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야구 최하위 한화 이글스가 사실상 2021 FA(자유계약선수)시장에서 조기 철수를 선택하며 팬들의 반응이 엇갈리고 있다. 한화는 지난 15일 구단 SNS에 임직원 일동 명의로 팬들을 향한 메시지를 올렸다. 최근 외부 FA 영입 여부를 둘러싸고 구단 행보에 크게 실망한 팬들에 전하는 해명이었다.
 
한화 측은 'FA와 관련해 결코 가볍게 접근하지 않았다. 구단 육성 기조에 따른 기다림과 인내의 시간을 함께해주신 여러분의 응원을 잊지 않겠다'고 전했다. 이어 '우리의 방식도 팬 여러분과 함께 할 때 의미가 있다. 한화 이글스는 팬 여러분께 다시 박수를 받을 수 있도록, 우리의 과제들을 하나씩 풀어가겠다'라고 약속했다. 사실상 올해 외부 FA 영입이 어렵다는 방침을 공식화하며 팬들의 마음을 달래고 사과와 이해를 구한 것으로 해석된다.
 
한화는 최근 3년 연속 가을야구 진출에 실패했다. 범위를 넓히면 2008년부터 최근 14시즌간 단 1번(2018시즌 3위)만 빼놓고 모조리 포스트시즌에 탈락했으며, 지난 2년간은 압도적인 최하위였다.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한국시리즈 우승을 차지한 것은 1999년으로 무려 22년이나 지난 20세기의 추억이다. 오죽하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변함없이 한화를 응원하는 팬들을 가리켜 '보살'이라는 우스갯소리가 나오기도 했다.
 
그런데 이런 보살 팬들조차도 화가 나게 만든 것은 바로 올겨울 스토브리그에서 한화의 행보였다. 한화는 올겨울 FA 시장의 큰 손이 될 것으로 주목받았다. 리빌딩이 진행중인 한화는 올시즌 젊은 선수들을 대거 발굴했지만 어느 정도 체계가 잡힌 내야에 비하여, 외야는 공수에서 확실한 주전을 찾지 못하며 한계를 절감했다. 다음 시즌에도 새로운 외국인 선수 마이크 터크먼을 제외하면 한화의 외야 국내 주전은 무주공산이나 다름없다.
 
때마침 올해 FA 시장에는 역대급 대어 풍년이라고 할 정도로 수준급 외야수들이 대거 쏟아져나왔다. 한화 구단은 내부 FA였던 포수 최재훈과 파격적인 조건으로 올해 FA 1호 계약을 맺을 때만 해도 예년과 달리 적극적인 투자 의지를 드러내는 듯했다.
 
하지만 정작 기대했던 외부 FA 영입은 없었다. 당초 한화의 유력한 영입후보로 거론된 선수는 박건우였지만 지난 14일 NC와 6년 100억원에 계약했다. 팬들의 장및빛 기대와는 달리 한화는 제대로 손 한번 써보지 못하고 박건우의 NC행을 지켜봐야 했다.
 
물론 아직도 시장에는 나성범, 김재환, 김현수, 손아섭 등 많은 수준급 FA들이 남아있다. 꼭 외야수가 아니라도 전력에 도움이 될 만한 선수들은 적지 않다. 하지만 한화의 행보를 보면 다른 FA들에게 큰 관심이 없어보인다. 추가 영입이 없다면 한화는 지난 2015년 겨울 정우람, 심수창 영입 이후 무려 6년 연속 외부 FA와 인연을 맺지 못하게 된다. 대신 한화는 카를로스 수베로 감독 2년차를 맞이하여 내부 육성 체계를 더 강화하여 젊은 선수들을 키우는 데 주력할 것이 대안으로 꼽힌다.
 
한화 팬들의 실망감은 클 수밖에 없다는 것은 이해가 된다. 한화 팬들은 벌써 10년넘게 계속되고 있는 암흑기에도 불구하고, 이렇다 할 변화없이 기약없는 리빌딩이나 육성만 핑계로 내세우는 데 불만을 토로하고 있다. 팀스포츠에서는 젊은 선수들의 성장 못지 않게, 중심을 잡아줄 경험 많은 베테랑과 리더도 필요하다.
 
때마침 올겨울 스토브리그는 여러모로 한화가 외부 FA 영입을 통한 전력보강을 모색하기에 적기로 꼽혔다. 하지만 이번에도 한화가 변변한 시도조차 해보지 못한 채 벌써 물러나는 모양새를 보이자, 팬들은 모기업 본사 앞에서 트럭 시위까지 펼치며 무능한 구단의 행태에 경고의 메시지를 날렸다. 한화로서는 팬들의 이유있는 분노와 질타를 겸허하게 받아들여야 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현재 FA시장의 상황을 고려할 때 한화 구단이 무턱대로 뛰어들기 어려웠던 사정도 고려해야 한다. 올해 FA시장은 초반부터 예상을 뛰어넘어 크게 과열된 분위기로 흘러가고 있다.

박건우를 시작으로 나성범-양현종 등 100억대 계약이 속출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한화 역시 대어급은 아니었지만 내부 FA인 최재훈을 잡는 데 거액을 투자하며 시장이 과열되는 데 어느 정도 일조했다. 여기에 FA가 아니어도 다년 계약이 가능해지면서 SSG 문승원-박종훈처럼 FA가 되기 전에 장기계약을 맺는 사례까지 나오며 선수들의 몸값이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는 추세다.
 
그런데 아무리 스타급이라고 해도 선수 한 명에게 100억 이상을 들여야하는 것이 한국프로야구 시장 규모에서 과연 정상적인 상황이라고 볼 수 있을까. 더구나 육성 기조를 전면에 내세우고 있던 한화에게 합리적인 투자라고 볼 수 있을까. 한 번 올라간 몸값은 다시 내려오지 않는다. 자칫 먹튀라도 발생한다면 타격은 커진다. 이는 결국 장기적으로 각 프로구단들 스스로의 발목을 잡는 자충수가 될 수밖에 없다.
 
또한 선수 입장에서 보면 한화는 당장 우승권과는 거리가 먼 리빌딩팀에 가깝다. 그런 팀에서 상위권 팀들과 경쟁하여 정상급 선수를 외부에서 영입하려면 조건은 더 높아질 수밖에 없다. 한화가 영입에 대한 적극적인 의지가 있었더라도, 박건우 정도의 선수 1명을 데려오려면 '100억 플러스 알파'까지 고려했어야 한다는 이야기가 된다. 모기업의 지원과 투자도 무한한 것이 아니기에 그만한 비용을 지출하려면 당연히 다른 쪽에서 감축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 이는 자칫 시장 분위기에 휩쓸린 '패닉 바이'가 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한화가 지난 10여 년간이나 암흑기를 보내야했던 과정에서 보여준 구단의 무능함은 비판받아야 할 원죄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적어도 올겨울같이 비정상적으로 왜곡된 FA시장에서 무리하게 돈을 퍼부어가며 참전하지 않았다고 해서 비난하는 것은 오히려 그동안의 방향성을 스스로 부정하는 꼴이 될 수 있다.

팬들의 성난 여론은 가슴에 새겨듣되, 차라리 이 기회에 장기적인 육성 기조를 더 확고하게 다질 필요가 있다. 지금의 FA시장은 결코 정상이 아니다. 당장의 비판을 감수하더라도 한화는 FA에 쓸 돈으로 구단의 미래에 적극적으로 투자하는 것이 더 올바른 선택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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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화이글스 프로야구FA시장 박건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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