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에는 영화의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고장난 론> 영화 포스터

▲ <고장난 론> 영화 포스터 ⓒ 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버블사가 만든 최첨단 AI 로봇 '비봇'을 이용해 네트워크로 연결된 세상. 소심하고 친구 사귀기에 서툰 중학생 바니(잭 딜런 그레이저 목소리)도 생일 선물로 비봇을 받는다. 하나 기쁨도 잠시뿐. 할머니(올리비아 콜맨 목소리)와 아버지(에드 헬름스 목소리)가 구입한 건 배달 트럭에서 떨어지면서 첨단 디지털 기능과 소셜 미디어 연결에 문제가 있는 고장난 비봇이었다. 

바니는 엉망진창으로 문제를 일으키는 비봇 '론(자흐 갈리피아나키스 목소리)'이 처음엔 싫었지만, 엉뚱하고 호기심 넘치는 모습을 접하며 점점 우정을 느끼게 된다. 그리고 결함이 있는 비봇을 회수하려는 버블사의 CEO 앤드류(롭 딜레이니 목소리)와 개발자 마크(저스티스 스미스 목소리)로부터 친구 론를 지키고자 용감히 나선다.

<고장난 론>은 최첨단 로봇 비봇이 아이들의 친구가 되는 세상에서 고장난 비봇과 한 아이가 특별한 우정을 쌓는 과정을 통해 디지털 세계에서의 우정의 의미와 기술이 인류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를 재미있게 탐구한 애니메이션 영화다.

연출은 영국 박스오피스에서 가장 높은 흥행을 거둔 애니메이션 영화 <아더 크리스마스>(2011)를 연출한 사라 스미스, 아드만 애니메이션에서 <숀더쉽> 시리즈를 연출하다 픽사에 스카우트되어 <인사이드 아웃>(2015)과 <굿 다이노>(2015)에 참여한 장 필립 바인, 지난 20년 동안 소니 픽처스, 워너 브라더스, 디즈니, 루카스 필름, 픽사 등 최고의 애니메이션 스튜디오에서 일한 옥타비오 E. 로드리게즈가 공동으로 맡았다. 

사라 스미스는 대필작가 테오도르(호아킨 피닉스 분)가 인공지능 운영체계 사만다(스칼렛 요한슨 목소리)와 사랑에 빠지는 <그녀>(2013)에서 영감을 얻어 아이패드에서 길을 잃은 3살짜리 아이를 위해 <고장난 론>을 만들었다고 한다. 사라 스미스의 설명처럼 <그녀>가 성인의 사랑을 다룬 반면에 <고장난 론>은 아이들의 우정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고장난 론> 영화의 한 장면

▲ <고장난 론> 영화의 한 장면 ⓒ 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고장난 론>이 그린 외로운 소년과 특별한 존재의 우정담, 어른(또는 어떤 세력)에 맞서 특별한 친구를 구하려는 아이의 모험담은 새롭지 않다. 이미 <이티>(1982), <조니 5 파괴 작전>(1986), <아이언 자이언트>(1999), <릴로와 스티치>(2002), <트랜스포머>(2007), <빅 히어로>(2014) 등 수많은 영화에서 다뤄진 바 있기 때문이다.

<고장난 론>이 눈길을 끄는 지점은 '직접 소통하는 방법을 점차 잊어가는 디지털 세상에서 진정한 우정은 어떻게 정의할 수 있을까?'란 질문을 던지는 데 있다. 바니는 상자에서 나오는 순간부터 무엇이든 척척 해결해주는 다른 비봇(명백히 현실의 스마트폰과 컴퓨터를 은유)과 다른 '고장난 론'이 완벽한 친구가 될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결함 덕분에 가질 수 있었던 론의 엉뚱함과 호기심은 바니를 미처 몰랐던 세상으로 이끈다. 바로 우정은 한 방향이 아닌, 양방향임을 깨달은 것이다.

