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CC 찰스 로드의 괴물 덩크 지난 17일 전주실내체육관에서 열린 2019-2020 현대모비스 KBL 전주 KCC와 서울 삼성의 경기. KCC 찰스 로드가 덩크슛을 하고 있다.

▲ KCC 찰스 로드의 괴물 덩크 지난 17일 전주실내체육관에서 열린 2019-2020 현대모비스 KBL 전주 KCC와 서울 삼성의 경기. KCC 찰스 로드가 덩크슛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문경은 서울 SK 나이츠 감독은 농구팬들 사이에서 한동안 '문애런'이라는 별명으로 통했다. 문 감독과 외국인 선수 애런 헤인즈의 이름을 합성한 신조어다. 그 시작은 '헤인즈가 없으면 아무 것도 못한다'는 뜻으로 외국인 선수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감독들의 현실을 비웃는 의미에 가까웠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문 감독과 애런 헤인즈는 SK가 오늘날의 강팀으로 거듭나는 데 가장 큰 중심축이 된 '황금 콤비'로 자리잡았다.

알고보면 헤인즈에게도 문 감독과의 만남은 큰 행운이었다. 헤인즈는 이미 SK에서 뛰기 전 서울 삼성, 울산 현대모비스, 창원 LG 등을 거치며 우승까지 경험한 검증된 외국인 선수였다, 하지만 초기에는 테렌스 레더, 브라이언 던스턴 등 정통 빅맨을 받쳐주는 백업 멤버에 불과했다. 헤인즈가 어엿한 한 팀의 에이스로 본격적으로 자리 잡기 시작한 것은 SK 시절이다. 문경은 감독을 헤인즈의 부족한 수비와 높이를 보완하고 일대일 능력을 극대화할 수 있는 드롭존 전술을 완성함으로서 헤인즈에게 날개를 달아줬다.

문경은-애런 헤인즈, '문애런' 신조어까지 탄생시킨 역대 최장수 콤비

헤인즈는 KBL에서 외국인 선수로는 최초로 1만득점을 돌파했고, 무려 12시즌째 KBL을 누비고 있는 최장수 외국인 선수가 됐다. KBL이 선정한 역대 레전드 12인에도 선정되는 등 이제는 명실상부 외국인 선수를 넘어선 KBL 전설의 반열에 올랐다.

헤인즈는 어느덧 38세의 노장이 된 올시즌도 여전히 SK 유니폼을 입고 코트를 누비고 있다. 다만 역할은 한국농구 진출 초기처럼 식스맨으로 돌아갔다. 이제 팀의 에이스 역할은 자밀 워니에게 넘겨줬다. 하지만 헤인즈의 가치는 여전히 높다. 크게 줄어든 출전시간에도 여전히 두 자릿수 득점을 기록하며 경기가 어려울 때 분위기를 전환시켜주는 '벤치 해결사'의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세월의 흐름을 따른 변화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적응할 수 있었던 것은 문경은 감독과 오랜 시간 구축한 신뢰에서 비롯됐다. KBL 역사상 프로감독과 외국인 선수로서 가장 이상적인 장수 콤비의 모범사례라고 할 만하다.

프로농구에서 외국인 선수의 비중은 절대적이다. 하지만 뛰어난 선수를 보유하고 있다고 해서 모두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외국인 선수를 얼마나 잘 활용하고 통제하는가에 따라서 전혀 다른 결과가 나오기도 한다. 유도훈 인천 전자랜드 감독과 리카르도 포웰, 김동광 전 안양 SBS(현 인삼공사) 감독과 단테 존스, 유재학 울산 현대모비스 감독과 고 크리스 윌리엄스 등 실력과 개성을 겸비한 외국인 선수-그런 선수들을 장악해야하는 카리스마넘치는 감독간의 관계는 여러 가지 뜻밖의 '케미'를 선사한다.

신선우-조니 맥도웰, 우연에서 시작된 '작은 탱크'의 성공 신화

KBL의 첫 번째 왕조로 불리우는 대전 현대(전주 KCC)의 시작은 '검은 탱크' 조니 맥도웰의 등장에서 비롯됐다. 사실 맥도웰은 처음부터 신선우 감독이 원했던 선수는 아니었다. 당시 이상민-추승균-조성원으로 이어지는 국가대표급 선수구성을 갖춘 현대는 외국인 선수 선발이 마지막 관건이었다. 1997년 외국인 선수 드래프트 1라운드에서 장신 빅맨 제이 웹을 먼저 지명한 대전 현대는 2라운드에서는 '득점기계' 버나드 블런트를 선발할 예정이었다.

그런데 당시 경남 LG(현 창원)가 블런트를 먼저 지명했고, 난처해진 대전 현대가 급하게 대신 선발한 선수가 바로 맥도웰이었다. 당시 맥도웰의 지명순위는 전체 20명 중 뒤에서 두 번째인 19순위였다.

하지만 울며 겨자먹기로 고른 맥도웰 선발은 신 감독에게 오히려 신의 한 수가 됐다. 맥도웰은 빅맨으로서는 작은 키에도 탱크같은 파워와 농구센스를 앞세워 KBL의 골밑을 평정했다. 1라운드로 데려온 제이 웹이 오히려 맥도웰의 도우미가 되었을 정도였다. 포인트가드 이상민과 전개한 환상의 2대 2 플레이는 한국판 칼 말론-존 스탁턴에 비견될만큼 알고도 못막는 수준이었다. 현대는 이후 정규리그 3연패, 챔프전 2연패의 업적을 세우며 한국 프로농구 최초의 왕조로 군맥도웰의 영입으로 KBL에서 단신에 힘 좋은 빅맨들이 대거 등장하며 외국인 선수 영입의 트렌드까지 바뀌었을 정도였다.

