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을 시작하는 주말과 휴일이 온통 축구에 빠져들게 만들었다. K리그 팀들이 시즌 중반부를 향해 치열한 승점 싸움을 펼쳤고, 그 사이에 전 세계의 축구팬들을 흥분하게 만든 UEFA(유럽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이 열린 것이다.

그렇게 열린 3게임에서 공교롭게도 골키퍼의 실력 차이로 희비가 엇갈렸다. 초록 그라운드에서 특수 포지션인 골키퍼의 역량이 게임 결과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가를 세 명의 골키퍼가 마치 연구 보고서를 제출한 것처럼 분명하게 보여주었다.

인천 유나이티드 FC No.1 골키퍼 '정산'

신임 유상철 감독이 이끌고 있는 인천 유나이티드 FC가 1일 오후 7시 성남종합운동장에서 열린 2019 K리그 원 15라운드 성남 FC와의 어웨이 게임에서 56분에 오른쪽 풀백 정동윤이 경고 누적으로 퇴장당하는 바람에 수비 쪽 구멍이 크게 뚫렸지만 골키퍼 정산의 신들린 듯한 슈퍼 세이브 실력 덕분에 실점 없이 0-0으로 게임을 끝내며 귀중한 승점 1점을 따낼 수 있었다. 
 
 9분, 성남 FC 최병찬의 슛을 자기 오른쪽으로 날아올라 쳐내는 인천 유나이티드 골키퍼 정산

9분, 성남 FC 최병찬의 슛을 자기 오른쪽으로 날아올라 쳐내는 인천 유나이티드 골키퍼 정산 ⓒ 심재철

 
인천 유나이티드 FC는 지금 더 내려갈 곳이 없이 1부리그 최하위에 머물고 있다. 인천 유나이티드와 크게 다르지 않은 성적으로 제주 유나이티드와 경남 FC가 강등권 싸움을 시작했다고 봐야 한다. 

지난 달 28일(화) 제주 유나이티드와의 까다로운 어웨이 게임을 2-1로 이기며 시즌 두 번째 승리를 80일 만에 힘겹게 따낸 인천 유나이티드 FC는 이번 성남 FC와의 어웨이 게임이 매우 중요했다. 

성남 FC가 최근 네 게임(3득점 10실점)을 모두 패하며 흔들리고 있기에 그들을 붙잡아 놓은 뒤, 바닥 찍고 일어서기가 필요했던 탓이다. 그런 면에서 이 게임 홈 팀 성남 FC도 꼴찌 인천 유나이티드 FC를 불러들여 4게임 연속 패배의 수렁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절박함을 드러낼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이 게임 주인공은 따로 있었다. 인천 유나이티드 골문을 지키고 있는 정산이 놀라운 순발력으로 온몸을 던져가며 성남 FC의 위력적인 슛들을 모두 막아낸 것이다. 정산은 스무 살 어린 시절(2009년) 강원 FC 유니폼을 입고 K리그 선수로 등록했지만 단 1게임도 뛰지 못하고 2011년에 이적했는데 마침 그 팀이 바로 이 게임 상대 팀 성남 FC였다. 

정산은 거기서도 No.1 골키퍼라고 말하기 어려웠다. 2011년 1게임, 2012년 19게임을 뛰었지만 그 이듬해부터 3년 동안 단 한 번의 기회조차 없었던 것이다. 정산은 그래서 더 성남 FC에게 실점하지 말아야겠다는 각오로 온몸을 던졌나보다.

2016년에 소속 팀을 울산 현대로 옮긴 정산은 11게임 기록을 남기고 다시 떠나 2017년부터 인천 유나이티드 FC 골문을 지키는 선수가 됐다. 인천에서의 첫 시즌 12게임(2017년), 두 번째 시즌 18게임(2018년)을 뛰면서 조금씩 중심을 잡기 시작했고 만 30살이 된 올해 현재까지 15게임 중에서 13게임을 뛰면서 비로소 인천 유나이티드 FC의 대체 불가 골키퍼로 입지를 굳히고 있다.

정산은 성남 FC와의 어웨이 게임 시작 후 9분 만에 성남 FC 최병찬의 오른발 중거리슛을 자기 오른쪽으로 날아올라 쳐내며 슈퍼 세이브 실력을 뽐내기 시작했다. 23분에도 반 박자 빠른 서보민의 오른발 강슛이 골문 톱 코너로 빨려들어갈 듯 날아왔지만 정산은 자기 오른쪽으로 날아올라 그 공을 기막히게 쳐냈다. 

