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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물고기는 생긴 게 그만그만해서 여간 눈여겨보지 않으면 그놈이 그놈 같다. 동해와 삼척뿐만 아니라 동해안 여러 곳에서 한 물고기를 두고 다른 이름으로 쓰는가 하면 뻔히 다른 물고기인데도 같은 이름을 써서 헛갈리기 일쑤다.

이를테면, 꾸구리, 꾹저구, 뚝저구, 뚜구리, 꾸구리, 뿌구리, 뚝지, 동사리 같은 이름을 너나없이 섞어 쓴다. 사람마다 다르고 사는 곳 따라 또 다르다. 같은 고기를 눈앞에 놓고도 다른 이름을 대기도 한다. 이 가운데 표준국어대사전 기준으로만 보면 '꾸구리', '동사리' 말고는 죄다 지역말이다.

꾸구리, 한반도 동쪽에서는 볼 수 없는 물고기

그러면 '꾸구리'부터 살펴본다. 꾸구리는 한강과 임진강, 금강 상류에서 산다. 물이 맑고 자갈이 섞인 돌 사이를 옮겨 다니며 사는데, 3년쯤 자라면 10센티미터 더 되게 자란다. 꾸구리는 고양이처럼 빛의 밝기에 따라서 눈꺼풀이 열고 닫힌다.

표준국어대사전에도 "우리나라 특산종으로 한강, 임진강, 금강 수계의 돌이 많은 상류에 산다"고 했으니, 동해로 흐르는 강이나 내에서는 볼 수 없는 민물고기다. 꾸구리라는 이름은 눈꺼풀을 구부리기도 하고 펴기도 한다 해서 붙인 이름이라는 설도 있고 숫놈이 '꾸구꾸구' 소리를 내기 때문에 붙인 이름이라는 설도 있다.

삼척에선 '뚜구리' 강릉 가면 '꾹저구' 

'꾸구리'하고 비슷한 이름으로 '뚜구리'가 있다. 삼척에 '○○뚜구리집'이라는 간판을 내걸고 버젓이 '뚜구리탕' 파는 식당이 있다. 식당 주인한테 물어보면 오십천에서 잡아 온 '뚜구리'로 탕을 끓였다고 한다. 오십천은 도계 백산에서 원통골로 넘어가는 큰덕샘에서 시작해서 동해로 흐르는 강이다.

뚜구리는 또 뭔가 싶다. 삼척에서 '뚜구리'라고 하는 물고기가 동해시를 지나 강릉 옥계나 연곡쯤 가면 '꾹저구'가 되고 '꾹저구탕'이란 이름으로 판다. 
 
오십천
≪동국여지승람≫에서는 "오십천은 부성 남쪽 105리에 있다. 수원이 우보현에 있으며 죽서루 밑에 와서는 휘돌면서 못이 된다. 또 동쪽으로 흘러 삼척포가 되어 바다로 들어간다. 부에서 수원까지 마흔일곱 번을 건너야 하므로 대충 헤아려서 오십천이라 일컫는다"고 했다.)
 
<관동별곡>을 쓴 정철이 붙여준 이름 '꾹저구'?

'꾹저구'라는 이름에는 그럴싸한 옛이야기도 있다. 송강 정철이 선조 13년(1580) 정월에 강원도관찰사 벼슬을 받고 내금강, 외금강과 해금강, 관동팔경을 두루 구경하러 다니던 참에 강릉 연곡현을 지날 때였다고 한다. 관찰사가 온다 하니 현감 처지에서야 얼마나 어려웠겠나. 맛나고 귀한 음식을 장만하려 했지만, 하필 그날따가 바람이 몹시 불어 고깃배를 띄우지 못했다고 한다.

궁리 끝에 연곡천에서 물고기를 잡아다 탕을 끓이는데, 이를 맛본 송강이 맛이 참으로 시원하다고 하면서 대체 무슨 고기로 끓인 것이냐고 묻는다. 그때까지 이름 없이 잡아먹던 고기라서 다들 머뭇거리는데, 거기 섰던 사람 중 하나가 나서 '저구새가 내려와 꾹 집어 먹은 고기'라고 답한다. 이 말에 송강이 "그러면 '꾹저구'라 하면 되겠다"고 해서 그날부터 '꾹저구'가 되었다.

