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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대문구 주거 밀집 지역의 유일한 녹지라 할 수 있는 배봉산은 해발 높이가 겨우 100여 미터에 불과한 작은 동산이다. 행정구역상 전농동(典農洞)에 자리하고 있는데 전농이란 '왕이 직접 농사를 짓는 밭'을 말한다.

동네 야산에 불과하지만 정상부에는 시야를 가리는 건물과 수목이 없어서 제법 볼만한 풍광이 펼쳐진다. 사계절 내내 붉은 노을을 감상할 수 있는 훌륭한 조망점임에도 서울 시민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곳이다. 서쪽으로는 남산과 북한산 자락이 보이며 우측에 흐르는 중랑천 너머로는 아차산이 손에 잡힐 듯 느껴진다.

감탄이 나오는 석양 
 
일년 내내 노을을 감상할 수 있는 배봉산.
▲ 배봉산에서 보는 남산의 저녁 노을. 일년 내내 노을을 감상할 수 있는 배봉산.
ⓒ 이상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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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개인 날에는 구름 사이로 뻗어내리는 석양의 빛줄기가 감탄을 자아내게 만든다. 봄철에는 중랑천 벚꽃길과 연계하여 거닐어 볼 수 있으며 능선을 따라 철쭉을 비롯한 각종 봄꽃을 식재해 놓아서 보는 재미가 상당하다. 날이 추운 겨울에도 기분전환을 위한 짧은 코스로서 제격이며 해가 진 뒤에는 야경을 즐기며 거닐어 볼 수 있어서 좋다.

산책의 시작은 회기역으로 나와 휘경2동 주민센터 앞에서 출발한다. 삼육서울병원이나 시립대에서 올라오는 방향도 있으니 간략한 지도를 그려보면 아래 그림과 같다.
 
일년 내내 타는 듯한 노을을 볼 수 있다.
▲ 배봉산에서 답십리공원 지도 일년 내내 타는 듯한 노을을 볼 수 있다.
ⓒ 이상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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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째서 배봉산(拜峰山)이라 부르게 되었는지는 불분명하다. 한자를 풀어내면 '봉우리를 향해 절을 한다'는 뜻이므로 후대 사람들이 여러가지 그럴싸한 해석을 하고 있다. 산의 형세가 경복궁을 향해 절을 하는 모양이라서 이름 지어졌다는 설, 조선 왕실의 묘역이 있어서 오가는 사람들이 고개를 숙였다고 하여 붙여졌다는 소문 등이다.

글쓴이의 생각으로는 정조가 아버지 사도세자의 묘역을 향해서 절을 했기에 배봉산이라 불렀다는 설이 신빙성 있게 다가온다. 배봉산에는 과거 영우원과 휘경원이 자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사도세자의 묘소인 영우원은 현재 경기도 화성시 융릉이 되었고, 휘경원(정조의 셋째 계비이자 순조의 생모인 수빈 박씨의 묘역)은 남양주시 진접읍 부평리로 옮겼다. 지금의 휘경중학교 터에 휘경원이 있었으며 휘경동의 지명이 여기에서 기원한다. 
 
손에 잡힐듯한 아차산이 색다른 풍광을 보여준다.
▲ 배봉산에서 아차산을 감상하는 서울 시민. 손에 잡힐듯한 아차산이 색다른 풍광을 보여준다.
ⓒ 이상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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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25화 '왕을 보살핀 궁녀길에서 왕을 구한 도량까지'에서 숙종과 경종, 영조의  관계를 잠시 살펴보았다. 정빈 이씨와의 사이에서 얻은 장남 경의군(효장 세자)은 9살의 어린 나이에 요절했고, 늦은 나이에 영빈 이씨에게서 사도세자가 태어나니 영조는 무척이나 기뻐했다.

첫돌이 지나자마자 왕세자로 책봉하였을 정도로 기대가 남달랐다. 세자는 2살 때에 천자문을 배워 60여 자를 써내려갈 정도로 총명했다. 세자빈 혜경궁 홍씨가 쓴 한중록에 따르면 사도세자는 영특할 뿐만 아니라 문무를 겸비한 인재였다고 한다.

