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단편영화의 확장성을 위한 도전은 계속된다
 
예전에 비해 영화 연출을 배울 수 있는 교육기회와 다양한 경로의 제작지원 확대, 영상매체의 발달 등 복합적 요인으로 매년 제작되는 국내 독립단편영화의 수는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중이다. 하지만 그 활용방도는 여전히 영화제 상영으로 주목을 받아 장편영화로 데뷔하거나 차기작을 제작하기 위한 지원 포트폴리오에 그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리고 온라인 스트리밍이나 VOD 서비스 용도로 단편영화가 유통되기 시작했지만 장편 개봉영화에 비해 상업성이 높지 않기 때문에 지지부진한 상황을 크게 벗어나진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런 가운데 단편독립영화 전문 배급사들은 다양한 시도를 펼치며 지형변화를 모색 중이다. 그 중에서도 꾸준히 주제와 소재 등을 활용한 옴니버스 개봉에 도전하는 배급사 필름다빈의 근래 활약이 돋보인다.
 
매년 한두 편씩 지속적으로 단편영화 옴니버스 개봉 기획을 진행 중인 필름다빈의 최신 라인업은 공포 장르에 속하는 4편의 단편영화를 묶은 <기기묘묘>다. 2020년에서 2021년 사이 공개되어 영화제 등에서 입소문을 타고 호평을 받았던 자사 배급작품들의 2차 활용법을 모색하는 시도다. 어떤 영화들의 조합일지 개별 작품부터 소개해본다.
 
 4인4색 공포단편의 치명적 매력

1번 주자 <불모지 Wasteland>
|욕망의 부동산과 맞서는 여자들의 우화

 
"기기묘묘_불모지" 스틸 영화 스틸 이미지

▲ "기기묘묘_불모지" 스틸 영화 스틸 이미지 ⓒ 필름다빈

 
<불모지> 는 기이한 영화다. 현실에서 기승을 부리는 부동산 개발광풍과 그에 잠식당하는 인간들의 욕망을 다루지만 영화의 시점은 현재라기 보단 평행세계에 가까울 만큼 한 세대 전의 풍경이다. 연출은 지극히 연극적이기도 하다. 그래서 충남 당진 시골을 배경으로 하지만 리얼리티보다는 일종의 우화 같은 느낌이 짙게 풍긴다.

서암댁과 화천댁이 이 영화의 주인공이다. 수백 년간 이어져 왔을 이 땅의 수호정령 같은 존재, 혹은 대를 이어 동네를 벗어난 적 없이 이곳만을 세계의 전부로 알며 살아온 고대 부족의 후예 같은 이들이다. 이들은 끊임없이 척박한 땅을 경작하지만 소출은 보이지 않는다. 제목처럼, 그리고 서암댁 남편의 푸념대로 이곳은 썩은 땅, 불모지에 가깝다. 마을 남자들은 재개발 허가로 부동산 광풍에 올라탈 궁리에 파당을 지어 몰려다니며 암투를 벌인다. 그 싸움에서 서암댁의 남편은 승자고 화천댁의 남편은 패자다. 패자는 목을 매고 원통한 나머지 벌겋게 튀어나온 눈을 감지 못한 채로 죽었다. 시신과 함께 사라졌던 화천댁은 서암댁에게 찾아와 서암댁 네 텃밭에 남편을 묻게 해 달라 사정한다. 서암댁은 곤혹스런 상황에 고민하고 마을을 둘러싼 수군거림은 갈수록 까마귀 울음 마냥 시끄러워진다.
 
남자들의 욕망은 이제 좀 사람답게 살아보자는 욕망으로 집약된다. 이지만 그 길을 위한 방편은 금수의 길이다. 빈한해도 서로 돕고 살던 목가적 전통이 사라진 자리엔 각자도생의 수라도가 남았을 뿐이다. 오랜 세월 이어져온 삶의 방식인 농사에 신경 쓰는 건 오직 여자들뿐이다. 그 중에서도 서암댁 역의 오민애 배우와 화천댁 역 김재화 배우는 영화를 보고 나면 다른 대안을 떠올릴 수 있을까 싶을 만큼 압도적으로 화면을 영화 내내 휘어잡은 채 놓아주지 않는다. 특히나 영화의 인상적인 오프닝은 배우들의 가공할 연기력으로 구현된, 대사 한마디 없이 극단적으로 설정된 표정 연기의 힘만으로 보는 이들을 몰입시킨다.
 
