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썬다운> 포스터 이미지

영화 <썬다운> 포스터 이미지 ⓒ 엠엔엠 인터내셔널

 
1_젊은 거장의 야심찬 신작은 명불허전 존재감으로
 
우리는 흔히 현대 멕시코 영화의 3대 거장으로 익숙한 세 이름을 떠올리곤 한다. 이 3인방은 바로 '알폰소 쿠아론', '기예르모 델 토로', '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들이다. 영화 좀 본다 하면 굳이 독립예술영화 팬이 아니라도 익숙한 이름들일 것이다. 알폰소 쿠아론의 이름은 <그래비티> <칠드런 오브 맨> <로마>의 우주를 창조했다. 기예르모 델 토로의 영화세계는 <판의 미로>,<헬보이> 1~2부, <퍼시픽 림> <세이프 오브 워터: 사랑의 모양>들로 그 기이한 판타지를 널리 확장하는 중이다. 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는 <바벨>과 <버드맨> <레버넌트>들로 빛나고 있다. 여기에 다음 세대가 가세한다. 이번에 소개하려는 '미셸 프랑코'다.
 
1979년생으로 앞의 3인방과는 15년 이상의 차이가 나는 후속세대이지만 그의 수상경력은 선배 3대 거장과 비교해봐도 그리 떨어지지 않는다. 2012년, 아내를 잃고 사랑하는 딸과 함께 멕시코시티로 이사한 주인공이 딸에게 가해진 집단 따돌림과 동영상 유포에 격분해 벌이는 복수극을 다룬 <애프터 루시아>로 칸영화제에서 '주목할 만한 시선' 대상을 수상한 뒤, 2015년에는 죽음을 앞둔 말기 환자를 헌신적으로 돌보지만 정작 자신의 삶은 등한시하던 호스피스 병동 간호사가 겪게 되는 위기와 갈등을 그려낸 <크로닉>으로 또다시 칸영화제에서 각본상을 수상한다.

그리고 2017년, 모성애보다 여성으로서의 욕망이 앞서는 어머니의 질투가 그려내는 파국을 묘사한 <에이프릴의 딸>로 칸영화제 주목할 만한 시선 심사위원상을 수상해 30대 나이에 칸영화제 3관왕이라는 전대미문의 위업을 달성한다. 불과 4번째 장편으로 이룩한 성과다. 차세대 거장의 탄생에 멕시코 뿐 아니라 전 세계 영화계가 흥분하던 순간이다.
 
칸영화제 3관왕 이후 감독은 새로운 도전에 나서듯 무대를 옮긴다. 2020년 5번째 장편 <뉴오더>는 칸, 베를린과 함께 3대 영화제의 한 축인 베니스국제영화제에 출품된다. 이 작품은 근미래 폭력이 지배하는 멕시코 사회의 모습을 평화롭기 그지없던 파티에서 급속하게 붕괴와 폭동으로 추락시켜내며 보는 이들을 충격에 빠트렸다. 극단적 야만으로 떨어지는 디스토피아를 재현한 <뉴오더>는 베니스 심사위원대상인 은사자상을 수상해 감독의 창의성과 사회적 발언을 양립시킨 수작으로 널리 인정받았다. 그런 감독의 신작은 전작 <뉴오더>의 연장선상에서 계급모순과 사회적 폭력을 끌어오면서도 끓어 넘치는 기운으로 폭주하던 전작과는 대비되는 서늘한 기운과 부조리극의 정서가 가득한 영화다.
 
2_햇빛 찬란한 해변에 스며드는 불길한 냉기의 영화
 
 영화 <썬다운> 스틸 이미지

영화 <썬다운> 스틸 이미지 ⓒ 엠엔엠 인터내셔널

 
닐은 여동생 앨리스와 동생의 두 자녀들과 함께 멕시코의 휴양지 아카풀코의 근사한 호텔 리조트에서 오랜만에 겨우 시간을 내서 휴가를 즐기는 중이다. 닐은 앨리스의 자녀들에겐 친근한 보호자이자 여동생에겐 다정한 오빠다. 부티가 철철 흐르는 근사한 리조트 시설에서 아무 부족한 것 없이 이들은 바캉스를 즐기는 중이다. 하지만 닐과 앨리스의 어머니가 갑자기 급병으로 쓰러지고 이내 사망했다는 비보가 날아든다. 이들 가족은 장례식 절차를 치르기 위해 화급히 귀국길에 오른다. VIP라 그런지 호텔의 수배로 복잡한 항공권 수속도 급히 해결된 상황이다. 하지만 닐은 공항에서 갑자기 여권을 잊었다며 비행기를 타지 않은 채 동생 가족만 먼저 태워 보낸다. 그리고 원래 묵었던 고급 호텔이 아닌 바닷가 인근의 평범한 호텔로 숙소를 옮긴다.
 