어린 나이에 청룡도를 비롯한 각종 무기를 자유자재로 다뤘으며 궁술과 승마술도 뛰어났다고 한다. 스스로 <무기신식>이라는 무예서를 펼쳐낼 정도였는데 이는 훗날 정조 때 간행된 <무예도보통지>의 원형이 된다.

그러나 사도세자에 대한 기대가 너무 컸던 탓일까? 영조는 4살 때부터 왕세자를 정신적으로 학대하여 광인으로 만든다. 미치광이가 된 세자는 셋째 아내인 경빈 박씨를 비롯하여 백 여명 이나 되는 무고한 사람들을 죽인다. 여기에 복잡다단한 당파 싸움이 어우러지면서 영조는 사도세자를 쌀뒤주 속에 가두어 굶어죽게 만든다. 역사에 기록된 임오화변이다. 

사도세자의 악행도 인륜을 저버린 행위였으며 영조도 참으로 비정한 아버지였다. 오늘날까지도 이 사건은 숱한 의문과 논쟁을 남기고 있는데 훗날 정조가 <승정원일기>에 기록된 사도세자의 기록을 파기하면서 미화시킨 부분도 상당수 있기 때문이다.

논밭십리벌에서 하수도과학관으로

배봉산 정상에서 5분 여 내려오면 배봉산숲속도서관이 나오고, 길을 건너 아파트 단지로 접어들면 답십리공원에 다다른다. 초겨울에도 은행나무가 노랗게 물들어가는 광경을 볼 수 있어서 거닐어 볼 만한 코스다. 배봉산에서의 풍광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동네 주민들의 쉼터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우리나라 행정구역은 시·군·구 아래로 읍·면·동을 두는데 동 대신에 리(里)를 쓰는 지명이 아직도 몇 군데 흔적을 남기고 있다. 답십리도 그중 하나다. 사실 리는 삼국시대부터 사용된 지명이라서 나이 드신 분들은 아직도 동 보다는 리가 더 익숙하다.
 
▲ 사계절 타는 노을이 감탄을 자아내는 배봉산
ⓒ 이상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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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만 서울시가 점점 확장되면서 8개 리(청량리, 화양리, 당인리, 미아리, 왕십리, 답십리, 수유리, 망우리)는 동으로 바뀌었는데 지금까지도 자취가 남아있는 곳은 왕십리동, 청량리동, 답십리동이다.

답십리의 지명도 여러 가지 설이 있지만, 전농동의 예에서 보듯이 논밭이 십여 리에 걸쳐서 펼쳐져 있기에 붙여진 것으로 본다. 이 일대를 우리말로 표현하자면 '논밭십리벌'이라고 할 수 있는데 청계천과 중랑천 사이의 퇴적층이 쌓이는 넓은 평원이기 때문이다.

이 들판의 한 켠, 용답동에 서울하수도과학관이 있다. 이번 산책 코스는 너무 짧아서 아쉬울 정도이므로 여기에서 수자원 활용에 대해 알아보면 좋을 것이다. 아이들과 함께 하수(생활하수, 산업폐수, 축산분뇨, 빗물)를 모아 깨끗한 물로 바꾸는 정수 과정을 살펴볼 수 있다.
 
생물반응조를 이용한 서울희망그린발전소 설비.
▲ 서울하수도과학관 앞의 태양광발전시설. 생물반응조를 이용한 서울희망그린발전소 설비.
ⓒ 이상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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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앞에 마주하고 있는 서울새활용플라자에서는 쓸모 없어진 물건을 새롭게 디자인하여 가치있는 생활용품이나 아이디어 상품으로 바꾸는 체험을 할 수 있다. 둘 다 예약을 통해 참여할 수 있으므로 가족 나들이로 추천한다. 장한평역 8번 출구에서 운행하는 셔틀버스를 타면 금방 도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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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접사 사진집 '로봇 아닙니다. 곤충입니다'를 펴냈다. 다음 세대를 위한 화보 도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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