현대 한국의 개발 광풍과, 한 시대 전 농민들의 토지에 대한 애착을 재료로 삼아 빚어낸 <불모지>는 한국 근대문학에서 튀어나올 것 같은 기시감과 함께, 꼭 한국이 아니라도, 두개의 세계가 충돌하던 순간의 파괴적 현장 어디에나 통용될 법한 이야기를 선보인다. 일확천금에 미친 세상에서 제 정신이다 보니 광인이 되어야하는 운명의 화천댁과, 분노를 꾹꾹 눌러 참다 임계점에서 폭발해버리는 서암댁의 '얼굴들'은, 김기영 감독의 <이어도> 속 여자들의 얼굴을 희미하게 떠올리게 만든다. 땅의 진정한 주인이자 수호자들의 얼굴 자체다. 그 외에도 고도로 상징화된 2번의 믹서 장면과 2번의 매장 장면이 교차되며 이것저것 상상하게 만드는 위력을 발휘한다.
 
전통적인 사회파 리얼리즘 영화와는 상당한 거리가 존재함에도 <불모지>는 다른 차원에서 불쑥 넘어온 존재 마냥 기이한 힘을 뿜어내며 독특한 방법론으로 익숙한 주제를 '다르게 보는 법'을 제안한다. 어쩌면 이미 오랫동안 구사되어 왔던 방식을 차용한 데 불과할지 몰라도 그런 전통이 잊힌 상황에서는 '콜럼버스의 계란' 같은 시도가 될 수 있다. 근래 누구도 이런 방향으로 연출할 생각을 못했기 때문이다. 이런 종류의 변주와 파격은 지금의 규격화된 영화제용 단편들이 양산되는 시류에선 충분히 주목받을 만하다.
 
2번 주자 <유산 The Daughter>
|귀신들린 집에 사로잡힌 자녀세대의 초상

 
"기기묘묘_유산" 스틸 영화 스틸 이미지

▲ "기기묘묘_유산" 스틸 영화 스틸 이미지 ⓒ 필름다빈

 
제법 경사가 있는 주택가 골목길, 가방을 메고 트렁크를 끌면서 한 여성이 여름날 진땀을 흘리며 그 길을 오르는 중이다. 한참 올라간 중턱에는 그녀, 효은이 물려받은 이층집이 있다. 효은은 7년간 병상에 누워 있던 어머니 간병을 도맡았다. 오빠와 남동생은 병원비는 분담했지만 병간호는 온전히 효은 몫이었다. 이제 어머니의 유산으로 오래되긴 했지만 방이 4개 있는 이층 단독주택을 효은이 소유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효은은 유산으로 받은 집에 들어설 때부터 불안하고 예민하기 그지없는 안색이다. 세간에선 '효녀' 소리 듣지만 그녀만이 아는 진실은 제법 다른 것이었다. 죽은 엄마는 딸에게 집착이 심했고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기 위해 방을 잠그기 위한 문고리도 달지 못하게 했을 정도로 억압적이었다. 유산상속 관련해 효은은 남자형제들과도 불편한 상황이다. 집 안에는 그런 효은의 심리를 투영한 듯 불길한 징후가 가득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난 세월을 보상받으려는 결의로 효은은 집 구석구석 정리하고, 자신이 쓸 방 문고리를 구입하러간 가게에서 동창생 선우를 만나 도움도 받는다.
 
