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아이를 위한 아이> 포스터

영화 <아이를 위한 아이> 포스터 ⓒ (주)트리플픽쳐스

 
<아이를 위한 아이>의 사전정보를 이것저것 검색하면서 자연스럽게 한 편의 영화를 떠올렸다. 2014년 김태용 감독의 <거인>이다. 부모가 부양할 능력(혹은 책임감)이 없었던 주인공은 그룹-홈에서 성장했지만 성년이 되어서 시설을 나가야 하는 상황에 놓인다. 친부모가 있긴 하지만 딱히 자신에게 도움을 줄 능력도, 생각도 없어 보인다. 주인공 영재는 어떻게든 시설에서 후견인을 구하거나 지원을 받을 방도를 궁리하는 데 필사적이다. 자연히 불안 초조한 내면과 겉으로는 착하고 성실한 외면의 이중성을 띠게 된다. 마치 보호소의 유기견 일부가 취하는 태도처럼 말이다. 잔잔한 반향을 일으켰던 <거인>은 배우 최우식의 얼굴을 각인시켰던 작품이자, 그룹-홈에 대해 약간은 알게 만든 영화였다.
 
영화에 대해 이것저것 알아보니 아하 역시 그랬구나! 하고 감탄사가 나왔다. 본 작품이 장편데뷔인 이승환 감독은 <거인>의 연출부 출신이었던 것이다. 근래에는 작년에 개봉했던 <좋은 사람> 조감독도 맡았었다. 본인의 단편영화 작업과 타 영화 스태프 참여를 병행하며 오랜 기간 준비한 끝에 <아이를 위한 아이>를 세상에 선보인 셈이다. 그런 감독의 참여 작업과 주요 이력을 살펴보니 이 영화, <아이를 위한 아이>의 질감이 절로 이해가 갔다. 이 영화 역시 <거인>처럼 그룹-홈에서 곧 나가야 할 19살 소년이 주인공이다. 자신에게 의미 깊은 참가작의 벤치마킹인 걸까? 진실을 확인해볼 시간이다.
 
1_주인공에게 닥친 강요된 겹겹의 '우리'

 
 영화 <아이를 위한 아이> 스틸 이미지

영화 <아이를 위한 아이> 스틸 이미지 ⓒ (주)트리플픽쳐스

 
도윤은 어릴 적 보육원에 맡겨져 성장한 소년이다. 그는 이제 곧 만 18세 성년이 된다. 그래봐야 한국 나이 19살, 고3이다. 이제 주민등록증을 발급받고 성인 자격을 갖는다. 그리 되면 그에겐 유일한 '집'과 같던 보육원을 나와 자립해야 한다. 보호기간은 이제 딱 한 달 남은 상태다. 대학 진학도 생각 없고 인생계획을 설계하기엔 너무 이른 나이다. 그가 시설을 퇴소하면 받는 건 정착지원금 500만 원이 전부다. 서울이라면 월세 보증금으로 딱 끝날 금액을 손에 쥔 채 세상에 홀로 직면해야 하는 처지다.
 
도윤은 배달대행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돈을 모은다. 호주에 가 있는 보육원 출신 형이 500만 원을 모으면 워킹 홀리데이 과정을 알아봐준다고 한다. 도윤은 자신이 '고아'라는 낙인을 신경쓰지 않아도 될 미지의 낯선 공간에서 새로이 출발하길 꿈꾼다. 그런 어느 날 갑자기 도윤에게 자신이 친아버지라 주장하는 승원이 나타난다. 자신을 버리고 떠났다가 15년 만에 뜬금 없이 '부모노릇 안 했으니 이제라도 해보겠다' 하며 되돌아온 자칭 아버지가 그는 통 탐탁스럽지 않다. 하지만 보육원장은 도윤에게 장래를 생각해 아버지와 함께 살기를 권한다.
 
처음엔 괘씸하고 미심쩍기도 했지만 그는 어차피 딱히 미래 대책도 별로 없던 상황이다. 다만 마치 '짜고 친' 것 마냥 급작스런 전개가 맘에 들지 않는다. 도윤은 승원에게 버릴 땐 언제고 이제야 찾으러 와서 아버지 행세하느냐며 역정을 내지만 하필 그 자리에서 뛰쳐나가다 교통사고를 당하고 만다. 그 바람에 어차피 당장 호주를 갈 처지도 못 되자 여차저차 일단 승원의 집에 들어가 지내기로 한다. 돈만 모으면 이제 나도 어른이니 뒤도 안 돌아보고 사라지겠다는 계산을 한 채.
 
