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년만에 한국 여자농구를 올림픽 본선으로 이끌었던 이문규 감독이 결국 지휘봉을 내려놓게 됐다. 대한민국농구협회 경기력향상위원회는 18일 논의 끝에 이문규 감독과의 재계약을 포기했다고 발표했다. 이 감독은 이미 지난 최종예선을 끝으로 농구협회와의 계약이 만료된 상황이었지만, 올림픽 본선행을 이끌고도 재신임을 받지 못했다는 것은 사실상 '여론에 의한 경질'이나 마찬가지다.

올림픽 본선을 앞두고 사령탑이 바뀐 사례는 2008년 유수종 감독의 경우가 있다. 유 감독은 2000 시드니올림픽 4강 신화-2007 인천 아시아선수권 우승 신화를 썼던 여자농구의 명장이다. 2008 베이징올림픽에서도 본선 진출권을 획득했으나 그해 1월 농구협회는 예상을 깨고 유 감독 대신 정덕화 감독에게 지휘봉을 넘긴 바 있다.

당시 사령탑 교체에 대한 협회 차원의 분명한 해명이 없어서 이유는 지금도 미스터리로 남아있다. 유 감독은 협회의 결정에 서운함을 표시했지만, 당시 여자농구에 대한 관심이 높지 않았던 분위기라서 크게 이슈가 되지는 못했다. 베이징올림픽은 한국 여자농구가 이번 도쿄 대회 진출권을 획득하기 전까지 마지막으로 나간 올림픽이 되었고 정덕화호는 8강진출에 성공하며 나름 선전했다.

그에 비하여 이문규호는 올림픽 본선진출에도 불구하고 논란에 휘말리며 사령탑 교체를 요구하는 여론이 압도적으로 높았다. 특히 영국전에서 주전들을 거의 풀타임으로 기용해 혹사 논란이 일었다. 어지간해서 여론에 귀를 기울이지 않던 보수적인 농구협회도 이례적인 결정을 내릴 만큼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무시할 수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문규 감독을 향한 불신은 단지 혹사 논란이나 이번 대회에만 국한된 것이라고 보기 어렵다. 이문규 감독은 대표팀 사령탑을 맡은 이후 전술 부재와 높은 주전 의존도, 시대착오적인 언행과 태도 등으로 이미 많은 구설수에 오르내렸던 인물이었다. 심지어 이 감독은 여론의 비판이 극에 달했던 귀국 기자회견장에서도 "선수 혹사는 있을 수 없는 이야기다" "WKBL에서도 주전들이 40분을 뛰는 경우가 있다"라며 여전히 자신의 선택을 합리화하는 태도로 팬들의 등을 돌리게 했다. 

'어쨌든 이겼다'보다 '어떻게 이겼나'를 중시

이문규 감독의 불명예스러운 퇴진이 주는 교훈은 스포츠계도 더 이상 결과지상주의와 권위주의적 리더십이 모든 것을 미화하던 시대는 지났다는 것이다. 오늘날의 대중들은 '어쨌든 이겼다'보다 '어떻게 이겼냐'를 더 중시한다. 응원하던 팀이 큰 점수차로 대패한 것보다, 제대로 된 팬서비스를 하지 않는 것에 더 민감하기도 하다.

주전들을 40분 동안 풀타임으로 돌리면서도 지친 선수들에게 정신력과 투혼만 억지로 강요하는 리더십은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 리더의 권위를 내세우기보다는 같은 눈높이에서 '소통'할 수 있고 구성원들의 자발적인 '공감'을 이끌어낼 수 있는 리더십을 필요로 하는 시대다. 굳이 이문규 감독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모든 프로농구 현장 지도자들, 특히 '옛날 농구'에 길들여진 베테랑 지도자일수록 한 번쯤 생각해봐야 할 대목이다.

물론 이문규 감독이 퇴장했다고 해서 끝나는 것은 아니다. 올림픽은 불과 5개월밖에 남지 않았다. 대한민국농구협회는 이번에도 공개 공모 형식으로 차기 사령탑을 선임하겠다고 밝혔지만,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 알 수 없는 데다 유능한 인물이 온다는 보장도 없다. 허재 전 남자농구대표팀 감독이나 이문규 감독도 공개 공모로 선임된 인물이었지만 결말은 모두 좋지 못했다.

당시 허재 감독은 아들(허웅,허훈)의 대표팀 발탁 특혜 논란, 이문규 감독은 혹사 논란에 각각 발목이 잡혔다. 사실 본인들의 입장에서는 억울했을 수도 있다. 허 감독은 '아들이라서가 아니라 실력을 보고 뽑았다'고 주장했고 허웅과 허훈은 현재 KBL에서도 모두 손꼽히는 선수로 성장했다. 이문규 감독의 경우도, 올림픽 본선진출이 걸린 영국전이었기에 주전 의존도가 높을 수밖에 없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기도 하다. 

하지만 이들의 공통적인 실패요인은 결국 달라진 시대정서와 소통의 중요성을 간과했다는 것이다. 당시 허재 감독의 아들 발탁 논란은 두 선수가 다른 선수보다 지나치게 많은 기회를 독점하고 있다는 것과, 경기력향상위원회의 조언까지 무시하면서 독단적으로 선수발탁을 고집했다는데 있었다. 특히 허훈은 당시만 해도 지금만큼 실력을 보여준 선수도 아니었고, 아시안게임 당시 8강전 이후로는 경기에 출장하지도 못했다.

허재 감독은 아들 발탁 논란에 대하여 팬들 앞에서 성의있게 해명할 기회가 몇 차례나 있었지만 끝까지 불통으로 일관했고 결국 아시안게임 이후 여론 악화속에 불명예스럽게 퇴진했다. 이문규 감독 역시 팬들의 비판 여론이나 선수들을 대하는 태도가 비슷했다. 국민적 관심을 받는 국가대표팀이기에 성적만큼이나 '공정성'과 '명분'에서 대중들을 납득시킬 수 있는 소통이 필요하다. '옛날 방식'에 익숙한 지도자들이 간과한 대가는 쓰디썼다.

전임자들의 실패를 또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는 구조적인 개선이 시급하다. 감독을 교체한다고 해도 결국 이전과 비슷한 유형의 지도자가 들어온다면 의미가 없다. 국가대표팀의 지도자라면 전술이나 전략적 능력도 중요하지만 결국 변화하는 농구 트렌드나 시대정신을 이해하고 있는 인물이어야 한다.

현실적인 어려움이 있음을 감안해도 국가대표팀 감독의 자리라면 불러놓고 면접보는 형식보다는 현재 필요한 능력과 자질을 꼼꼼히 검토해 정중하게 추대하는 형식이 바람직하다. 과거의 경력보다 앞으로 대표팀을 어떻게 이끌고 나가겠다는 비전과 계획이 중요하다.

이제 공은 다시 농구협회에 넘어왔다. 어찌보면 이문규 감독이 혼자 화살받이가 되던 시간은 이제 끝났다. 달라진 대표팀 감독 평가 방식 도입으로 전임자보다 더 훌륭한 지도자를 구할 수 있느냐에서부터, 올림픽 본선을 대비한 구체적인 대표팀 지원책 마련 등 더 중요한 문제들이 기다리고 있다. 농구팬들은 여전히 협회의 책임감있는 대안을 요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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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문규감독경질 대한민국농구협회 여자농구올림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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