하지만 집은 점점 효은에게 거대한 감옥이 되어간다. 7년간의 수난에 대한 대가로 집을 쟁취했지만 그녀에게만 거듭 이상한 형체와 기이한 현상들이 등장하며 효은을 이 집의 죄수처럼 옭아맨다. 집을 팔아버릴까 알아보지만 집에 깃든 무엇인가가 훼방을 놓는다. 과연 효은과 엄마 사이에는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귀신들린 집과 숨기는 사연이 많은 주인공이라는 설정은 공포 장르에서 즐겨 구사되는 소재다. <유산> 역시 그 전형적 공식을 적극적으로 차용한다. 대프니 뒤 모리에의 <레베카>나 에드가 앨런 포의 <어셔 가의 몰락> 같은 고딕 공포물의 기운이 이 영화에는 넘실거린다. 구체적으로 모녀간의 과거 행적이 해설되지는 않지만 효은이 심리적으로 벼랑에 몰리면서 보이는 신경질적 증상은 이미 오래전부터 그녀에게 누적되어온 피로감의 결과이자 비정상적인 닫힌 사회에서 놓여나지 못한 소외된 개인의 비극으로 이해될 수 있다.
 
여기에다 영화는 한국적 현실과 세대갈등의 문제를 양념으로 흩뿌린다. 자력으로 집을 장만하기가 날이 갈수록 힘들어진 시대에 '유산'으로 번듯한 집을 상속받는다는 건 큰 행운인 동시에 가족분쟁의 불씨가 된다. 친지간에 원수보다 못하게 되는 것은 물론, 칼부림 나는 사건을 우리는 미디어에서 툭하면 접하는 중이다. 주인공 효은의 편집증은 그런 사회적 현실을 반영한다.
 
또한 영화 속 긴장과 공포의 주 동력인, (주인공의 시각에서) 부모세대가 자녀세대를 경제적, 정신적으로 옭아매는 상황은 본 작품의 장르문법 활용을 통해 실체화된 공포로 표출된다. 이를 사회파 드라마로 변형시키더라도 만만찮은 심리적 압박감으로 작용할 테다. 부모의 속박을 증오하며 벗어나고 싶지만 어쩔 수 없이 유산에 목매며 의존하게 되는 세대 간 격차와 이로 인한 사회 권력관계 묘사에서 예상보다 훨씬 더 <유산>의 장르적 공포는 적절하게 활용된다. 영화의 또 다른 주역인 엄마가 떠나지 않는 집, 그리고 그 집에 결박된 효은 역 한해인 배우의 열연은 감독의 비전을 구현하는데 최상의 활약을 펼친다. '호러 퀸'이란 상투적 수식어가 오랜만에 제대로 어울리는 배우를 만날 수 있다.
 
3번 주자 <청년은 살았다. Disillusioned>
|경쟁의 욕망에서 시골도 안전하지 않다

 
"기기묘묘_청년은 살았다." 스틸 영화 스틸 이미지

▲ "기기묘묘_청년은 살았다." 스틸 영화 스틸 이미지 ⓒ 필름다빈

 
'청년'은 척박했던 도시에서의 삶에 지쳐 시골로 낙향했다. 그로부터 몇 년이 지났다. 그는 철물점을 운영하며 비교적 만족스럽게 살고는 있지만 수입이 부족한 건 어쩔 수 없다. 그래서 아르바이트를 따로 하며 근근이 연명하는 상황이다. 그러던 어느 날 천변에서 낚시를 하던 청년은 기이한 경험을 겪는다. 낚싯대에 돼지머리가 걸리고 거기에는 주머니가 달려 있다. 청년은 보는 눈이 없나 주위를 살피며 주머니를 챙기지만 물에 흠뻑 젖은 불길한 기운을 풍기는 수상쩍은 남자가 청년을 멀리서 응시하고 있다. 턱에 혹이 달리고 다리를 저는 남자는 어느새 청년의 거처 주위를 배회한다. 청년이 챙겨둔 주머니를 찾으러 온 것 같다. 그는 반드시 주머니를 지키겠다고 결심한다.
 
