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여자배구가 김연경 없이 치르는 첫 국제대회에서 혹독한 현실과 마주했다.

세자르 에르난데스 곤잘레스 감독이 이끄는 한국 여자배구 대표팀은 6일(이하 한국시각) 미국 루이지애나주 슈리브포트에서 열린 VNL 1주차 예선 4차전 세계랭킹 16위 캐나다와의 경기에서 세트스코어 0-3(21-25, 13-25, 16-25)으로 패했다. 이로써 한국은 1주차에 열린 4경기를 4전 전패에 랭킹포인트 0점으로 마치면서 이번 대회 16개 참가국 중 최하위에 머물렀다(점수득실률 0.633).

2020 도쿄올림픽에서 일본과 도미니카공화국, 터키 등 배구 강국들을 차례로 꺾고 4강에 진출한 한국 여자배구는 올림픽이 끝난 후 김연경을 비롯한 고참 선수들이 대거 대표팀 은퇴를 선언했다. 10여 년간 한국여자배구를 이끌었던 주역들이 한꺼번에 대표팀을 떠났으니 한동안 고전할 것은 누구나 예상할 수 있었다. 하지만 세계랭킹이 그리 높지 않은 팀들을 상대로 4경기에서 단 한 세트도 따내지 못한 것은 무척 실망스런 결과가 아닐 수 없다.

'고참 3인방' 은퇴 후 구심점 잃은 대표팀
 
 올림픽이 끝난 후 베테랑 선수들이 은퇴하면서 세자르 감독은 젊은 선수들을 위주로 대표팀을 꾸릴 수 밖에 없었다.

올림픽이 끝난 후 베테랑 선수들이 은퇴하면서 세자르 감독은 젊은 선수들을 위주로 대표팀을 꾸릴 수 밖에 없었다. ⓒ 국제배구연맹

 
2012 런던 올림픽과 2020 도쿄 올림픽 4강의 중심에는 단연 한국이 낳은 세계적인 스타 김연경이 있었다. 런던 올림픽 MVP와 득점왕(207점), 도쿄 올림픽 득점 2위(136점)에 빛나는 김연경은 대표팀에서 절대적인 위치를 차지하던 존재였다. 실제로 한국과 국제대회에서 만나는 상대팀 감독들은 "한국은 김연경만 막으면 쉽게 이길 수 있다"며 '김연경 봉쇄'를 가장 중요한 작전으로 지시했을 정도.

하지만 김연경은 오래 전부터 계획했던 것처럼 2020 도쿄올림픽을 끝으로 대표팀을 떠났다. 물론 김연경은 여전히 대표팀에서 절대적인 역할을 해줄 수 있는 선수지만 2000년대 중반부터 15년 동안 대표팀을 이끌었던 김연경에게 당장 국제대회 성적을 위해 희생을 강요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결국 한국도 언젠가는 '김연경 없는 대표팀'을 꾸려야 하는데 도쿄올림픽이 끝난 후 그 시간이 찾아온 것 뿐이다.

김연경의 부재 만큼 대표팀의 치명적인 악재가 바로 센터콤비 양효진(현대건설 힐스테이트)과 김수지(IBK기업은행 알토스)의 대표팀 동반은퇴다. 2016년 리우 올림픽부터 본격적으로 호흡을 맞추기 시작한 양효진-김수지 콤비는 2020도쿄올림픽까지 5년 동안 수많은 국제대회에 함께 출전하며 호흡을 맞췄다. 따라서 두 선수의 대표팀 동반은퇴는 대표팀의 중앙공격수 라인의 큰 약화를 가져올 수밖에 없다.

대표팀에 새로 부임한 세자르 감독은 2022 VNL 대회를 앞두고 젊은 선수들을 위주로 대표팀을 구성했다. 17명의 엔트리 중 2000년대에 태어난 20대 초반의 젊은 선수들이 무려 7명이었고 고참급 선수들이 대거 대표팀 은퇴를 선언하면서 1990년생 황민경(현대건설)이 대표팀의 맏언니가 됐다. 당연히 경험부족이 걱정되긴 하지만 '세대교체'를 위해서는 반드시 거쳐야 할 과정이었다. 

