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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구를 사이에 두고 사진을 찍은 이승만과 존 하지. 서울시 종로구의 이화장에서 찍은 사진.
 김구를 사이에 두고 사진을 찍은 이승만과 존 하지. 서울시 종로구의 이화장에서 찍은 사진.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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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구ㆍ김규식이 불참을 선언한 남한의 5ㆍ10총선거는 이승만의 독무대였다.

친일 지주세력의 한민당은 단선을 지지하면서 이승만과 손을 잡은 지 오래였다. 미군정도 단선을 지지하여 남한의 정치정세는 총선이 대세를 이루었다.

1948년 3월 1일. 존 하지 사령관은 5월 10일 단독선거를 실시할 것을 공식 발표하고, 그 준비를 위해 전국의 경찰에게 특별훈련을 시키고 선거 반대자를 엄격히 통제할 것을 지시하였다. 그러기 위해 '경찰선거위원회'가 구성되었고, 4월에는 경찰을 돕기 위한 '향도단'이 조직되었다. 선거를 방해하는 자는 누구를 막론하고 "쏘아 죽이라"는 섬뜩한 공문이 돌려졌다.

3월 29일부터 4월 9일까지 유권자 등록이 실시되었다. 하지는 언론을 통해 선거에 반대하는 것은 '소련식 공산주의의 노예'를 자청하는 일이라고 주장하면서 유권자 등록을 촉구했다. 미군정 산하에 있는 과도입법회의에서 마련한 것을 미군정이 공포한 선거법에는 유권자가 투표용지에 선호하는 후보자의 성명을 쓰게 하여 다수 인구를 차지하고 있던 문맹자들을 차별하였다. 또 선거권 박탈대상자를 종전의 '민족반역자 및 간상배'로부터 "일본정부로부터 작위를 받은 자와 제국의회 의원이었던 자"로 대폭 축소하여 친일파의 국회진출을 용이하게 하였다.
 
 1947년 4월 미국 방문을 마치고 귀국한 직후 이승만이 하지 미군정사령관과 만나는 모습
 1947년 4월 미국 방문을 마치고 귀국한 직후 이승만이 하지 미군정사령관과 만나는 모습
ⓒ 국사편찬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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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내 5월 10일 남한에서만 총선거가 실시되었다.

200개 의석을 놓고 전국에서 948명의 후보가 입후보하여 평균 4.74:1의 경쟁률을 나타냈다. 1948년 3월 1일 현재 남한 총인구는 19,947,000명. 유권자 총수는 9,834,000명, 등록유권자는 7,837,504명이었다. 선거과정은 준계엄령 상태와 같았다.

실제로 선거과정은 결코 평온하지 않았다. 미군정과 경찰의 공식기록에 따르더라도 무질서와 폭력이 난무했던 선거였다. 경무국은 선거당일에만 51명의 경찰과 11명의 공무원이 피살되었다고 발표했다. 그리고 166곳의 선거관련 관공서와 대부분이 파출소로 구성된 301개 국가기관이 피습당했다. 선거 직전 5주 동안 무려 589명이 선거와 관련하여 목숨을 잃었고, 총 10,000명이 넘는 선거사범이 5.10총선거 관련하여 구속되었다고 추정된다. 그리고 4ㆍ3항쟁이 진행중이던 제주도에서는 세 개의 선거구 가운데 두 곳에서 선거를 치루지 못했다. (주석 8)

남북협상파와 민족주의계열이 참여하지 않는 가운데 실시된 5ㆍ10총선거는 71.6%의 투표율로, 당선자는 무소속 85명, 이승만의 독촉 55명, 한민당 29명, 대동청년단 2명, 기타 19명이었다. 무소속 가운데 한민당 계열임에도 불구하고 당의 이미지 때문에 무소속으로 출마하여 당선된 사람이 많았다. 

따라서 실제로 한민당 소속이 76석, 독촉계열이 61석으로 분류되었다. 결과론적으로 이승만과 한민당이 승리한 선거였다. 하지만 미ㆍ소공위 미국측 대표단의 벤자민 위임스가 인정했듯이 "선택할 후보자 명단 자체가 비대표적이었기 때문에 총선거 결과가 남한 주민의 의사를 정확히 반영한 것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주석 9)

신익희는 고향인 경기도 광주군에 후보등록을 마쳤다. 경쟁자가 없어서 무투표 당선이 예정되었다. 전국적으로 유능한 민족주의계열 후보를 찾아 지원유세를 하였다. 

남과 북이 한데 뭉쳐서 통일정부를 세우자는 주장은 언뜻 듣기에는 그럴 듯 하다. 그러나 이루어질 가능성이 전혀 없는 공상이다. 호랑이에게 "네 가죽이 얼룩얼룩한 게 보기좋으니 나에게 다오"라고 말한다고 호랑이가 제가 죽을 줄 알면서 응낙하겠는가?

하지 않을 것이다. 마찬가지 이치로 민주주의를 하자는 우리에게 공산독재를 하자는 그들이 합쳐지겠는가? 안 될 일이다. (주석 10)


주석
8> 전상인, 〈이승만과 5.10총선거〉, 유영익 편, 『이승만연구』, 472쪽, 연세대학출판부, 2000.
9> 앞의 책, 475쪽, 재인용.
10> 신창현, 앞의 책, 372쪽.    
 

덧붙이는 글 | [김삼웅의 인물열전 / 해공 신익희 평전] 은 매일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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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독재 정권 시대에 사상계, 씨알의 소리, 민주전선, 평민신문 등에서 반독재 언론투쟁을 해오며 친일문제를 연구하고 대한매일주필로서 언론개혁에 앞장서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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