<청년은 살았다.>는 괴담 풍의 스릴러를 통해 감독 자신을 포함한 청년세대에 대해 성찰하는 이야기다. 주인공 청년은 도시의 팍팍한 경쟁에서 탈주했지만 자립생활을 위한 경제적 조건은 충족하지 못한 상태다. 그런 청년에게 복권당첨 길조인 돼지꿈 마냥 뜬금없이 물속에서 돼지머리가 걸려든다. 거기에 달린 주머니 내용물이 무엇인지 관객은 알 수 없지만 그의 처지를 확 바꿔놓을 내용물을 상상하는 건 어렵지 않다. 하지만 그 순간부터 마치 저승사자 느낌으로 기괴한 남자가 청년 주위로 비집고 들어온다.
 
물에 푹 젖은 데다 맨발, 풍파에 찌든 표정, 온통 상처투성이에 부자연스러운 혹까지 얼굴에 단 외관이지만 남자는 정장바지와 흰 셔츠를 입고 있다. 관객은 도무지 남자의 정체를 알 도리가 없다. 하지만 그가 청년의 주머니를 노린다는 건 명확해 보인다. 이제 청년은 남자를 쫓아내기 위해 필사의 일전을 준비한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청년은 점점 (자기 외엔 누구에게도 보이지 않는) 남자와 부대끼며 동일하게 변해간다. 남자가 단 혹은 마치 전래동화 속 혹부리 영감을 떠올리게 한다. 도깨비에 홀린 듯 청년은 필사적으로 주머니에 집착한다.
 
주인공 청년은 도시의 치열한 경쟁과 그 대가인 금전적 이익을 포기했었지만, 아무리 시골이라도 청년이 꿈을 품은 채 견디기는 어렵다. 결국 시골에서도 매일 무언가 살림에 보탬이 될 알바와 낚시를 해야 겨우 유지되는 삶은, 도시에서 학업과 취업준비를 병행하던 과거와 본질적으로 차이가 없다. 참을성 있게 낚싯대 들이밀고 기다려도 제대로 성과는 없다. 마치 그가 도시에서 척박한 시간을 보내던 것과 별반 다를 바가 없는 상황이다.
 
영화는 2개의 시간 축을 선보인다. 시작과 끝은 해가 뜨는 아침부터 저무는 밤까지 하루와, 봄철 모내기부터 겨울 수확이 끝난 후 1년의 시간이 교차되는 흐름이다. 그 축선 아래에서 청년은 들어온 복을 사수하고자 그가 떠나왔던 도시의 심연으로 다시 끌려들어가는 식이다. 감독 자신이 실제로 (영문제목처럼) 환멸에 빠져 무작정 시골에 내려와 낚시에 빠졌던 경험에서 이야기가 출발했다고 한다. 청년과 남자의 기이한 관계는 세대 간의 자원분쟁으로 은유되고, 시간이 흐르면서 한글제목 그대로 청년은 과거형이 되어버린다. 스릴러와 공포 장르문법을 제법 잘 활용한 사회풍자 우화다.
 
4번 주자 <불안은 영혼을 잠식한다 Fear Eats the Soul>
|악마는 우리 내면의 허점을 놓치지 않는다

 
"기기묘묘_불안은 영혼을 잠식한다" 스틸 영화 스틸 이미지

▲ "기기묘묘_불안은 영혼을 잠식한다" 스틸 영화 스틸 이미지 ⓒ 필름다빈

 
성근은 아들 종훈을 최고의 야구선수로 키워 '메이저리거'로 만드는 게 목표다. 산속에 외따로 떨어진 집에서 성근은 종훈을 직접 훈련시키는 중이다. 이런 설정은 어디서 많이 본 느낌이 다. 바로 무협물에서 주인공이 가족이나 스승과 함께 속세를 벗어나 수련하는 풍경이다. 지금처럼 유소년 스포츠가 체계화되지 않았던 시절, 가부장적 인물에 의해 초기 훈련은 물론 매니지먼트가 이뤄지던 때의 기억은 그런 무공수련의 설정과 닮은꼴이다. 1980년대까지 각광받던 대본소용 만화 중 현실과 판타지의 경계선상에 있던 스포츠 물도 비슷한 설정을 고수했던 기억이다. '공포의 외인구단' 인물들을 고스란히 옮겨온 공장제 작품들에서 이와 비슷한 구조는 넘쳐난다.
 
