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넘게 유럽에서 활약했던 '블루 드래곤' 이청용은 K리그에 복귀하면서 '친정' 서울 대신 우승에 더 가까운 울산을 선택했다.

10년 넘게 유럽에서 활약했던 '블루 드래곤' 이청용은 K리그에 복귀하면서 '친정' 서울 대신 우승에 더 가까운 울산을 선택했다. ⓒ 울산 현대


 
이청용이 울산 현대 유니폼을 입고 K리그에 복귀했다. 울산은 3일 이청용의 영입을 공식 발표했다. 이청용으로서는 FC서울 시절 이후 11년 만의 K리그 귀환이다.

겨울 이적시장에서 기성용(RCD 마요르카)과 함께 K리그 복귀설이 유력하게 나돌았던 이청용은 친정팀 FC서울 대신 울산을 선택했다. 자유계약선수 신분이던 기성용이 서울과 우선 협상이 결렬돼 K리그 복귀가 불발된 것과 달리, 이청용은 독일 보훔과의 계약이 4개월 남은 상황에서 울산이 이적료를 지불하고 영입했다. 울산은 이청용에게 팀내 최고 대우를 보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2004년 서울에서 데뷔한 이청용은 2009년 잉글랜드 볼턴 원더러스에 입단해 유럽 무대로 진출했고 크리스탈 팰리스, 독일 보훔 등을 거치며 2010년대 한국축구를 대표하는 유럽파로 활약했다. 국가대표로서도 두 차례 월드컵(2010년 남아공, 2014년 브라질) 본선에 출전하는 등 A매치 89경기에 출전해 9골을 터뜨렸다.

이청용의 유럽무대 도전기는 '짧은 영광과 긴 고난'으로 요약된다. 초창기인 볼턴 시절에는 특유의 빠른 스피드와 창의적인 축구 지능을 앞세워 단기간에 EPL에서도 인정받는 수준급 윙어의 반열에 올랐다. K리거 출신으로 유럽 빅리그에 직행하여 성공을 거둔 사실상 최초의 사례라는 점에서 K리그의 경쟁력을 증명한 모범사례로도 꼽혔다. 전성기가 짧았다는 게 흠이지만 역대 한국인 유럽파의 계보에서 박지성과 손흥민 사이에 '이청용의 시대'가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만큼 그의 영국진출 첫 2년간은 정말로 눈부셨다.

하지만 2011/12 시즌을 앞두고 프리 시즌 경기 도중 상대 선수 톰 밀러의 거친 태클로 다리가 골절되는 불의의 부상을 당하며 이청용의 시련기가 시작됐다. 당시 선수 생명이 위험할 정도의 심각한 중상이었다.

이청용의 부상이 불러온 나비효과는 매우 컸다. 주력 선수를 잃은 볼턴은 그해 팀이 2부리그로 강등되는 것을 피하지 못했고 이청용은 시즌 막판에야 부상을 털어내고 복귀했지만 팀을 위기에서 구해내기에는 너무 늦은 상태였다. 이청용은 팀과 함께 강등 이후에도 2부리그에서 운명을 함께하는 길을 선택했지만 이후로도 볼턴의 추락은 계속됐고 끝내 이청용이 팀을 떠날 때까지 다시 1부리그로 복귀하지 못했다.

부상 후유증으로 이후 이청용의 플레이스타일과 주가에도 많은 변화가 있었다. 윙어로서 특유의 스피드와 과감함이 사라졌고, 원래부터 약점이던 슈팅력과 피지컬의 단점이 더욱 도드라지며 '소녀슈터'라는 오명을 듣기도 했다. 그나마 특유의 축구 지능으로 경쟁력을 이어갔지만 더 이상 이청용은 빅클럽에서 이적설까지 거론되던 엘리트 윙어의 위상을 잃었다.

또한 볼튼을 떠난 이후에도 이청용에게 '소속팀 불운'은 계속됐다. 2015년부터 2018년까지 크리스탈 팰리스에서 활약하며 다시 EPL 무대에 복귀했지만 주전 경쟁에 어려움을 겪었고 2018 러시아월드컵에서 3연속 본선 출전의 꿈도 좌절됐다. 중요한 순간마다 잔부상이 많았고 자신의 스타일에 맞는 소속팀을 제대로 선택하지 못했으며, 적절한 시기에 이적해야할 타이밍도 번번이 놓쳤다.

