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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가 팔을 다쳐서 6개월간 병원에 입원한 적이 있었다. 중학교 3학년이었던 나는 학교가 끝나면 학교와 멀지 않은 병원까지 걸어서 갔다. 오래된 대학병원의 6인실은 늘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다. 내가 병실에 들어서면 아빠는 "왜 또 왔냐?"라고 하면서도 얼굴은 금세 환해졌지만 나는 웃을 수가 없었다.   
   
더위가 시작되면서 병실 환경은 열악해졌다. 가만있어도 땀이 줄줄 흐르는 곳에서 환자와 보호자가 제대로 씻지도 못하고 생활하니 땀과 음식 냄새가 뒤섞여서 저절로 얼굴이 찌푸려지게 했다. 나는 그게 얼굴에 드러날까 봐 조심하면서 엄마와 아빠 사이에 말없이 앉아 있다 돌아오고는 했다.  
   
"내일 생일인데 친구들하고 맛있는 거 사무라. 아 떡볶이 사 먹게 돈 줘라. 이만 원하만 되겠나? 더 주까?"

아빠의 말에 나는 힘없이 말했다.

"안 먹어도 돼."
"와? 생일인데 네가 한 턱 내면 기분 좋잖아."


아빠가 팔이 절단될지도 모르는 사고를 겪었는데 생일이라고 친구들하고 떡볶이나 먹고 싶지는 않았다.    

모두 퇴근한 공장에 아빠 혼자 남아서 일을 하다가 당한 사고였다. 그때 주위에는 아무도 없었는데 아빠는 피를 흘리면서 어떻게 삼촌한테 전화를 했는지 모르겠다. 나는 밤 9시쯤 삼촌에게서 아빠가 사고가 났다는 전화를 받고 함께 병원을 갔다. 수술은 내일 아침에나 할 수 있다는데 당장 입원할 병실이 없었다. 그 병원의 의사와 간호사라는 아빠 친구 형과 사촌누나에게 전화로 사정을 한 뒤에야 겨우 침상 하나를 얻을 수 있었다.  
   
아빠는 수술을 기다리느라 20시간 동안 소변을 보지 못했고 수술이 끝나고 침상 한쪽에 돌아누워서 소변을 봤다. 너무 오래 참아서인지 소변이 안 나와서 고생하던 아빠의 모습은 나에게 잊을 수는 없는 기억이다.

아빠는 간호사가 올 때마다 비위를 맞추며 수술 경과나 약의 종류를 물어봤는데 감수성이 예민하던 내 눈에 아빠가 비굴해 보이기도 했다. 그때 의사들은 어찌나 하나같이 바쁘고 무뚝뚝한지. 나는 처음으로 우리 가족이 약자라는 생각을 했다.     

내게는 아빠가 나를 딸과 여자로서만 바라보았다는 원망이 있었다. 하지만 나도 아빠를 아빠로밖에 보지 않았다는 걸 이번에야 알게 되었다. 배지영 작가의 책<나는 언제나 당신들의 지영이>를 통해 내가 부모를 바라보는 시선을 되돌아보았다. 그동안 내가 했던 원망은 내가 자라지 못해서라는 걸 너무 늦게 알았다.    

유쾌하고 담대한 두 사람의 이야기
 
책 <나는 언제나 당신들의 지영이>
 책 <나는 언제나 당신들의 지영이>
ⓒ 책나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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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다르게 배지영 작가는 친정엄마와 시아버지를 유쾌하고 담대하게 그려냈다.      
"어쭈고 가만히 있겠소? 아직까지는 무슨 음식이든지 할 수 있는 기술자여라우. 느그 외삼촌들이랑 이모들한테 뭐이라도 해주고 싶은디요. 나물 서너 가지 해줄라고 깨도 볶아서 기름 짜가지고 왔어야. 깻잎장아찌도 담고, 깨강정이랑 떡도 했제. 인자 덕자(덕대, 병어보다 크다)사서 회 뜨고, 찜 하고, 소고기 육회랑 구이 사믄 끝나야."     

일박 이일 가족 여행에 음식은 한 달 살기 음식을 마련하는 배지영 작가의 모친 조금자 여사님 때문에 웃음이 터졌다. 어머니는 평생 남을 원망하지 않고 오직 내 힘으로 살아온 것에 자부심을 가진 분이었다. 보는 이가 안쓰러운 마음을 가질 틈도 없이 유머스러운 말로 마음을 가볍게 해주는 너른 품까지 갖춘 분.   

덕분에 나는 마음의 먼지를 털어버린 것처럼 홀가분해졌는데 "수산리 아버지" 이야기에서 가슴이 먹먹해졌다. 암투병 중에 그동안 가깝게 지내온 이웃들을 초대해서 재미지게 노는 모습에서는 '잘 놀고 갑니다'라는 인사를 하시는 것 같았다. 약해지는 순간까지 품위를 잃지 않는 한 사람을 보았다.     

<나는 언제나 당신들의 지영이>는 나를 있게 하고, 나를 지켜준 사람들, 너무나 당연해서 이제껏 제대로 보지 못한 사람들을 떠오르게 한다. 받을 생각도 없이 주기만 해서 바보 같기도 한 그들 때문에 눈물은 필수적으로 동반하지만 이제는 어깨를 나란히 하고 그들의 삶을 바라볼 때라는 생각이 들게 한다. 작은 용기를 손에 쥐여주는 책이다.     

쓰러지는 쇠 무더기를 신경이 끊어지는지도 모르고 팔로 받치다가 난 사고처럼 아빠는 그렇게 인생을 살아왔다. 아빠는 비굴하지도 않았고 약자도 아니었다. 온몸을 내던져서 삶을 개척해온 누구보다 강한 사람이었다.      

책을 덮고 나의 아버지 김길수씨를 한 사람으로 봐야겠다고 마음먹었는데 그 순간에 걷잡을 수 없는 울음이 복받쳐 올랐다. 한 사람이 살아온 내력을 가까이에서 본 사람으로서의 책임감, 그 고생이 나 때문이었다는 죄책감, 그만큼의 보상을 해주지 못했다는 부채감이 실타래 같이 엉켜서 혼란스러웠다.   
   
한 사람이 주기에는 너무 많은 것을 준 나에게는 우주 같았던 우리 아빠, 하지만 이제는 작은 노인이 되어버린 사람. 그 두 개의 간극에서 나는 어찌할 바를 모른 채 길을 잃었다.              

나는 언제나 당신들의 지영이 - 애정으로 바라봐준 두 사람, 씩씩한 친정엄마와 시대보다 앞선 시아버지 이야기

배지영 (지은이), 책나물(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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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을 봐서 요리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학원밥 18년에 폐업한 뒤로 매일 나물을 무치고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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