이후 그의 행보는 미스터리함 그 자체다. 닐은 마치 동생 가족을 떠나보낸 뒤 해방되어 후련하다는 듯 여유롭게 휴가를 즐기는 것처럼 묘사된다. 그는 여권을 찾는다거나 영사관을 방문하기는커녕 그저 태평하게 해변에서 유유자적한다. 아무래도 여권을 분실했다는 건 그저 핑계에 불과해 보인다. 그런 그에게 동생 앨리스가 계속 연락을 취하지만 닐은 핑계만 늘어놓는다. 그러다 여동생의 거듭되는 전화가 성가시자 어느 순간부터 아예 전화기를 던져놓고 확인조차 않는다. 닐은 어머니의 장례식은 관심조차 없는 듯 아카풀코 해변의 일광욕에 푹 빠진다. 숙소로 돌아가던 길에 맥주를 사기 위해 곧잘 들르던 가게에서 만난 매력적인 현지 여인과 사귀기도 하면서 그는 세상만사 될 대로 되라는 듯 혼자만의 휴가를 만끽하는 중이다.
 
하지만 해변의 일광욕과 데이트를 누리는 중에도 언뜻 불길한 기운은 가시지 않는다. 닐에겐 끊임없이 동생의 급한 전갈이 날아들고 그럴 때마다 그의 표정은 (속을 알 순 없지만) 꽤나 곤혹스러워 보인다. 그리고 어느 날 여유로운 해변 데이트 중 바로 옆자리 테이블에서 총격 살인사건이 벌어지기도 한다. 평화롭게 사람들이 해수욕을 즐기던 바다에서 모터보트를 타고 온 누군가가 웨이터를 총으로 쏜 뒤 유유히 사라져간다. 하지만 해변의 사람들은 무덤덤하다. 총격 순간엔 놀라서 비명을 지르지만 범인들이 사라져가자 금방 잠잠해진다. 사건현장 주변에 모여든 사람들은 아무렇지 않은 듯 휴대전화로 살인현장을 촬영만 한다. 피해자에게서 흐르는 피가 바닷물에 작은 해류처럼 스며들 따름이다. 무엇인가 이 영화에는 감춰진 내막이 있는 게 분명하게 느껴진다. 그것도 아주 음산한 전조와 함께.
 
그렇게 위태롭던 닐의 휴가는 끝내 그의 행방을 수소문해 찾아온 앨리스에 의해 깨어지고 만다. 대체 이들 가족 사이에는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 서서히 주인공 가족의 비밀이 밝혀지기 시작한다. 그와 함께 아름다운 휴양지의 어두운 속사정이 어우러져 <썬다운>의 영화적 시공간은 하나의 거대한 불신과 폭력이 자리 잡은 세계로 재구성되기 시작한다. 영화 초반부, 너무나 화기애애하고 유복해 보이던 친척들과 평화롭기만 하던 해변의 풍경은 그저 겉껍데기에 불과했던 것일까? 그리고 주인공 닐의 한없이 권태로운 표정은 음모를 가득 품은 위선에 불과할 뿐일까?
 
3_위선의 태양 아래, 그곳 아카풀코에서
 
 영화 <썬다운> 스틸 이미지

영화 <썬다운> 스틸 이미지 ⓒ 엠엔엠 인터내셔널

 
영화는 전작 <뉴오더>의 폭발력과 속도감에 반비례하는 느린 질감으로 가득하다. 마치 주인공이 느릿느릿 바닷가를 거니는 것을 연상케 하는 진행속도다. 진행의 속도감만 놓고 보면 퍽 이질적인 두 작품이다. 그러나 세세히 뜯어본다면 마치 거울에 비친 모습처럼 서로 묘한 대비를 이루는 연작 성격에 가깝다.
 
영화의 중반까지는 확실히 지루할 정도로 반복되는 해변의 일상이다. 하지만 그 속에 내내 감춰져 있던 주인공이 속한 세계의 진면목이 점차 드러나기 시작한다. 그리고 주인공이 속한 서구세계의 백인 부유층에게 휴양지 리조트가 선사하던 호사와 안전의 장막은 점점 벗겨지기 시작한다. 이제 영화는 아카풀코 휴양지의 민낯과 자본주의 체제 하에서의 가족이라는 집단의 본색을 낱낱이 끄집어내버린다. 가면을 벗겨버린 민낯의 이면에 선크림 따위 제공되는 일 없이 작렬하는 해변의 땡볕 아래 고스란히 노출시켜버린 격이다. 당연히 별탈이 없을 리 없다. 주인공이 일광욕 중에 종종 피부가 벗겨진 허물을 긁어낼 때마다 묘하게 자극이 되더라니 역시나 그랬다. 평화로운 해변을 순찰하는 무장한 연방경찰과 해병대원의 등장은 이곳 아카풀코가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유토피아로 통제되고 있다는 것을 상징한다.
 
