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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랑천이 흐르는 중화역과 먹골역 오른편에 자리한 봉화산은 조선시대 함경도에서 오는 급보를 남산으로 전달했다. 해발 높이가 160m에 불과한 자그마한 야산이지만 시야를 가리는 수목이 없어서 제법 볼만한 풍경이 펼쳐지는 곳이다. 북으로는 도봉산이 보이고 서편으로는 언제든지 붉은 노을이 지는 것을 감상할 수 있으며 남쪽으로는 아차산이 펼쳐진다.

봉화산 일대는 중랑구의 사통팔달 지형으로서 8개의 전철역이 지나고 규모는 작지만 네 곳의 공원이 자리하고 있다. 이번 산책 루트는 7호선 중화역에서 출발하여 봉화산을 거쳐 육군사관학교 앞 노원불빛정원을 둘러보고 태릉으로 들어가 강릉으로 나오는 코스다. 일목요연하게 산책 루트를 정리하면 다음 그림과 같다.
 
함경도의 급보를 남산에 전했던 봉화산과 문정왕후, 중종의 묘역 태강릉.
▲ 봉화산에서 태릉, 강릉까지의 산책길 함경도의 급보를 남산에 전했던 봉화산과 문정왕후, 중종의 묘역 태강릉.
ⓒ 이상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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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청은 봄가을에만 조선왕조 숲길 11개소를 일시적으로 개방한다. 이 시기를 맞추면 평소에는 막혀서 다닐 수 없었던 길을 호젓하게 거닐어볼 수 있다. 불암산 자락에 위치한 태릉과 강릉은 서로 이웃하고 있어 같이 둘러보면 좋을 것이다. 

산책의 시작은 7호선 중화역 1번 출구로 나와 중화고등학교에서 진입하거나, 정상까지 가장 빠르게 도달하는 코스로는 신내테크노타운으로 들어서서 오르는 길이다. 들머리를 중랑구청에서 시작하면 봉수대공원의 인공폭포 물줄기를 감상하며 기분 좋게 출발할 수 있다.
 
중랑구 일대를 한 눈에 굽어보는 조망 지점.
▲ 봉화산 전망대. 중랑구 일대를 한 눈에 굽어보는 조망 지점.
ⓒ 이상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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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양주 방면의 풍광을 볼 수 있는 장소.
▲ 봉화산 제1전망대. 남양주 방면의 풍광을 볼 수 있는 장소.
ⓒ 이상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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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꼭대기까지는 금방 도착하므로 둘레길을 따라 봉화산을 한 바퀴 돌아보는 것도 좋겠다. 유모차와 휠체어도 다닐 수 있게 데크길을 만들어 놓았으니 노약자도 무리없이 둘러볼 수 있다. 산마루에 오르면 봉수대와 함께 조망대를 설치해 놓아 중랑구 일대를 한 눈에 굽어볼 수 있다.
 
봉화산에서 바라본 노을.
▲ 봉화산  봉화산에서 바라본 노을.
ⓒ 이상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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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망대를 뒤로하고 반대 방향으로 내려오면 2군데의 조망지점이 있으나 정상에서 바라보는 풍광에는 미치지 못한다. 적당한 그늘과 벤치가 있으니 잠시 쉬었다가 길을 내려가면 봉화산옹기테마공원으로 이어진다. 불가마를 이용해 옹기를 만드는 과정을 살펴볼 수 있게 해 놓았다. 원래 이곳은 70년대부터 산업용 폭약을 저장하던 화약고였는데 옹기테마공원으로 탈바꿈했다.

길을 따라 신내공원으로 내려와 도로를 건너 공릉동 방향으로 진행하면 노원불빛정원이 나온다. 지금은 운행하지 않는 옛 화랑대역을 공원으로 꾸몄으며 증기관차를 비롯하여 20세기 초반의 철도 풍경을 체험할 수 있는 장소다. 서울시에서는 이 기찻길을 따라 약 6km의 구간을 단장하여 시민들에게 돌려주었는데, 월계역 앞에서 시작하여 갈매역까지 이어지는 철길이다.
 
육사 옆을 지나는 철도길을 따라 경춘선숲길이 이어진다.
▲ 노원불빛정원 철길. 육사 옆을 지나는 철도길을 따라 경춘선숲길이 이어진다.
ⓒ 이상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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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원불빛정원 뒷편이 육군사관학교다. 예약을 통해 누구나 관광할 수 있으니 넓은 부지를 한번 둘러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현재는 코로나로 일시 중단하였지만 상황이 호전되면 다시 재개할 예정이다.