34분에도 마티아스의 왼발 슛이 까다로운 궤적을 그리며 날아들었지만 정산은 마치 방향을 미리 알고 있었다는 듯 자기 왼쪽으로 날아올라 공을 쳐냈다. 그리고는 곧바로 성남 FC 간판 공격수 에델의 날카로운 크로스를 막으려다가 김정호의 몸에 맞고 굴러들어가는 자책골 위기까지 잡아냈다.
 
 인천 유나이티드의 골키퍼 정산 선수의 모습

인천 유나이티드의 골키퍼 정산 선수의 모습 ⓒ 한국프로축구연맹

 
후반전 시작 후 인천 유나이티드 FC는 아찔한 위기 상황에 직면했다. 오른쪽 풀백으로 뛰는 정동윤이 41분에 성남 FC 에델에게 거친 반칙을 저질러 옐로 카드를 받은 것을 망각하고 56분에 다시 한 번 에델의 발목을 노골적으로 걸어 넘어뜨리는 바람에 김우성 주심으로부터 두 번째 카드를 받고 아예 퇴장당한 것이다.

후반전 추가 시간을 빼고도 34분이나 남은 시간을 감안하면 인천 유나이티드가 쉽게 감당하기 어려운 흐름이었다. 그래서 성남 FC 선수들은 자기들이 하고 싶은 공격을 맘껏 퍼부었다. 70분에 미드필더 서보민이 낮게 깔리는 오른발 슛으로 골을 노렸고 골키퍼 정산은 자기 오른쪽으로 몸을 내던지며 쳐냈다.

정산의 슈퍼 세이브가 절정에 도달한 때는 이른바 극장골의 시간인 종료 직전이었다. 88분에 성남 FC의 후반전 교체 선수 김현성이 유연한 몸놀림으로 왼발 가위차기 슛을 날렸다. 골키퍼로서 상대 선수의 바이시클 킥은 그 방향을 예측하기 매우 어렵기 때문에 몸 날려 반응하기 힘들다는 것을 선수들은 잘 안다. 하지만 정산은 김현성의 왼발 가위차기가 날아올 때 자기 오른쪽으로 몸을 날려 그것마저도 막아낸 것이다.
 
 후반전 추가 시간 3분, 성남 FC 주현우의 프리킥을 자기 오른쪽으로 몸 날려 쳐내는 인천 유나이티드 골키퍼 정산

후반전 추가 시간 3분, 성남 FC 주현우의 프리킥을 자기 오른쪽으로 몸 날려 쳐내는 인천 유나이티드 골키퍼 정산 ⓒ 심재철

 
정산은 후반전 추가 시간까지 집중력을 조금도 잃지 않았다. 추가 시간 3분에 성남 FC 주현우의 오른발 감아차기 직접 프리킥이 날아들었지만 여기서도 정산은 각도를 잘 잡아놓고 자기 오른쪽으로 몸을 내던지며 공을 높게 쳐냈다.

후반전 대부분의 시간을 10명이 뛰어야 했던 인천 유나이티드 FC로서는 정산 골키퍼 덕분에 무엇과도 바꾸기 힘든 승점 1점을 따냈다. 강등권 싸움을 펼치고 있는 팀들이 승점 1점에도 순위가 엇갈릴 수 있기에 정산의 슈퍼 세이브 행진은 그 어느 때보다 빛났다.

알리송 베케르, 리버풀 FC의 우승 소원 이룬 골키퍼

우리 시각으로 2일 오전 4시 스페인 마드리드에 있는 에스타디오 메트로폴리타노에서는 2018-2019 UEFA(유럽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이 였렸다. 

한국 축구의 에이스 손흥민이 토트넘 홋스퍼 FC의 흰색 유니폼을 입고 풀 타임 활약했기에 우리 축구팬들은 더 큰 관심을 갖고 새벽잠을 설치며 응원한 게임이었다. 
 
 EPL 리버풀 FC의 골키퍼 알리송 베커 선수의 모습

EPL 리버풀 FC의 골키퍼 알리송 베커 선수의 모습 ⓒ AP/연합뉴스

 
하지만 손흥민의 결정적인 슛 2개는 모두 리버풀 FC 골키퍼 알리송 베커의 슈퍼 세이브에 가로막히고 말았다. 80분에 손흥민의 오른발 끝을 떠난 중거리슛은 갑자기 뚝 떨어지며 막아내기 까다로운 궤적으로 날아들었지만 알리송이 자기 오른쪽으로 날아올라 잘 쳐냈고, 후반전 추가 시간에 손흥민의 왼발 끝을 떠나 낮게 깔려오는 대각선 슛도 알리송이 왼쪽으로 몸을 내던지며 기막히게 쳐냈다. 

