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트넘 홋스퍼 손흥민이 5일(현지시간) 영국 런던 토트넘 홋스퍼 스타디움에서 열린 사우샘프턴과 잉글랜드축구협회(FA)컵 32강 재경기 중 결승골을 넣은 뒤 환호하고 있다. 토트넘이 3-2로 승리했다.

토트넘 홋스퍼 손흥민이 지난 5일(현지시간) 영국 런던 토트넘 홋스퍼 스타디움에서 열린 사우샘프턴과 잉글랜드축구협회(FA)컵 32강 재경기 중 결승골을 넣은 뒤 환호하고 있다. 토트넘이 3-2로 승리했다. ⓒ 로이터/연합뉴스


 
'골골팔십'이라는 이야기가 있다. 허약해 보이는 사람이 의외로 장수하는 경우를 빗댄 표현이다. 뒤집어 말하면 건강한 자가 오래 살아남는 게 아니라 어떻게든 살아남는 게 진정 강한자라는 의미도 된다. 아파본 사람일수록 자신의 문제점이 뭔지, 지금 가장 먼저 무엇을 해야할지 오히려 더 정확히 이해하고 대처할 수 있는 법이다.

최근 토트넘의 구세주로 떠오른 손흥민의 행보도 이와 비슷하다. 전반적인 경기력은 좋다고 할 수 없는데, 신기하게도 결정적인 순간만 되면 극적인 골을 집어넣으며 팀을 위기에서 구해낸다. 꼭 화려하고 멋진 골이 아니더라도, 그전에 얼마나 많은 찬스를 놓쳤느냐도 크게 상관없다. 공격수는 결국 골로 말하는 것이고, 우연도 반복되면 그게 곧 실력이다.

손흥민은 16일(한국시각) 영국 버밍엄 빌라파크에서 벌어진 애스턴빌라와의 2019~2020시즌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 26라운드 원정 경기서 선발 출전해, 결승골 포함 멀티골을 폭발시키며 토트넘의 3-2 짜릿한 역전승을 이끌었다. 손흥민은 1-1로 팽팽한 전반 추가시간 동료 베르바인이 얻어낸 PK 찬스에서 키커로 나서서 첫 킥은 상대 골키퍼의 선방에 막혔지만 다시 쇄도하며 골문으로 밀어넣으며 첫 골을 뽑아냈다. 2-2로 팽팽한 승부가 이어지던 후반 추가시간에는 상대 중앙 수비수의 실수를 틈타, 쇄도 후 결승골을 터트렸다.

손흥민은 이로써 자신의 올시즌 리그 8~9호골이자 시즌 15~16골을 동시에 폭발시켰다. 자신의 프로 커리어 최초로 5경기 연속골에도 성공했다. EPL 개인 통산 50-51골을 성공시키며,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선수로는 최초로 EPL에서 50골 고지를 돌파한 선수가 됐다.

현재 EPL에서 손흥민(9골 7도움, 공동 8위)보다 많은 공격포인트를 기록하고있는 선수는 7명뿐이다. 손흥민과 비슷한 포지션으로 국한하면 맨시티 라힘 스털링(20골-6도움),리버풀의 사디오 마네(16골-11도움), 모하메드 살라(18골-9도움)까지 단 3명이고 이들 모두 '월드클래스'로 평가받는 선수들이다. 손흥민이 현재 EPL 최고의 선수들과 견줘도 전혀 뒤지지 않는 특급 선수라는 사실을 증명한다. 특히 올시즌에는 주포 해리 케인이 부상을 빠지고, 크리스티안 에릭센은 이적했으며 델레 알리가 인종비하 파문과 슬럼프로 주춤하고 있는 팀내에서 혼자 고군분하면서도 명실상부한 최다득점자에 올랐다는 것은, 이제 손흥민을 '토트넘의 왕'이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다는 뜻이다. 

