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의 엄중한 시국에 방역수칙을 어기고 술판을 벌인 일부 선수들의 일탈과 도쿄 올림픽에서의 노메달 부진 등 올 시즌 한국야구는 팬들에게 큰 실망을 안겼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면서 본격적인 야구붐을 일으켰고 강백호(kt 위즈)와 원태인(삼성 라이온즈), 노시환(한화 이글스) 등 많은 '베이징 키즈'를 배출했던 13년 전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다.

하지만 코로나19 대유행과 선수들의 일탈, 올림픽 노메달이라는 여러 악재들을 제외하면 2021 시즌은 그 어느 해보다도 치열하고 흥미로웠다. 144경기를 모두 치른 시점까지도 정규리그 우승팀이 정해지지 않으면서 사상 최초로 정규리그 145번째 경기를 치렀고 가을야구 막차티켓 역시 정규리그 144번째 경기에서 결정됐다. 예년 같았으면 하루가 다르게 바뀌는 순위 속에서 야구장은 연일 만원 관중으로 가득 찼을 것이다.

1위 다툼 못지 않게 치열했던 4~7위 경쟁에서 살아남은 두 팀은 2015년부터 7년 연속 가을야구 진출에 성공한 두산 베어스와 SSG랜더스를 반 경기 차이로 제친 키움 히어로즈다. 물론 와일드카드 결정전은 지금까지 한 번도 5위 팀이 4위 팀을 꺾고 올라간 적이 없을 만큼 일방적인 결과가 나왔다. 하지만 온갖 이변과 변수들이 속출하는 올 시즌 과거의 데이터들은 그저 '참고사항'일 뿐이다.

외국인 투수 없어도 '미라클' 계속 될까
 
 10월 29일 광주-기아챔피언스필드에서 열린 2021 프로야구 두산 베어스와 KIA 타이거즈의 경기에서 11-5로 승리한 두산 선수들이 코치진과 승리 세리머니하고 있다.

10월 29일 광주-기아챔피언스필드에서 열린 2021 프로야구 두산 베어스와 KIA 타이거즈의 경기에서 11-5로 승리한 두산 선수들이 코치진과 승리 세리머니하고 있다. ⓒ 연합뉴스

 
2015년부터 작년까지 한국시리즈 우승 3회와 준우승 3회로 2010년대 후반을 지배했던 두산은 작년 시즌이 끝나고 오재일이 삼성, 최주환이 SSG로 이적하며 전력이 크게 약화됐다. 여기에 선발과 마무리가 모두 가능한 전천후 투수 이용찬마저 시즌 개막 후 NC다이노스와 전격 계약했다. 아무리 두산이 '우승DNA'를 가진 팀이라고 해도 주력 선수들이 대거 빠진 올 시즌 좋은 성적을 기대하긴 쉽지 않았다.

실제로 두산은 올 시즌 김태형 감독 부임 후 한 번도 겪어보지 못했던 힘든 시즌을 경험했다. 외국인 투수 아리엘 미란다가 고 최동원의 한 시즌 최다 탈삼진 기록을 경신하는 경사도 있었지만 결국 미란다는 시즌을 완주하지 못하고 중도하차했다. 여기에 또 한 명의 외국인 투수 워커 로켓도 시즌 도중 수술로 아웃됐고 이영하, 유희관 등 기존의 토종 선발 투수들도 하나 같이 부진을 면치 못했다.

하지만 두산은 역시 두산이었다. 불펜으로 내려간 이영하가 24경기에서 4승1패1세이브2홀드 평균자책점1.60으로 허리를 지탱했고 마무리 김강률도 21세이브를 기록하며 뒷문을 든든히 지켰다. 타선에서는 시즌 개막 직전 함덕주(LG트윈스)와의 트레이드를 통해 합류한 양석환이 28홈런96타점으로 생애 최고의 시즌을 보내면서 김재환(27홈런102타점)과 함께 팀의 '쌍포'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하지만 두산은 와일드카드 결정전을 앞두고 비상이 걸렸다. 정규리그 평균자책점(2.33)과 탈삼진(225개) 부문 1위를 차지한 에이스 미란다가 공을 던지는 왼쪽 어깨 피로누적으로 와일드카드 결정전 출전이 어려워진 것. 게다가 두산은 30일 한화와의 최종전에서 토종 에이스 최원준을 투입했기 때문에 키움과의 와일드카드 1차전에서 선발로 내보낼 수 있는 투수는 선발투수로 첫 시즌을 치르고 있는 곽빈 밖에 남지 않았다.