명종을 쥐고 흔들었던 문정왕후

육사 맞은편에 자리한 태릉이 중종의 제2계비인 문정왕후의 묘역이고, 그 위쪽으로 명종과 인순왕후(仁順王后)가 묻힌 강릉이 있다. 연산군의 이복동생으로 반정 세력에 의해 왕으로 추대된 중종은 힘이 없었다. 조강지처인 단경왕후(端敬王后) 신씨는 신수근의 딸이었는데 그가 바로 연산군의 핵심 측근이었다. 역적의 딸을 왕비로 둘수 없다는 이유로 공신들은 신씨의 폐비를 종용하고 중종은 이를 수용해야 했다.

두 번째 왕비인 장경왕후(章敬王后) 윤씨가 세자 이호(인종)를 낳고 세상을 떠나고 문정왕후에게서 경원대군 이환(명종)이 태어난다. 중신들은 세자를 지지하는 대윤(大尹)과 경원대군을 옹호하는 소윤(小尹)으로 갈리면서 권력을 둘러싼 암투가 벌어진다. 대윤의 수장은 세자의 외숙부인 윤임이었고 소윤의 좌장은 경원대군의 외삼촌이자 문정왕후의 막내 동생인 윤원형이었다.
 
중종의 왕비인 문정왕후의 릉.
▲ 태릉. 중종의 왕비인 문정왕후의 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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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종의 뒤를 이어 즉위한 인종이 8개월 만에 세상을 떠나자 문정왕후가 명종을 대신하여 수렴청정에 들어간다. 권력을 잡은 문정왕후는 조선의 건국 이념인 성리학 대신에 불교 중흥에 힘을 쏟는다. 어느날 윤원형은 봉은사를 찾았다가 보우대사의 주선으로 정난정을 만나 한 눈에 반해 첩실로 들인다.

어쩌면 이 만남은 정난정 스스로가 꾸몄을지 모른다. 그녀의 생모는 관비 출신이라 조선의 신분질서 아래에서는 정난정 또한 천민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기생이 된 정난정은 고관대작의 시중을 들면서 신분상승의 기회를 엿보다가 윤원형의 첩이 되었던 것이다.

정난정은 아버지인 정윤겸과 공모하여 조선의 상권을 손아귀에 넣고 정치자금을 축적하여 남편의 출세가도를 돕는다. 권세를 잡은 윤원형과 정난정은 대윤을 따르는 정적들을 숙청한다. 이것이 역사에 기록된 을사사화이며 문정왕후는 친동생 윤원로까지 죽일 정도로 이들 내외를 아꼈다.

기생과 권신이 결탁하여 나라를 어지럽히다

정난정을 통해 보우대사를 알게 된 문정왕후는 연산군 때 폐지된 승과를 부활시켜 이후 약 15년에 걸쳐서 4천여 명의 승려를 배출하게 만든다. 임진전쟁 당시 승군을 이끈 서산대사와 사명당도 이때 승적에 이름을 올렸다.

영의정에 오른 윤원형은 후사가 없다는 이유로 조강지처 김씨를 내몰고 정난정을 정실부인으로 삼는다. 정1품이라는 최고의 벼슬에 정경부인 자리까지 꿰어찬 정난정은 내쫓은 김씨를 독살하는 악행을 저지른다. 
 
▲ 봉화산에서 태릉, 강릉까지 단칼에 끝내는 서울 산책기 시리즈. 자세한 내용은 아래 오마이뉴스 기사를 볼 것. http://www.ohmynews.com/NWS_Web/Series/series_general_list.aspx?SRS_CD=0000012767
ⓒ 이상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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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서슬퍼랬던 문정왕후가 갑자기 병사하자, 명종은 승과제도를 없애고 윤원형과 정난정을 황해도로 유배시킨다. 이후 죽음을 예감한 정난정은 스스로 목숨을 끊고 뒤를 이어 윤원형도 자결한다. 2년 후 명종 마저 세상을 떠나고 선조가 즉위하여 임진왜란을 치르게 된다.

당시 조선팔도는 거듭된 흉년과 왜구의 노략질, 탐관오리의 부패로 수많은 백성들이 고통받고 있던 시기였다. 권신들은 사림과 훈구로 나뉘고 다시 동인과 서인으로 갈라져 민초들의 삶은 피폐하기 이를데 없었다. 먹을 것이 없어 유랑민이 들끓었으며 부패한 양반에 저항하여 임꺽정이 활약하던 시절이었다. 분열된 국론과 흉흉한 인심은 토요토미 히데요시의 조선 침략을 외면하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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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접사 사진집 '로봇 아닙니다. 곤충입니다'를 펴냈다. 다음 세대를 위한 화보 도감. daankal@gmail.com. O|O.셋EE오.E팔O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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