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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말로 뒤친 이탈리아 동화 <눈 오는 날>

독일에 있는 한 출판사는 생텍쥐페리가 쓴 <어린왕자>를 이집트 상형문자, 중세프랑스말, 모스부호 따위로 뒤쳐서 낸다고 한다. 지난해 유월에는 경상도말로 뒤쳐서 <애린 왕자>를 냈다고 한다. 지역 신문에서 소설가 이순원이 이탈리아 동화 <눈 오는 날>을 강릉말로 뒤쳐 냈다는 기사를 보기도 했다. 신문에 소개한 이야기 앞부분을 그대로 옮겨본다.

"징말루 다형이지 뭐래요! 우덜한테는 쉴 의개도 있고 먹을 것두 개락이구 페난히 둔노 잘 데두 있잖소."

입으로 소리내어 읽어보면 환하게 들리는데 눈으로만 졸졸 따라가면 도대체 무슨 말인지 벙벙해진다. 죄다 강릉 지역말이기 때문이다. '의개'(곳)란 말은 나도 처음 듣는다. 그리고 낯선 말이 '둔누'와 '개락'이다. 이순원이 강릉말로 동화를 낸 데는 소설 <첫사랑>(55~56쪽)에서 찾을 수 있다. 사투리를 표준말로 고쳐달라는 편집부 직원에게 작중 화자는 이렇게 말한다.

"원고를 쓰며 내가 가장 싫어하는 말이 <사투리>라는 말이었다. 어떻게 서울말은 다 표준말이고 지방말은 다 잘못된 사투리란 말인가. 아무리 의미 전달이 목적이라지만 같은 사투리도 서울 사람들이 알아들 수 있으면 괜찮고, 서울 사람들이 알아듣지 못한다면 안된다는 법은 또 무엇인가?"

살아있으되 사전엔 없는 말, 개락

이순원이 쓴 말에도 나오지만 태백산맥 동쪽 바닷가 사람들이 쓰는 말에 '개락'이 있다. 우리말샘에서는 '도랑'을 가리키는 충청도말, '홍수'를 가리키는 강원도말로 적어놨다. 표준국어대사전 올림말인 '개락(開落)'은 '꽃이 피고 떨어짐'을 말하고, '개락하다'는 '개락'을 움직씨꼴로 쓴 말이다. 전혀 도움이 안된다. 쓰지도 않는 한자말을 주워다 놓는 정성이면 지역말들을 하나라도 더 챙기는 게 국립국어원이 맡은 일이다. 그게 국어대사전이라는 이름에 걸맞는 구실일텐데 안타깝다.

말이란 게 맥락에서 보면 뜻밖으로 쉽게 의미가 보인다. '먹을 것두 개락이구 페난히 둔노 잘 데두 있잖소' 하는 말에서 보면 먹을 게 많다는 소리고 아무 걱정 없이 누울 곳도 있다는 소리다. 실제로 영동 지역 사람들은 "묵호항에 오징어가 개락으로 났다라"고 한다. 이때 개락이라는 말은 많다는 정도를 넘어 항구에 철철 넘쳐날 만큼 많다는 소리다.

개락의 말밑은 뚜렷하지 않다. <방언 속에 내 고향이 있었네>(김성재, 박이정, 2011)에서 설명은 이렇다. 1936년 9월 초 강원도에 큰물이 진다. 이 일을 병자년에 일어난 큰물이라고 '병자년포락, 병자년개락'이라고 했단다. '포락'은 성천포락(成川浦落)의 준말인데 '논밭이 강물에 씻겨 떨어져 나갔다'는 말이다. '개락'도 큰비로 갑작스럽게 불어난 강물과 냇물처럼 많다는 뜻으로 쓴 말이라고 한다. 

모두 사라지기 전에 지역말 시간을 만들어야 
 

알퐁스 도데가 쓴 <마지막 수업>은 프랑스 알자스 지방을 작품 배경으로 한다. 알자스 지방은 14세기부터 프랑스 지배를 받았는데 주민 대부분은 프랑스말을 쓰지않고 독일말을 썼다. 나폴레옹 전쟁이 끝나고 이 지역 학교에서는 프랑스말을 강제로 가르친다.

그 뒤 1870년, 프로이센을 중심으로 한 독일 여러 나라와 프랑스 사이에 전쟁이 일어나 프랑스가 지면서 알자스는 독일말을 쓰는 프로이센 땅이 된다. 알자스 사람들은 모국어라고 할 독일말을 되찾게 된 셈이다. <마지막 수업>은 이러한 배경을 두고 있다. 하지만 알퐁스 도데는 프랑스어 교사가 독일계 아이들에게 마지막 수업을 하는 장면인데 마치 독일군이 프랑스 학교를 점령해서 독일말을 가르치게 될 것처럼 그려놓았다. 

지금은 프랑스는 어떨까. 떠도는 말로 프랑스 가서 프랑스말로 묻지 않으면 대꾸도 않는다는 말도 있다. 아무튼 프랑스는 중앙 집권 국가이고 언어 정책도 그 어떤 나라보다도 엄격하다. 그렇긴 해도 학교에서는 공용어인 프랑스어말고도 지역말인 카탈류냐어·바스크어(스페인계), 브르타뉴어, 오크어, 오일어, 알자스어(독일계), 코르시카어(이탈리아계)를 공교육 과정에서 배우도록 허용한다.

그런데 우리는 어떤가. 표준어에 들지 않는 말들을 알뜰히 몰아내고 있다. 늦었지만 우리도 지역 교육과정에 지역말을 가르치는 시간을 만들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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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말과 글쓰기 교육, 어린이문학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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