저구새는 물수리로 짐작한다. 다만 물수리는 겨울 철새라서 송강이 연곡현에 갔을 때가 여름이라고 치면 텃새인 민물 가마우지일 수도 있다. 역사 자료를 찾아보면 송강은 정월에 와서 이듬해 2월에 병조참지가 되어 다시 한양으로 갔다. 강원도관찰사로는 고작 1년이 있었다. 그 기간에 지방관을 살피고 격려한다는 이름으로 금강산부터 삼척 죽서루, 울진 망양정(울진군은 1962년까지 강원도에 속했다)까지 유람하고 <관동별곡>을 썼다고 하니 일은 언제 했나 모르겠다.

꾹적꾹적 소리낸다 하여 꾹저구!

말이 헛나갔는데, 꾹저구는 몸이 길고 머리는 위아래로 납작하다. 이마가 넓고 편평한데 눈이 작고 머리 위쪽에 있다. 몸은 누런 갈색에 배 쪽은 노랗다. 꾹적꾹적 소리를 내기 때문에 '꾹저구'라고 했다고도 한다.

우리나라 어디에서나 살지만 동해로 흐르는 강이나 시내에서 볼 수 있다. 삼척 '꾸구리탕'과는 다르게 강릉 '꾹저구탕'은 고기를 갈지 않고 통 마리로 끊인다. 소금을 뿌려 끈끈한 진을 뺀 꾹저구 배를 따서 헹군 뒤 그대로 안쳐 익히고 고추장, 풋고추, 마늘, 생강을 넣고 뭉근히 끓인 뒤 간장으로 간을 맞춘다.
  
꾹저구와 뚜구리와 뿌구리
 꾹저구와 뚜구리와 뿌구리
ⓒ 이무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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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준국어대사전에서는 꾹저구를 찾을 수 없다

그런데 표준국어대사전에는 '꾹저구'가 없다. 우리말샘에서 "'꺽저기'의 방언(강원)"로 적어놨는데, 어처구니 없는 풀이가 아닐 수 없다. 꺽저기도 꾸구리와 마찬가지로 동해안으로 흐르는 강에서는 볼 수 없는 물고기다. 꺽저기는 농어목 꺽짓과에 드는 물고기로 <담수어류도감>에는 "낙동강, 탐진강, 거제도 일부 하천에서 분포한다"고 적고 있다.

이 '꾹저구'를 달리 '뿌구리'라고도 하는데, 표준국어대사전에서 '뿌구리'를 찾으면 '동사리'의 강원도 말로 풀어놨다. 어라, 앞서 꾹저구는 꾸구리(한강·금강·임진강에 삶)가 아니라고 했는데, 꾹저구의 다른 이름인 '뿌구리'는 또 다른 물고기인 '동사리'였던 셈이다. <담수어류사전>에서 '동사리'를 찾으면 뚜구리, 뿌구리, 쭈꾸지, 후구락지, 둑지게 따위 지역말이 있다고 나온다. 동사리는 돌이나 자갈 아래에 들어가 좀처럼 움직이지 않는다.

동사리라는 이름은 돌 밑에 가만히 숨어 지내서 '돌살이', 돌 밑에 웅린 채로 겨울을 나기 때문 '동(冬)살이', 한곳에 머물러 좀처럼 움직이지 않기 때문에 '동(垌·둑)살이'라고 하던 게 '동살이>동사리'로 되었다고 한다. 요 녀석 영문 이름은 '코리언 다크 슬리퍼(Korean dark sleeper)'다. 알 낳는 때가 되면 수놈이 '꾸구꾸구' 하는 소리를 낸단다. 사람에 따라 '뿌구뿌구'나 '뚜구뚜구' 따위로 얼마든지 받아적을 수도 있겠다. 그래서 꾸구리, 뿌구리, 뚜구리 같은 이름들이 생겨난 것으로 보인다.

나 같은 얼뜨기 눈에는 꾹저구나 동사리나 꾸구리나 그놈이 그놈 같다. 누구라도 헛갈릴 만하다. 하지만 꺽저기는 생김새가 아주 다른데 꾹저구를 꺽저기의 지역말로 풀이한 건 누가 봐도 잘못이다. 지금이라도 '꾹저구'를 사전에 올리고 우리말샘에서 '꺽저기의 방언'으로 쓴 것은 바로잡아야 옳다.

말난 김에 꺽지는 손으로 잡으면 꺽꺽 꺼륵꺼륵 소리를 낸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고, '꺽꺽 소리를 내는 고기(-치)'란 뜻이다. 꺽저기는 꺽지와 비슷하게 생겼는데 조금 작아서 꺽지에 뒷가지 '-앙이'를 붙인 꼴이 꺽장이, 꺽저기로 된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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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말과 글쓰기 교육, 어린이문학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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