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1:1000의 전설, 쌍권총의 사나이 김상옥 의사 피규어
 1:1000의 전설, 쌍권총의 사나이 김상옥 의사 피규어
ⓒ 김경준

관련사진보기

 
우리 독립운동사의 쾌거인 안중근ㆍ윤봉길 의거와 봉오동ㆍ청산리 대첩 등은 모두 해외에서 일어났다. 이와 비견되는 국내의 쾌거라면 1923년 1월 서울 한복판에서 일본경찰 1천여 명을 상대하여 단신으로 전투한 김상옥 의거를 들 수 있다. 

김상옥(1889~1923)은 서울에서 태어나 학생운동ㆍ애국계몽운동ㆍ일제상품배격 및 물산장려운동ㆍ3ㆍ1혁명ㆍ혁신단조직ㆍ광복단결성ㆍ암살단조직ㆍ상하이임시정부참여ㆍ군자금모금활동ㆍ의열단참여ㆍ조선총독처단과 총독부폭파기도ㆍ종로경찰서 폭파ㆍ3차례 서울시가전 등을 전개한 불굴의 독립전쟁 영웅이다. 

1922년 12월 초 서울에 잠입하여 이듬해 1월 12일 종로경찰서 폭파, 17일 후암동 총격전, 22일 효제동 최후결전에 이르기까지 단신으로 일경 1000여 명을 상대로 시가전을 벌였다. 국치 이래 서울에서 전개된 처음이자 마지막인 쾌거였다. 이 과정에서 일경 수명을 처단하고 결국 자신의 생가 주위에서 일경 500여 명이 4중으로 포위한 가운데 끝까지 전투 중에 소지한 권총 최후의 1탄으로 자결 순국하였다. 

임시정부가 극심한 혼란기에 빠져있던 1922년 12월 어느 날 한 청년이 신익희를 찾아왔다. 33세의 김상옥이었다. 그때 신익희는 28세, 왕해공(王海公)이란 중국식 가명을 쓰고, 임시정부에서 활약하다 침체기를 맞아 가슴앓이를 하던 중이다.

애국충정의 두 청년은 쉽게 마음이 통하는 동지가 되었다. 김상옥은 이를 전후하여 임시정부의 요인 김구ㆍ이시영ㆍ조소앙 등과 교제하고 여러 가지 협력을 아끼지 않았다. 

김상옥이 의열단원으로 입단하여 조선총독의 처단과 총독부 폭파 등의 사명을 띄고 국내에 들어오기 전날 밤, 두 사람은 상하이의 허름한 술집에서 영원한 사별이 될지 모르는 '최후의 술잔'을 나누었다. 그리고 다음날이다. 
 
독립운동가 김상옥이 종로경찰서 폭탄 투척 의거할 때 사용하고 남은 폭탄 6점. 당시의 폭탄 종류를 알 수 있는 자료이다.
▲ 김상옥의 폭탄  독립운동가 김상옥이 종로경찰서 폭탄 투척 의거할 때 사용하고 남은 폭탄 6점. 당시의 폭탄 종류를 알 수 있는 자료이다.
ⓒ 독립기념관

관련사진보기

 

이튿날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길을 떠나는 김상옥을 전송하고자 해공은 상해 정거장까지 나가 주었다. 그의 장거(壯擧)로 대한 남아의 독립 투지는 다시 한 번 하늘까지 충천할 터이었다.

열차가 출발하기 직전이었다. 해공은 그가 평소에 생명 못지 않게 아끼던 호신용 권총 한 자루를 품속에서 꺼냈다. 브라우닝 투로 성능 좋은 권총이었다. 김상옥 의사의 손에 쥐어 주며 재빨리 깊숙이 간직하기를 부탁하였다. 

"김형, 이건 내가 드릴 수 있는 유일한 것입니다. 폭탄만 가지고 단독 의거가 어렵다면 이걸 사용하시오. 백발백중 명중률이 높습니다. 혹 형이 거사를 하고 나서 위급한 정황에 몰린다면 왜적에게 잡혀 곤욕을 당하기보다, 정 피치 못할 경우라면 이 성능 좋은 걸로 자결을 택하는 것도 의기 남아가 할 일이 아니겠소. 이번 김형의 장거야말로 우리 민족 전체의 큰 뜻이 아닐 수 없고, 또 반드시 성공하리라 나는 굳게 믿소."

이 말을 듣는 김상옥의 눈시울은 뜨거워져 있었다. 젊은 해공 또한 더 이상 말을 이을 겨를이 없었다. 말 그대로 이심전심(以心傳心)이었다.
일제경찰의 심장부이자 숱한 독립지사들을 탄압한 종로경찰서에 의열단 김상옥이 1923년 1월 12일 폭탄을 투척한 장소. 이후 김상옥은 추격하는 일경 수백 명과 총격전을 벌이며 일본 경부 등 여러 명을 살상하고 투항을 거부한 채 스스로 머리에 권총을 쏘아 자결한다. 영화 『밀정』의 첫 장면에서 지붕을 뛰어넘으며 일경과 교전을 벌인 김장옥의 이야기는 김상옥을 묘사한 장면이다
▲ 김상옥 의거터(서울시 종로구 종각역 8번 출구 앞) 일제경찰의 심장부이자 숱한 독립지사들을 탄압한 종로경찰서에 의열단 김상옥이 1923년 1월 12일 폭탄을 투척한 장소. 이후 김상옥은 추격하는 일경 수백 명과 총격전을 벌이며 일본 경부 등 여러 명을 살상하고 투항을 거부한 채 스스로 머리에 권총을 쏘아 자결한다. 영화 『밀정』의 첫 장면에서 지붕을 뛰어넘으며 일경과 교전을 벌인 김장옥의 이야기는 김상옥을 묘사한 장면이다
ⓒ 하성환

관련사진보기

 

김상옥 의사는 역사적인 소임을 다한 뒤 신익희가 전해준 권총으로 자신의 심장을 겨누었다. 김 의사를 떠나보낸 신익희는 하숙집에 돌아와 밤을 밝혀 통곡하며 시 한 수를 지었다.

 痛哭長安夜 장안의 밤에 통곡하다가 
 忽然大笑之 별안간 크게 웃으니
 傍人那得識 옆에 사람인들 어찌 이 속셈을 알랴
 樽酒有無時 술잔에 술이 가득할 때나 비어있을 때나. 

신익희는 망명에서 돌아온 뒤 이 시를 붓글씨로 써서 김 의사의 장질에게 전하면서, 여기에 주(註)를 달았다.

내 나라 밖에 28년을 있다가 귀국 제8일 되는 날에야 비로소 조카를 찾아보고 지난날의 일을 돌이켜 기억하며, 또 세사 변천에 감상(感傷)을 금할 길 없어 옛날 지었던 한 수를 써서 기념으로 하노라. 


주석
2> 유치송, 앞의 책, 281쪽.
3> 『구술 해공 자서전』, 157~158쪽.
4> 앞의 책, 158쪽.
 

덧붙이는 글 | [김삼웅의 인물열전 / 해공 신익희 평전] 은 매일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태그:#해공, #신익희, #신익희평전
댓글1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군사독재 정권 시대에 사상계, 씨알의 소리, 민주전선, 평민신문 등에서 반독재 언론투쟁을 해오며 친일문제를 연구하고 대한매일주필로서 언론개혁에 앞장서왔다. ---------------------------------------------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