그런데 집에 가보니 또 다른 변수가 있었다. 그에겐 배다른 동생 재민이 있었던 것이다. 어른행세를 하지만 이제 갓 19살인 도윤에겐 모든 게 혼란의 연속이다. 생전 처음 보는 '가족'이 금방 가까워질 리 없고, 자신의 불우한 삶과는 다르게 유복하고 화목해 보이는 승원과 재민을 보면서 괜히 성질도 부려보는 시간이 이어진다. 그렇게 주인공은 티격태격하면서 새 가족들과 거리감을 한동안 유지하지만 '피는 물보다 진한' 것도 같다. 그렇게 언젠가부터 감춰진 '츤데레' 기질을 도윤은 여실히 드러내기 시작한다. 이제 정말 자신에게도 '가족'이 생긴 것만 같다.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게' 되기까지 이른다. 그리고 반전이 찾아온다.
 
영화의 메인 예고편을 장식하는 주인공의 독백, "나는 새로운 '우리'가 된 줄 알았지만, 여전히 새로운 '우리' 안에 갇혀 있었다"의 상황이 도래한다. 제목과 직결되는 상황인 셈이다. 도윤은 혼란한 가운데 악전고투하며 새롭게 만난 가족을 지키고자 노력한다. 그런데 연 타석으로 또 다른 가족의 비밀이 밝혀진다. 과연 이 가족은 유지될 수 있을까?
 
2_전통적 가족 드라마에서 대안가족 모델로의 변주
 
"아이를 위한 아이" 스틸 영화 스틸 이미지

▲ "아이를 위한 아이" 스틸 영화 스틸 이미지 ⓒ (주)트리플픽쳐스

 
영화 초반은 한국독립영화에서 늘 일정부분을 점유해왔던 익숙한 소재를 활용하는 것처럼 보인다. 의도치 않은 상황에 휘말리는 소외된 청소년 묘사의 궤를 전형적으로 따라간다. 도입부부터 곧바로 스테레오 타입으로 의심할 만큼 독립영화 좀 본 관객이라면 다음 행동이 충분히 예상 가능한 캐릭터와 장면들이 펼쳐지는 것이다. (솔직히 초반엔 그 때문에 이 영화에 대한 우려가 앞섰던 기억이다) 언제든 늘 건드리면 폭발할 것 같은 분노를 간직한 도윤은 착하게 살고 싶지만 세상이 그를 돕지 않는다.
 
주인공은 누구라도 한번 자기 신경을 긁기 시작하면 분노조절장애를 쉬 떠올리게 할 법한 모습을 여과 없이 선보인다. 사회문제가 된 지 오랜 상황, 배달 알바에 대한 '손놈'들의 진상짓 묘사가 보는 이의 불편함을 애써 자극하면 기다렸다는 듯이 도윤은 거칠게 폭발한다. "부모가 뭐하기에?"나 "가정교육이 문제"라는 대수롭지 않게 내뱉는 '손놈'들의 막말에 도윤은 절대 그냥 넘어갈 수 없다. 오프닝에서 관객의 시선을 확 잡아끌려는 용도이자 캐릭터에 대한 해설 역할이겠지만 조금 늘어지고 과잉이란 느낌이 따라붙는다. 초반 눈살 찌푸려지는 장면에 대한 호불호가 제법 갈릴 듯하다.
 
(오프닝에서 화끈하게 선보인 그대로) 욕을 입에 달고 담배를 피우며 자존심 건드리면 물불 안 가리는 도윤이었지만, 이야기가 전개되면서 결국 그 나이대에 어울리는 소년이라는 점이 부각되기 시작한다. 화장실에서 만난 담임과의 운동장 대화 장면은 그런 도윤의 실체를 효과적으로 조명하며 (화끈하지만 평면적이던) 캐릭터를 확장해낸다. 초반 거친 모습은 점점 순박하고 공감 가능하게 바뀌어간다. 이 지점에서 주인공 역할을 맡은 배우의 이미지가 제법 잘 어울려 시너지 효과를 톡톡히 발휘하고 있다.
 