묘하게도 손흥민은 놀라운 득점레이스와 별개로 최근 경기력은 썩 좋다고 할 수 없었다. 이날 경기에서도 멀티골을 넣었지만 첫 PK를 비롯하여 득점찬스를 많이 놓쳤다. 런던 <이브닝스탠다드> 등 현지 언론들은 '4골 이상도 넣을 수 있는 경기였다'고 평가하며 손흥민의 팀을 위기에서 구해냈지만 애초에 토트넘이 경기를 어렵게 풀고간 원인도 손흥민이 찬스를 많이 놓쳤기 때문임을 은근히 꼬집기도 했다.

손흥민이 최근 연속골 행진을 이어가고 있는 5경기가 모두 비슷했다. 기록만 보면 누가봐도 엄청난 활약을 한 것이 분명하지만 내용은 온도차가 있었다. 전반까지만 해도 아예 존재감이 없거나 심지어 민폐라고 느껴질 만한 경기도 꽤 있었다. 손흥민은 케인과 에릭센의 부재로 상대 선수들의 집중견제에 시달리고 있는데다, FA컵 재경기를 오가는 강행군과 적극적인 수비가담을 요구하는 모리뉴의 전술 성향 등으로 인하여 체력적 부담도 많은 상황이었다.

열흘만의 휴식기를 거친 빌라전에서는 그나마 체력은 어느 정도 회복된 모습이었지만 손흥민 특유의 날카로운 돌파나 슈팅의 정확도는 여전히 한창 좋을 때의 모습에 아직 미치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리뉴 감독은 손흥민을 교체하지 않았고 손흥민은 중요한 순간에 골로서 보답했다. 

알렉스 퍼거슨 전 맨유 감독은 자서전과 인터뷰에서 애제자였던 크리스티아누 호날두가 왜 '월드클래스'인지를 증명하는 사례로 "호날두가 아무리 부진한 경기를 하고 있더라도 경기중 세 번 이상의 찬스를 만들어낸다는 것을 볼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한 바 있다. 호날두는 전성기에도 이기적인 탐욕이나 난사 등으로 오직 골밖에 모른다는 의미로 '월드골래스'란 조롱을 받기도 했지만, 퍼거슨 감독은 중요한 순간에 팀을 승리로 이끌 수 있는 '해결사 본능'을 더 높이 평가한 것이다.

축구는 단 한 골을 만들어내기 위하여 과정상 수많은 실패를 극복해야하는 스포츠이며, 어떤 공격수도 90분 내내 잘할 수는 없다. 그러나 그날 활약이 저조하거나 컨디션이 좋지 않아도 결정적인 순간 한골로 '역적에서 영웅으로' 환골탈태할 수 있다는 것은, 공격수만이 가진 특권이자 매력이다.

손흥민은 5경기 연속골을 기록하는 동안 3번이 결승골이었고 그중 두 번은 버저비터나 다름없는 극장골이었다. 이제 감독과 동료들도 손흥민이 설사 부진하더라도 결국은 골을 넣어줄 것이라는 믿음이 있기에 실수를 하도 탓하거나 교체하지 않고 끝까지 믿음을 보내는 것이다. 골골대다가도 언제 그랬냐는 듯이 골을 넣어대는 손흥민은 이제 컨디션이 좋을 때와는 또 별개로, 충분히 월드클래스의 자질을 증명했다고 평가할수 있는 대목이다.

걱정스러운 것은 손흥민의 체력과 내구성이 과연 언제까지 받쳐줄 수 있을까하는 부분이다. 모리뉴 감독도 지적했듯이 손흥민은 현재 케인이 없는 토트넘에서 매경기 별다른 대안없이 90분을 소화해야하는 상황이다. 빌라전의 승리로 한숨 돌릴 여유도 없이 토트넘은 라이프치히와의 챔피언스리그 16강전과 EPL 첼시전을 잇달아 준비해야한다. 힘들지만 그래도 손흥민은 다시 경기에 나서야하고 더 많은 골을 넣어야한다. 토트넘은 손흥민의 더 많은 활약을 필요로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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