영화 초반엔 아카풀코 구시가지와 신시가지 사이를 잇는 빈민가에서 벌어지는 마약 카르텔들과 공권력 사이의 전쟁 같은 건 전혀 실감되지 않는다. 마치 중세의 성채 같던 호텔 리조트 속의 인공 낙원과 함께 아카풀코의 명소인 '라 케브라다', 45미터 높이의 수직 절벽에서 뛰어내리는 일명 '죽음의 다이빙'을 선보이는 현지 공연 팀에 열광하며 관광객들은 열대의 낙원을 만끽한다. 접대하는 직원들은 친절하고 음식과 술은 최상급이며 부르기만 하면 모든 게 제공될 준비가 끝난 상태다.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다.
 
하지만 주인공은 종종 작렬하는 열대의 태양이 부담스러워 손으로 눈을 가리고 눈을 찡그리곤 한다. 그런 위선의 태양 아래 풍광은 후반부에서 점점 등장하기 시작하는 직접적 폭력과 빈민가 풍경의 이미지들로 껍데기를 뜯어내고 가시화된다. 그런 과정에서 자신이 몰래 꿈꿨던 의도와는 달리 그가 실제로 의도했던 모든 것들은 산산이 부서져 무너진다. 폭력에 무감각해져버린 멕시코 사회의 살풍경이 닐에게도 이제 피부로 와 닿기 시작한다. 감독은 주인공이 구류된 멕시코 감옥, 넷플릭스에서 시리즈로 제작중인 <지상 최악의 교도소에 가다> 시리즈에서 단골손님으로 등장하는 자국 교도소 풍경을 제대로 재현시켜놓았다. 물론 그는 '빠삐용'처럼 억울하게 누명을 쓰고 썩을 일은 없다. 그에겐 가문의 변호사와 자국 영사관이 있으니깐. 하지만 결국 닐이 바라던 세계는 더 이상 복구 불가능한 지경에 이른다. 결국 주인공에게 남은 건 과연 무엇일까.
 
<썬다운> 속에는 두 개의 세계가 등장한다. 서구의 부유층인 닐과 앨리스 가족, 그리고 화려한 휴양지 아카풀코다. 영화 도입부에서 이 두 세계는 너무나 자연스럽게 어우러져 있다. 이 가족은 영화를 보는 이들이라면 누구나 저런 곳으로 여름 바캉스를 한번 가봤으면 상상해 봤음직한 최고급 리조트를 독점하듯 사용하며 최상의 서비스를 누린다. 무엇하나 부족할 것 없어 보인다. 닐의 조카들은 삼촌에게 격의 없이 친근하고 엄마인 앨리스에게 일 좀 그만 하라며 응석을 부려댄다. 마르가리타 칵테일과 최고급 스테이크가 그림 같은 풀장에 바로 서비스된다.

하지만 이런 휴양지는 아카풀코의 동부지대에 새로 조성된 고급 휴양시설 내 '호캉스'일 뿐, 이들은 실제로 아카풀코 도시와는 아무런 접촉이랄 게 없는 시간을 보내던 참이다. 그러나 그의 가족들이 내면에 감춘 위선과 경계는 멕시코 사회에 만연한 원초적 폭력과 절묘하게 싱크로를 이룬다. 주인공이 후반에 겪는 가족에 의한 마음의 폭력과 그가 구속 전후에 멕시코에서 경험하는 물리적 폭력은 또한 기이한 조화로 매치된다.
 
닐은 아마 조금 더 개인적이고 비전형적인 삶을 꿈꿨던 것으로 보인다. 그는 타인들이 의심할 만큼 많은 것을 포기할 각오를 한 채로 가문의 중요한 제의가 될 장례식에 빠진다. 그로 인한 가족의 비난과 문책에도 기꺼이 그는 이 기회에 '파락호'가 되려는 듯하다. 그의 의도는 하지만 구체적으로 밝히기 전까지는 (자본주의적 사고에 찌든) 누구라도 믿기 힘들 내용이다. 그리고 그의 소망은 무척이나 불가항력적인 부조리로 인해 이뤄지지 못할 운명이었다. 그 모든 걸 포기한 채 유일하게 바라던 것조차 과연 그에게 남겨질 수 있을까?
 
