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김군>의 한 장면

영화 <김군>의 한 장면 ⓒ 영화사 풀

 
<김군>은 1980년 5월 광주를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다. 역사적 사건들이 대개 그렇듯 그때 그곳에 있지 않았던 사람들에게 <김군>의 영상들은 믿기지 않는 풍문이었다.

그 풍문이 '광주민주화운동'으로 정식 규정된 게 1988년 4월 1일이다. 이후 1997년 4월 17일 재판부는 그 일을 내란 및 내란목적의 살인행위로 규정하고 전두환에게 무기징역 선고를 확정한다. 국가가 북한군 개입설을 사실 무근으로 아퀴 지은 것이다.
 
'광수'로 지목된 이를 찾아나서다

그러나 지금껏 '5·18 진상규명 조사위원회'는 출범조차 못하고 있다. 지난 2월 자유한국당은 5·18에 참여한 시민들에게 '북한군 특수부대(일명 광수)'라 오명을 씌운 지만원을 국회 공청회 발표자로 내세운다. 이후 김진태·김순례·이종명 의원의 5·18 망언에 대한 솜방망이 처벌로써 레드콤플렉스를 암암리에 조장한다. 이런 상황들은 제39주년 5·18 민주화운동 기념식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독재자의 후예가 아니라면 5·18 다르게 볼 수 없다"는 발언을 한 배경이기도 하다.
 
그래서 <김군>의 상영은 주목할 만하다. 5·18 이후에 태어나 현재 36살인 강상우 감독이 카메라 앵글을 맞춘 "김군" 찾기 프로젝트여서 그렇다. 1989년 광주 청문회에서 헬기 사격 목격을 발언한 고 조비오 신부를 '사탄'이라고 비난해 사자명예훼손으로 고발된 전두환이 지난 3월 11일 광주 법정에 출두하며 빚은 소동을 낯설어 할 세대의 응시여서도 그렇다.
  
 영화 <김군>의 한 장면

영화 <김군>의 한 장면 ⓒ 영화사 풀

 
"김군"은 지만원이 북한군 '광수 1호'로 지목한 무장 시민군 사진 속 인물이다. 강상우 감독은 현재 기준 39년 전 기억들을 호명하며 4년 간 물어물어 생존자들을 만나고 증언들을 채록한다. 매끄럽게 긴장감을 유지하는 강 감독의 연출은 그 아픈 구술들에 빠져들게 하는 먹먹함을 자아낸다. 고문 후유증과 트라우마에 시달리면서도 사람 구실한 그때의 행위를 후회하지 않는다는 증언 앞에서 나는 목이 멘다.
 
<김군>은 1989년 광주청문회 현장을 시작으로 해서 광주 도청 앞 분수대에 점차 모여드는 사람들을 연속촬영하듯 보여준다. 그건 광주민들의 무력항쟁이 사람이 죽어가는 현장을 보고 눈이 뒤집혀 대들었을 뿐이라는 무장 시민군의 자연발생적 동기와 절규를 시사한다. 민주화운동 같은 의식화 없이도 행할 수 있는 사람 구실이어서 "넝마주이 김군"도 "10번 트럭"에 오를 수 있었다는 얘기다.
 
자기보다 한발 앞선 김군 때문에 목숨을 부지했다 여기는 최진수씨의 울먹임이 결말로 자리매김할 때까지 <김군>의 템포는 한결같은 아다지오다. 시민군에게 주먹밥을 나눠주던 광주시민 주옥씨와 이창성 사진기자, 그리고 트라우마 섞인 산자들의 증언이 김군 행불에 대해 아귀를 맞추며 '제1광수'설을 반박한다. 5·18을 겪지 않은 세대의 객관적 연출이 도리어 설득력 있다.
 
이발소에서 머리 감겨주는 것조차 마다해야 하는 피해자들

<김군>이 문제 제기한 송암동 양민학살 재조사를 도울 수도 있을 새로운 증언들이 잇따르는 요즘이다. 지난 5월 13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김용장씨(당시 미군 501정보여단 군사정보관)와 허장환씨(당시 보안사 505보안대 특명부장)는 신군부의 사전 시나리오와 사살명령 가능성을 짚어 밝혔다. 현 정부의 역사왜곡 바로잡기 의지를 믿고 마음을 열었다는 김용장씨의 늦은 고백이 <김군> 상영과 맞물려 그나마 다행이다.
  
 영화 <김군>의 한 장면.

영화 <김군>의 한 장면. ⓒ 영화사 풀

 
<김군>의 등장인물들에게 5·18에 관한 기억은 삶을 옥죄는 덫이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정치는 보수 진보 구분 없이, 국민의 생존권과 안녕을 기본적으로 보장해야 한다. 그런 관점에서 5·18 망언들을 쏟아내 생존자들의 트라우마를 덧들여 결과적으로 그들의 숨통을 끊으려는 정치가들은 정치할 자격이 없다. 여전히 잠자는 게 힘들고, 이발소에서 머리를 감겨주는 것조차 마다해야 하는 화면 속 그들 자리에 나를 대입해 본다. 나라고 별 수 있으랴. 그런 다큐 속 주연은 정말 피하고 싶다.
 
<김군>의 증언자들은 '북한군 개입설'을 퍼뜨리거나 귀 기울이는 사람들에 대해 욕조차 내비치지 않는다. 그들의 무력함에 역지사지할 줄 모르면서도 부끄러움조차 못 느끼는 정치가들이 떠올라 절로 종주먹을 들이댄다. 내가 들어선 주말 객석은 셋만 젖혀져 있다. 5·18 생존자들이 해묵은 트라우마를 제대로 치유하기에는 부족한 관심도다. 둘셋씩 어울리며 싱그러운 미소를 나누는 거리 사람들에게 불현듯 서운하다.
김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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