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흥민

손흥민 ⓒ AFP/연합뉴스

 
토트넘에서 연일 절정의 활약을 이어가고 있는 손흥민을 두고 또 다시 레알 마드리드 이적설이 나왔다. 영국의 <기브미스포츠>, 스페인의 <돈 발론>을 비롯한 유럽 현지 매체들은 레알 마드리드가 손흥민 영입에 관심을 보이고 있으며 이적료로 약 7000만 유로(약 931억)를 책정했다는 구체적인 내용까지 보도했다. 레알은 2019년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유벤투스)와 결별한 이후 득점력에서 그의 공백을 메우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는 모습이다.

손흥민은 최근의 상승세를 반영하듯 6일 열린 카라바오컵(리그컵) 4강전에서 다시 득점포를 가동했다. 브렌트포드(2부리그)와의 대결에서 손흥민은 후반 25분 쐐기골을 넣으며 2-0 승리를 이끌었다. 손흥민의 올시즌 리그컵 첫 골이자, 시즌 16호골(리그 12골, 유로파리그 3골), 유럽 무대 개인 통산 150호골이다.

토트넘은 손흥민의 활약에 힘입어 이영표가 뛰었던 2007-08시즌 이후 무려 12년 만에 리그컵 정상에 도전할 수 있게 됐다. 토트넘이 가장 최근에 마지막으로 우승을 차지했던 대회이기도 하다. 토트넘은 맨유-맨체스터시티의 승자와 결승에서 맞붙게 됐다. 프로 데뷔 이후 아직까지 클럽무대에서의 우승 커리어가 없는 손흥민에겐 첫 우승컵을 안을 수 있는 기회다. 

이런 시점에서 나온 손흥민의 레알 이적설은 그의 최근 활약상과 높아진 위상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장면이라고 할 수 있다. 때마침 손흥민과 토트넘의 재계약 협상이 보류됐다는 보도까지 나오면서 레알 이적설에 대한 기대감이 더욱 높아지는 모양새다.

<이브닝스탠다드> 등 영국의 주요 언론들은 "토트넘이 코로나19 팬데믹의 영향으로 재정적 부담이 높아지면서 일부 선수들과의 재계약 문제를 잠정적으로 보류하기로 결정했다"고 보도했다. 손흥민은 토트넘과 2023년까지 계약되어있는 상태다. 손흥민은 올 시즌 초부터 토트넘과 협상을 진행해왔지만 계약기간과 주급에서 이견을 드러내며 재계약에 합의하지는 못했다.

다소 민감한 시점에서 터져나온 손흥민의 레알 마드리드 이적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할까. 일단 한국 선수가 레알이라는 빅클럽의 관심 대상으로 거론된다는 것만해도 축구팬들을 흥분시킬 만한 소식이 아닐 수 없다. 박지성이 맨유 유니폼을 처음 입게 되었다는 소식이 전해졌을 때 축구팬들이 느꼈던 충격과 감동을 떠올려보자.

UCL(13회) 스페인 프리메라리가(34회) 역대 우승 1위에 빛나는 레알은 세계 최고의 클럽이다. 알프레도 디 스테파노, 지네딘 지단, 호나우두, 루이스 피구, 데이비드 베컴, 호날두까지 수많은 레전드의 산실이기도 하다. 현재 토트넘의 지휘봉을 잡고 있는 모리뉴 감독도 레알 마드리드 사령탑 시절, "선수로서는 감독으로서든 레알에서 뛰어보지못했다면, 완벽한 커리어를 이뤄냈다고 할 수 없다"고 말했을 만큼 '레알 마드리드 출신'이라는 수식어 자체가 축구인에게 엄청난 특권이자 명예처럼 여겨진다.

현재 손흥민은 축구선수로서 최전성기에 접어들었다. 세계 최고의 리그라는 EPL에서 수많은 전문가들에게 '월드클래스'의 반열에 올랐다고 인정받고 있다. 손흥민의 커리어를 위해서는 무관의 토트넘을 떠나 이제 슈퍼스타로서의 가치를 좀 더 인정받고 우승 커리어도 쌓을 수 있는 빅클럽으로 떠나야할 시점이라는 주장도 나온다. 레알 마드리드는 이러한 요건에 정확히 부합하는 최상의 클럽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현재의 손흥민이라면 레알에 가더라도 충분히 주전경쟁을 기대해볼 만하다. 4-3-3을 주 전술로 쓰는 지단 감독의 레알에서 주전 원톱인 카림 벤제마는 어느덧 34세다. 2선은 호날두가 떠난 이후 야심차게 영입했던 에당 아자르가 잦은 부상으로 먹튀로 전락했으며, 가레스 베일은 지단 감독의 눈밖에 나서 토트넘으로 임대됐지만 여전히 부진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비니시우스와 호드리구, 루카스 바스케스 등은 모두 경험이 부족하거나 골결정력이 떨어진다.

올시즌 원톱 벤제마를 제외하고 레알의 2선을 책임진 선수들의 리그 득점을 전부 합쳐도(6골) 손흥민의 리그 득점에 절반밖에 되지 않는다. 폭발적인 스피드와 양발을 두루 활용한 골결정력, 수비에도 적극 가담하는 이타적인 헌신성까지 겸비한 손흥민은 지금 전세계의 어떤 감독이라도 기꺼이 선호할 만한 선수다.