이야기는 놀라울 만큼 과거의 고전적 설정을 그대로 재현한다. 하지만 그러한 설정에 균열이 생기는 건 (복수물은 외부의 침입자, 모험물은 고립된 환경에서 세상에 나가게 하는 소식이 촉발시킬) 시간문제일 뿐이다. 여기에 한국사회 뿌리 깊은 가부장제 가족의 혈연 집착을 깔고, 그 집착에서 배어나오는 불길함을 연료로 삼는다. 첨가제로는 다소 전형적인 오컬트 요소를 가미한다.
 
부자는 산중수련 중 토굴에서 실신한 남자를 구한다. 구조된 남자는 수상한 것투성이지만 성근은 팔불출 마냥 자식자랑을 한다. 하지만 남자는 종훈에게 불길한 소리를 하기 시작하고 그의 괴기스런 이야기는 마치 저주처럼 하나둘 현실이 된다. 성근은 남자를 쫓아냈다가 다시 찾아가길 반복하며 재앙을 피할 방도를 묻게 된다. 그 이후는 제목 그대로다.
 
정체불명의 남자는 인간이라 볼 수 없는 초현실적 존재다. 그가 토굴 속에서 백치처럼 발견되는 순간과 다시 굴로 돌아간 풍경, 후반부 토굴 대신에 그가 들어갔다 나오는 공간들을 비교해 보면 일종의 원념이 형상화된 존재에 가깝다. 그는 자생적으로 발생한 게 아닌, 인간의 욕망과 죄의식, 살고 싶다는 원초적 기억들이 뒤엉킨 혼돈에서 탄생한 존재다. 그가 저주와 욕망을 실어 속삭이는 터무니없는 주문을 성근이 지푸라기 잡는 심정으로 맹종하는 건 이미 성근의 마음이 병들어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재수가 없는 게 아니라 이미 원죄에 물들어 있었기에 피할 수 없는 파국의 예정설인 것이다.
 
이야기는 제한된 좁은 환경에 흑백으로 간소하게 구축된다. 상당부분 이미 장르 물에서 익숙한 설정이 적지 않지만 한국사회의 기형적 면모가 본 작품의 전형성을 상당부분 보완해내는 건 참 '웃픈' 일이다. 예상 가능한 전개 가운데 의외성이 발현되는 지점도 꽤 있다. 성근이 남자의 주문을 실행하는 결행과정은 긴장보다는 어설픈 느낌이 전해지고, 모든 게 끝난 상황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의 허무함은 블랙코미디에 가까운 결론을 구현해내는 효과적 장치다.
 
후반부에 들어 광기에 물들어가는 성근의 행태가 그럴싸하게 리얼리티를 갖는 건 그만큼 한국사회 교육이 원래 목적이 아니라 변질된 기복신앙의 연장선 아래 놓여 있다는 증명이다. 전반부의 느릿한 긴장감 고조나 익숙한 특수효과가 좀 아쉽긴 하지만 후반부 몰입감이나 시니컬한 유머가 꽤 효과적으로 주제를 전달한다. 파멸해가는 가부장 역할을 소화해낸 독립영화계 베테랑 연기자 장준휘 배우와 평범한 인간이 감히 어쩔 수 없는 불길한 존재를 소화한 김최용준 배우의 탄탄한 연기 경합은 놓치면 안 된다.
 