세자르 감독은 VNL 대회를 앞두고 "최대한 많은 포인트를 얻어 세계선수권대회에 출전하고 장기적으로는 2024 파리 올림픽 본선에 나가는 것이 목표"라는 포부를 밝혔다. 실제로 이번 대회는 16개 팀이 참가해 풀리그를 치른 후 상위 8개 팀이 토너먼트에 진출해 우승팀을 가리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대회 전까지 세계랭킹 14위였던 한국보다 랭킹이 낮은 나라들도 출전하는 만큼 랭킹포인트를 따내는 게 불가능한 목표로 보이진 않았다.

2, 3주차에는 세계랭킹 상위권 강자들과 격돌
 
 한국 대표팀은 1주차 4경기에서 승리는커녕 단 한 세트도 따내지 못했다.

한국 대표팀은 1주차 4경기에서 승리는커녕 단 한 세트도 따내지 못했다. ⓒ 국제배구연맹

 
많은 랭킹포인트를 따내는 것을 목표로 했던 세자르호는 1주차 4경기를 치른 현재 단 한 점의 랭킹포인트도 따내지 못했다. 1주차에 치른 4경기에서 단 1승도 챙기지 못했기 때문이다. 한국은 4일 독일전 1세트 22점, 5일 폴란드전 2세트 22점, 6일 캐나다전 1세트 21점을 올렸을 뿐 나머지 9번의 세트에서는 20점도 올리지 못하고 완패를 당했다. 특히 지난 2일 한일전에서는 합계스코어가 44-75였을 정도로 일방적인 패배를 당했다.

물론 김연경과 양효진, 김수지의 대표팀 은퇴로 선수단이 대거 바뀌었고 세자르 감독 역시 대표팀 지도는 처음이기 때문에 2022 VNL 대회의 고전은 이미 예견돼 있었다. 하지만 세트마다 20점을 내는 것조차 힘들 정도로 매 경기 이렇게 무기력하게 패하리라고는 미처 예상하지 못한 부분이다. 바로 직전 국제대회가 한국이 4강에 진출했던 도쿄 올림픽이었기 때문에 배구팬들이 느끼는 실망감은 더욱 클 수 밖에 없다.

더욱 큰 문제는 4경기 연속 셧아웃 패배를 당했던 1주차가 그나마 일정이 상대적으로 수월했다는 점이다. 한국은 1주차에서 전력 외 변수가 많은 세계 7위 일본과 세계 12위 독일, 11위 폴란드,16위 캐나다를 상대했다(폴란드와 캐나다는 1주차가 끝나고 각각 10위와 15위로 상승). 하지만 한국은 남은 일정 동안 미국과 브라질, 중국, 터키, 세르비아, 이탈리아 등 세계랭킹 상위권의 강호들을 차례로 만나야 한다.

또 하나의 불안요소는 한국이 그 동안 신체조건의 우위를 앞세워 자신감 있는 경기를 했던 태국의 전력이 만만치 않다는 점이다. 태국은 1주차에 열린 4경기에서 세계랭킹 3위 중국과 6위 세르비아를 풀세트 접전 끝에 3-2로 제압했고 세계 18위 불가리아는 3-0으로 가볍게 꺾었다. 1주차 4경기에서 3승을 거두며 랭킹포인트 8점을 따낸 태국은 이제 더 이상 한국이 가볍게 여길 수 있는 상대가 아니라는 뜻이다.

1주차 일정을 끝낸 한국은 브라질의 브라질리아로 장소를 옮겨 오는 16일 도미니카 공화국, 17일 세르비아, 19일 네덜란드, 20일 터키를 상대로 2주차 4경기를 치른다. 11위 네덜란드를 제외하면 모두 세계랭킹 10위 안에 포함된 강 팀으로 모두 한국에게는 버거운 상대임에 분명하다. 이제 세자르호는 대표팀의 전력을 냉정하게 파악해 랭킹포인트 적립이 아닌 세트승리 등 남은 일정의 목표를 '현실적으로' 수정해야 할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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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배구 2022 VNL 세자르 감독 4연패 4연속 셧아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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