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울루 벤투 감독이 EAFF(동아시아축구연맹) E-1 챔피언십(동아시안컵)에 나설 축구대표팀 명단을 발표했다. 동아시아연맹 챔피언십은 한국, 일본, 중국, 홍콩의 4개국이 참가하여 오는 7월 20일부터 일본 나고야의 도요타 스타디움에서 풀리그로 열린다.
 
4회 연속 우승에 도전하는 대한민국은 20일 중국과의 첫 경기를 시작으로 24일 홍콩, 27일 일본과 차례로 대결한다. 이 대회는 국제축구연맹(FIFA) A매치 의무 차출 규정 대회가 아니기 때문에 손흥민-황희찬-김민재-황의조 등 유럽파 정예멤버들은 합류하지 않는다.
 
 지난 6월 14일 서울 마포구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남자 축구 국가대표팀 친선경기 한국 대 이집트 경기에서 파울루 벤투 감독이 경기를 지켜보고 있다.

지난 6월 14일 서울 마포구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남자 축구 국가대표팀 친선경기 한국 대 이집트 경기에서 파울루 벤투 감독이 경기를 지켜보고 있다. ⓒ 연합뉴스

 
11일 발표된 명단에는 K리거를 주축으로 총 26명의 선수가 이름을 올렸다. 해외파는 중국에서 뛰는 손준호(산둥 타이산)와 일본 리그의 권경원(감바 오스카), 러시아 소속의 황인범(루빈 카잔)만이 합류했다. 벤투호 부동의 주전멤버 중 한 명인 황인범은 러시아 리그의 특수한 사정상 국제축구연맹의 특별규정을 적용받아 6월까지 K리그 FC서울에서 단기 임대로 활약하면서, 소속상 유일하게 유럽파임에도 이번 E-1 챔피언십에는 이례적으로 차출이 가능했다. 황인범은 지난 2019년 대회 MVP이기도 하다.
 
E-1 챔피언십은 사실상 2022 카타르월드컵 출전을 노리는 국내파에게는 '라스트 찬스'로 여겨진다. 2018년 출범하여 어느덧 4년째를 맞이한 벤투호는 이미 본선에 나설 주축 선수들의 윤곽이 거의 드러난 상황이다. 9월에 열리는 A매치에서는 유럽파 선수들이 복귀하면서 사실상 최종엔트리가 완성단계에 접어들 것이 유력하다.
 
벤투호에서 아직 확실한 입지를 다지지 못한 국내파 선수들은 유럽파들이 빠진 이번 대회에서 어떻게든 벤투 감독의 눈도장을 받아야 할 필요가 있다. 반면 이번 E-1 챔피언십에서 좋은 활약을 보여주지 못했거나 아예 엔트리에도 이름조차 올리지 못한 선수들은 월드컵이 멀어졌다고 봐도 무방하다. 그래서 이번 E-1 챔피언십 선수선발은 일찌감치 언론과 팬들에게도 초미의 관심사가 됐다.
 
명단이 공개되자 이번에도 벤투 감독의 선수발탁 기준을 놓고 평가가 엇갈리고 있다. 예상대로 벤투 감독은 지난 6월 A매치에서도 부름을 받았던 조규성, 권창훈(김천상무), 조현우,김영권, 엄원상,(이상 울산현대), 홍철(대구FC), 김진수, 김문환, 송민규, 백승호(이상 전북현대), 황인범 등 익숙한 선수들을 이번에도 대거 선발했다. 선수선발의 연속성과 자신만의 기준을 중시하는 벤투 감독의 '마이웨이' 성향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반면 리그에서 좋은 활약을 펼치고도 벤투 감독의 외면을 받은 선수들도 존재한다.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이승우(수원FC)다. 유럽무대에서 뛰다가 올시즌 K리그로 돌아온 이승우는 초반 잠시 적응기를 거친 끝에 전반기에만 9골 2도움으로 두 자릿수 공격포인트를 달성하며 어느덧 팀의 에이스로 급부상했다. 수원FC가 초반 부진을 딛고 리그 6위까지 올라올 수 있었던 데는 이승우의 활약이 결정적이었다. 벤투호에서도 이미 초기에 몇 차례 승선한 경험이 있다.
 
