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산의 황금기를 이끌었던 좌완 에이스가 정든 그라운드를 떠난다.

두산 베어스 구단은 18일 보도자료를 통해 좌완투수 유희관이 구단에 현역은퇴의사를 밝히고 '제2의 인생'을 시작하기로 결심했다고 발표했다. 유희관은 "오랜 고민 끝에 은퇴를 결심하게 됐다. 언제나 한결 같이 응원해주신 팬들께 감사 인사를 드린다"고 전한 뒤 "마운드는 떠나지만 항상 그라운드 밖에서 베어스를 응원하겠다"고 덧붙였다. 유희관은 개인 SNS에도 팬들에게 장문의 은퇴소감을 남겼다.

중앙대를 졸업하고 지난 2009년 신인 드래프트에서 2차 6라운드 전체42순위로 두산에 지명된 유희관은 상무에서 군복무를 마친 후 2013년부터 2020년까지 8년 연속 두 자리 승수를 기록하며 두산의 핵심 선발투수로 활약했다. 하지만 2020년부터 구위가 급격히 떨어지기 시작한 유희관은 작년 4승7패 평균자책점7.71로 부진했고 결국 101승69패1세이브4홀드4.58의 성적을 남기고 현역 생활을 마감하게 됐다.

2013년5월 혜성처럼 등장한 '느림의 미학'

두산은 90년대부터 언제나 좌완 선발에 대한 갈증이 있었다. 두산은 1988년 윤석환이 13승을 기록한 이후 2012년까지 무려 24년 동안 두 자리 승수를 기록한 토종 좌완 선발이 없었다. 1999년 롯데 자이언츠와의 트레이드로 영입한 좌완 차명주가 3년 연속 홀드왕을 차지했고 강속구 좌완 이혜천도 2001년 9승을 기록했지만 차명주는 불펜전문투수였고 이혜천도 선발보다 불펜 등판 경기가 훨씬 많았다. 

그렇다고 두산이 좌완 선발 육성에 소홀히 했던 것도 아니다. 두산은 1994년 1차 지명으로 류택현(KIA타이거즈 2군 투수코치), 2003년 2차1라운드로 전병두(SSG랜더스 전력분석원), 2008년1차지명으로 진야곱, 2010년 1라운드로 장민익, 2011년2라운드로 이현호 등을 지명하며 좌완 유망주들을 꾸준히 수집했다. 하지만 이들은 끝내 잠재력을 폭발하지 못하고 은퇴했거나 타 팀으로 이적한 후에야 비로소 잠재력이 폭발했다.
 
이렇게 두산이 애타게 기다려온 좌완 선발투수 유망주 중에서 2차6라운드 출신 대졸 투수 유희관의 이름은 들어있지 않았다. 뛰어난 제구력을 앞세워 대학리그에서 좋은 성적을 기록했지만 구속이 느려 프로에서 성공할 거라 예상한 야구팬은 그리 많지 않았다. 하지만 2013년 5월 4일 LG트윈스전에서 에이스 더스틴 니퍼트가 담 증상으로 등판이 불발되자 대체 선발로 등판한 유희관은 5.1이닝 무실점을 기록하며 선발 데뷔전에서 승리를 따냈다.

2013년 두 자리 승수를 따내며 25년 만에 베어스의 토종 10승 투수로 등극한 유희관은 2014년에도 12승을 기록하며 2013년의 활약이 우연이 아님을 증명했다. 그리고 2015년에는 30경기에 등판해 프로 데뷔 첫 완봉승을 포함해 18승5패3.94의 성적으로 다승2위를 기록했고 두산의 한국시리즈 우승을 확정 짓는 5차전 승리투수가 됐다. 유희관은 시즌이 끝난 후 최동원상까지 수상하며 리그 최고 수준의 좌완 선발로 인정 받았다.

유희관은 2016년에도 두산이 자랑하는 선발 4인방 '판타스틱4'의 일원으로 활약하며 30경기에서 15승6패4.41로 2년 연속 15승을 기록했다. 무엇보다 2014년부터 3년 연속 170이닝 이상을 소화하며 '이닝이터'로서 김태형 감독이 믿고 맡길 수 있는 선발투수로 활약했다. 유희관은 2016년 NC다이노스와의 한국시리즈에서도 4차전 선발 투수로 등판해 우승이 결정되는 마지막 승리를 따냈다.

통산 100승 채우고 베어스 최고 좌완으로 은퇴

FA로 영입한 장원준과 함께 두산이 자랑하는 좌완 원투펀치로 활약한 유희관은 2017년에도 188.2이닝을 소화하며 11승을 따냈다. 특히 2017년4월14일 NC와의 경기에서는 8이닝3실점(2자책)으로 56승째를 따내며 이혜천이 가지고 있던 55승을 넘어 베어스 역대 좌완투수 최다승 기록을 세웠다. 유희관이 두산에 입단했을 때부터 목표로 삼았던 '베어스 역대 최고의 좌완 투수'에 등극한 것이다.

하지만 유희관은 2018년 10승10패6.70의 성적으로 붙박이 선발투수가 된 지 6년 만에 가장 부진한 성적을 거뒀다. 모두가 유희관의 전성기는 끝났다고 입을 모았지만 유희관은 두산이 6번째 한국시리즈 우승을 차지했던 2019년 두 번의 완투를 포함해 11승8패3.25의 성적을 기록하며 화려하게 부활했다. 3.25의 평균자책점은 그 해 리그 10위 기록이자 20승을 올린 정규리그 MVP 조쉬 린드블럼 다음으로 두산에서 두 번째로 좋은 기록이었다.

2019년 다시 엘리트 좌완으로 부활한 유희관은 2020년 FA를 앞둔 중요한 시즌을 맞았다. 하지만 2020년 27경기에 등판한 유희관은 10승11패5.02로 기대만큼 좋은 성적을 올리지 못했다. 가까스로 8년 연속 두 자리 승수를 채웠지만 유희관의 이름값에는 미치지 못하는 투구내용이었다. 결국 유희관은 FA시장에서 기대했던 다년 계약을 제시 받지 못했고 긴 협상 끝에 두산과 옵션 7억 원이 포함된 1년 계약을 체결했다.

보장액의 2배가 넘는 옵션을 채우기 위해서라도 또 한 번의 극적인 부활이 절실했지만 유희관은 작년 시즌 끝내 전성기 시절로 돌아가지 못했다. 유희관은 지난해 9월 19일 키움 히어로즈전에서 6이닝 무실점으로 두산의 좌완으로는 최초로 통산 100승을 채웠지만 4승7패7.71의 시즌 성적은 실망스럽기 그지 없었다. 결국 유희관은 2022시즌 스프링캠프를 2주도 남겨두지 않은 18일 현역 은퇴를 선언했다.

유희관은 지난 2013년 5월 4일 프로 데뷔 첫 승을 따낸 후 "앞으로 '두산의 왼손투수'하면 유희관이 떠오를 수 있도록 하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그로부터 9년의 시간이 흐른 지금, 유희관은 정말로 베어스 역사상 가장 뛰어난 성적을 올린 좌완 투수가 됐다.

비록 화려하게 현역생활을 끝내진 못하지만 3개의 우승반지와 통산 101승을 거둔 유희관은 '구속이 느린 투수는 성공하지 못한다'는 편견을 깨며 충분히 성공적인 현역생활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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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O리그 두산 베어스 유희관 현역 은퇴 느림의 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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