옴니버스 기획을 통한 영화 해석의 새로운 확장
 
<기기묘묘>를 구성하는 4편의 단편영화는 개별 단품으로 봐도 매년 쏟아지는 독립단편 중 상위권에 속하는 완성도와 재미를 가진다. 하지만 굳이 독자적 기획과 감독의 비전으로 완성된 개별 작업들을 옴니버스로 묶어낼 때는 추가적인 가치가 발생해야 한다. 그런 고민이 부족할 경우엔 그저 단편의 나열에 불과할 뿐이다. 같은 상영시간이라도 영화제에서 단편 섹션과 장편 1편을 다 보고 난 피로감은 제법 차이가 나는데, 분량과는 별개로 특정한 '이야기'의 소화력이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그런 난이도 때문에 단편 옴니버스 기획은 단품을 초과하는 확장성을 전제로 해야 한다. 개별 작품으로 볼 때 얻지 못할 기대효과 발생이 필요한 것이다. 특정 배우가 인지도를 쌓게 되면 그 배우의 무명시절 초기작을 조합하는 식의 기획 상영이 종종 시도되곤 한다. 관객은 스타덤에 올라 주목받게 된 배우의 성장과정과 잠재력을 예전 작품을 통해 확인할 수 있게 된다. 미술관에서 큐레이션을 통해 특정 작가나 경향을 소개하는 효과와 동일선상인 셈이다. 비슷한 옴니버스 기획들이 대부분 그런 특정 코드를 중심으로 조합하긴 하지만, <기기묘묘>의 4편 조합은 단지 여름 다 지나갔는데 지각 개봉하는 공포영화 컬렉션을 뛰어넘는 맥락이 돋보인다.
 
일단 4편을 표면적으로 묶는 연결고리는 '공포'다. 그런데 옴니버스로 조합된 4편의 영화는 모두 한국사회를 조망하고 해석하는 링크로 '공포'를 활용하는 스타일을 취한다. 단지 시간 때우기 용도의 깜짝쇼가 아니라 사회문제를 장르영화 방식으로 풀어내는 경로로서의 공포라는 공통점을 띈다. 그렇기에 4편의 조합을 통해 <기기묘묘>는 한국사회에 첩첩이 쌓인 사회모순을 딱딱한 정치토론이 아닌 공포 체감을 통해 투영시킨다. 그 덕분에 극장 문을 나선 후의 관객들에게 끈적끈적한 성찰을 강요하는 기묘한 효과를 발산하게 된다.
 
<불모지>는 부동산 광풍이 지배하는 한국사회를 풍자한다. 하지만 영화 속 풍경은 21세기 한국보다는 펄 벅의 <대지> 연작 같은 질감으로 다가온다. 이 영화가 농민의 토지에 대한 애착을 통해 물욕에 찌든 세태를 비판하기 때문이다. 마치 <대지>의 주인공 왕룽이 주색잡기에 빠져 땅을 소홀히 할 때 묵묵히 집과 땅을 지키던 아내 오란의 심정처럼, <불모지>의 여자들은 남자들이 탐욕에 빠져 땅은 버린 채 이전투구에 골몰하는 와중에도 척박한 고향을 지키며 연대한다. 하지만 그 땅에서 땀 흘려 일해도 수확을 통해 마을이 유지되기는 어려워 보인다. 결국 지역개발이란 광풍에 부동산 졸부가 탄생할 테지만, 대부분은 고향을 떠나 흩어질 미래다.
 
<유산>은 경제성장의 과실을 독식한 기성세대에 대해 취업절벽과 자산가치 폭주로 상대적 빈곤감에 휩싸인 미래세대의 분노와 불안을 귀신들린 집으로 형상화한다. 집은 마치 입을 활짝 벌린 채 먹잇감을 노리는 야수의 표정을 하고 있지만 희생물이 될 운명의 주인공은 제 발로 걸어 들어가지 않을 수 없다.

이런 연출은 가족 내에선 부모의 경제력에 의지하기에 종속성을 띌 수밖에 없는 자녀들의 짓눌린 감정을 자극하는 코드로 기능한다. 말 듣기 싫으면 짐 싸서 나가라는 소리에 침묵하게 되는 전형성의 발현이다. 그리고 '노동'의 가치가 바닥에 떨어지고 모두가 주식과 코인과 부동산에 열광하는 현 시대에 주인공이 아니라 누구라도 어렵게 쟁취한 '유산'을 포기할 리 없다는 점이 영화의 비극성을 증폭시킨다.
 