그 결과 이청용은 자신의 축구인생에서 가장 빛나야할 20대 전성기의 대부분을 1부리그 벤치멤버 혹은 2부리그를 전전하는데 만족해야했다. 이청용의 유럽무대 마지막 소속팀이된 독일 보훔에서도 출전시간은 늘었지만 정작 팀은 현재 2부리그에서조차 강등권을 전전하고 있는 약체팀이었다.

어느덧 30대를 넘긴 베테랑이 된 이청용은 고심 끝에 결국 자신의 가치를 인정해주는 K리그로 돌아왔다. 지금의 이청용에게 유럽무대에서의 불확실한 도전보다도 안정적으로 경기에 출전하여 자신의 능력을 입증하는 것이 더 중요한 시점이었다. 오히려 조금 늦은 감이 있지만 이청용은 절친 기성용과 달리 성공적으로 K리그 복귀를 이루면서 축구인생의 새로운 후반전에 접어들게 됐다.

울산은 지난 시즌 전북에 밀려 아쉽게 준우승에 그쳤지만 K리그를 대표하는 전통의 명문팀이다. 울산은 이미 조현우, 고명진, 정승현, 윤빛가람, 김기희 등을 영입한데 이어 이청용의 가세로 화룡점정을 찍으며 올시즌 다시 한 번 우승에 도전할 수 있는 희망을 얻게 됐다. 풍부한 큰 경기 경험과 창의성을 갖춘 이청용은 비록 나이가 들었어도 울산에 부족한 결정력과 안정감을 더해줄 수 있는 자원이다. 2선에서 다양한 포지션을 소화할수 있다는 것도 이청용의 강점이다.

이청용은 클럽무대에서 우승과는 인연이 없었다. 서울 시절이던 2008년 준우승이 최고성적이고 유럽에서는 소속팀이 주로 중하위권의 약체팀들이라 성적 복이 없는 편이었다. 이청용이 만일 울산의 오랜 숙원인 우승을 이끄는데 기여할 수 있다면 그의 축구인생에 있어서도 큰 이정표가 될 전망이다.

또한 이청용의 성공적인 복귀 여부는 앞으로 유럽파 출신들의 K리그 귀환에도 좋은 선례가 될 수 있다. 기성용의 경우, 최근 서울과의 협상 문제로 인하여 K리그 복귀가 불발되는 우여곡절을 겪었지만, 이동국, 박주영, 박주호, 홍정호, 설기현, 김진수 등 유럽무대에서 뛰다가 K리그로 복귀하여 활약한 사례가 훨씬 많다.

특히 이동국은 유럽무대에 실패한 이후 30대가 되어 K리그에 복귀했지만 오히려 전북에서 제2의 전성기를 맞으며 득점 신기록과 수차례의 우승 타이틀을 거머쥐는 등 마흔을 넘긴 나이에도 장수하며 성공적인 현역 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이청용에게도 롤모델이 될 수 있는 사례다.

물론 유럽무대에서 오랜 시간 활약했다고 현재의 K리그에서도 압도적인 활약을 보인다는 보장은 없다. 많은 유럽파 출신 선수들이 팬들의 높은 기대에 부응해야한다는 부담감 때문에 K리그 복귀를 망설인 경우도 많다. 기량 문제만이 아니라 관중을 몰고다니는 흥행 파워나, 여론의 주목을 받는 스타플레이어로서 공공의 모범을 보여야한다는 책임감도 크다.

이청용은 조용하고 언론 노출이 많지 않은 이미지에 가려졌지만, 서울 시절만 해도 톰 밀러 못지않은 거친 플레이로 여러 차례 물의를 일으키기도 했다. 또 의외로 큰 경기에서 기대보다 부진하다는 지적도 종종 받았다.  베테랑이 되어 K리그로 돌아온 이청용이 좀더 성숙해지고 달라진 모습을 보여줘야할 부분들이다. 다사다난한 세월의 흐름속에 부침도 있었지만 그만큼 더 숙성된 와인처럼 이청용이 11년 만에 돌아온 K리그에서 얼마나 팬들을 감동시키는 플레이를 보여줄 수 있을지가 관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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