바니는 론에게 친구가 되는 법을 알려준다. 론은 바니에게 다른 사람을 사귈 수 있는 자신감을 불어넣어 준다. 그렇게 둘은 서로 가르쳐주고 고쳐가며 각자의 부족한 면을 채워간다. 이런 디지털과 사람 사이의 건강한 관계 맺기에 대해 제작자 줄리 록하트는 "소셜 미디어와 디지털 기술은 팬데믹 시대의 우정에 한 가지 장점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것이 우정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해 알려지지 않은 것들이 너무 많다. 그 부분을 <고장난 론>을 통해 파헤쳐볼 수 있어서 좋았다"고 설명한다.
 
<고장난 론> 영화의 한 장면

▲ <고장난 론> 영화의 한 장면 ⓒ 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고장난 론>은 온라인 문화의 문제점과 기술 사회의 양면성도 가벼운 수준에서 언급한다. 영화 속 아이들이 비봇만 쳐다보며 '좋아요', '팔로워', '구독자', '시청자'에 목메는 풍경은 현실의 스마트폰, 소셜 미디어 중독과 다를 바가 없다. 바니처럼 비봇이 없는 사람은 시대에 뒤떨어진 사람으로 치부된다. 

버블사의 마크와 앤드류는 기술의 명암과도 같다. 어릴 적에 친구를 사귀지 못했던 개발자 마크는 아이들을 서로 이어주고 싶다는 바람으로 비봇을 만들었다. 반면에 CEO 앤드류는 오로지 비봇을 돈벌이 수단으로 본다. 심지어 자신의 이익을 위해 개인정보를 악용하거나 감시하는 범죄도 서슴지 않고 저지른다.

<고장난 론>은 영국 런던에 위치한 신생 제작사 '록스미스 애니메이션'의 첫 번째 작품이다. 록스미스 애니메이션은 2017년 20세기폭스와 협력하여 애니메이션을 제작하게 되었으나 이후 20세기 폭스가 디즈니에 인수되면서 현재는 디즈니가 배급하게 되었다. 그 결과 20세기 폭스에서 제작하다 디즈니로 공개된 <프리 가이>(2021)와 마찬가지로 마블, 스타워즈IP(지적 재산권)를 자유롭게 쓴다. 

공교롭게도 두 영화가 모두 디지털 세계의 어두운 면을 다룬 건 흥미로운 우연의 일치가 아닐 수 없다. 실제로 <프리 가이>에서 악당격인 게임회사 수나미의 대표 앤트완(타이카 와이티티 분)과 <고장난 론>의 버블사 CEO 앤드류는 무척 닮았다. 단순화된 악당인 점까지 말이다. 참고로 앞으로 록스미스 애니메이션은 워너브라더스와 함께 영화를 제작할 예정이라고 한다.
 
<고장난 론> 영화의 한 장면

▲ <고장난 론> 영화의 한 장면 ⓒ 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고장난 론>은 걸작이 아니다. 애니메이션 명가 픽사가 내놓은 <소울>(2021), <루카>(2021)의 재미와 작품성을 기대해선 곤란하다. 여러 주제를 집어넣은 탓에 시나리오는 다소 산만하고 전개는 예상대로 흘러간다. 이민자인 바니 가족을 기술적으로 발전하지 않은 채로 후진적인 생각에 갇혀 있는 듯 그린 측면도 엿보인다.

가족 영화로서 즐거움을 기대한다면 <고장난 론>은 나쁘지 않은 선택이다. <행오버> 시리즈로 유명한 스탠드업 코미디언 출신의 배우 자흐 갈리피아나키스의 목소리가 더해진 비봇 '론'의 슬랩스틱 코미디가 큰 웃음을 준다. 우정에 대한 메시지와 기술에 대한 메시지가 균형을 맞춘 편이다. 나와 다른 존재를 받아들이고 결함을 포용하는 자세도 유의미하게 다가온다. 

오늘날 '연결'은 예전보다 의미가 넓어졌다. 친구를 만나는 행위도 연결이며 한 번 만난 적도 없는 사람과 인터넷과 소셜 미디어를 이용해 만나는 역시 연결이다. 그렇다면 온라인과 오프라인이 조화를 이룬 건강한 유대 관계란 무엇일까? 영화 한 편이 명확한 해답을 주긴 어렵다. 다만, 한 가지는 분명하다. <고장난 론>은 기술의 긍정적인 힘을 믿고 있다.
고장난 론 잭 딜런 그레이저 자흐 갈리키아나키스 올리비아 콜맨 사라 스미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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