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구연(71) 해설위원이 야구인 최초로 한국야구위원회(KBO)의 총재 자리에 올랐다. 오늘(3월 25일) KBO는 '서면 표결을 통해 구단주 총회 만장일치로 허구연 해설위원을 제 24대 총재로 선출했다'고 밝혔다.

허구연 신임총재는 현재 국내에서 가장 인지도 높은 야구 해설위원이다. 야구팬이 아닌 사람들도 한국야구 국가대표팀의 명경기에서 인상깊은 멘트들을 쏟아내는 그의 목소리를 들은 적이 한번쯤은 있을 것이다. 야구 인프라에 대한 강조와 사랑도 유명하다. 대중적으로 가장 널리 알려진 것은 프로야구단을 위한 '돔드립'(허구연 신임총재가 틈나는대로 돔구장의 필요성에 대해 열변을 토하는 것을 장난스럽게 이르는 말)이지만, 유소년 야구부 창단을 돕고, 생활체육인들이 사용할 수 있는 야구장을 건립하도록 지자체를 설득하기도 했으며, 경제적 도움이 필요한 사회인 야구대회에 직접 스폰서를 연결한 적도 있을 정도로 풀뿌리 야구 지원에도 진심이다. 심지어 자신의 사재를 털어 캄보디아 최초의 야구장을 지었고, 베트남 최초의 야구장 건립에 하나은행의 지원금을 이끌어 내는 등 야구 저변 확대를 위한 그의 노력은 국경도 가리지 않는다.

지금까지 KBO 총재는 정치인과 기업인들의 전유물이었다. 사회적으로 강한 영향력을 가진 인사를 총재로 세운 덕에 야구계는 자신의 목소리를 뚜렷하게 내며 정/재계로부터 다양한 지원을 받을 수 있었다. 이는 한국 프로야구가 국내 최초의 프로스포츠로 출범한 이래 현재까지도 국내 최고의 인기스포츠 자리를 지키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야구에 관심 없는 정계 출신 낙하산 인사가 무능하고 무책임한 모습을 보이며 야구계의 반발을 받기도 했고, 재계 출신 인사가 특정 구단 편파 논란을 일으키거나 리그를 일개 사유물 취급하는 망언을 하는 등 불미스러운 일들도 있었다. '야구 얘기를 하고 사니까 도청당할 일도 없어 평안하다' 따위의 속 편한 소리나 늘어놓다가 의정활동에 전념하겠다며 떠나버린 김기춘(도청이란 말에서 알 수 있듯이 그 김기춘 맞다.)의 사례가 대표적이며, 당장 지금 총재 자리가 공석인 것도 기업인 출신 전임 총재가 작년 KBO 리그 중단 개입을 비롯한 편파 논란과 사건사고에 책임을 지고 사임했기 때문이다. 야구계 내에서 '야구인 출신의 일하는 총재'에 대한 열망이 높아질 수밖에 없다.

최초의 야구인 출신 KBO 총재를 보면서 '당사자주의'를 떠올린다. 최근 우리 사회 내에서도 소수자들이 목소리를 낼 수 있는 통로가 조금씩이나마 생기면서 '당사자성'과 '당사자주의'라는 말이 마냥 낯설지만은 않게 되었다. 특정 분야의 활동은 그 분야의 정체성을 가진 당사자가 주도권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하는 당사자주의는 종종 지나치게 배타적으로 비당사자들을 분리하여 당사자와 비당사자들간의 이해와 협력을 어렵게 한다는 비판을 받기도 한다.

하지만 비당사자들은 당사자가 직면한 문제에 대해 정확히 알기 힘들기 때문에 당사자들에게 절실한 욕구와 멀리 떨어져 근본적으로 도움이 되지 않거나 오히려 해가 되는 방향으로 일을 추진할 위험이 있다. 당사자주의는 이런 위험을 차단하고 당사자가 실제 겪은 경험을 바탕으로 직접 문제해결에 나서도록 하며 소수자 운동의 역사에서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무려 40년 동안 한국프로야구를 대표하는 자리에 정작 야구인의 이름이 없었음을 생각하면 이번 허구연 신임 총재의 선출은 당사자주의와 연결하여 생각할 지점이 분명히 있다. 누구보다 야구를 사랑하는 야구인으로의 당사자성과 사회적으로 높은 명망을 동시에 가진 허구연 총재가 앞으로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 기대된다. 최소한 앞으로 한국 야구가 나아갈 방향을 결정하는 데 야구를 사랑하는 야구인들이 직접 더 많은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선례가 되었다는 것만으로도 반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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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구연 KBO총재 한국프로야구 당사자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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