주인공에 대한 묘사가 변화되는 것과 보조를 맞춰 훈훈하게 '그렇게 가족이 된다'는 분위기로 이야기가 흘러갈 때 쯤 감독은 공들여 준비했던 비장의 장치들을 연달아 선보인다. 조금 식상하게 느꼈던 초반 설정을 보완해 가며 관객이 한눈 팔 틈 없도록 흥미를 높이는 전개가 이어진다. 이보다 더 복선일 수 없다고 관객이 고개를 끄덕일 만큼 정직하게 암시해놓은 영화 제목이 기발하다는 감탄이 나올 순간이다. 나 자신이 성장하기 위해선 자기 앞가림도 중요하지만 '어른의 의무'를 다해야 한다는, 정작 자신은 받지 못했던 것을 타자에게 해줘야 한다는 진실을 도윤은 좌충우돌하면서 소화하게 된다.
 
영화는 가족의 정의와 범위에 대해, 미성년자의 법적 지위에 관해, 그리고 보육원에서 생활하는 청소년들의 일상과 심리에 대해 이것저것 풀어낸다. 미래가 불투명한 상황에서 부모라는 울타리 없이 그나마 보호자 기능을 수행하던 복지기관에서 강제로 방출되어야 할 도윤 앞에 닥쳐온 산적한 골칫거리와 함께 주인공과 같은 처지의 청소년들에 대한 겉핥기가 아닌 묘사가 영화 전반에 흐른다.
 
도윤 자신이 전혀 기대하지 못했던, 하지만 비슷한 처지라면 누구라도 갈구해왔을 대상, '가족'이란 존재가 자신에게 탄생하는 것 같은 기회, 시설의 '동생' 창림이 선망하던 다시 찾은 '가족'의 실체와 이에 대한 도윤의 대응이 영화 중후반의 긴장을 끌어나간다. 자신에게 제대로 된 상황 설명은커녕, 심지어 동의를 구한 것도 아니면서 자기들 본위대로 멋대로 판단하고 결정하는 주변 어른들을 주인공은 도저히 납득할 수 없다. 하지만 가족 공동체의 본원적 의의를 떠올리게 하는 관계로 제시되는, 동생 재민과의 격한 감정선들이 서로 연결되면서 장편영화에 어울리는 호흡과 밀도를 유지한다.
 
저예산 영화의 전형적 모델에서 오는 한계는 분명히 존재한다. 하지만 오랜 현장 스태프 경력의 감독은 아마도 자신의 가용 범위 내에서 최선을 다했을 테다. 독립영화에 쉽게 출연할 일 없어보이던 아버지 승원 역의 정웅인, 그리고 스타 배우 아역 전문이라는 자조 섞인 찬사가 함께 하는 재민 역의 박상훈 배우 캐스팅은 제작진의 발품과 문어발 덕에 성사되었으리라. 
 
여기에 보육원 내에서 함께 생활하며 형제처럼 지내는 도윤 역의 현우석 배우와 창림 역의 김수겸 배우가 또 다른 유사 버디물의 분위기를 풍긴다. (둘 다 전문연기자가 아닌 모델 경력으로 출발한 배우들인데도 풍겨오는 이미지가 만만찮다) 영화에는 독립영화계 중견 배우들이 적지 않게 등장한다. 비밀을 숨긴 보육원장을 맡은 길해연 배우는 배우가 가진 고유한 이미지를 적절히 선보이지만 몇몇 베테랑 연기자들이 다소 도구적 역할로만 활용되는 모양새는 조금 아쉽다.
 
3_데뷔영화로선 충분히 만족스러운 가족 성장영화의 변주
 
"아이를 위한 아이" 스틸 영화 스틸 이미지

▲ "아이를 위한 아이" 스틸 영화 스틸 이미지 ⓒ (주)트리플픽쳐스

 
영화는 비밀을 풀어가는 미스터리 구조와 청소년 성장물의 전형적 요소를 조합한다. 격한 초반부가 마음에 들었다면 후반부는 너무 말랑말랑할 수도 있다. 그 반대의 경우 역시 비슷할 테다. 하지만 필자의 견해로는 명백히 이 영화는 후자가 초점인 작업이다. 초반의 다소 상투적이지만 주인공의 상황을 설명하기 위한 파괴적 순간들은 그저 '거들 뿐'이란 판단이다. 주인공 도윤이 '어른이 되기 위한' 성장통의 과정은 충분히 공감대를 획득하고 성장을 확인할 만한 성취로 드러난다. 감독은 자신의 첫 장편을 위해 나름대로는 남들 모르게 절치부심해가며 시나리오를 완성했을 법하다.
 
