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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초 좋아하는 친구의 소개로 군산의 동네서점 한길문고에서 주관하는 <작가와 함께하는 에세이 쓰기 5기>를 신청했고, 아슬아슬하게 선정되었다. 그 작가 이름은 배지영. 한길문고 상주 작가이다.

에세이 수업은 4월부터 10월까지 7개월 동안 매주 화, 목요일 두 번씩 진행되었다. 각자 자기의 생활 에세이를 자유롭게 써오면 작가 선생님이 그걸 수정해주면서, 글쓰기에 대한 이론을 설명해주고 도움이 될 만한 책들을 추천해주는 방식으로 운영되었다.

코로나19 때문에 마스크를 벗지 못한 채, 차도 한 잔 같이 못 마시면서 받는 수업이었지만, 배지영 작가와 함께 하는 두 시간 가량의 시간은 정말 후다닥 지나가 버렸다. 무얼 공부하는 시간이라기보다 오히려 하루의 스트레스를 날려버리는 힐링의 시간이 되었다. 그냥 재밌고, 막 웃음 나는 시간들이었다.

딱히 글쓰기에 대한 의욕이 별반 없었던 내가 꽤 열심히 그 수업에 참여할 수 있었던 것은 배지영 작가의 밝고 긍정적인 에너지 덕분이었던 것 같다. 수업을 받는 내내 궁금했다. 배지영이라는 사람은 어떻게 이렇게 사랑받고 사는지? 무엇 때문에 이렇게 유쾌한 긍정에너지가 넘치는지. 이 책 <나는 언제나 당신들의 지영이>를 읽고 나는 어느 정도 답을 찾은 듯하다.
 
씩씩한 친정엄마와 시대보다 앞선 시아버지 이야기를 진솔하고 담백하게 다룬 <나는 언제나 당신들의 이야기>
▲ 책표지도 이쁘다 씩씩한 친정엄마와 시대보다 앞선 시아버지 이야기를 진솔하고 담백하게 다룬 <나는 언제나 당신들의 이야기>
ⓒ 김소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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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총 2부로 나뉘어 있다. 1부에서는 생활력 없는 남편 덕에 온갖 육체노동을 하고 살아온 씩씩한 친정엄마 이야기, 2부는 "남자가 부엌에 들어가도 꼬추가 떨어질 일이 없다"라며 처자식을 위해 요리한 1933년생 시아버지 이야기.

이 책은 단순한 생활 에세이는 아니다. 작가가 20년에 걸쳐서 쓴 책이라고 말했듯, 어머니와 시아버지의 삶 속에 우리의 질곡 많았던 역사가 깃들어 있다. 할아버지가 나이 스물두 살 때 고창의 어느 마당바위에서 벌어진 집단학살 이야기, 몇 백 구의 시체를 뒤적여 큰아들의 시체를 찾아내 결국 깊고 먼 산에 묻어준 할머니 이야기, 친정엄마가 불갑사 명부전에 정성껏 불공드린 덕분에 갖게 된 귀한 아들이 스물세 살 여름에 혼자 교통사고를 당해서 중환자실에 오래 누워있던 이야기 등.

삶의 힘들고 어두운 이야기는 오히려 담백하게 쓰여있다. 그 행간에서 나도 모르게 목이 메어온다. 오랜 세월 한 편 한 편 부모님에 관한 글을 즐겁게 썼다고 하는데, 곳곳에 눈물 버튼이 숨겨져 있다.

"느그 엄마는 근면 성실 말고는 별 매력 없는 사람이어야."

남편의 야박한 평가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4남매를 기르고 공부시킨 엄마. 조금자 여사는 기술 가진 사람을 선망했고, 마침내 영광 법성포에서 굴비 엮는 기술자가 되었다. 카톡을 배워서 딸들한테 보낸 날, 동네 카페에서 아메리카노를 처음 마신 날에도 그녀는 "살아가는 일이 이러코 기쁠 수가 없다이"라고 했다.
  
작가의 시아버지 강호병씨는 화나거나 속상한 일이 생기면 허허허 웃거나 "짜증을 내어 무엇하리"로 시작하는 노래를 불렀다. 당신이 이제 암 환자가 되었다는 사형선고를 받고도 병원에서 나와 맛있게 식사하고, 서울의 대형병원에서 검사받고 온 날도 바로 부엌으로 가서 밥상을 차렸다는 부분에서는 나도 목이 메이고 가슴이 뭉클해졌다.
 
어느날 강호병씨는 친구들과 이웃들을 초대해 버스를 빌려 계곡으로 물놀이를 갔다. 물속에서 가무를 즐기는 어르신들에게 순식간에 투망을 던진 장면이 특히 인상적이었다. 자신이 죽을 날을 받아놓고 하나도 티 내지 않고 신나게 웃음으로 마지막 인사를 나눈 그분의 성품이 존경스럽다 못해 신기하기까지 했다.

이 책의 1부 <씩씩한 엄마> 편을 읽으면서는 나도 힘들었던 엄마를 떠올렸다. "엄마가 아프면 어쩌지. 쓰러지면 어쩌지?" 어린 내가 볼 때도 엄마가 많이 고단해 보였다. 그러나 엄마는 아무렇지 않게 밥을 하고 빨래를 하고, 우리를 학교에 보내셨다.

그래서 우리도 아무렇지 않았던 것이다. 그런 담대함을 존경하고 사랑한다. 그런 DNA를 내게도 물려주셨으리라 믿는다. 오늘 내가 웬만한 일엔 눈 하나 꿈쩍 하지 않는 힘의 근원이다. 이 책은 이렇게 내 안에 숨어있는 담대함을 일깨워준다. 작가는 묻는다. 당신들의 씩씩함과 다정함은 어디에서 왔는지.

덧붙이는 글 | 블러그나 브런치에도 실릴 수 있습니다.


나는 언제나 당신들의 지영이 - 애정으로 바라봐준 두 사람, 씩씩한 친정엄마와 시대보다 앞선 시아버지 이야기

배지영 (지은이), 책나물(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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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사랑하고, 자연스럽게 살고 싶습니다. 마음 속에 작은 촛불 하나 켜놓고, 뭔가 배우는 일을 좋아합니다. 요즘 읽고 쓰는 일의 매력에 빠져 있는 일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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