두산 왕조의 핵심 역할을 했던 외국인 투수 없이 포스트시즌을 치러야 하는 두산은 키움을 1차전에서 꺾고 올라가는 것이 대단히 중요하다. 물론 준플레이오프를 대비한 충분한 휴식도 중요하지만 1차전을 내주면 당장 2차전에 투입할 선발투수조차 마땅치 않기 때문이다. 천신만고 끝에 7년 연속 가을야구 진출에 성공한 두산 베어스는 과연 올 가을에도 야구팬들을 놀라게 할 '미라클'을 써내려 갈 수 있을까.

2승 필요한 키움? 선발진은 훨씬 강하다

2018년부터 작년까지 3년 연속 포스트시즌 진출에 성공했던 키움은 올 시즌 과감한 투자를 한 SSG, 디펜딩 챔피언 NC 사이에서 크게 고전했다. 시즌 중반에는 선발 투수 안우진과 한현희가 코로나19 방역수칙을 어기고 원정숙소를 무단이탈하는 사건이 있었고 외국인 투수 제이크 브리검도 아내의 건강악화로 팀을 이탈했다. 선발 투수 3명이 동시에 빠져나간 키움은 구멍을 메우기 위해 '서교수' 서건창(LG)을 트레이드 카드로 쓸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키움은 시즌 막판 저력을 발휘하며 SSG를 반 경기 차이로 제치고 극적으로 4년 연속 가을야구 무대를 밟게 됐다. '바람의 손자' 이정후가 .360의 타율로 세계 최초로 '부자 타격왕'에 등극했고 최하위 한화에서도 방출 당하며 은퇴 위기에 몰렸던 이용규는 타율 .296 136안타88득점17도루로 고척돔에서 화려하게 부활했다. 간판스타 박병호가 타율 .227로 부진했던 시즌임을 고려하면 키움의 순위는 사실 '대이변'에 가깝다.

마운드에서는 단연 에이스 에릭 요키시의 활약이 돋보였다. 작년 2.14의 평균자책점으로 리그 평균자책점왕을 차지했던 요키시는 올 시즌에도 31경기에서 181.1이닝을 던지며 16승9패2.93의 빼어난 성적으로 삼성의 데이비드 뷰캐넌과 함께 공동 다승왕에 등극하며 2년 연속 개인 타이틀을 차지했다. 브리검이 중도 이탈한 히어로즈 마운드에서 요키시마저 없었다면 포스트시즌 진출은 꿈도 꾸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히어로즈의 절대적인 에이스 요키시는 지난달 30일 KIA 타이거즈와의 최종전에 등판하느라 두산과의 와일드카드 결정전에는 등판할 수 없다. 홍원기 감독은 반드시 승리가 필요한 1차전에서 올 시즌 징계기간을 제외하면 실질적인 '토종 에이스' 역할을 했던 4년 차 우완 안우진을 투입할 예정이다. 리그에서 가장 위력적인 구위를 자랑하는 선발투수 안우진이 1차전을 잡아주면 2차전 투수운용은 키움이 훨씬 유리해진다.

히어로즈는 지난 2008년 창단 후 7번이나 가을야구에 진출했지만 아직 한국시리즈 우승 경험은 없다. 5위로 간신히 포스트시즌 막차를 탔고 외국인 투수도 한 명이 없는 올 시즌 역시 키움을 우승후보로 분류하는 야구팬은 거의 없다. 하지만 키움이 기대 이상으로 선전했던 포스트시즌에는 언제나 흥미진진한 '가을의 드라마'가 펼쳐진 바 있다. 올 가을에도 키움이 상위 팀들을 상대로 어떤 반란을 일으킬지 주목되는 이유다.

☞ 관점이 있는 스포츠 뉴스, '오마이스포츠' 페이스북 바로가기
KBO리그 포스트시즌 와일드카드 결정전 두산 베어스 키움 히어로즈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