그런 준비동작을 충실히 거친 이야기는 식상해지기 쉬운 해설은 과감히 축약한 채 장거리 레이스처럼 꾸준히 달리는 상태다. 배다른 형제가 '티키타카' 한판 제대로 벌여낸다. 그 결과론으로 비온 뒤에 땅이 굳듯 서로를 이해하고 존중하며 행복하게 살면 되겠다는 '합의'를 도출한다. 결말부의 풍경 스케치는 별것 아닌 듯 보여도 제법 혁신적인 내용으로 이어진다. 그런 일련의 과정을 거쳐 영화는 가족 소재 영화에서 흔한 동어반복을 지레 겁먹던 이들에게 안도의 한숨 뿐 아니라 은근한 도발과 불협화음을 선사한다. 장르의 변주로서는 썩 나쁘지 않은 조건으로 영화는 완성되었다.
 
작품의 문제의식은 충분히 주목할 만하다. 통속적으로 가족을 소재로 한 작업들은 늘 '피는 물보다 진하다'라는 진부한 명제를 남용하고 착취해 왔다. 영화는 그런 전형성을 좇아가는 듯 보이다 어느 순간부터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좀도둑 가족>이 선보인 경지에 도전하려 한다. 고레에다는 자신이 '가족 영화'를 만드는 이유는 인간의 다면성을 드러내기에 이보다 더 좋은 소재가 없기 때문이라고 몇 차례 인터뷰에서 밝힌 바 있다. 이승환 감독 역시 자신이 적잖게 영향 받았을 <거인> 작업 시절부터 심중에 유사한 고민을 품어오다 이야기로 옮겼을 테다. 그렇게 고정관념을 비틀어내면서 '가족'이란 최소 형태의 원초적 공동체가 갖는 본원적 의미 탐구에 살짝 발을 들인다.
 
하지만 1990년생인 감독은 여기에 청춘영화의 기운을 더한다. 물론 그 '청춘'은 장밋빛일 리 없지만 그렇다고 주목을 받기 위해 한국독립영화의 일각에서 남용해 왔던 극단적 폭력의 결말을 택하진 않는다. 중반부와 후반부에서 터닝 포인트가 되는 결정적 반전의 연속운동을 도출하는 과정에서 주인공 도윤의 주체적 결단은 스스로를 성장시킨다. 그 일련의 상황은 영화의 제목이 정확히 암시하는 셈이다. 즉, 이 영화는 '제목이 곧 스포일러'다.
 
자신에게 19년 동안 한 번도 허용되지 않았던 권리, 자기 운명 결정권을 스스로 행사하는 도윤의 성장이 영화의 화룡점정에 결정적 동력으로 기능한다. 아마 감독 본인이 보고 싶었던 결말이리라. 오랜 시간 영화 현장에서 학습하며 자신만의 영화를 꿈꿔왔을 감독이 가장 먼저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곧 감독 본인의 세계관과 통하지 않을 수 없을 테다. 그 결과물은 신인 감독의 첫 장편임을 감안하고 본다면 딱 적절하게 탄생했다. <아이를 위한 아이>는 장르물의 다소 관습적인 클리셰를 뛰어넘었고, 억지춘향 격 해피엔딩이 아닌 산뜻한 의외성이 가미된 미래지향적 결말로 관객을 이끌 만큼의 에너지는 충분히 갖춘 작품이다. 감독의 다음 작품이 기대될 만큼.
 
<작품정보>
아이를 위한 아이 A Home from Home
2021|한국|드라마
2022.07.21. 개봉|96분|12세 관람가
감독 이승환
주연 현우석(도윤 역), 박상훈(재민 역), 정웅인(승원 역)
출연 길해연(원장 역) 김자영(이모 역) 김수겸(창림 역) 정순원(배달사장 역)
김준석(도윤 담임 역) 김현정, 김휘규, 양지일
제작 고집스튜디오
배급 (주)트리플픽쳐스
아이를 위한 아이 이승환 감독 현우석 배우 박상훈 배우 정웅인 배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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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사회복지영화제 프로그래머. 돈은 안되지만 즐거울 것 같거나 어쩌면 해야할 것 같은 일들을 이것저것 궁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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