하지만 장및빛 기대와는 달리, 손흥민의 레알 이적설이 정말 현실화되기 위해서는 넘어야할 벽이 많아 보인다. 현재까지 유럽 현지 언론에서도 손흥민의 이적설을 뒷받침할 만한 구체적인 근거는 나오지 않고 있다. 세대교체가 절실한 레알을 두고선 손흥민 외에도 킬리앙 음바페(파리 생제르맹), 엘링 홀란드(도르트문트) 등 더 젊고 전도유망한 스타들의 이적설이 끊이지 않고 있다. 
 
 손흥민과 케인

손흥민과 케인 ⓒ EPA/연합뉴스

 
손흥민은 해리 케인 등과 함께 토트넘이 '판매불가'로 분류하고 있는 핵심 중 핵심 선수다. '거상'으로 이름높은 토트넘은 과거에도 가레스 베일, 루카 모드리치 등 핵심선수들을 레알로 보내며 이적료를 톡톡히 챙긴 바 있다. 계약기간이 아직 2년 6개월이 남아 있고 기량이 최정점에 이른 손흥민을 토트넘이 호락호락 보내줄 가능성은 낮다.

더구나 올시즌 토트넘은 결승에 오른 리그컵을 비롯하여 여러 대회에서 우승에 도전하고 있는 상황이다. 토트넘은 가뜩이나 손흥민이 빠지면 대체자가 없을만큼 그에 대한 공격의존도가 높다. 물론 레알이 손흥민 영입을 위하여 엄청난 베팅을 한다면 이야기가 달라질 수도 있지만, 코로나19로 빅클럽들도 재정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상황임을 감안하면 현실성이 떨어진다.

손흥민 본인도 증명해야할 부분이 남아있다. 지난해 11월 '손흥민의 진화'란 제목으로 그의 활약을 집중 분석한 영국 매체 <디 애슬레틱> 칼럼에 다시 한 번 주목할 만하다. 당시 칼럼은 손흥민의 최근 활약상을 높이 평가하면서도 유럽의 여러 우승권 빅클럽들이 손흥민을 영입하기 위하여 적극적인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던 이유에 대하여 흥미로운 분석을 내놓은 바 있다.

손흥민은 어느덧 30세에 가까워질 때까지 레알이나 바르셀로나, 바이에른 뮌헨처럼 이른바 매년 우승에 도전해야하는 빅클럽에서는 한 번도 뛰어보지 못했다. 토트넘처럼 오랫동안 무관에 그치고 있는 중상위권클럽과 달리, 빅클럽에서는 항상 최고의 성과를 보여줘야한다는 구단-팬-언론의 압박에 직면해야 한다. 프로무대에서 아직 한 번도 우승해 본 적 없는 손흥민이 그 정도로 압박을 받는 상황에 놓였을 때 얼마나 버텨낼 수 있을지 알 수 없다. 또한 <디 애슬레틱>은 손흥민이 때때로 이상한 골가뭄을 겪을 때가 있고, 이러한 기복 있는 모습은 빅클럽에서 용납되지 않는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돌이켜보면 2015년 손흥민이 독일에서 영국으로 넘어왔을 때도 바로 최고의 활약을 보였던 것은 아니다. 첫 1년간은 주전경쟁에서 어려움을 겪었고 독일로 다시 돌아가려했던 시기도 있었지만 포체티노 감독의 강한 만류와 신뢰에 힘입어 잔류했고 결국 부활에 성공했다. 하지만 레알은 선수를 그렇게 오래 기다려주는 팀이 아니고, 손흥민도 성장중인 어린 선수가 아니라 당장 성과로 증명해야 하는 베테랑이 됐다. 여기에 독일-영국과는 언어와 문화가 다른 스페인에서 다시 처음부터 적응해야 한다는 것도 아시아 선수인 손흥민에게는 만만치 않은 도전이다.

만일 손흥민이 지금 26~27세 정도만 되었다고 해도 상황은 많이 달랐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손흥민도 이제 한국 나이로 서른에 접어들었고 굳이 빅클럽의 이름값에 연연하거나 낯선 리그에서 다시 새롭게 도전하는 것보다는, 자신이 가장 편안한 환경에서 최상의 퍼포먼스를 유지하는데 주력하는 것이 훨씬 유리할 수 있다.

손흥민이 뛰고 있는 EPL은 현재 세계 최고의 리그이고, 손흥민은 이미 토트넘에서만 통산 101골을 달성하며 팀의 역사를 새롭게 써내려가는 '토트넘 레전드'로서의 길을 착실히 밟아가고 있다. 운이 조금 따라준다면 손흥민이 토트넘에서 처음으로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릴 가능성도 매우 높다. 불확실한 레알 이적설에 신경쓰기보다는 지금 현재의 컨디션을 꾸준히 유지하면서 최상의 활약을 이어가는게 훨씬 중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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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알마드리드 손흥민150호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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