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민간 군사력 평가기관 GFP(Global FirePower)에서는 매년 세계의 군사력 순위를 집계해 발표한다. 냉전시대부터 군사력 1, 2위를 다투던 미국과 러시아가 수십 년째 1, 2위를 굳건히 지키고 있는 가운데 주목해야 할 나라는 바로 대한민국이다. 2017년까지 11위에 불과(?)했던 대한민국은 2020년 발표에서 무려 6위로 순위가 급상승했고 올해도 그 순위를 유지하고 있다. 

물론 한국보다 높은 순위에는 중국(3위)이나 일본(5위) 같은 동아시아의 인접 국가들이 자리하고 있어 피부로 느끼기는 어려운 게 사실이다. 하지만 한국전쟁 당시 21개국에서 전투 및 의료지원을 받았던 약소국이었음을 고려하면 프랑스(7위), 영국(8위), 이탈리아(12위), 독일(15위) 등을 제친 군사력은 그야말로 놀라운 발전을 거듭해온 셈이다(참고로 북한은 상위 25위 안에 포함되지 않았다).

아이언맨이나 슈퍼맨 같은 슈퍼 히어로의 존재가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현재 세계에서 가장 큰 힘을 가진 사람은 세계 군사력 순위 1, 2위 국가의 군 통수권자인 조 바이든 미국대통령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고 토니 파커 감독의 액션 스릴러 영화 <크림슨 타이드>에서는 미국, 러시아의 대통령과 함께 세계를 움직이는 3번째 실권자로 미핵탄두 잠수함의 함장을 꼽았다.
 
 토니 스콧 감독 특유의 긴장감 넘치는 연출이 돋보인 <크림슨 타이드>는 세계적으로 1억5000만 달러의 흥행수익을 올렸다.

토니 스콧 감독 특유의 긴장감 넘치는 연출이 돋보인 <크림슨 타이드>는 세계적으로 1억5000만 달러의 흥행수익을 올렸다. ⓒ 월트디즈니

 
형과 다른 매력을 가진 액션 스릴러 대가

지난 2012년 투신 자살로 세상을 떠난 고 토니 스콧 감독은 <에일리언> <델마와 루이스> <글래디 에이터> 등으로 유명한 거장 리들리 스콧 감독의 친동생이다. 두 형제는 1973년 영국에서 함께 광고 제작사를 설립하기도 했지만 영화 감독으로는 조금 다른 길을 걸었다. 리들리 스콧 감독이 긴장감 넘치는 연출과 멋진 화면구성으로 유명한 스타일리스트였다면 토니 스콧 감독은 주로 현대를 배경으로 한 액션 스릴러 장르에서 강세를 보였다.

토니 스콧 감독은 1986년 할리우드 진출작인 <탑건>을 통해 세계적으로 3억 5600만 달러의 흥행성적을 기록하며 화려하게 등장했다(이하 박스오피스모조 기준). 토니 스콧 감독은 <탑건>에 이어 1989년 <비버리 힐스 캅>의 속편을 연출했는데 이 역시 세계적으로 2억 9900만 달러의 흥행 성적을 올렸다. 토니 스콧 감독은 단 두 편의 영화로 적어도 흥행에서만큼은 형을 능가하는 성과를 올리며 주목 받았다.

1990년 톰 크루즈와 니콜 키드먼이 출연한 <폭풍의 질주>, 1991년 <마지막 보이스카웃>, 1993년 <트루 로맨스>를 연출하며 영역을 넓혀가던 토니 스콧 감독은 1995년 제리 브룩하이머가 제작한 <크림슨 타이드>를 연출했다. 핵무기를 실은 미 잠수함 함장과 부함장의 갈등, 그리고 그에 따라 고조되는 핵전쟁의 위험을 긴장감 있게 그린 <크림슨 타이드>는 세계적으로 1억 5700만 달러의 흥행성적을 올렸다.

이후 토니 스콧 감독은 야구선수와 열성 팬의 갈등을 그린 스릴러 <더 팬>, 테러방지법 논란으로 국내에서도 재조명됐던 <에너미 오브 스테이트>, 덴젤 워싱턴과 다코타 패닝의 만남으로 화제를 모은 <맨 온 파이어> 등을 연출하며 액션 스릴러의 대가로 인정 받았다. 비록 <탑 건>과 <비버리 힐스 캅2>만큼의 히트작은 나오지 않았지만 토니 스콧 감독은 언제나 일정 수준의 흥행 성적을 기대할 수 있는 믿음직한 감독이었다. 

2000년대 들어 기획 및 제작자로 활동 영역을 넓힌 토니 스콧은 2010년 TV 시리즈로 유명했던 < A특공대 >를 제작했고 2012년에는 박찬욱 감독의 할리우드 진출작 <스토커>의 기획과 제작에도 참여했다. 하지만 토니 스콧은 2012년 8월 LA의 다리에서 투신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자살 직전까지도 <탑 건> 속편 연출에 열의를 보인 바 있어 그의 죽음은 많은 영화 팬들을 안타깝게 했다(감독이 바뀐 <탑건2>는 오는 11월에 개봉할 예정이다).

지휘관이 흔들리면 병사들이 피곤하다
 
 두 아카데미 수상자 덴젤 워싱턴(왼쪽)과 진 헥크먼의 연기대결은 <크림슨 타이드>의 최대 감상 포인트다.