알리송 베케르의 이 놀라운 활약 덕분에 리버풀 FC는 2004-2005 시즌 이스탄불의 기적 이후 14년 만에 우승 트로피 빅 이어에 입을 맞출 수 있는 감격을 누린 것이다. 

특히, 리버풀 FC는 지난해 이 대회 결승전에서 레알 마드리드 CF에 완패하며 분루를 삼켰는데, 그 게임에서 골키퍼로 나온 카리우스의 실수가 뼈아팠다. 그래서 리버풀 FC는 거액을 들여 AS 로마(이탈리아)에서 활약하던 브라질 국가대표 골키퍼 알리송 베커를 데려온 것이다. 이 과감한 결단이 1년 만에 우승 트로피를 가져올 수 있게 만든 원동력이 된 셈이다. 그만큼 축구 게임에서 골키퍼의 영향력이 큰 것이라 하겠다.

포항 스틸러스 골키퍼 강현무의 뼈아픈 실수

2일 일요일 오후 7시 포항 스틸야드에서 또 하나의 흥미로운 게임이 펼쳐졌다. 이번 시즌 하늘색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대구 FC와 김기동 새 감독 효과를 톡톡히 보고 있는 포항 스틸러스가 만난 것이다. 

그런데 80분이 넘어설 때까지 0-0 점수판이 멈춰 있었다. 대구 FC가 이 게임 직전까지 K리그1 최소 실점(14게임 8실점) 기록을 자랑할만하다는 것을 또 한 번 입증하는 게임으로 보였다. 

센터백 홍정운이 중심에 서서 온몸을 내던지며 상대 공격을 막아내고 있는 대구 FC의 수비에는 전혀 문제가 없었지만 반대로 포항 스틸러스의 골문 앞에 큰 구멍이 뚫리고 말았다. 오랜만에 글러브를 끼고 포항 골문을 지킨 골키퍼 강현무가 아찔한 실수를 저지른 것이다. 

83분, 대구 FC 왼쪽 윙백 강윤구의 왼발 크로스가 비교적 완만하게 날아와 강현무가 가볍게 점프하며 그 공을 잡아내는 듯했다. 하지만 강현무는 그 공을 잡다가 뒤로 떨어뜨렸고 덕분에 대구 골잡이 에드가의 아웃사이드 밀어넣기가 손쉽게 골로 연결됐다. 

지난 해 K리그 1 모든 게임을 혼자서 소화해내며 '전 경기 출전상'까지 받은 강현무가 올해 주전 골키퍼 자리를 류원우에게 내줬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순간이었다. 
 
 포항 스틸러스의 골키퍼 강현무 선수의 모습

포항 스틸러스의 골키퍼 강현무 선수의 모습 ⓒ 한국프로축구연맹

 
이처럼 크게 흔들린 강현무는 그로부터 3분 뒤 쐐기골을 내줄 때에도 위치 선정에 실수를 저질렀다. 세징야의 공간 패스를 받은 장성원이 오른쪽 끝줄 바로 앞에서 로빙 크로스를 올려주었을 때 골 라인 바로 앞을 지킨 것이 아니라 골 라인 안쪽으로 움직이는 문제점을 드러낸 것이다. 그러다보니 세징야의 재치있는 헤더 슛이 이미 골 라인을 통과한 뒤 팔을 뻗어 쳐낼 수밖에 없었다.

대구 FC의 빠르고 정확한 공격 연결이 돋보이기는 했지만 강현무가 끝까지 침착했다면 충분히 막아낼 수 있는 상황이었기에 3분 사이에 내준 2골은 지워버리고 싶은 오점으로 남을 수밖에 없었다. 

이 사례들에서 보듯이 골키퍼의 비중은 필드 플레이어 한 선수에 비할 수 없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기본기 탄탄하고 경험 많은 골키퍼가 각 팀마다 최소한 1명 이상씩 배치되어 있어야 할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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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 정산 골키퍼 알리송베커 강현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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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대인고등학교에서 교사로 일합니다. 축구 이야기, 교육 현장의 이야기를 여러분과 나누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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