최근 이승우의 폼이 워낙 좋은 데다 벤투 감독도 이승우의 스타일을 잘 알고 있다는 점, 2018 러시아월드컵 멤버로 국제대회 경험도 풍부하고, 현재 대표팀에 가장 부족한 '크랙' 역할을 해줄 수 있다는 희소성 등을 고려할 때 이번에야말로 대표팀 복귀를 예상하는 여론이 우세했다. 선수 본인도 대표팀에 대한 의지를 숨기지 않았다. 하지만 벤투 감독은 이번에도 이승우를 끝내 외면했다. 
 
그런데 사실 그동안 벤투 감독의 스타일을 고려하면 놀랄만한 일도 아니다. 벤투 감독은 선수를 선발할 때 소속팀에서의 성적보다도, 자신의 축구스타일에 부합하는지를 더 중요시했다. 
 
이승우가 활약할 수 있는 2선과 최전방은 이미 손흥민, 황희찬, 황의조, 이재성 등 유럽파는 물론이고 조규성, 엄원상, 나상호 등 국내파 자원들도 풍부하다. 기술과 골결정력은 뛰어나지만, 몸싸움-수비가담-멘탈 기복 등 장단점이 뚜렷한 이승우는 벤투 감독 입장에서는 매력적인 카드가 아닐 수 있다. 
 
물론 언론과 팬들의 반응은 엇갈린다. '이번 만큼은 이승우를 뽑았어야 한다'라는 주장과 '선수선발과 책임은 어디까지나 감독의 몫'이라는 반론이 팽팽하게 맞서고 있다. 둘다 일장일단이 있기에 섣불리 한쪽의 손을 들어주기는 어려운 내용들이다.
 
이승우 논란의 핵심

이승우 논란의 핵심은 '이승우라서가' 아니라 '공정한 기회의 형평성'에 대한 문제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벤투 감독 체제 들어 소속팀에서 좋은 활약을 보이고도 대표팀에서는 줄곧 외면받은 K리거는 이승우만이 아니다. 지난 시즌 K리그 득점왕이자 올 시즌도 전체 2위(12골)을 달리고 있는 주민규(제주), 지난 시즌 MVP로 리그 최소실점팀 전북의 수비를 책임지고 있는 홍정호(전북) 등이 대표적이다.
 
감독은 자신이 원하는 선수들을 뽑을 수 있는 권한이 있다. 하지만 누구는 소속팀에서 아무리 좋은 활약을 보여도 대표팀에서 경쟁할 최소한의 기회조차 얻지 못하는 반면, 누구는 소속팀에서의 성적이나 최근의 폼과 상관없이 무한한 신뢰를 얻는다면 선수들은 감독의 기준과 형평성에 의문을 품고 대표팀에 대한 동기부여도 잃을 수밖에 없다.
 
한편으로 대표팀의 상황이나 방향을 고려하지 않고, 언론과 여론이 무조건 특정선수를 발탁해야 한다고 감독을 압박하는 것도 좋은 모습은 아니다. 이승우는 좋은 선수이고 최근 폼이 좋았던 것도 사실이지만, 소속팀과 대표팀의 상황은 엄연히 다르다.

현재 벤투호의 가장 큰 문제는 공격보다도 오히려 수비불안에 있었다. 특히 보강이 시급한 포지션은 바로 수비형 미드필더였다. 부상 우려에도 1년 만에 손준호을 대표팀에 복귀시킨 이유다. 뿐만 아니라 벤투 감독이 고영준(포항 스틸러스), 이상민과 강성진(FC서울), 김주성(김천상무), 이기혁(수원FC) 등 새 얼굴을 대표팀에 발탁한 것도 주목할 만하다. 어쩌면 이들 '제 2의 조규성' 같은 선수가 나올 수도 있다. 

벤투 감독은 다가오는 E-1 챔피언십,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카타르월드컵에서 자신의 선택이 옳았음을 결과로서 보여줘야 한다. 또한 이승우는 비록 이번 월드컵은 멀어졌지만 아직도 20대 초중반에 불과하다. 대표팀과는 별개로 K리그 복귀를 선택한 것은 신의 한수가 되었다. 최근 유럽재진출설까지 거론될만큼 화려하게 부활했기에 이번에 대표팀에 뽑히지 못했다고 크게 실망할 필요는 없다.
 
서로 가는 길이 다를 뿐이다. 이제까지 해왔던 것처럼 각자의 방식으로 묵묵히 '마이웨이'를 증명해 나가다 보면, 언젠가 또 다른 기회의 갈림길에서 다시 마주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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