전창진-찰스 로드, '고길동과 둘리?' 알고보면 단짝

올시즌 전주 KCC에서 재회한 전창진 감독과 찰스 로드는 KBL판 '톰과 제리' 혹은 '고길동과 둘리'의 관계로 비유할수 있다. 두 사람의 만남은 2010년 부산 KT 시절로 거슬러올라간다. 당시 로드는 제스퍼 존슨의 백업 선수로 KBL 무대를 처음 밟았는데, 운동능력은 뛰어나지만 그 외의 기량이나 전술 이해도는 평범한 선수에 불과했다. 그런 로드의 잠재력을 눈여겨보고 영입한 인물이 바로 전 감독이었다.

로드는 초기에는 전 감독의 지시를 성실하게 잘 수행했지만, 기량이 점점 발전하고 팀내 위상도 높아지면서 돌출행동이 잦아지기 시작했다. 선수관리와 규율에 엄격한 전감독이 이를 방치할 리 없었고 두 사람은 자주 충돌했다. 매 경기마다 특유의 걸쭉한 톤으로 '촤아알~스"를 외치며 사자후를 내뿜는 전 감독의 모습은 당시 KT 작전타임만의 최대 볼거리가 됐다. 전 감독이 선수들에 대한 각종 '막말' 논란 등으로 이미지가 한창 악화될 때 본의아니게 가장 공헌한 인물 중 하나가 바로 로드였다. 팬들의 눈에는 잘하는 것처럼 보이는데 벤치에서는 늘 구박받는 모습만 비쳐지는 로드에 대한 동정론이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겉으로 보이는 이미지와 달리 두 사람의 관계는 양호했다. 전 감독이 사비를 들여 로드 자녀들의 돌잔치를 열어주고 직접 사회까지 봐준 일화는 유명하다. 심지어 전 감독의 잦은 질타에 로드가 반발하면서 항명 논란이 일어난 경우도 있지만, 두 사람은 그 다음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코트에서 웃으며 대화를 나누기도 했다. 전 감독이 올해 사령탑으로 복귀한 KCC에 로드가 대체 선수로 합류하며 두 사람은 5년 만에 재회했다. 일반적인 프로농구 감독-외국인 선수의 관계를 뛰어넘는 그야말로 애증의 콤비라고 할 만하다.

강을준-아이반 존슨, '니갱망'은 그렇게 전설이 되었다.

KBL의 '소크라테스' 강을준 전 창원 LG 감독과, KBL 역사상 최고의 '돌+아이'로 꼽히는 아이반 존슨, 두 사람이 함께한 시간은 그리 길지 않고 우승같은 화려한 업적을 남긴 것도 아니지만 강 감독과 존슨의 조합은 농구팬들에게 지금까지도 종종 거론되는 수많은 명장면들을 만들었다. 

강을준 감독은 구수한 영남 사투리 억양과 신사적인 코트 매너로 농구팬들 사이에서는 친근한 이미지가 강했지만, 현장에서는 규율과 팀플레이를 중시하는 엄격한 유형의 지도자였다. 그런데 이런 강 감독의 프로 데뷔무대에서 처음으로 선발한 외국인 선수가 하필이면 바로 아이반 존슨이었다. 동양적인 위계질서와 예의범절을 중시하는 감독과, 개방적인 외국인 중에서도 손에 꼽을 만한 불같은 성격과 반항기를 자랑하던 선수의 조합은, 당연히 '물과 기름'이 될 수밖에 없었다.

강 감독은 야생마같은 존슨을 길들이기 위하여 여러 번 기싸움을 벌이는 등 온갖 노력을 다했다. 눈물겨운 일화들을 보면 전창진과 찰스 로드의 관계는 애교 수준으로 보일 정도다. KBL 작전타임사에 전설의 어록으로 남은 신조어 '니갱망'도 존슨 때문에 탄생했다. 팀원들을 배려하지 않고 독단적인 플레이를 하는 존슨을 향해 "아이반, 니가 갱기(경기)를 망치고 있어"라고 대놓고 일갈한데서 비롯됐다. 존슨은 NBA까지 진출할만큼 뛰어난 실력에도 불구하고 결국 LG와 재계약에는 실패했다. 이후 다른 팀으로 이적하고 나서 상대 라커룸 칩입-손가락 욕설 사건 등 상상을 초월하는 사건사고가 거듭되며, 오히려 강을준 감독이 LG 시절 그나마 존슨을 잘 통제한 것이란 사실이 뒤늦게 재조명되기도 했다.

원래부터 일반적인 농구 감독들과 달리 선문답같은 표현을 즐겨 구사하던 강 감독이었지만 존슨과 보낸 일년 이후로는 뭔가 해탈했는지 그야말로 작전타임마다 인생의 애환이 묻어나는 KBL의 '어록제조기'로 거듭났다. '성니(승리)했을 때 옝웅(영웅)이 나타나." "느그들이 무슨 스타야?" "지금 무슨 NBA 할렘농구를 하구 있어." 등 강 감독이 남긴 무수한 어록들은 그가 프로농구 현장을 떠난 지 10년이 다되어가는 지금도 전설로 회자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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