두 아카데미 수상자 덴젤 워싱턴(왼쪽)과 진 헥크먼의 연기대결은 <크림슨 타이드>의 최대 감상 포인트다. ⓒ 월트디즈니

 
군에서는 FM을 고집하는 신임 중대장과 경험이 풍부한 행정보급관이 사소한 일로 마찰을 일으키곤 한다. 군대 내 계급체계로 보면 당연히 중대장이 상위 계급이지만 오랜 부대 생활로 잔뼈가 굵은 행보관의 경험도 무시하지 못한다. 이렇게 간부끼리 마찰을 빚게 되면 피곤해지는 쪽은 사병들이다. <크림슨 타이드>는 서로 다른 가치관을 가진 장교 램지 함장(진 핵크만 분)과 헌터 부함장(덴젤 워싱턴 분)의 갈등을 그린 군 스릴러 영화다.

사실 커다란 스케일의 수중 액션 영화를 기대했던 관객들에게 <크림슨 타이드>는 다소 실망스런 작품일지 모른다. <크림슨 타이드>는 눈에 보이는 적과 싸우는 액션 영화가 아니라 같은 편끼리 미사일 발사 여부를 놓고 대립하는 심리 스릴러에 가깝기 때문이다. <크림슨 타이드>는 선과 악의 대결을 그린 영화라기 보다는 신중하지 못한 지휘관의 결정 하나가 인류에 얼마나 큰 재앙을 가지고 올 수 있는지 경고하는 일종의 '반전(反戰) 영화'다. 

미 해군사관학교 출신에 하버드에서 위탁교육까지 받은 헌터 부함장은 자상하고 민주적인 마인드를 가진 엘리트 장교다. 반면에 램지 함장은 오랜 군생활로 가족을 모두 잃고 알라바마호를 통해 자신의 존재가치를 찾는 노장 군인이다. "핵무기가 있는 현세에서 진정한 적은 전쟁 그 자체"라는 헌터 부함장의 대사와 "우리는 민주주의의 수호자일 뿐 실천자가 아니다"라는 램지 함장의 대사에서는 두 사람의 다른 가치관을 느낄 수 있다.

미사일 발사여부를 놓고 갈등을 거듭하던 두 사람은 서로를 감금하다가 마지막 3분 동안 상부의 비상 통신문을 기다리기로 한다. 서로 마주 앉은 헌터 부함장과 램지 함장은 시시콜콜한 말 이야기로 시간을 보내게 되는데 두 사람이 나누는 대화의 내용과 달리 영화의 긴장감은 최고조에 다다른다. 결국 상부에서 내려온 통신문의 내용은 '발사 중지'였고 램지 함장은 헌터 부함장을 차기 함장으로 추천한 후 예편을 신청한다.

영화의 스토리와는 큰 연관이 없지만 영화 초반부 알라바마호가 서서히 물 속으로 잠기는 장면은 상당히 멋지게 연출됐다. 토니 스콧 감독을 포함한 제작진은 이 장면을 찍기 위해 실제 알라바마호가 출항하기를 기다리다가 출항 직후 헬기를 띄워 촬영을 했다. 사실 미니어처를 제작해 촬영한 후 CG를 입히면 훨씬 수월했겠지만 토니 스콧 감독은 영화의 주제를 보여주기 위해 실제 알라바마호를 관객들에게 보여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판단했다.

<크림슨 타이드>에 등장하는 <반지의 제왕> 아라곤
 
 서로 다른 가치관을 가진 지휘관이 있으면 병사들은 혼란에 빠질 수 밖에 없다.

서로 다른 가치관을 가진 지휘관이 있으면 병사들은 혼란에 빠질 수 밖에 없다. ⓒ 월트디즈니

 
헌터 부함장은 배 안에서 사병들과 농담을 주고 받을 정도로 자상하고 민주적인 지휘관이지만 침상에서 다림질을 하면서 편안히 대화할 수 있는 친구는 발사 통제관의 피터 웹스 대위 뿐이다(소령인 부함장과 대위가 친구인걸 보면 누구 하나가 진급이 빨랐거나 늦은 모양이다). 웹스 대위는 도허티, 웨스터가드 등의 회유에 잠시 동안 함장 편에 서기도 하지만 결정적인 순간에 발사 통제실의 문을 열지 않아 핵미사일 발사를 저지한다.

웹스 대위를 연기한 배우는 <반지의 제왕> 시리즈에서 실주인공으로 불리던 아라곤 역의 비고 모텐슨이었다. 배우뿐 아니라 시인, 작가, 화가 등 다방면에서 재능을 뽐내고 있는 모텐슨은 <반지의 제왕> 후에도 <이스턴 프라미스> <더 로드> <댄저러스 매소드> <그린북> <폴링> 등을 통해 다수의 영화제에서 연기상 후보에 올랐다. 덴마크 출신의 배우 모텐슨은 2010년 덴마크 여왕으로부터 기사 작위를 받기도 했다.

램지 함장의 독단에 불만이 쌓여가던 헌터 부함장은 미사일 발사를 고집하는 함장을 직위 해제시킨다. 이 때 헌터 부함장의 결정을 지지해준 인물이 바로 알라바마호의 갑판장이었다. 헌터는 함장을 감금한 후 갑판장에게 고마움을 전하지만 갑판장은 "고맙다구요? 난 당신 편이 아니니 똑바로 알아두쇼. 당신이 틀렸을 수도 있지만 함장이 부함장을 그냥 갈아치울 수는 없기에 당신을 따른 겁니다"라며 지휘관에게 당당하게 자신의 입장을 밝힌다.

갑판장을 연기한 독일 출신의 배우 조지 던자는 1970년대 중반부터 할리우드에서 활동했다. 1983년 <스트리머>라는 영화로 베니스 영화제에서 볼피컵 남우주연상을 수상했을 정도로 연기력이 뛰어난 배우다. <원초적 본능>에서는 마이클 더글라스의 동료 형사를 연기했는데 영화 후반부 엘리베이터에서 잔인하게 살해 당한다.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영화 크림슨 타이드 토니 스콧 감독 진 헥크먼 덴젤 워싱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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