부분이었다.

이승엽의 인간적인 매력은 그가 최근 출연했던 JTBC <최강야구>에서도 드러난다. 프로은퇴선수들과 아마추어 유망주로 구성된 '최강 몬스터즈'의 감독을 맡았던 이승엽은 치열한 승부를 펼치고 있는 상황에서도 선수들의 감정과 자존심을 배려하는 모습을 보인다.

종아리 부상을 당한 박용택이 경기출전을 고집하자 "바꿨어야 한다"고 속마음을 드러내면서도 결국 교체하지 않았고, 투수 오주원이 강타자를 거르라는 지시에 반대하며 정면승부를 고집하자 선수의 의사를 존중해서 물러서고 만다. 물론 방송 예능이고 이벤트 매치에 가까운 <최강야구>였기에 가능한 낭만이었지, 실제 프로야구 경기같은 현실이었다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문제는 이런 '인격자'로서 이승엽의 면모가, 더 이상 개인이 아닌 프로야구 감독으로서도 계속 유지될수 있을까 하는 점이다. 흔히 스포츠계에서는 "감독이 사람 좋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그 팀은 꼴찌가 된다"는 격언이 있다. 성적지상주의와 결과론이 지배하는 비정한 승부의 세계에서, 감독은 때로 모진 결단을 내려야 하고 비바람을 앞장서서 맞아야 하는 직업이다.
 
이승엽 이전에 대표적인 슈퍼스타 출신 감독들이었던 선동열, 이만수, 김성한, 이순철, 김시진 등이 감독이 되고 나서 얼마나 많은 비판과 논란에 휩싸이며, 과거의 명성과 이미지까지 손상을 입었는지 떠올리면 이해하기가 쉽다.
 
학폭논란은 이승엽 감독이 향후 지도자로서 겪게 될 수많은 시험대의 첫 시작일 뿐이다. 이영하와 김유성의 인성을 둘러싼 비판 여론과는 별개로, 두산으로서는 이 두 선수를 쉽게 포기하기 힘든 게 사실이다. 이영하는 2018년 17승을 거두는 등 KBO리그에서 6년간 통산 46승 35패 4홀드 7세이브 평균자책점 4.81을 기록하며 토종에이스로 활약했다.
 
김유성과는 이미 이승엽 감독이 부임하기 전에 계약금 1억 5000만 원에 입단 계약을 마친 상태다. 이미 2년 전 NC에서 1차지명(학폭논란으로 지명철회)까지 받았을정도로 잠재력 만큼은 검증된 유망주다. 학폭 논란이 말끔하게 정리되지 못한 상태에서도 두산이 이 두 선수를 계속 품고 갈 수 있을 것인지는 앞으로 이승엽 감독의 판단에 달렸다.

최근의 야구팬들은 더이상 '야구만 잘하면 다 용서된다'는 식의 발상을 용납하지 않는다. 이승엽 감독의 임기내에 또다른 선수단 내 일탈과 사건사고가 나오지 않는다는 보장은 없다. 그럴 때 이승엽 감독이 얼마나 단호한 대처를 보여줄 것인지, 이승엽 체제에서 두산 구단이 사건사고에서 자유로운 클린베이스볼 구단으로 거듭날 수 있을지가 관심사다.
 
'현실과 이상'은 때로 일치하지않는 경우가 더 많다. 키움 히어로즈는 역시 학폭논란을 비롯하여 여러 가지 구설수가 많았던 안우진을 끝까지 감쌌고, 올시즌 그는 '악마의 재능'을 만개하며 국내 최고의 선발투수로 성장했다. 두산도 '약물 논란'이 있었던 김재환을 보호하여 MVP급 선수로 키워낸 전례도 있다. 물론 그 과정에서 야구팬들의 엄청난 비판과 구단의 이미지 하락은 피할 수 없었다. 이승엽 감독도 만일 동일한 고민에 처했을 때 현실(구단의 실익)과 이상(야구팬들의 기대, 사회적 도덕성) 사이에서 얼마나 냉철한 결단을 내릴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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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엽감독 학교폭력 이영하 김유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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