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야 테일러 조이를 처음 본 건 < 23 아이덴티티 >의 예고편에서였다. 굳이 크게 뜨지 않아도 동그랗고 큰 눈이 바들바들 떨리며 카메라를 지켜보는 것만으로 '먹잇감으로 낙점된 사냥감의 시선'을 느낄 수 있었다. 동물로 비유하자면 토끼에 가장 어울리지 않을까. 감독에 대한 기대, 좋아하는 배우의 연작, 전혀 접하지 못했던 새로운 세계관 등 영화를 선택하는 이유는 다양하다. 하지만 덜덜 떨면서 카메라를 응시하는 전혀 처음 보는 배우에게 빼앗긴 약 3초의 시간이 영화를 선택하게 하는 이유가 될 줄이야.

안야 테일러 조이가 본격적으로 대중들의 눈길을 잡은 건 나이트 샤말란 감독의 < 23 아이덴티티 >와 <글래스>였다. 그녀의 연기를 제외하더라도 그녀가 사람들의 눈길을 잡은 셀러브리티가 될 만한 요소는 충분했다. 아버지는 스코틀랜드 계 아르헨티나인이고 어머니는 스페인계 영국인이다. 유년시절을 아르헨티나에서 보내다 영국으로 돌아왔고 현재 국적은 미국이다. 이렇게만 말하면 굉장히 복잡한데 그녀의 이국적인 외모가 담긴 프로필 사진을 보면 '아...' 하고 단박에 이해가 된다.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그녀의 출연작은 <배리>다. 오바마 전 미 대통령의 청년시절을 담은 이 영화에서 안야 테일러 조이는 오바마의 여자친구 샬롯을 연기했다. 테본 터렐의 매끔하게 잘생긴 모습도 멋지지만 안야 테일러 조이의 반쯤 절제한 눈에서 나오는 터레를 향한 진심어린 걱정과 사랑은 정말 빠져들지 않을 수 없다. 작품에 대한 큰 이해 없이 잘생긴 배우의 외모에만 빠져 영화를 감상하는 사람들을 그동안 이해하지 못했는데, 어느새 나도 개중 하나가 되고 말았던 것이다. <배리>는 스토리를 떼어놓고라도 내게 '보는 영화'로 기억에 남을 것이다.
 
할리우드와 영국을 넘나들며 영화와 드라마 활동을 활발하게 하던 그녀는 현재 넷플릭스의 <퀸스 겜빗>으로 다시금 미디어를 장악하는 중이다. 고데기로 매끈하게 볼륨을 살린 붉은 단발머리 천재 체스 소녀 '배스 하먼'을 맡은 그녀는 세상 물정에 대해서는 백치지만 도도하면서 동시에 순수한 영혼을 보여주며 이전과는 다른 매력을 보여주고 있다. 물론 그녀의 캐릭터들을 관통하는 '주체적이고 용기 있는 여성'이라는 공통점은 유지한 채 말이다.
 
이렇게 매력적인 배우에게 유일한 오점은 전 지구를 삼키고 있는 코로나19와 20세기 스튜디오라고 할까. 안야 테일러 조이가 히어로로 참여하는 <뉴 뮤턴트>은 여러 번 개봉이 연기됐다가 지난 9월에야 공개됐다. 미국의 유명 영화평론 사이트 '로튼 토마토'에서도 혹평을 받았으니, 이를 코로나 19에게 명예로운 패배를 당했다고 해야 할까. 이대로라면 젊은 프리오사 역으로 캐스팅된 <매드 맥스: 분노의 도로>의 스핀오프 영화 <퓨리오사>의 개봉마저 코로나 19로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다.
 
불과 5년 전까지 할리우드에서 가장 뜨거웠던 배우가 제니퍼 로렌스였다면, 현재 2020년 할리우드에서 가장 주목받는 배우는 안야 테일러 조이일 것이다. 2021년 개봉 예정인 에드가 라이트 감독의 <라스트 나이트 인 소호>와 더불어 그녀가 주연으로 등장하는 영화 4편이 출격준비를 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 상황에서 그녀의 미래가 기대되는 것은 마땅한 것 아닐까? 아니, 당연할 것이다.
안야 테일러 조이 퀸스 겜빗 뉴 뮤턴트 넷플릭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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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좋아합니다. 글쓰기를 좋아합니다. 하지만 잘 쓰진 못합니다. 대신 잘 쓰려 노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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