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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희수를 맞이하는 문혜영 작가는 세 번째 암 투병을 겪으면서도 시집 <숨결>을 탈고해냈다. 봄날의 꽃샘추위처럼 작가는 2022년 수필집 <시간을 건너오는 기억>으로 '제 14회 조경희수필문학상'의 수상자로 선정되는 영애와 함께 세 번째 암 선고를 받았다. 매서운 바람에 흔들리는 들꽃처럼 두려움과 고통의 시간을 까무룩 견디면서도 시인의 어조는 깊고, 맑고, 청아한 향기로 가슴에 울림을 준다.
 
문혜영 시집 <숨결>, 표지작가: 신란숙 서양화가
 문혜영 시집 <숨결>, 표지작가: 신란숙 서양화가
ⓒ 열린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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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 숨

어두워서, 자꾸 어두워서
낮에도 환히 전등불 켜놓고
밤에도 그 불빛 아래 잠든다
그래도 몰래 숨어든 검은 그림자
가위눌림에 소스라쳐 깨어나
그 어둠 몰아내려고
숨을 내뱉는다

고인 어둠을 퍼내려고
꽃나무를 심는다
시 한 줄 끄적이면
꽃나무 하나 자라서
꽃눈이 나고 꽃망울 열려
주변이 환해지도록
꽃이 핀다

시는 어둠을 밀어내는
유일한 내 날숨
내 꽃 숨

절망의 그림자가 어른거릴 때마다, 시인은 꽃나무 심듯 희망의 언어를 써내려 간다. '아직 살아 있음'하고 누군가에게 타전하듯 언어에 숨을 불어 넣는다. 시인의 숨결은 단순한 호흡이 아니다. 생사의 아슬아슬한 기로에서 매 순간 본질을 응시하며 스스로와 우리에게 건네는 온기 넘치는 격려이다.

시인은 "아픔과 눈맞춤 하며 녹여낸 시들"이 "고통을 공감하는 누군가에겐 궂은 비 지난 뒤 낙수로 떨어지는 맑은 물방울처럼, 해풍 걷힌 뒤 모래톱에 남겨진 물새 발자국처럼, 가 닿을 수 있으면 좋겠다(p.6)"고 말한다.

아픔이 아픔을 껴안는다. 시인의 '꽃 숨'으로 나의 가슴에도 꽃이 피었다. 기적은 멀리 있는 게 아니었다. 나와 당신의 숨결이 기적임을 문혜영 작가는 시집 <숨결>을 통하여 선물처럼 깨닫게 해주었다. 

**문혜영 작가: 시인, 수필가, 제7차 개정판 국정교과서 수록작가, 시집 <겁 없이 찬란했던 날들>, <숨결>, 수필집 <시간을 건너오는 기억>외 다수, 현대수필가100인 선집<바닥의 시간>, 한국현대100년100인 선집<서툴러야 인생이다>, 조경희수필문학상, 현대수필문학상, 정경문학상, 한국산문문학상 등 수상, 원주수필 회장, 원주문화재단 이사
 

덧붙이는 글 | 브런치 [느리게 걷는 여자] 개제


태그:#문혜영작가, #문혜영시집숨결, #숨결, #꽃숨, #신란숙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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