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이라고 하기엔 이미 늙었고 노년이라고 하기엔 아직 젊은, 중년. 인생의 사계절 이론(Levinson)에 따르면 가을에 해당하는 중년기는 성인 초기를 마무리하며 삶을 재조명하는 시기이다.

지금까지 살아온 자신의 모습을 되돌아보면서 정체성, 인생목표, 성취수준 등에 대한 존재론적 질문을 하며 심리적 혼란을 겪는다고 한다. '그동안 잘못 살아온 건 아닐까' 불안해하는 중년 남성에게 소개하고 싶은 영화가 하나 있다. 바로 <괜찮아요, 미스터 브래드>이다.
 
 Brad's Status

Brad's Status ⓒ 영화사 진진

 
 
"내가 되려던 건 이게 아니다."
-영화 中

 
47세인 브래드(벤 스틸러)는 비영리 단체에서 기금모금 활동을 하며 평범한 삶을 살아왔다. 불현듯 20년 넘게 사회를 변화시키겠다는 소신 하나로 달려온 그에게 갑작스런 혼란이 찾아든다. 오랜 시간 함께 해온 직장 파트너가 일에 대한 '회의감'으로 퇴사를 하여 심란해 하고 있던 와중에 부와 명성을 거머쥔 '성공'한 대학 동기들의 SNS가 마음에 불을 지른 것이다.

'패배자'가 된 것만 같은 열등감에 휩싸인 브래드. 반면 사회에 큰 영향력을 행세하는 크레이그, 부자 아내를 만나 전용기를 타고 다니는 제이슨, 은퇴 후 두 명의 젊은 애인과 마음껏 즐기며 살고 있는 빌리 등 모든 것을 다 가진 것만 같은 대학동기들의 근황을 보니 문득 자신의 현재가 한없이 초라하게만 느껴진다. 분명 대학 때는 같은 출발점에 있었는데 말이다.
 
"그때 난 세상을 사랑했고, 세상은 날 사랑했다.
우리의 사랑이 언제 깨진 걸까?
어디에서 잘못된 걸까?"
-영화 中

 
그러던 중 브래드는 아들의 대학입시를 위해 자신의 모교가 있는 아이비리그 캠퍼스 투어를 떠난다. 공항에서는 친구들과는 달리 자신은 한 번도 비즈니스석을 타본 적이 없었음을 상기한다. 카드 값 걱정을 하면서도 비즈니스석으로 업그레이드하려는 객기를 부리며 아들에게는 엄지척을 날리기도 한다.

그러나 머쓱하게도 인터넷 할인 티켓이라 교환이 안 되어 풀이 죽어 버린다. 도착한 숙소에서는 아들의 대학 1지망이 하버드라는 사실을 알고는 다시 환희에 차오른다. 다음날 하버드 면접 대기실에서는 옆의 학부모에게 허세를 부려가며 아들 자랑을 한다. 이렇듯 영화 내내 브래드의 감정은 주유소 풍선처럼 오락가락 흔들리며 내면은 계속해서 현재와 과거를 바쁘게 오간다.

언뜻 보면 대학친구들의 SNS 때문에 열폭하고 있는 남자로만 비치치만, 영화는 삶을 재조명하는 중년 남성의 정체성 위기와 불안을 위트있게 묘사하고 있다. '소신껏 살아온 결과가 고작 이거라니!' 잘 나가는 친구들과 비교하며 지금껏 삶의 중심을 지탱해 온 뿌리가 크게 흔들리고 있는 것이다.
 
영화는 성공와 실패의 구도로 상반된 삶을 보여주고 있다. '성공'의 의미가 부와 명성에 비례하는 것이라면 브래드는 분명 실패한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대학친구들 중 '소신'을 지키며 묵묵히 이상을 삶으로 실현해 온 사람은 브래드 뿐이었고, 시간이 '금'이기 때문에 바쁜 친구들에 비해 아내와 아들과 소소한 시간을 보내며 아기자기한 가정을 꾸리고 있는 사람도 '브래드 뿐이었다.
 
"그들을 사랑할 순 있어도 소유할 순 없었다.
세상을 사랑했지만 소유할 수 없었듯이.
···난 아직도 세상을 사랑한다."

 
어쩌면 우리가 소유하고 있다고 여기는 모든 것은 착각인지도 모른다. 생로병사(生老病死)는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주어진 실존적 조건이며, 죽음 앞에서는 모든 소유가 무화(無化)되기 때문이다. 아무리 많은 재물을 지니고 있어도, 아무리 거대한 땅덩어리를 점령하고 있어도 죽을 땐 먼지 한 톨 지니고 갈 수 없는 게 우리의 운명이다.

소유하고 있다고 착각할 뿐 실제적으로는 모든 것을 잠시 빌려 쓰고 있을 따름이다. 그렇다면 성공한 인생이란 '소유'가 아니라 '사랑'이 기준이 되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 나는 그것이 이 영화의 반전이자, 인생 하반기를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를 고민하는 중년들에게 보내는 메시지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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