4_고대 그리스 비극의 주인공처럼
 
 영화 <썬다운> 스틸 이미지

영화 <썬다운> 스틸 이미지 ⓒ 엠엔엠 인터내셔널

 
닐은 동생 가족을 공항에서 비행기에 실어 보낸 뒤에야 비로소 아카풀코 해변과 접할 수 있게 된 셈이다. 그는 이제야 제대로 휴가를 왔다는 듯 편안한 표정으로 바닷가에 발 담그고 맥주를 들이키며 유유자적한다. 마치 <쇼생크 탈출>에서 주인공이 탈옥하면 그간 감옥에서 억울하게 보낸 시간을 보상받겠다며 '시간이 멈춘' 태평양 해변마을 '지후아타네호'에서 보내겠다던 여생이 구현되는 것처럼. 그리고 중년의 나이에 유복한 환경임에도 독신으로 지내던 그에게 매력적인 연인도 생긴다. 이건 <칼리토> 속 주인공이 꿈꿨으나 끝내 도달하지 못했던 꿈 그 자체다. 하지만 칼리토가 끝내 마지막에 실패로 끝나듯 과연 주인공은 그런 희망을 온전히 누릴 수 있을까?
 
물론 이미 영화는 불길한 기운을 가득히 풍기고 있다. 게다가 '봉테일'이 극찬한 부조리극이라는 점 때문에 결코 주인공의 미래가 순탄하지 않을 것임은 쉬이 짐작할 수 있겠다. 하지만 통속적인 상업영화들이 취할 법한 음모론이나 스릴러 장르문법과 <썬다운>의 이야기는 아득히 거리가 멀다. 닐의 숨은 의도는 의외로 아주 간단하고 정직하다. 다만 그의 품은 속내를 가족들 중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다는 게 문제다.

아무리 닐이 자기는 그렇지 않다고 말해도 그토록 친근하던 가족들은 그를 불신하고 적대시한다. 설마 그럴 리가 하면서 말이다. 그리고 그는 점점 아카풀코의 실체 속으로 뚜벅뚜벅 걸어 들어간다. 그런 가운데 원래 닐이 꿈꿨던 계획은 부서져 버린 지 오래다. 그리고 서서히 그에게도 천재지변 같은 운명이 엄습한다. 그리고 닐은 담담히 그런 미래를 받아들인다. 그 모든 게 벌어지는 아카풀코는 햇볕이 너무나 찬란히 쏟아지는 도시다.
 
아카풀코 해변의 눈부신 태양은 인간의 의도 따위는 무시한 채 그저 날것 그대로 자신의 권능을 뽐내듯 보인다. 그런 장면마다 아즈텍 제국의 사제들이 태양을 향해 인간의 심장을 산 제물로 바치던 원초적 폭력의 향연이 연상되기 시작한다. 아즈텍 사제들은 태양이 멈추면 인류가 종말을 맞게 될 테고, 태양은 점점 느려지고 있기 때문에 그 세차운동 속도를 높이려면 태양의 붉은 기운을 북돋기 위해 피를 바쳐야 한다고 믿었다.

<썬다운>의 태양은 마치 그런 아즈텍 신화 속 존재처럼 인간의 의도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는 절대자처럼 보인다. 개인이 어찌할 수 없는 현대 멕시코 사회의 만성화된 폭력과, 그에 비해선 세련되어 뵈지만 결국 돈이 지배하는 서구 사회의 자본주의적 속성이 만나는 자리로 겉과 속 다른 아카풀코 해변의 낮과 밤은 무척이나 자연스럽게 어울린다. 그리고 감독과 손발을 이미 맞춰왔던 명배우 팀 로스의 권태 가득한 주인공 닐 역은 그야말로 배우의 뛰어난 연기경력에서도 인생연기로 손꼽힐 만하다.
 
<작품정보>
썬다운 Sundown
2021|프랑스, 멕시코, 스웨덴|드라마
2022.08.31. 개봉|82분|15세 관람가
감독 미셸 프랑코
주연 팀 로스(닐 배냇), 샤를로뜨 갱스부르(앨리스 배냇)
출연 헨리 굿맨, 아주아 라리오스, 사무엘 보텀리
제작 미셸 프랑코, 에렌디라 누녜스 라리오스, 크리스티나 벨라스코
각본 미셸 프랑코
촬영 이베스 카페
편집 오스카 피규로아, 미셸 프랑코
수입 엠엔엠 인터내셔널
배급 엠엔엠 인터내셔널
 
2021 78회 베니스영화제 경쟁
2021 46회 토론토국제영화제 스페셜 프레젠테이션
2021 57회 시카고국제영화제 경쟁
2021 65회 BFI 런던영화제 경쟁
2021 엘구나영화제 작품상
2022 33회 팜스프링스국제영화제 이베로-아메리칸 작품상 후보
썬다운 미셸 프랑코 팀 로스 샤를로뜨 갱스부르 뉴오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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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사회복지영화제 프로그래머. 돈은 안되지만 즐거울 것 같거나 어쩌면 해야할 것 같은 일들을 이것저것 궁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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