<청년은 살았다.>는 <유산>에서 시작된 세대 갈등과 청년세대의 좌절을 한층 더 밀어붙인다. 수도권 대도시로의 과밀화는 한국사회 균형발전 최대의 난제다. 모두가 문제라고 하지만 누구도 해결하지 못한다. 요즘에는 무한경쟁 나선에서 내려와 자신만의 기준에서 만족할 수 있는 삶을 찾는 시도가 심심찮게 소개되지만 여전히 한국사회 주류의 서울 집중은 더욱 심화되는 중이다.

'청년'은 결국 시골에서도 경제적 빈곤에 시달리다 유혹에 넘어간다. 하지만 주인공의 잘못은 아니다. 그가 소박하게 살고 싶어도 기본적인 삶의 질을 보장할 경제적 수입은 충족되기 어렵다. 결국 돈벌이를 해야 하지만 시골엔 도시에 흔한 아르바이트도 찾기 힘들다. 결국 좌절한 청년은 그가 닮고 싶지 않았던 기성세대의 모습으로 다시 회귀할 수밖에 없는 운명에 처한다. 그렇기에 단편의 제목은 과거형이 되는 것이다. 섬뜩하지만 음울한 세대적 성찰이다.
 
<불안은 영혼을 잠식한다>는 개천에서 용 난다는 기성세대의 로망을 깨뜨리는 동시에 가부장적 집착의 패배를 구현한다. 주인공은 자신이 좌절한 욕망, 이제는 더 이상 통용될 수 없는 방식의 스타탄생을 자식을 통해 이루려 집착한다. 하지만 이제 초등학생 때부터 유망주를 체계적-과학적으로 발굴해 육성하고 될성부를 재목을 집중 관리하는 시스템 하에서 주인공이 아들을 몰아붙이는 스파르타 식 강훈련은 철 지난 퇴행에 불과하다. 하지만 주인공은 이를 용납할 수 없다. 자식의 장래가 아니라 자신의 집착을 부정당한다면 그는 존재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그런 욕망을 그릇된 애정으로 포장해 자위하던 흙수저 주인공의 파멸은 결국 현실을 부정하던 자신의 공백에서 촉발된다.
 
이렇게 4편의 단편 조합은 개별 작품이 가진 고유의 장점을 점점 증폭시키며 대미에 도달한다. 물론 관객은 각자 나름대로의 순서로 4편 작품을 재조립할 수 있다. 그런 상상 또한 작품 해석의 대안적 경로가 될 테다. 하지만 <기기묘묘>의 언뜻 그저 평이해 보이는 장르 중심 조합은 실제로 극장에서 영화를 소화한 뒤라면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할 만한 원심력으로 작용한다. 단편들의 개성이 주는 이질감과 옴니버스 조합의 시너지 효과 중 후자가 명백히 앞서는 실험인 셈이다.
 
<작품정보>
 
기기묘묘 Strange
2022|한국|공포/액션/스릴러
2022.09.22. 개봉|116분|15세 관람가
감독 이탁 〈불모지>, 남순아 〈유산>, 심규호 〈청년은 살았다.>,
김동식 〈불안은 영혼을 잠식한다>
주연 〈불모지> 오민애(서암댁 역), 김재화(화천댁 역)
〈유산> 한해인(효은 역), 유의태(선우 역)
〈청년은 살았다.> 금동호(청년 역), 이양희(괴인 역), 이상희(낚시가게 아저씨 역)
〈불안은 영혼을 잠식한다> 장준휘(성근 역), 김아석(종훈 역), 김최용준(남자 역)
배급 필름다빈
기기묘묘 불모지 유산 청년은 살았다. 불안은 영혼을 잠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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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사회복지영화제 프로그래머. 돈은 안되지만 즐거울 것 같거나 어쩌면 해야할 것 같은 일들을 이것저것 궁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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