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태양을 덮다> 스틸

영화 <태양을 덮다> 스틸 ⓒ 리즈필름

 
지난 3월 11일은 후쿠시마 원전 사고가 난 지 10주기가 되는 날이었다. 2011년 이후 지인은 매해 찾던 일본 방문을 포기했다. 방사능에 노출되었을 식수와 먹거리들에 대한 걱정 때문이다. 그러나 대륙 너머 남의 나라 일로만 치부하긴 어렵다.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원전 '밀집도' 1위인, 원전 지뢰밭이다. 지진 활성 단층 위에 원자력발전소를 지은 터라 언제든 사고가 날 수 있는 여건인 데다 고리 원전 30km 이내에는 후쿠시마 인구 수의 22배인 380만명이 거주하고 있다.

우리는 여전히 '마스크'를 쓰지 않았던, 이전을 '전생'이라 일컬으며 백신과 사회적 거리 두기가 완화되기만을 기다린다. 체르노빌 사고로부터 35년, 후쿠시마로부터 이제 10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두 도시는 방사능으로 뒤덮여 있다. 할 수 있는 것이라곤 사고 지역에 대형 마스크를 덮고 핵폐기물을 모아 두는 것뿐이다(우크라이나는 체르노빌에 있는 사고 난 원자로에 향후 100년간 방사능 물질이 방출되는 것을 막고자 17억 달러(한화 약 2조) 규모의 방호를 씌웠다).

애초 원전 사고는 정부가 감추는 데서 시작됐다. 재난의 시대를 살고 있는 이 때에 우리는 더 이상 마스크로 가리기만 할 게 아니라 원시적인 방법으로 살던 때로 되돌아 가야 할 지도 모른다. 기후위기를 막기 위해 여러 나라에서 플라스틱 빨대를 없애며 빨대의 기원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것이 그 예다(인류 최초의 빨대는 '짚(Straw)으로 만들어졌다. 최근 대기업 프랜차이즈 카페들은 빨대를 없애거나 생분해 되는 종이, 옥수수 전분으로 만들어진 제품으로 제공하는 추세다).

그런 와중에 후쿠시마 사고 당시를 재연한 재난영화 <태양을 덮다>가 개봉했다. 극장에 가는 것마저 쉽지 않은 때에 재난 영화라니. 11일 사고 10주기에 맞추어 개봉한 영화는 국회의원들을 대상으로 상영 후 좌담회를 열더니 서울 그리고 원전의 중심지인 울산으로 가 토론회를 진행하며 '탈핵영화'라는 타이틀을 내걸었다.

미디어에선 원전 인근 지역 단체들이 기자회견을 여는 것을 일부 보도했지만 그 외에는 무서울 정도로 잠잠했다. 불과 11일로부터 3일 전 창원에서는 원자로 부품을 운송하던 중 운송업체 직원이 사망하는 사고(오마이뉴스, 100톤 원자로 부품 싣다가 협착… 운송업체 직원 사망)가 일어나기도 했다.

일부 언론에서는 '日 후쿠시마 원전 10주기…K원전 '지진·쓰나미' 철벽 대비'라는 제목의 기사를 냈다. K-POP에서 K방역까지. 이제는 K만 붙이면 모든 게 일사천리인 줄 아는 모양이다. 체르노빌과 후쿠시마의 전례를 보고도 우리만은 안전할 것이라 생각하는 이 도취감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K원전, 일본 원전이 따로 있는 게 아니다. 영화 <태양을 덮다>를 보면 이 안일한 도취감과 무지가 어떤 결과를 초래하는지 여실히 깨달을 수 있다. 

재난 영화이지만 어떤 스펙터클도 연출되지 않는다. 일부 네티즌들의 평처럼 이 영화는 '사실'이란 것만으로 이미 공포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영화는 내내 넥타이를 맨 남성 정치인 관료들의 어처구니없는 실수로 인해 실소를 자아내게 만든다. 고작 저런 사람들에게 한 국가의 미래를 맡겼던 것인가 싶을 정도로 참담하다.

쓰나미가 몰려오고 일본 열도가 사라질 위기 앞에서 그들은 제대로 된 정보와 매뉴얼 없이 우왕좌왕 할 뿐이다. '안전하니까 만들었겠지'하고 생각했던 안일한 '안전 신화'가 처절하게 무너진다.

영화는 3월 11일 사고 5일간의 원전 사고를 시간 순으로 보여주며 이 모든 게 '사람'에 의해 이루어짐을 다시 상기시켜준다. 일부는 쓰나미로 인한 자연재해라고 했지만 영화에도 실명으로 등장하는 당시 총리 간 나오토는 도쿄 전력이 지금까지도 지진계 고장 등의 정보를 숨겼다고 말한다. 원자력은 인간이 통제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선 지 오래다.

재난의 시대에 이 영화를 봐야 할 이유는 과거를 되풀이하지 말자는 각성의 의미도 있겠으나 세계가 탈원전으로 가는 시대에 유독 '원전'을 고집하는 사람들은 누구이며 그들이 여기서 무엇을 얻고자 하는 이들인가를 질문하게 만든다는 데에 있다.

원전의 역사는 인간이 값싼 전기를 얻고자 생명과 미래를 담보한다는 데에서 위험한 도박임이 증명됐다. 모두가 마스크를 써야 하는 요즘, 신체 일부를 가리고 숨기는 것만이 아닌 QR코드로 개개인의 행선지를 밝혀야 하는 시대다. 때문인지 영화 제목 <태양을 덮다>는 가려지고 드러나는 것들에 대해 시사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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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여름 한국을 떠나 런던을 거쳐 현재 베를린에 거주 중이다. 비건(비거니즘), 젠더 평등, 기후 위기 이 모든 것은 ‘불균형’에서 온다고 믿기에 그것에 조금씩 균열을 내 기울어진 운동장을 일으키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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